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관심 있었던 강의의 강사 프로필을 확인하다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어린, 꽤 친밀했다
어떤 계기로 너무나 멀어져 버린, 과 동기였다. 

내가 그 강의를 듣게 되면 그녀가 나를 보며 강의를 하고 나를 평가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배철수가 언젠가부터 더이상
남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면서 행복해졌다는 얘기를 들먹이며 나도 더이상 남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오만하게
지껄여 댔던 그 지점에서 바로 얼어붙었다. 질투, 시기심, 자기비하, 열패감이 끈적끈적 들러붙어 옴쭉달싹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우리의 준거집단에 속한 사람들만 선망한다는 것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다.
                                                                                                             -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중 

  

마침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야금야금 읽고 있었다. 그래서 구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덜 외로울 수 있었다. 결국 준거집단의 성공을 감내하기 힘든 그 치사한 심리는 인간의 본성인 것인가. 되짚어 보면 정말 예리한 지적이다. 왜 우리의 어머니들은
여고 동창회만 다녀오면 설겆이를 전투하듯 하며 죄없는 그릇에 화풀이를 하고 항상 나무늘보처럼 게을렀던 우리의 모습을 유독 그날 더 발끈하며 못 참아내며 성토했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하필 왜 그녀였음에 더 강한 심리적
충격과 열패감에 사로잡혔는지도 설명이 된다.  



보통의 책을 선물받은 사람이 다시 그 책을 나에게 줬었다. 아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였나 보다. 추측형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안읽고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해 버렸기 때문이다. 프랑스적인 것에 막연한 선입견이 있다. 지루함, 사변적 분위기, 공감할 수 없는 부르주아 분위기 같은. 누군가 건네준 책을 고맙게 받고 잘 읽지 않는 묘한 습성이 있다. 내가 선택하지 않고
나에게 온 그것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면서 그것의 애초 출발지인 그 사람마저 멀게 느끼게 될까봐 움찔하면서 피하게 된다. 역설이다. 책을 사랑하면서 책 선물받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대신 도서상품권으로 부탁하는 너절한 센스까지 가지고 있다. 

그의 책을 읽게 될 줄 몰랐다. 정말 우연하게 대형서점에서 소설가가 이런 '불안'이라는 정서에 천착한다는 게 놀라워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불안이라니. 나는 충분히 불안하니 읽을 명분이 대충 섰다. 

이 책에서의 불안은 사회에서의 지위의 위계의 틀 안에서 넘치는 욕망이 충족되지 못할 때의 그 불안을 얘기한다. 즉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에 부합하지 않았을 때 드리워지는 그 불쾌한 패배감이다.  세상의 눈은 물론 속물근성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시선이다. 속물근성에도 재미있는 유례를 덧붙인다. 속물근성snobbery이라는 말은 영국에서 1820년대에 옥스퍼스와 케임브리지의 많은 대학의 시험 명단에서 일반 학생을 귀족 자제와 구별하기 위하여 이름 옆에 작위가 없다고 적어놓은 관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 sine nobilitate)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이 속물이란다. 명쾌하고 씁쓸한 정의다. 

불안이 결국 현대의 야망의 하녀라는 고찰은 예술이 삶의 비평을 통해 그것을 수정 보완해 나갈 수 있다는 결론으로 확대되어 나간다. 결국 보통은 자기가 쓰는 소설을 옹호하고 싶었지 않나 싶게 조금 뻔한 결론이 김빠지기는 했어도 사회가 사람들에게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에 날카롭게 허점을 파고든 그의 예리한 기지가 돋보이는 책이다. 이런 추상적이고도 지루하기 십상인 재료를 가지고 이다지도 흥미롭고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그도 분명 속물근성의 기준에서 보면 성공한 축에 속에 속할 것같다. 

