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닮아서 엄마를 잘 알아.
내가 못 내려간다고 이야기했을 때, 나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라고 대답을 했지만,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섭섭함과 아쉬움이 흘러가는지 잘 알고 있어.
사실, 엄마의 인생이나 아빠의 인생은 내 인생에 완전히 갇혀 버렸잖아.
투병을 하는 환자의 가족은 알 거야. 엄마의 고단함을.
게다가 생사의 기로를 일상처럼 만났던 물아기였던 나를 업고
강인하게 생명의 장미 가시를 붙잡았던 고통의 순간과
한 손엔 나를 쥐고 한 손엔 가시를 쥔 엄마의 피묻은 손
지금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엄마의 혈온이 생생해.
엄마는 저녁이 되면 서울에서 일하는 아들을 생각하고 수화기를 들어.
'아, 어제 전화했으니까 오늘 하면 안돼.'
'지금은 7시밖에 안 되었으니 회사일 방해될거야.'
그렇게 손으로 헤아리고 애태우면서 받은 아들 녀석은
무덤덤한 목소리.
혹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나오면 당장 '오늘 기분나쁜 일 이서~'
하는 걱정이 나오지.
결혼하고 처음 맞는 명절에
며느리를 대동하고 이 일 저 일 함께 하면서
위세도 떨쳐보고 싶고, 자랑스러워하고 싶은 맘 왜 없겠어.
그런데 아들놈은 고향에 못 간다는 말을 코후비듯 너무 쉽게 내뱉더라는 거야.
'첫 명절이면 내려와야 하지 않아?'
하는 친지들의 성화와 온갖 원망을 또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엄마를 생각하며,
이번 설에는 단식을 해볼까 하는 엉터리 생각이 들기도 해.
내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회사 일도 틀어져서 미안해.
오는 봄에는 엄마와 아빠, 장모님을 꼭 초대하도록 할게.
그때까지 내가 제구실을 잘 해야 하는데,
엄마가 저승문에까지 가서 살려놓은 아들,
그 목숨 쉽게 여길 수 있겠어.
정말 미안해 엄마. 미안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