동백꽃 지다 -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강요배 지음, 김종민 증언 정리 / 보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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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어미 위에서 젖 빨던 그 아이 잊을 수 없어"
[서평]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동백꽃 지다>




<제주4.3 60주년을 기념해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가 보리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당사자 34명의 증언을 제주 4.3 전문가 김종민 씨가 정리해서 그림과 함께 생생하게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200-2"의 역사적인 의미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열렸다. 이때 총 의석수는 200석이었으나 2표의 무효로 인해 제헌의회는 198명의 국회의원으로 출범했다. 이 "-2"라는 숫자는 현대사에서 그리 조명을 받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정체성에 상처가 된다는 점이었고,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정치인생의 오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부 당시에는 이 두 가지가 사실상 동의어였다. 이승만은 현대사에서 '굴종'이라는 선례를 남기며 권력을 누렸다. 자주독립을 위해 가산과 전 인생을 반납한 독립운동가와 그 자제들, 일제에 협조하여 가산을 지키고 권세를 누렸던 친일파와 그 자제들의 운명은 이승만이 미 군정에 굴종하며 친일 세력을 대거 재임용함에 따라 갈리고 말았다. 이와 같이 현대사는 '굴종'이라는 유혹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재벌의 편법, 탈법이 일반화되고 정치인과 공직자의 일상적인 부패상은 이 '굴종의 현대사'를 더욱 빛내고 있는 셈이다.

제주 북제주 갑ㆍ을 2개 선거구의 무효는 이러한 '굴종'에 이의를 단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다.(이듬해 5월 10일 이 두 개의 상처(?)는 신속하게 다른 '굴종'들로 채워졌다) 이 "-2"라는 역사적 메시지를 던진 죄로 당시 제주 인구 30만 명의 1/10인 약 3만명이 죽었다. (제주 4ㆍ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2003년 통과)) 선거철마다 주요 정당이 제주에서 경선을 시작하는 것은 비단 제주가 국토 하단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선거의 향배를 예측하는 캐스팅보드 역할을 오랫동안 자처한 제주의 민심은 그 기원이 대단히 오래 되었다. 예컨대 17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의 전국 투표율은 48.7% 대 26.1%였다. 이 차이는 22.6%로 두 후보 사이에 한 명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들어갈 틈이 있을 정도였다. 제주의 투표율은 어땠을까? 이명박 후보 38.3% 대 정동영 후보 32.4%로 불과 6% 미만의 차이였다. 그나마 정치색이 덜하다는 서울도 53.1% 대 24.4%로 더블스코어 이상의 결과가 나왔던 때다. 제주도의 이 묘한 정치적 균형감각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제주 4.3을 말해주는 '세 가지 마음'

 

제주 4.3을 감성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를 관통하는 세 개의 마음이 존재한다. 첫째, 5·10 남한 단독선거가 제주도의 거부로 절름발이가 되자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몹시 격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1949년 1월 12일 열린 국무회의 의결사항은 '제주도 특별소탕경찰대 1,000명 파견에 관한 건'이었는데, 이 문건에서 대통령의 유시 내용은 "미국 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拔根塞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며 지방 토색(討索)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였다. 그보다 한달 전인 1948년 12월에 서북청년단 총회에 직접 참석해 연설을 하고 서북청년단원들을 제주도로 파견하였고, 그 단원들이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볼 때 제주도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감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제주 4.3 전 영역에 걸쳐 가장 처참한 집단 학살과 초토화 작전이 자행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3개월만인 1948년 11월 17일 이승만이 대통령령 31호로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한 즈음이다. 제주도에 내려온 서북청년단원이 "이승만 대통령의 허락 없이 어느 누가 재판도 없이 민간인들을 마구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겠습니까?"라고 증언하는 바와 같이 제주 4.3의 일차적 책임은 이승만에게 있다.

둘째는 서북청년단의 '증오심'이다. 일명 '서청'으로 불리는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였다. 따라서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자신들의 터전을 없애버린 세력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품은 서청과 남로당의 적극적인 활동지인 제주도의 만남은 처참한 홀로코스트를 낳았다.

셋째는 제주도민의 공분이다. 제주도는 이승만의 반공국시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본 지역으로 속하는데, 혹자는 제주 4.3이 '빨갱이들의 선동과 주민들의 동조'로 보고 <4.3특별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제주도민이 미군정과 당국의 행태에 공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주도민의 특이한 이력을 살펴야 한다.  