중간중간 삽입된 사진들과 그림이 흑백이라 그다지 내용의 이해에 큰 도움이 안되어서 아쉬웠지만(원서는 어떤지 궁금하다), 그가 제시한 각종 도표와 상징화된 도식들은 상당히 흥미롭고 신선한 시도로 보였다. 그의 생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p.268 

보통의 얘기를 빌리자면 우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받은 그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향수에 휩싸여 장성해서도 세상이 주는 사랑을 찾아간다. 두번째 사랑은 그 사랑의 기준이 속물근성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은밀하고 부끄럽다. 돈과 명예, 권력을 탐하는 것도 결국은 세상이 돌려주는 기립박수가 있기 때문이다. 남의 애정덕분에 우리 자신을 견딜 수 있다는 그의 얘기는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다시 나의 얘기로. 그 강사는 그녀가 아니었다는 조금은 안심되는 얘기를 들었고 (동명이인) 그럼에도 사회적 잣대로 성공한 수많은 그녀들을 단지 더 친밀했고 나와 더 비슷했기 때문에 때로 진정으로 축하해 줄 수 없는 나의 옹졸함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숙명이라는 데에 많이 절망했으며 체념하게 됐다. 안그러려면 욕망을 줄이고 속물근성을 떨어낼 도리밖에 없는데
지난하고 요원한 과정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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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0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진 글이네요.
인간의 속물근성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blanca 2010-03-04 13:43   좋아요 0 | URL
그죠? 그래도 좀 덜 속물적이려는 노력은 계속 해보려구요^^

프레이야 2010-03-04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절한 질투에 너절한 센스요? 아뇨. 전혀 너절해보이지 않아요^^
질투도 개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말을 배우 이미숙이 했던가요.
비슷한 준거집단에서 일어나는 감정, 질투에서 보통의 불안까지, 마음에 와닿는 페이퍼에요.
질투가 긍정의 에너지로 소모되는 그날까지, 아자!

blanca 2010-03-04 13:4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의 낭독의 의미를 깨닫고 지금 감동받았습니다. 아...너무 아름다운 일이다. 나도 흉내좀 내야겠다고 결심도 해보고요^^ 저는 앉아서 부러워하고 질투만 하다 세월 다 갈 것 같아요. 정신좀 차려야 겠어요--;;

저절로 2010-03-04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은 언제나 저를 쏘옥 빨아당기는 군요^^.
보통을 요리조리 피해다니다,여기서 맞딱드리네요..저 파리한 눈빛으로 '불안'을 얘기했다니, 음..궁금해지는군요.

blanca 2010-03-04 22:15   좋아요 0 | URL
에파타님, 저도 괜히 피해다녔는데 이 책은 재미도 있고 소장가치도 있고 여러 모로 마음에 들더라구요. 다만 여기서 반값행사하는 것도 모르고 사 버린게 쓰릴 뿐입니다. 철학을 전공한 소설가라 그런지 박학다식하면서도 센스도 있고 그렇더라구요.

루체오페르 2010-03-04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생활 속의 철학적이고 느낌있는 글 정말 좋습니다.^^

blanca 2010-03-04 22:16   좋아요 0 | URL
루체오페르님 감사합니다. 사실 철학은 잘 모릅니다.-..- 철학적이고 싶어할 뿐이지요.
 

영어 공부를 나름대로 열심히 꾸준히 한 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보습학원에서 당시 영어입문자들에게 필수였던
동아컬러사전을 끼고 새로운 언어의 그 달콤하고 보드레한 어감이 좋아 신나게 시작했던 영어는
대학교 때 취업전장에 뛰어들기 위한 무장의 일환으로 변모했다. 

무식하게 했다. 하루종일 영어 방송을 틀어놓고 생각도 영어로, 꿈도 영어로 꾸려고 애썼고 영어채팅도 해보려고 했다.
결과는 종이와 연필로 치르는 계량화된 시험 점수는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받았지만 실제 영어를 사용하는 이들과 
만나게 되면 아주 과묵하고 이따금 던지는 어설픈 조크가 시덥잖은 반응을 얻어내는 바로 그 수준이상을 갈 수 없었다.
 

어설프고 나름대로의 치기를 덧씌워 나름대로 굴린 문장보다 콩글리쉬처럼 텁텁하게 내뱉는 단어만으로 더 무리없는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정작 취업했을 때는 영어 무장을 완전 해제하고 오히려 다시 한글,숫자들과 씨름해야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을 때 그 때의 충격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영어에 퍼부은 그 수많은 시간들과 비용들이 고작 소피 킨셀러의 <쇼퍼홀릭>을 사전 좀 덜 찾고 읽을 수 있는 수준까지
가는 길이었다는 깨달음이 남기는 그 불쾌하고 쓰디쓴 뒷맛이란. 결론은 주입식 교육 운운하는 그 진부함이 아니라
나의 영어 공부의 스타트가 지나치게 늦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만 열두 살의 겨울 새로운 언어를 모국어 위에
다시 프로그래밍하겠다는 그 옛날(지금은 많이 빨라졌으나)의 출발은 언어교육의 적기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였다.
물론 그럼에도 네이티브 만큼은 아닐지라도 영어로 유창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절친 한 명이 있긴 하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보편적 범주가 아닌 예외적 특출함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므로 계속 외국어 교육의 적기에 관한 나의 생각을
밀고 나가련다. 

