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고민 있으세요?
가슴이 떨린다. 자본의 횡포에 이의를 제기한 이유로 1년 넘게 싸워야 했고, 8개월간 이곳저곳을 전전한 끝에 새둥지를 찾은 시사IN 기자들이 오늘 공식적으로 첫 출근을 한다고 한다. '전 직장'의 사장이 직장폐쇄를 단행해 거리로 나앉은 이후, 언론재단 빌딩의 언론노조 사무실, 용산의 노조사무실, 목동의 언론노조사무실로 전전한 끝에 끈질긴 역마살을 물리치고 이제야 제 둥지를 찾았다. 독립문역에 위치한 부귀빌딩 6층이 바로 시사IN 편집국이다. 시사기자단 사무실임을 알리는 쪽지 대신 문마다 시사IN의 표시가 붙어 있다. 편집국과 회의실, 사장실과 판매부 사무실이 시사IN의 일터다. 문을 열고 들어간 편집국 사무실은 분주했다. 한켠에서는 빨간 작업용 장갑을 끼고 편한 복장을 한 기자와 직원들, 서포터스가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고, 책상 위에는 수첩이나 필기구 대신 드릴과 망치, 드라이버들이 자리를 차지했지만 저마다 활기찬 분위기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독립문역에 위치한 부귀빌딩 6층의 시사IN사무소 입구, 문마다 이곳이 시사IN임을 말해주는 표시가 붙어 있다>
<시사IN 사무실 전경. 백승기 사진기자에 의하면 친환경적 소재를 이용해 인테리어를 꾸몄다고 소개했고, 한 독자가 보내준 스크린 덕분에 회의때 멋드러진 브리핑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이 곳, 자유언론의 전진기지
한편 잡업장(?) 맞은편에는 기사를 쓰고, 취재원과 통화하고, 뉴스를 모니터링하는 그룹이 매우 분주했다.
"박근혜 씨가 좀 억울한 측면이 있겠어. 당원 투표에서는 이겼지만, 여론조사에서 뒤집혔으니 오늘 이후의 분위기를 예상치 못하겠는걸."
이숙이 기자는 정치부 기자답게 한나라당 경선 결과에 대해서 논평했다.
국제부를 담당하게 된 신호철 기자는 "8개월 만에 제 자리로 돌아와서 홀가분하다"며 기자에게 취재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재촉했다. 벽면에는 독자들이 보낸 듯한 화분이 놓여 있었고, 화분마다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여기가 자유언론의 전진기지"
"만세! 시사IN!"
그렇다. 여기가 바로 자유언론의 전진기지이다.
맞은편에는 "굿바이시사저널展"에서 선뵈었던 캐리돌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고 '시사IN'이라는 대형 간판 아래 '시사저널 편집국' 현판이 눈에 띈다. 시사기자단이 밝힌 바에 의하면 그 사연은 이렇다.
사무실 한켠에는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떼어온 '시사저널 편집국'이라는 현판이 놓여있습니다. 저희가 지난 6월26일 결별 기자회견을 할 때 떼어온 것입니다. 그 때 '양고집'이라고 불리는 창간 멤버, 양한모 미술부장이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현행법상 기물 절취에 해당하지요. 그러나 18년 동안 <시사저널>의 정신을 일구고 가꿔온 기자들이 모두 쫓겨나오는 마당에 그 정도 기념품은 가져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이름. 그러나 아직도 입에 올리자면 가슴이 저릿한 그 이름, '시사저널 편집국'이라는 현판은 저희 사무실에 있습니다.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 홈페이지 게시글 "굿바이, 시사기자단!">
<시사IN 대형간판 아래 '시사저널 편집국' 현판이 눈에 띈다. 시사IN 기자들이 결별기자회견을 하며 '기물 절취'에 저촉됨에도 불구하고 기념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독자들의 집
어느 독자의 말처럼 이곳을 '자유언론의 전진기지'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지만, 독자의 한 사람으로 나는 '독자들의 집'이라고 부르고 싶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독자들이 자본에 이의를 달 수 있었던 것은 '뜨거운 독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거리에서 기사를 쓸 때도, 경영자의 집 앞에서 단식투쟁을 할 때도 독자들은 그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PD수첩에 기자들의 사연이 보도되고 기자단이 새매체 창간을 선언했을 때 독자들은 태산이 '티끌'이 쌓여 이루어졌음을 증명해 주었다. 때문에 시사IN과 독자들의 관계는 각별하다. 그날 기자단 내부 회의에서는 "독자들이 만드는 고정 지면을 만들자", "까다로운 질문 위원회를 만들자"는 의견에 이어 아예 "독자자문단을 구성하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독자에 대한 예우나 배려가 아니라 '새매체 시사IN'이 독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것을 정체성으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독자들은 '진품시사저널 예약운동'을 벌이다 시사저널 회사로부터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를 당해 검찰에 다녀왔고, 경영자의 집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벌였고, 지금은 '서포터스'를 구성해서 그들을 돕고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주로 '몸'으로 도왔다면, 이제부터는 몸과 머리와 입을 통해 시사기자단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시사기자단의 문정우 단장은 "독자 위원회든 독자 필자든 독자 지면이든 아직 명확히 결론내기에는 이르지만 중요한 것은 독자와 기자가 쌍방향으로 간다는 것이 새매체의 기본 원칙이다"고 천명했다.
시사기자단에서 독자와의 관계를 담당하고 있는 오윤현 기자는 "취재가 시작되거나, 새매체 창간 이후부터는 독자들의 참여가 더욱 두드러지게 늘어날 것이다"고 말했다. 시사IN의 아이템 회의는 돌아오는 수요일(22일)이며, 그때부터 새매체의 지면을 위한 본격적인 취재활동에 들어간다.
'독자들의 집'에서 독자들은 할 일은? 기자를 꿈꾸는 예비기자들은 기자들에게 취재 아이템을 제공하거나 공동취재를 할 길도 열릴 것이다. 까다로운 독자라면 새매체에 대해서 '가혹한 모니터링'으로서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시사기자단에서도 우려하는 것은 '주례사 논평'이다. 자신들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므로, 장단점을 제대로 꼬집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방에 있는 독자라면 제보나 사실확인 등으로 참여할 수 있다.
기존언론 환경에서 독자들은 대개 소외되고 호도되고 무시당하는 위치에 있었다. 여론을 선동하고 감정을 자극하고, 근거 없는 보도가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언론의 비양심적 처사에 앞서 독자의 위상을 되돌아보아야 하는 대목이다. 어찌 보면 시사기자단의 '독자와의 쌍방향 원칙 천명'은 모험적인 실험이 될 수도 있다. 이 실험을 통해 독자들이 달라진 위상을 한껏 드높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대목 장이 섰다. 그곳으로 가자. 그곳은 바로 '독자들의 집'이다.
<기자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기자들은 새둥지를 만난 그쁨과 새매체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진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