제주도가 척박하고 고립된 땅이라고해서 그 정신마저도 고립된 것은 아니다. 제주는 예부터 최후의 유배지로 꼽혔는데, 유배 온 양반들은 제주의 젊은이들에게 학문을 전수하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 때문에 유난히 제주도에는 유풍과 학식이 생활상에 고루 반영돼 있다. 일례로 국어학자 이기문은 일조각에서 발행한 <속담사전>에서 해방 이후의 중요한 업적으로 <제주도 속담 1,2>(진성기 편저)를 소개하며 사전편찬에 도움받은 바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나 역시 어머니로부터 수십 년 동안 '해태(懈怠)하지 말라'는 훈계를 들었는데, 이는 '해이하거나 태만하지 말라'는 일반에서는 보기 드문 한자어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늦게 상륙한 이유도 있지만, 제주도민들은 그야말로 해방감을 가장 깊이 맛본 사람들이었다. 이때 남한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치안과 정책을 수행하였다.

제주 4.3의 남상이 될 만한 사건은 1947년 3월 1일 제주 지역 곳곳에서 개벽 이래 최대 인파인 3만명 정도가 참여한 '3.1절 기념 제주도 대회'였다. 3만명이 운집한 것도 대단하지만 주민 6명이 죽고 8명이 크게 다친 '3.1절 발포 사건' 직후 이에 항의해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인 166개 기관ㆍ단체가 파업에 가세한 '민관 총파업'이 제주도민의 인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사가 서중식 교수는 <동백꽃 지다>(보리)의 부록 논문에서 "제주도는 밭이 99%인데다 땅이 척박하여 소출이 적은 관계로 육지에 비해 계급 갈등의 소지가 미약했고 혈연 공동체적 요소와 사회경제적 성격으로 인해 도민들이 쉽게 단결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고 기록했다. 이 책의 자료2 <제주 4.3항쟁 일지>에 의하면 3.1절 발포 사건 이후 단행된 민관 총파업을 두고 경무부(지금의 경찰청) 최경진 차장이 "원래 제주도는 주민의 90%가 좌익 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161쪽) 이는 단선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단지 제주인들은 부패하고 굴종스러운 기득권의 부조리한 정책에 이의를 제기할 정도로 의식이 있었을 따름이었다. 이러한 마음들의 충돌은 제주 4.3이라는 필연적인 비극을 만들어낸 동력으로 작용했다.

 




강요배의 그림책 <동백꽃 지다>가 나왔다
 

올해로 제주 4.3 60주년을 맞는다. 그에 걸맞게 다채로운 행사가 제주에서 펼쳐진다. 출판에 업을 두는 사람으로서 나는 강요배 화백의 그림책 <동백꽃 지다>(보리)가 나왔다는 데 대해서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책을 보자마자 밤새 삽화와 증언을 살폈다. 대학시절 익숙하게 보았던 그림들이 한 책으로 묶인 점이 좋고, '제주 4.3전문가 김종민' 씨가 발품을 팔아서 '당사자'들의 증언을 채록했다는 점도 좋다. 이 책은 1998년 학고재에서 낸 <동백꽃 지다>를 다시 낸 것인데, <동백꽃 지다>는 강요백 화백이 1989년부터 3년 동안 '제주 4.3항쟁'을 다룬 그림 50점을 1992년 발표한 전시회의 제목이다.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어미 위에 엎드려 젖을 빨고 있는 아이가 4.3의 처참함과 제주인의 처절한 생명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기영의 자전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실천문학사)에서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라는 말로 제주인의 이 같은 정신을 압축해서 표현했다>


 <난리통에는 어린아이와 부녀자 등 노약자가 최대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먹을 것이 없으니 젖이 빈 것은 당연하다. 빈 젖을 빨지도 못하고 아파하는 아이의 모습과 고개를 숙인 어미의 모습이 처절하게 다가온다>

강요배 화백은 '기행'으로 더 유명한데, 재미있는 예화가 하나 있다. 바람과 풍랑이 잦은 제주도에서도 격렬한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밤에 강요배는 붓과 캔버스만 들고 열 번도 넘게 바다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것은 파도와 비바람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해서다. 현재 '민족 미술인 협회' 회장과 '제주 4.3 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소재는 종이, 펜, 먹, 캔버스를 가리지 않았으며 증언의 내용이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선택했다. 역시 제주 민중의 일상사와 당시의 처지를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그렸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119쪽의 '젖먹이'와 133쪽의 '빈젖'은 당시의 처참한 일상을 고스란히 설명해 준다. '젖먹이'에 대한 증언은 김석보 씨(조천읍 북촌리)의 1998년 증언에 담겨 있다.