 

옹알이도 국적에 따라 다르다는 흥미로운 얘기부터 외국어 학습의 적기에 관한 논의까지 꼭 육아의 측면뿐만 아니라 사람이 언어를 습득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신선하고 명쾌한 실례들로 가득한 책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외국어 학습의 적기에 대한 얘기다. 우리는 바이 링구얼에 대해 흔히 그런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이 두 가지 언어습득 모두에 지연을 보인다는 사실을 많이 거론한다. 그것까지 아니라고 단정짓지는 못한다. 지인의 28개월 아이도 현재 그런 상황인 것을 보면 초기 지연은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인 것도 같다.  하지만 결국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게 된 사람들의 사고력과 추리력이 더 뛰어나단다.

이 책에 제시된 한 연구에서는 미국에서 산 햇수는 악센트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하고 살기 시작한 나이가 네이티브와 얼마나 유사한 발음을 구사하느냐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한다. 적어도 3~7살에 영어에 노출되어야 유창하게 영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외국어습득의 적기로 흔히 거론되었던 12살과 대단한 차이가 나는 연령이다. 물론 유창하게 영어를 한다는 그 목표 지점에 대한 설정과 과연 외국어를 모국어마냥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론과 맞부딪치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일각에서는 싱가폴 영어, 인도 영어, 스페인 영어로 각자의 억양과 발음, 문화와 적절히 버무려진 특수한 내재화가 대세라는 의견도 있다. 꼭 정통 미국식 영국식 영어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결국 소통이 목표라면 적당한 제스추어와 추측 등이 어우러져 공통의 이해의 지점에만 도달하면 된다. 하지만 얘기하고 싶은 대목은 영어에 들이는 비용과 노력이 아무래도 적기에 투입된다면 더 절감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효율성의 측면이다. 

아이들은 희한하게 두 언어를 분리할 수 있고 언어의 문법의 내재화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도 24~36개월인 점을 감안하면 외국어의 학습은 이 시기가 적기라는 얘기다. 한글도 모르는 아이한테 영어비디오를 틀어주는 모습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겠지만 여하튼 그 시기에도 영어 교육은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모국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읽고 쓸 수 있을 때 영어를 배우게 해 주겠다고 당당하게 외치고 다녔던 콩글리쉬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엄마는 갑자기 숙연해진다. 사실 나름대로의 교육적 소신 때문이 아니라 귀찮고 게을러서였기 때문에 다시 내 아이에게 나의 그 지난한 외국어 공부의 시행착오를 답습하게 하지나 않게 될런지 걱정이다. 

                                                                               

부지런한 엄마들의 얘기는 단순히 극성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만한 것 이상의 가르침이 분명 있다.  

영어 그림책, 각종 영상자료들을 통한 홈스쿨링의 경로를 그려주는 그녀들을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나중에 나 같은 고비용 저효율의 비극을 피해갈 가능성이 는다. 

그리고 자세의 문제다. 정말 아이에게 영혼의 자유와 여유로움을 선물하기 위해 조기교육을 염증스러워하는지 자신이 게으르고 쏟아낼 에너지가 부족해서 그런지 자문해 볼 일이다.(나 자신에게 하는 얘기임)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발달장애인지는 모르고 돌 전부터 영어비디오를 틀어주었다며 슬픈 자책을 했던 엄마의 얘기. 다른 부모들은 다 바깥에서 기다리는데 겉옷도 없이 추운 실내 빙상장까지 들어와 연습하는 딸을 함께 떨면서 기다렸다는 엄마의 얘기. 극성이라고 다 나쁜 게 아닌가 보다. 적절하고 진정한 극성은 아이에게 독이 되지 않는다. 극성엄마를 맹렬하게 비난해 댔던 내 자신이 실은 극성 엄마의 딸이 아니었던 열등감 때문이 아니었나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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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3-0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어를 포함한 언어 조기 교육에 대한 장점,단점 찬성,반대 여러 학론,의견이 있지만...제가 봐온봐론 찬성,장점쪽이 더 큰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런데 복잡하게 이론 따질거 없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돈도 있고 능력도 다 되는데 그래도 안 보내실건가요?'
대부분은 아이에게 조기유학,교육을 시키고 싶을겁니다. 학론, 애국심 뭐 그런건 일단 나중 아닐까 싶네요. 평생 어차피 외국어를 벗어날수는 없는거니까 효율성의 측면에서라도 말이죠. 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공감가는 의견이 많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blanca 2010-03-02 22:18   좋아요 0 | URL
제가 영어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해서 성격상으로는 극성, 조기유학 이런 거 반대하고픈데 ㅋㅋㅋ 외국어 학습 만큼은 예외더라구요. 그런데 이런 부분이 또 물질적 지원 여력과 관련이 있어서 참 서글픈 현실입니다. 루체오페르님 말씀처럼 누군들 안 그러고 싶겠어요.

