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닮아서 엄마를 잘 알아.

내가 못 내려간다고 이야기했을 때, 나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라고 대답을 했지만,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섭섭함과 아쉬움이 흘러가는지 잘 알고 있어.

사실, 엄마의 인생이나 아빠의 인생은 내 인생에 완전히 갇혀 버렸잖아.

투병을 하는 환자의 가족은 알 거야. 엄마의 고단함을.

게다가 생사의 기로를 일상처럼 만났던 물아기였던 나를 업고

강인하게 생명의 장미 가시를 붙잡았던 고통의 순간과

한 손엔 나를 쥐고 한 손엔 가시를 쥔 엄마의 피묻은 손

지금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엄마의 혈온이 생생해.

엄마는 저녁이 되면 서울에서 일하는 아들을 생각하고 수화기를 들어.

'아, 어제 전화했으니까 오늘 하면 안돼.'
'지금은 7시밖에 안 되었으니 회사일 방해될거야.'

그렇게 손으로 헤아리고 애태우면서 받은 아들 녀석은

무덤덤한 목소리.

혹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나오면 당장 '오늘 기분나쁜 일 이서~'

하는 걱정이 나오지.

결혼하고 처음 맞는 명절에

며느리를 대동하고 이 일 저 일 함께 하면서

위세도 떨쳐보고 싶고, 자랑스러워하고 싶은 맘 왜 없겠어.

그런데 아들놈은 고향에 못 간다는 말을 코후비듯 너무 쉽게 내뱉더라는 거야.

'첫 명절이면 내려와야 하지 않아?'

하는 친지들의 성화와 온갖 원망을 또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엄마를 생각하며,

이번 설에는 단식을 해볼까 하는 엉터리 생각이 들기도 해.

내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회사 일도 틀어져서 미안해.

오는 봄에는 엄마와 아빠, 장모님을 꼭 초대하도록 할게.

그때까지 내가 제구실을 잘 해야 하는데,

엄마가 저승문에까지 가서 살려놓은 아들,

그 목숨 쉽게 여길 수 있겠어.

정말 미안해 엄마. 미안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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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2-16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께서 건강하게 잘 사시면 그걸로도 부모님은 충분하실거예요..
부모맘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생각대로 안 될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도 명절때 단식마시고 맛있는것도 드시고 즐겁게 보내셔요..담에 꼭 내려가셔서 어머님 어깨쭈욱 펴게 해 드리면 되지요..어머님은 님의 맘 충분히이해하실겁니다..

모과양 2007-02-16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눈물 날것같아요. 어쩜 이렇게 섬세하게 쓰시는거예요. 저도 설에 못내려 가는데.. 덤덤하게 "나 근무야" 한마디로 끝냈지만, 동병상련이예요.

2007-02-16 0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2-16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stella.K 2007-02-16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승주나무가 장가를 가더니 제법 의젓해졌네. 어깨를 토닥토닥~
어머니가 이러시지 않을까? 그래도 설날만큼은 재미있게 지내라. 이 누님의 바람이다. 흐흐.

2007-02-16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16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7-02-22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 님//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담달에 내려가면 어깨부터 주물러드려야겠어요.
모과양 님//안녕하세요. 동병상련이시라니, 직업상 어쩔 수 없는 거라 참 안타깝네요. 오프 때 한 번 맘 먹고 찾아봐 드리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