"사람들이 동요해 흩어지기 시작하자, 군인들이 사람들 머리 위로 총을 난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너댓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중엔 한 부인도 있었는데, 업혀 있던 아기가 그 죽은 어머니 위에 엎어져 젖을 빨더군요. 그날 그곳에 있었던 북촌리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겁니다." (118쪽)
 

제주어에 '속솜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침묵하거나 아주 작게 말하다'는 뜻이다. 나는 제주 4.3이 발발한지 30년, 한 세대 정도 지난 1978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4.3이라는 것을 알고 최초로 어머니에게 물었던 게 스무 살이 되었을 때니까 일이 벌어진 지 50년이 지난 때다. 어른들은 그 당시의 일을 입에 담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했고 그것을 내면화했다. 4.3의 기억은 제주 사람들의 일상습관을 바꿔버렸다. 어머니와 이모가 우연히 대화를 하는 것을 들었다. 별로 비밀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속솜하게 말했다. 이 장면이 두고두고 이상했다.

 비단 어머니와 이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제주 4.3에 속솜했다.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자고 열변을 토했던 참여정부도 역시 제주 4.3의 거대한 뿌리는 만지지 못했다. <나의 서양 미술사 순례>를 써서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가르쳐준 '재일 조선인 2세'이자 도쿄 케이자이 대학교 현대법학부 교수인 서경식 씨는 '추천하는 말'에서 "'4.3'은 알지 못해도 되는 사건이 아니며 알 필요가 없는 사건도 아니다. 4.3은 '알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무섭고 부끄러운 그런 사건인 것인다. 우리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평화와 사람다움을 위하여"(9쪽)라고 말했다. 1987년 대한민국에 절차적 민주화, 형식적 민주화가 실현된 것에 머무른 것처럼 제주 4.3 역시 단지 '특별법'이 통과되었을 뿐 그것의 역사적 의미나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를 알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4.3 특별위원회 폐지'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것이다. 단지 제주인만의 문제, 피해의식적인 문제, 감성적인 문제, 빨갱이 문제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좀더 성숙한 관심으로 세심하게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환갑이 다 되었으니 '철'이 들 만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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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 유대인은 선택받은 민족인가 고정관념 Q 8
빅토르 퀘페르맹크 지음, 정혜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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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솥 주위를 빙빙 돌아라, 독 있는 내장을 집어넣어라…… 도롱뇽의 눈알과 개구리의 발톱, 박쥐의 털과 개 혓바닥, 독사의 혓바닥과 맹사의 가시, 도마뱀의 다리와 올빼미 날개, 무서운 재앙을 일으키는 부적이 되게, 지옥의 국과 같이 펄펄 끓어라……

마녀의 미라와 게걸들린 상어의 밥주머니와 창자, 밤에 캐낸 독 있는 당근의 뿌리, 신을 모독하는 유대인의 간장(肝臟), 터키인의 코, 타타르인의 입술, 창부가 개천에서 낳자마자 목을 매어서 죽인 갓난애의 손가락, 제 새끼 아홉 마리를 먹어 버린 암퇘지의 피를 퍼부어라. 살인자의 교수대에서 흐르는 기름을 불길 속에 집어넣어라.