꿈꾸는섬 2010-03-0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경험을 함께 읽으니 훨씬 공감이 가네요. 사실 전 아이들 영어조기교육 반대입장이었거든요. 하지만 충분히 일리 있는 얘기세요. 저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추천 꾹 누르고 가요.^^

blanca 2010-03-03 14:16   좋아요 0 | URL
^^ 저도 완전 반대하고 있었는데 언어 부분에 있어서는 물론 아이가 거부감을 일으킬 정도는 않되지만 적절하게 노출하여 줄 필요가 있더라구요. 그래도 역시 귀찮아요 ㅋㅋㅋ

후애(厚愛) 2010-03-0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어보다는 우리나라 말이 무척이나 그리워요~ ^^
한인마트에 가면 우리나라 아줌마들을 많이 보는데요. 거의 우리나라 말을 안 하고 영어로 이야기를 해요.
전 영어보다 우리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지요.ㅋㅋㅋ

blanca 2010-03-03 22:15   좋아요 0 | URL
후애님! 한인마트에서도요? 안그래도 제 친구도 한국말 맘껏 할 수 있는 환경을 너무 그리워하더라구요.

마녀고양이 2010-03-03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20년 후에는 부착용 언어 통역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상대방이 어떤 언어를 쓰든 저는 알아들을 수 있고,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그리고 10-20년 후에는 자동 운전 자동차가 나오지 않을까요? 전 그리 믿고 운전도 안 하고, 영어도 제대로 안 하고 버팁니다. 히히

blanca 2010-03-03 22:10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저 운전-..- 연수까지 받고도 무서워서 못하고 있잖아요. 안그래도 맨날 궁리하는데. 자동운전되는 차 안나오나 하면서요.ㅋㅋㅋ 너무나 슬프게도 하반기에는 강제로라도 해야 될 것 같아요. 저 잠 못자게 생겼어요. 연수받는 날 넘 무서워서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잖아요.

프레이야 2010-03-03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부분에선 전혀 극성스럽지 않은 엄마랑 살았지요.
그리고 저도 우리딸들에게 전혀 극성스럽게 안 하구요.
그런데 님의 말씀에 공감이 많이 되어요.
좀 극성스러울 필요가 있는 게 또 이런 분야인 것 같아요.
요즘 6학년 작은딸이 영어학원을 가끔 안 가려고 해서 오늘도 달래서 보냈어요.
좀 어려운 교재로 올라갈 때마다 그러더라구요.
발전하기 위한 고개라고 포기하지 말고 넘어보자고 달랬어요.
빵이랑 타코야끼 사줘가면서요.ㅎㅎ (먹는 거에 약한 ㅋ)

blanca 2010-03-03 22:13   좋아요 0 | URL
빵이랑 타코야끼 ㅋㅋㅋ 갑자기 그 풍경이 연상되요. 귀여운 모녀의 모습. 뭔들 안그러겠냐마는 특히 영어는 조금 빨리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그런 말할 자격은 없는 것 같아요-..- 한글 책도 열심히 안읽어 주고 있어서요--;;
 

"손 젖잖아요. 이리 줘요. 내가 할테니."
한 때는 참 예뻤을 그러나 지금은 삶의 고충들이 가득 괴인 눈매의 청소부 아주머니는 나의 우산을 낚아챘다.
그 축축한 우산을 꼼꼼히 잘 접어 비닐봉지에 넣어 건네는 그녀를 다시 한 번 보았다.
나는 눈을 맞추고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괜히 뭉클했다. 아주머니가 너무 예뻐서 너무 친절해서. 게다가 빗방울이라니.
모든 사물을 모든 현상을 어리어리하게 그 테두리를 묘하게 번지게 해서 보여주는 빗방울이라니. 
젖어도 괜찮은 손이 있다니. 젖으면 안되는 고운 손이라도 가진 것처럼 나를 우쭐하게 해주다니.

