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밖에 없는 남자친구가 때로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처럼 커보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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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의 개념이 여전히 모호한 가운데 -_-a
황금같은 토요일에 나비처럼 날아다니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대학로로 향했다.

생각해보라, 오후 1시반, 적당히 살랑부는 바람, 적당히 시끌벅적한 마로니에 공원,
적당히 꼭지점댄스클럽의 장단에 맞추어 엉덩이를 살랑대는 사람들 틈바구니를 비집어
정확히 아르코예술극장 3층에 안착할 수 있는지.. (본인 스스로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는.)

대장을 만나고, 연린을 만나고, 성석제를 만나고, 주인공 서영채 평론가를 마주했다.
2시간 가량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성석제가 등장한다는 이유였지만,
제대로 감정이입해주는 나는 곧 서영채라는, 그 둥글둥글하고 모나지 않은,
시인을 닮고, 소설가를 닮은, 따뜻한 평론가를 마주했음에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잘 미치는 사람, 한가지에 미치면 끝까지 가는 사람,
그래야 훗날 '나는 자유로웠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말한 사람,
'욕망 앞에 타협하지 말라'고 그 작고 선한 눈(작지만 선한 눈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을
껌뻑이며 정면에 앉은 나를 뚫어져라(ㅇ_ㅇ) 쳐다봐줘서 감개가 무량했다는. 그리고,
동시에 신나게 눈싸움을 했다는 이야기.

'이 봄날에 자리를 채워주시니 영광이지만, 차라리 아무도 없었더라면 여기 나온 패널들과
신나게 낮술이나 즐겼을 것을.' 이라고 말하며 입맛을 다시는 서영채는, 동네 귀퉁이에서
늘상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노는 삼촌의 모습이었다. 허허..

따뜻한 시선으로 시를 마주하고, 온화한 손길로 소설을 만져주는 비평가,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는데.
나의 무지였던가. 아니면 무관심이었던가. 다행히 2005년 '올해의 예술상'에서 비평부분 수상을 해서
시야안에 와 닿아준 것이 마냥 고마울 따름이다.

대학시절, 비평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의 외모나 말투,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어쩌면 그렇게도
'딱 비평전공 선생답다'는 느낌을 풍겨주시던지. 그래서일까, 나의 편견은 그 후로 오랫동안 - - - -
출판업을 하는 대장과 그 옆에서 초반부터 끝까지 신나게 고개 젖혀가며 주무신 연린은
'머릿속에 남는 말이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지만, 나는 마음 훈훈해진 것이 마로니에공원에서
신나게 노는 어린아이보다 더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역시, 무지에서 오는 앎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안쓰러운 사람인가. 과연 어떤 사람인가....
등등의 생각을 하자면 나비처럼 붕붕 떠오른 나의 기분이 폭. 내려앉아버리니 생략하고.

봄날에, 콧구멍에 뜨끈한 바람쐬며 이런 공간을 누비고 있자니 마음 훈훈해지는구랴.
당분간 자유로운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누벼보는 것을 어떨까. 하며
서점에서 괜히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서성이는 나.

 

아참.
토크쇼는 과연 토크쇼인 듯하다. 말재주는 없어도 글재주는 뛰어난(ㅎㅎ) 성석제의 수더분함이 더해져
둘은 '진정한 만담쇼'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고, 그 옆에는 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 애쓰셨다는
시인 정형철의 꼼꼼한 애착만담쇼에 그 중 가장 날카로웠던 시민대표 학생분까지.
만담의 어수선함과 따뜻함과 비장함을 엿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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