- 셰익스피어, <맥베스> 중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서 맥베스에게 치명적인 저주를 가하기 위해 넣은 교수대의 기름이나 독사의 혓바닥과 같은 성질의 재료로 묘사되는 바와 같이 유대인은 역사상 가장 오랜 세월 동안 고난을 겪으면서 지독한 저주에 시달렸다. 그보다 가깝게는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유대인은 나치의 학살에 대해 시종일관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런 장면이 유대인을 비판하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른바 ‘무기력한 모습’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있다. 나의 고향 제주에서는 1948년을 기점으로 수년 동안 인구의 1/3인 8만명 정도가 ‘무기력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개처럼 취급되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총 한번 빼앗아보지 못했던 희생자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해본다면 살아남은 가족의 안위가 달려 있는 상황에서 저항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홀로코스트에 직면한 유대인 역시 이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유대인에 대한 지나친 관념화와 차별, 폭력은 유대인과 이웃하는 사람들의 공포심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치의 히틀러도 유대인에 대해서 피해의식을 가졌던 듯하다. 가까운 예로 ‘제노포비아(xenophobia) 문제’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러시아와 유럽에서 일기 시작한 외국인 혐오증과 이를 실천하는 조직적 움직임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주로 이민자들과 현지의 저소득층 간의 갈등이 인종문제로 비화된 것이다. 경기침체와 실업문제, 양극화 등의 사회문제의 원인을 이민자들에게 덮어씌우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고정관념Q> 시리즈의 하나인 <유대인 편>을 보면서 나는 유대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상황은 물론, 유대인들이 왜 그렇게 ‘안보’에 목숨을 걸고 ‘적’에 대한 적대감이 분명한가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유대인을 옹호하는 듯한 몇몇 구절이 거슬렸는데, 이것이 나의 독해 부족이라면 다행이지만, 이런 느낌을 받는 사람이 나 한 사람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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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조선사 - 역사의 새로운 재미를 열어주는 조선의 재구성
최형국 지음 / 미루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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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면 떠오르는 그늘진 말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헤게모니’와 ‘주류’라는 수식어이다. 흔히 듣는 말로 ‘강자의 역사’라는 냉소는 시험에서 역사 과목이 좌천될 때까지 지속된다. 이 역시 역사의 과정일까. 근사한 역사의 모양은 이러한 헤게모니와 주류, 강자의 역사에서 반성의 역사, 현장의 역사로 이동하고 있는 듯하다. <친절한 조선사>가 예뻐 보이는 것은 이러한 흐름을 진하게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패전국 독일이 곳곳에 흩어진 구비문학을 수집하고 여기서 독일인의 자신감을 회복했듯이, 수천 년 동안 왕의 부지런한 신하들이 세상 곳곳에 유행하는 노래나 말, 욕설까지도 채록해서 정사의 거울로 삼아 태평성대를 누렸듯이 역사의 기록자나 모든 말의 관리자들은 언땅에 맨살 엉덩이를 떼지 못해 고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의자 하나를 더 당겨 귀를 기울여야 한다.

<친절한 조선사>의 가장 큰 미덕은 군상들(작가의 말로는 작은 사람들)을 구출해낸 점일 것이다. 이는 사마천이 <사기열전>을 편찬하던 취지와 맥을 같이 한다. 사마천은 거시사와 미시사, 주류와 비주류의 역사를 총괄한 사관으로 유명한데, 거시사이자 주류의 역사는 <본기>와 <세가>이다. <본기>는 왕의 사적을 다루었고 <세가>는 제후와 중신들의 행적을 다루었다. 영웅호걸과 저잣거리의 범상찮은 군상들을 다룬 것이 바로 <사기열전>인데, <친절한 조선사>의 작가는 사마천을 무척이나 동경이라도 한 듯 <사기열전>의 인물들을 까메오로 등장시킨다. 왜관에 깊숙이 들어가 왜검을 익혀 국가안위에 기여한 김체건은 <자객열전>에 비할 수 있고, 연장질을 일삼던 조선판 조폭 ‘검계원’들은 알맹이만 쏙 빠진 <유협열전>이 생각나게 한다. 인정사정 없이 이들을 진압해 쏙들어가게 만든 장붕익은 <혹리열전>에 비교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2부를 가장 사랑한다.

경어체가 거북스럽지 않고 필력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감칠맛 나는 글감과 세심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친절하다. 얼핏 목차를 보면 신문기사가 연상되면서도 포털의 횡포와는 전혀 달리 ‘낚시글’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역사적 의미의 다발을 붙드는 모양이 사랑스럽다. 마치 탐사보도를 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가벼운 마음으로 잡지를 읽는 듯한 기분이다. 사소한 문장이나 사진 소개에서도 농을 걸어오는 품이 가볍지 않고 제법 오래 공을 들였을 법하다. 특히 과거의 모습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던 점이 무척 고맙다. 이 책을 거시사에서 미시사로 넘어오는 흐름의 부표로 삼아도 나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한 권의 책에 대해서 이렇게 원없이 또는 수사 없이 찬사를 늘어놓기는 아마도 처음이 아닌가 싶다.

※ (그러나)오탈자
74쪽 ‘손자을(를O)’(조사 오류), 170쪽 ‘있습니다, 섰다’(서술어 비일관성), 311쪽 ‘만들던(든O)’(미완을 뜻하는 어미 ‘던’과 선택을 뜻하는 어미 ‘든’의 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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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2-14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궁금하던 책인데 가려움을 해소해 주었어요. ^^

승주나무 2008-02-14 10:25   좋아요 0 | URL
저도 라주미힌의 급제보를 받고 읽어봤습니다. 제가 영업을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ㅋㅋ
 