가난한 대학생이 개구쟁이 초등학생과 투닥거리며 벌어놓은 돈에서 어버이날 선물을 택할 폭은 넓지 않았다.
삼만 원짜리 가판대 넥타이. 게다가 너희들은 구석진 곳에 삶의 신산함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하필 바로 또다른
고운 아주머니 옆에 누워있었다. 어슬렁대는 나를 아주머니는 불렀다.
"손님, 선물 고르세요?" 손님이라니. 내가 그 가판대에서 넥타이를 몇 개 헤집어 볼 명분으로 충분하다.
"네. 아빠 선물 고르려구요."
"아버님이 사람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 할 일이 많으신가요? 아니면..."
그 아주머니는 너무나 정성껏 몇 개의 넥타이를 자신의 옷 위에 대보며 어리버리한 대학생을 최고 고객으로 대우해 주었다.
아주머니와 내가 벌인 소박한 패션쇼의 끝에 낙찰된 그 황금빛 넥타이.
그 삼만 원짜리 넥타이는 아직도 가장 중요한 행사에
행운의 부적처럼 아버지와 동행한다.
 

소위 감정노동을 오년 간 하고 퇴직하면서 가장 많이 남은 아쉬움은 가장 자연스럽게 흘러 나와야 할 감정을
인위적인 틀 안에 구겨 넣어 억지로 끄집어 빼는 듯한 그 껄쩍지근한 과정에 대한 염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더 친절하지 못했음이었다.
나는 조금 더 친절해도 괜찮았다. 이 역설 앞에서 이 설명할 수 없는 회한은 내가 때로 무례함을 응징하고자 했던
과욕을 부렸음에도 결국 남은 것은 통쾌함이 아니라 항상  어쩌면 내가 무의식중에 먼저 건드렸을 수도 있을
상대의 허점에 대한 하지 못한 사과였다.  참 이상했다.
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남는 것이 항상 더 해대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이 아니라 
가장 무례했던 사람한테조차
넘치게 베풀지 못한 친절함에 대한 아쉬움일까.  

45년의 연구와 공부 뒤에 얻은 다소 당혹스러운 결론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은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하라는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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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3-02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더 친절하자, 좋은 글 감사해요.
3월! 비온 후라 날이 좀 흐리지만 상쾌하게 시작해요^^

blanca 2010-03-02 13:45   좋아요 0 | URL
제가 그렇게 못하니까 다짐하려고 썼어요.^^우중충한 날씨지민 프레이야님도 행복하게 하루를 마감하셨으면 합니다.

마녀고양이 2010-03-02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에게 가능하면 방긋 웃고 친절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르게도 생각합니다. 가끔 누군가에게 좀더 잘 해야 한다는 압박이 저를 짓눌어요.
너무 가까운 누군가, 조금 멀어진 누군가에게는 조금더 무심해도 좋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blanca 2010-03-02 13:47   좋아요 0 | URL
착한 사람 콤플렉스 저도 있어요. 사실 이 안에 친절에 대한 강박도 포함되는데 사실 저 친절했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이것의 일환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어요. 너무 무례한 사람한테는 대응하지 않는게 나을 수도 있더라구요. 어려워요-..-

저절로 2010-03-0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들어진 신'의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타주의를 다윈주의적 실수, 다행스럽고 고귀한 실수라고 한 구절이 떠 오릅니다. 자연이 양육강식의 정글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타'를 인간의 유전적 경험속에 남겨둔 것은 분명 기쁘게 빗나간 실수가 아닌 '까닭' 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생존이유 말입니다.

blanca 2010-03-02 13:48   좋아요 0 | URL
아....다윈주의적 실수. 다행스럽고 고귀한 실수. 이 용어가 참 좋네요.

