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항상 할아버지 할어니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다가, 오늘은 내 앞에서 임산부 아주머니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자리를 양보했다.
보통 할아버지들은 고맙다는 표정을 짓지만, 당연하다는 듯 앉으시는 분들도 꽤 많다. 이 분은 굉장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주 고마워했다. 내가 미안할 정도로.
임산부는 앉아있기도 힘들어 보였다. 내가 만약 아래와 같은 글을 읽지 않았다면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땅의 '노약자'에는 '노자'와 '약자'로 나누어야 하고, '약자'에게도 배려를 해야 한다는 소설가의 주장은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임산부석'이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임산부 아주머니들.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우리 사회가 좀더 커서 당신들을 배려할 수 있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기다려 주세요.
| [낮은 목소리로] 임산부, 노약자석 앉아도 될까 |
| 입력: 2006년 01월 06일 18: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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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7개월에 접어든 이후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기다릴 때마다 마음이 비장하다. 노약자석에 빈자리가 있다면 앉을 것인가, 말 것인가. 괜히 앉았다가 아침 댓바람부터 욕이나 먹는 건 아닐까. 두렵고 긴장된다. 좌석 이름은 분명히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 전용석’이지만 그 자리에 임산부가 앉으면 시선이 곱지 않다. 배가 불러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요즘처럼 옷을 두껍게 입는 겨울에는 살이 찐 건지, 임신을 한 건지 어지간한 만삭이 아니고서야 앉은 모습으로 구별도 힘들다. 한 후배는 8개월 즈음에 부른 배를 부여잡고 앉았다가 웬 어르신에게 머리를 쥐어박혔다.
지난 가을 어르신 모임을 취재할 기회가 생겼다. 대화중에 무심히 노약자석에 앉는 임산부에 대해 여쭤보았다. 단박에 ‘싸가지’라는 표현이 튀어나왔다. 좌석 표시를 ‘경로석’으로 바꿔야 하며 ‘임신 따위’ 했답시고 젊은 것들이 앉아서는 안 된다며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어르신들 눈총에 주눅들어-
그런데 심보 고약한 나는 그날 이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전용좌석이 비면 반드시 앉아서 간다. 고약한 입덧으로 한여름에 마스크 쓰고, 10㎏씩 쭉쭉 빠지느라 서 있을 기운이 없어 출입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도 넘보지 못했던 자리다. 하지만 이제 오기가 생긴다. 내가 나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무겁기도 하지만,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괜히 이리저리 밀리다가 배라도 부딪치면 큰 일이다.
좁다고, 불편하다고 사정없이 배를 밀쳐놓고도 왜 바쁜 시간에 부른 배로 나와서 불편하게 하느냐며 오히려 짜증내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들이 아무렇게나 밀친 게 사람 배가 아니라 거추장스러운 가방쯤인 줄 아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또한 알고 있다. 이 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우습게 읽힐지. 남들 다 하는 임신 혼자서 위세 떤다고 혀를 차는 소리도 들린다. 저래서 여자는 안 된다고 할 것이다. 혼자만 애 낳느냐, 임신이 벼슬이냐 하는 말, 나도 누군가에게 했고, 누군가로부터 나도 들었다. 임신 중 상사의 폭언과 질책에 분개하면서도 임신으로 인해 떨어지는 내 노동력에 내가 절망하고, 다른 동료의 임신 사실에 괜히 긴장하게 되는 이중성도 괴롭다. 그래서 비장하게 앉아 놓고도 문이 열릴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아무래도 그 자리는 경로석이 맞는 것 같다.
자리 하나 가지고도 이러니 저출산 대안이니 모자보건법이니 하는 각종 임신출산관련 법규가 다 우습다. 출산이 코앞에 이르도록 그 많은 대안과 법규의 도움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고, 앞으로 상정될 법안에 힘입어 둘째를 가져야겠다는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지원책은 셋째부터 적용된다던가. 그렇다고 셋째 이후부터는 평생보장을 받는 정도도 아니다. 몇 푼 깎아 주는 혜택 받으려면 몇 곱의 돈을 더 벌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벌어야 할 의무를 면해줄 수 없는 정도의 지원이라면 차라리 내가 임신출산에 관계없이 당당하게 일이나 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자본주의 사회는 맞벌이를 하라고 하시는데, 임신을 하면 이게 너무 힘들어진다. 스스로의 건강 상태 때문이든, 주위의 압력 때문이든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진다.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는 ‘어느 날 집에 가니 둘째가 있더라’는 농담이 가능한데, 직장에 다니는 어머니는 임신 육아 과정에 대해 한결같이 ‘이를 악물고 버텼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 버팀에는 그 자신의 사회적 인격에 대한 모욕을 참아냈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눈치와 모욕’ 언제 벗어날지-
저출산에 관한 정부 지원책이 발표될 때마다 두 아이를 둔 큰언니가 늘 하는 말이 있다. “기왕 가진 애들이나 포기하지 않고 낳아 기르게 해 주지.” 두 아이 모두 저체중아로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던지라 엄청난 병원비 앞에 포기하고 도망가는 부모들을 더러 본 모양이다. 한 명이라도 더 낳자는 대책도 필요하겠지만, 기왕 태어난 생명이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마음 써 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아울러 생명을 잉태했다는 이유로 축하와 눈치와 모욕을 동시에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좀 개선된다면 출산율 증가에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경향신문 칼럼, '낮은 목소리로', 한지혜/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