일본이라는 나라? - 친절하면서도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
오구마 에이지 지음, 한철호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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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우리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시간적으로는 ‘역사’의 과정으로 통해서, 공간적으로는 각국의 ‘관계’ 혹은 ‘이해관계’를 통해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한꺼번에 감안해서 파악하지 않으면 ‘현재의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른 때의 다른 나라’가 되어 버린다. 다른 나라의 역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역사에 과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에 대해서 이러한 원칙을 적절하게 지켰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국사』는 특정 시기의 역사를 서술할 때마다 ‘민족의 철천지원수’, ‘절멸시켜야 할 적’의 존재를 명확히 설정한 뒤, 이런 원수와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과 복종, 화합과 단결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식으로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있는데, 이런 대목에서 돋보이는 ‘상상 속의 적’은 역시 일본 제국주의이다. 이와 같은 식의 역사서술은 일본아 자신들의 전쟁을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 책은 일본의 현대사가 주된 내용이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와도 겹칠 뿐만 아니라 세계의 현대사이기도 하다. 그만큼 일본이라는 나라는 역사에서 현대사로 넘어오는 흐름의 중심에서 격변기를 보냈다. 공교롭게도 유교 중심적 전통주의에서 서방문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일본이 아시아 최초였다. 만약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냉전의 시기를 거쳐, 민주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파악하려 한다면 이 책은 간결하면서도 구조를 깊이 있게 서술하고 있다.

애초부터 이 책의 서술 의도는 일본 지식인이 자국의 중고등학생에게 읽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문체가 평이하며 매우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본화폐 1만엔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학문의 권장』이라는 저자이기도 한 후쿠자와가 자신의 책을 ‘원숭이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썼다’고 한 말은 오히려 이 책을 더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용으로 집필되었다고 해서 기본적인 교양서나 학습지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일본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이보다 명쾌하고 간결하게 소개한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이 책이 오히려 일반인에게 매우 유용한 점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 책에 의하면 일본은 국제정세에 가장 민감하게 움직였으며, 동시에 국제정세의 흐름에 가장 깊숙이 편승하고 있다. 이 편승은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세계사를 만들어낸 주된 흐름이기 때문에 일본이 얻은 이익은 패해 그 이상이다. 현대사는 일방통행이며,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은 바로 미국(서방)이 만들어놓은 유일한 길이다. 이 책은 몇 년도에 무슨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고리타분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사건이 함의하고 있는 ‘뜻’을 명쾌히 설명한다. 우리나라에도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읽는 한국사』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 역시 『뜻으로 읽는 일본 현대사와 한국, 그리고 세계의 현대사』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일본인에 의해서, 일본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다는 저이 다르다. 즉 밖에서부터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일본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 관점을 우리 역사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잃어버린 현대사’를 다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덧 : 원제가  '일본이라는 나라?'여서 한국 제목도 그것을 따랐지만, '번안'이 아쉽다. 일본에 관한 시시껄껄한 소개서가 많은데, 이 책의 제목이 마치 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뜻으로 읽는 일본현대사' 같이 좀 기획력 있게 제목을 만들었으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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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0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20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서관 2009-06-10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 보고 건너뛰었다가 목차 보고 구입합니다. 제목에 대한 지적 공감해요. 땡스투! (알지의 자유)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 정치지리의 세계사 책과함께 아틀라스 1
장 크리스토프 빅토르 지음, 김희균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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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림의 움직이는 지도

 

사회과부도를 던저버려라

 

 

 

역사는 두 줄기로 흐른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정적인 흐름과 역동적으로 변화해 자신조차도 흔적 없이 바꿔버리는 동적인 흐름이 있다. 세상이 안정과 질서를 찾아가기 시작하면 정적인 흐름으로 편승하다가 혼란스러워지면 순식간에 동적인 흐름으로 바뀐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기업가들이 국가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된 것은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질서란 변화가 가져다준 산물에 불과하므로 사람은 질서에 편승하기보다 시대변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동양에서 철학의 비조로 받드는 공자와 맹자도 전국시대에는 한낱 일개 학파에 불과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지배하고 중국을 움직인 사람들은 시시각각의 형세에 주목하는 종횡가들이었다.

다가올 미래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현재보다 더욱 극심한 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때문에 우물 안에서 벗어나 세계의 숨 가쁜 변화를 포착하고 활로를 모색해도 시원치 않건만 미래의 자원을 가르치는 우리의 교과서는 10년째 감옥에 갇혀 있다.

 




<표1> 시판 중인 중학교 검정교과서 사회과부도 8종 분석(2007년도, 경향신문)

 

 

 

위 표를 보면 우리 학생들이 공부하는 사회과부도가 2007년도의 것인지 90년도의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가장 기본적인 세계인구조차 2000년의 자료를 반영한 곳이 단 1곳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 교재를 통해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위 정보에 대한 최신 자료를 획득하는 길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정은 가르치는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성의있는 교사라면 ‘구닥다리’ 통계수치나 자료를 자체적으로 보완해서 가르치는데, 사실상 상당수 교사들이 그냥 가르친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일선학교를 담당하는 장학사의 고백이다. (관련기사 : 케케묵은 ‘사회과부도’…10년 넘은 통계자료 버젓이)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이‘정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느 해에 무엇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변화’이며, 그 위치가 만들어낸 ‘관계’이다. 그것을 파악해야만 역사라는 커다란 흐름이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는지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이 흐름은 오래된 과거에서부터 흘러왔고, 미래로 향해 가고 있다. 곧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흐름이다. 미래는 언제나 불투명하게 다가온다. 과거의 신호를 읽어내지 못하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각지의 사정과 변화양상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사회과부도’가 나왔다.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이 그것이다. 이 책이 흥미를 끄는 것은 다큐멘터리를 출판화했다는 점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학자가 공동으로 기획하고 프랑스 지상파 제5채널인 아르테 방송에서 1990년부터 「지도의 이면」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그러고 보면 서양에서 다큐멘터리가 출판 고전이 되는 환경은 매우 익숙하면서도 부럽기 그지 없다. 그만큼 교양에 대한 일상적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뜻이다. 영국 BBC 방송은 클라크의 「문명」이라는 텔레비전 시리즈에 이어, 우리가 잘 아는 J.브로노프스키와 함께 인류의 문명을 추적한 텔레비전 시리즈「인간등정의 발자취」를 만들었다. 그것이 1970년대 초반의 일이다. 이 시리즈가 책으로 출판된 것이 바로 『인간등정의 발자취』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지식과 일상과의 괴리’와 달리,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지식의 일상화를 실천하고 있다. 외국의 연구소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오픈하우스를 열어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어넣어주는데, 이것을 ‘아웃리치’라고 부른다. 뿐만 아니라 과학과 대중을 연결시키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경우가 일상화되었는데, 이들을 가리켜 ‘과학커뮤니케이터’라고 한다. (관련기사 : “학문의 ‘크로스오버’ 더 많아져야”)

우리의 경우는 지식인들과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의 거리가 너무나 멀다. 일반인들은 과학이나 지식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고, 학생들은 구닥다리 찌꺼기나 훑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환경 안에서 ‘황우석 사태’를 낳았으며,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이러한 시점에서 ‘지식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지식을 널리 공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타국의 지식인들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역시 정치와 지리, 외교 등 전문가, 식자층에게만 국한되었던 정보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연합의 개념

 

 

전국시대는 秦(진)나라라는 서쪽의 강국과 나머지 6개국(越(월), 趙(조), 韓(한), 魏(위), 楚(초), 齊(제))이 겨루는 형국이었다. 6국의 전선으로 통일작업을 한 전략을 合綜(합종)이라고 하고, 진나라를 중심으로 각국과 교섭하는 통일전략을 連橫(연횡)이라고 한다. 오늘날로 따지면 합종은 WTO나 각종 지역연대와 유사한 형태이며, 연횡은 FTA와 같이 쌍자 단독협상에 비유할 수 있다. 비록 전략가나 국가 고유의 역량차이는 있겠지만, 합종은 구조적으로 깨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왜냐하면 연횡은 ‘진나라의 이익’이라는 단순한 목표가 있는 반면, 연횡은 6개국의 이해관계가 6중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힘을 모으기가 힘들고, 연횡의 교란에 넘어가 자중지화에 빠질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나라의 장의는 각국의 이해관계와 지형상의 이유를 들먹이며 끈질기게 합종을 교란하였고, 영토를 하나씩 먹어들어간 끝에 진나라의 중국 통일을 현실화할 수 있었다.

 

 

제후들이 합종을 하려는 것은 그것으로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 임금을 높이며 군대를 튼튼하게 하여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합종하는 자들은 천하를 하나로 통일시켜 의형제가 되기로 약속하고 洹水(원수)라는 곳에서 白馬(백마)를 잡아 피를 마시며 맹세하여 서로의 결속을 굳게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같은 부모에게서 난 형제끼리도 서로 재물을 다투는 일이 있는데, 간사하고 거짓을 일삼으며 이랬다저랬다 하는 소진(대표적인 합종가)의 술책을 믿으려고 하니,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역시 명백합니다.

만약 왕께서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군대를 동원하여 조나라와 국경을 맞대는 북쪽 지역 전역을 취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나라는 남쪽으로 내려와 위나라를 돕지 않을 것입니다. 조나라가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면, 위나라도 북쪽으로 올라가 돕지 않을 것이고, 위나라가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면 합종의 길은 끊어질 것입니다. 합종의 길이 끊어진다면 왕의 나라는 아무리 안전을 바라더라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 사마천, 『사기열전』 중 장의(대표적인 연횡가)가 위나라 왕을 협박하는 모습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은 유럽연합(EU)부터 시작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유럽의 정치·경제 통합을 실현하기 위하여 1993년 11월 1일 발효된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따라 유럽 12개국이 참가하면서부터 출범한 연합기구인데, 2007년 현재 참가국이 27개국으로 늘어났으며 중국, 미국에 이은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의 공동체를 표방하는 유럽연합의 구성원을 보면 당연히 가입할 것 같은 나라들은 스스로 가입을 꺼려하고 있다.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스위스가 그러한데,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는 수산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스위스는 금융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가입을 꺼리고 있다. 이는 연합이라는 개념이 철저히 경제원리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특징을 보여주는 나라는 ‘터키’이다. 터키는 1986년에 이미 가입 신청서를 제출해놓은 상태이지만, 유럽연합은 터키의 가입을 주저하고 있다. 왜냐하면 터키는 영토 대부분이 아시아에 위치해 있으며, 종교 또한 97%가 이슬람교도로 터키의 EU 가입은 유럽 안에서 이질적인 문화가 충돌하는 것을 의미한다. 2006년에 덴마크의 조그만 신문사가 게재한 마호메트 만평이 보여주듯 유럽과 이슬람은 앙숙의 골이 깊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이슬람이 유럽의 식민지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이 특정 대륙이나 국가에 앞서 ‘연합’을 첫 번째 화두로 삼은 것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세계에는 국경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현대로 오면서 이와 같은 이합집산이 더욱 두드러졌다. 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이었던 구소련(러시아)과 미국이 패권을 다투며 50년 넘게 냉전을 유지해 온 것에서 시작해, 앙숙이었던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에 대항해 손을 잡고 있다. 심지어 베트남전쟁으로 인해 미국과 전쟁을 치른 베트남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하기야 미국에 의해서 수십 만의 국민들이 목숨을 잃었던 일본은 지금 미국 없이는 못 사는 나라가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동력은 바로 ‘이익’이다. 이익을 중심으로 모이고 흩어진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것은 오늘날에는 매우 당연한 말이 되었다.

 

 

 

 

 

‘이익’이라는 이데올로기

 

 

아프리카는 풍부한 천연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륙이다. 지구상에 있는 49개의 ‘미개발국’ 가운데 34개국이 아프리카이다. 아프리카에 총 52개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보았을 때 ‘가난과 혼란’을 상징하는 곳이다. 아프리카에는 지독하게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심지어 아프리카에 저축한 돈도 선진국이나 금융규제를 덜 받는 외국에 투자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역설은 왜 일어날까.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간단하다. ‘누가’ 아프리카에 투자할 것인가? 이 책의 저자는 ‘인도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보다는 ‘수익성’이 더 확실한 근거이다. 세계는 아프리카에 대해서 ‘인도적’으로 보기보다는 철저히 ‘비지니스’의 관점으로 본다.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는 세계투자의 22%를 차지하는 데, 거기에는 ‘훌륭한 자원’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내전이 일어나고 있고, 이로 인해서 무고한 주민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세계자본의 입장에서는 내전이 유지되는 것이 ‘이익’이 된다. 스위스의 국제대학원연구소는 아프리카에 약 3천만정의 소형무기가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그 중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총기상’들에 의한 밀수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중국 등 무기수출국들은 합법성을 주장하지만 합법이든 불법이든 검은 대륙을 피로 적시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무기 팔아 돈 벌고 그 가운데 일부를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이 선진국들의 일반적인 행태이다. 저자는 전쟁이 일어날 때에는 그 전쟁으로 ‘누가’ 이익을 얻는가를 잘 살펴보라고 주문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석유’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미국은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공공연히 주장하지만, 역사상 가장 많은 독재정권을 지원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독재정권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한 나라의 자원이 있을 때 이것을 독재자가 독점하고 있다면, 이 자원은 독재자와 독재자를 지원하는 나라가 나눠가지면 된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졌을 때 이 자원은 ‘만인의 공동 소유’가 되기 때문에 독재자를 지원하는 나라로서는 그만큼 가져가는 것이 적어진다. 이것이 바로 독재정권이 존립하는 확실한 이유가 된다. 저자는 국제사회가 분쟁과 위기에 대응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개입 자제

알제리와 콩고민주공화국, 체첸의 분쟁에 국제사회는 개입하지 않았다.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자행되고 있는데도, 국제사회는 침묵하고 있다. 반대파에 대해 한 국가가 전면전을 벌이지만, 국제사회는 대답이 없다. 한 국가 혹은 한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 ‘살인권’을 보장해주고 있는 꼴이다.

 

인도적 지원

개입을 하는 대신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분쟁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이다. 직접 개입하는 데 따르는 정치적, 군사적 비용 대신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1996년 기근 이후로 식량이 부족한 북한에 대한 지원이 대표적 예이다. 또 1998년 앙골라 전면독립민족동맹이 무너졌을 때도, 2002년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도, 국제사회는 앙골라에 인도적 지원을 해주었다. 인도적 지원이 끊기면 수단 남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근이 발생하고, 분쟁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개입

국제사회의 마지막 선택은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시에라리온이 그랬고, 아프가니스탄이 그랬고, 이라크가 그랬다. 이때에도 물론 인도적 지원이 병행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군사적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지, 진짜로 ‘인도적’인 것은 아니다. 이처럼 ‘인도적 전쟁’은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전쟁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원을 해주는 것이 인도적 전쟁이다.

- 책 167쪽

 

 

 

 

아름다운 그림속의 아름답지 않은 모습

 

 

이 책의 자랑은 무엇보다 350개의 아름다운 지도이다. 이 지도의 아름다움은 색채와 자료의 정확성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기 어려운 그 지역의 속사정에 대해서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중국을 설명하는 지도는 화선지를 이용하여 동양적 색감을 주고 있다. 아래의 지도는 2005년 현재 완공된 이스라엘의 장벽이다. 완공된 빨간 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 장벽이 얼마나 자의적이며 제국적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위의 빨간 색은 녹색 선의 한참 안쪽까지 세워져 있다. 그 이유는 단지 이스라엘인의 정착지가 있다는 이유다. 그 안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사로 있는데, 이와 같이 비상식적으로 세워진 장벽 때문에 10개의 팔레스타인 마을에 사는 5,200은 완전히 갇힌 신세가 되었다.

 

 




<이스라엘 장벽, 책 106쪽>

 

이제 우리가 민족감정을 분출하는 독도 문제에 대해서 이 책은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알아보자. 독도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섬을 확보한 덕에 일본은 자기 영토의 열두 배나 되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지고 있다. 바다는 일본의 확실한 자원으로서 그 덕에 일본은 전 세계 어업 생산량의 12퍼센트를 확보할 수 있었다. 나고야와 치바의 항고에 집중된 조선업은 세계 제1위이고, 편의치적선(각종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 타국에 등록한 선박)을 제외하면 그리스 다음으로 많은 상선을 보유한 나라가 일본이다. 이처럼 일본에게 바다는 무척 중요한 자원이다. 일본 영토는 땅이 아니라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것이다.

- 글과 그림, 책 142쪽

 

 

위 그림을 보면 일본이 한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와도 영토분쟁, 아니 해역분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독도나 동해 명칭에 대해서 과도한 민족감정이나 여타 추상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에 비해 일본을 철저히 실리적 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며, 독도와 동해 문제는 거대한 해상 계획의 일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지구본을 쳐다보면 평범한 공 모양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구는 우리에게 많은 말을 하고 싶어한다. 이 책은 지도가 하고 싶은 말을 구체적으로 재현했다. 강조해야 할 부분에는 좀더 큰 그림을 보여주고, 헷갈린 곳은 색깔을 이용해 이해하기 쉽게 보여준다. 마치 아이들이 진흙놀이를 할 때처럼 이리 주무르고 저리 주물러서 만든 ‘움직이는 지도’이다. 때문에 이 책의 결론은 역시 ‘환경 문제’이다. 지도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전쟁’도 아니고 바로 ‘환경’이기 때문이다. 아예 지도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이 책은 경고한다. 이 결론에 관해서는 이 책의 그림을 쓰기보다는 더 좋은 그림이 하나 있다.

 

 




 

<경향신문, 2005.9.23일자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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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7-05-1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2기의 첫 작업인데, 시간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네여 ㅡㅡ;;

마늘빵 2007-05-15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걸 시도하고 계시는군요! :)

승주나무 2007-05-16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아프 님//저의 인생은 언제나 도전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