꿈꾸는섬 2010-03-03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소중한 말이에요.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하자. 기억해두겠습니다.^^

blanca 2010-03-03 14:17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은 글만 봐도 친절하실 것 같아요^^
 
아직도 가야 할 길
M.스캇 펙 지음, 신승철 외 옮김 / 열음사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오십대의 K는 세속적인 잣대를 들이밀면 퍽 성공한 축에 속한다. 그런 그가, 무신론자에 가까운 그가 정성들여
성경을 필사하는 장면을 우연찮게 보게 된 제자는 당돌하게 물었다.
"교수님, 신이 있다고 믿으시는 겁니까, 믿고 싶으신 건가요?" 그는 후자에 가깝다고 얘기했나 보다.
카톨릭 세례를 받기 위한 예비자 교리 과정의 과제로서 성경필사를 시작한 그의 모습은 낯설었다.
무신론이 갑자기 신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희구로 변모하기까지야 그 세세한 사정을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인간의 세속적인 성공의 마침표가 또다른 문장을 불러오는 그 길목에 선 K의 모습을 지울 수 없었다.

누군가의 삶의 고통에 대한 호소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 내 인생의 책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추천합니다."  나는 힘든데 누군가는 주제넘은 충고대신 책을 권한다.

이 책이 오는 길은 멀었지만 어떤 운명 같은 것이 있었다. 누군가가 추천했고 또 누군가가 동조했을 지 모른다.
어디에선가는 꼭 불쑥 이 책의 표지가 튀어나와 뒷덜미를 붙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멘토마냥 이 책을 찬양했다.
그래서 영적인 지도자라 자평하는 어느 사이비 교주의 설교집 정도 되는 줄 알았드랬다. 

저자 스캇 펙은 정신과 의사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경도되지도 않았고 기독교 교리로 교묘하게 자신의 얘기들을
포장하지도 않는다. 과학과 기적의 그 접점 어디엔가 그는 서 있다. 그러나 그는 영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
독자는 이윽고 그에게 상담을 받는 한 명의 환자가 된다. 마침내 자신의 모든 결함과 상처를 이 세상에는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주치의에게 다 털어놓고 탈진한 상태에서 성장으로 향햔 도약을 내딛게 된다. 그러니 이 책은 반드시 무조건 읽어어 한다.
힘들다고 하면 과장이고 견딜 만 하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인 항상 그런 지점에 발 붙이고 있어야 하는 우리들이라면. 

삶은 고해다. 

이 책의 첫문장이다. 그것은 대전제다.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 고해를 헤쳐나가는 실용적인 기술을 전파하겠다고 장담하지도 않는다. 문제 해결의 괴로움을 건설적으로 취급하는 기술 체계인 훈련을 하라고 한다. 달콤한 마시멜로를 조금 뒤로 미루어 놓듯 즐거움을 나중에 갖도록 자제하고 책임을 지고 진실에 헌신하고 균형을 맞추는 기술을 얘기하는 대목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다만 시인 실비아 플러스의 얘기처럼 진공의 병 안에서처럼 자신의 악취나는 공기를 되풀이하여 호흡하며 점점 더 깊은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도록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지도를 내보이고 과감하게 수정해 나갈 것을 독려하는 부분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가 세상 전부이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 부모처럼 우리를 대우해 줄 것이라 여기던 바로 도수에 맞지 않는 안경으로 지금의 세상도 보고 있다. 이것이 전이다. 정신치료는 이 지도를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다시 시력검사를 하고 제대로 된 안경을 맞추어 써야 하는 그 너무나 당연하지만 번거로워 미루어 두었던 그 일을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얘기는 끊임없이 사랑에 빠져 상처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한 전언이다.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고 자아의 붕괴가 아니라 자아가 확장되는 것이라고. 자신에 대한 사랑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은 사족 같다.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 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마는 걸까. 사랑의 그 파괴적인 경향성은 마조키스트적인 자기희생의 망상과 맞물려 다분히 소모적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사랑이 떠나고 간 그 자리의 흉물스러움에 몸을 떨며 이번 사랑은 가짜였으니 다음에 올 진짜 사랑을 기다리겠다고. 또 지난 번과 비슷한 경로를, 대상을 찾아 헤매며 끊임없이 사랑 그 자체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연민어린 집착에 중독된다. 그리고 나의 삶은 불운으로 가득 차 있다고 불평한다.

은총에 대한 얘기는 다분히 영성에 관련된 얘기다. 자기 향상과 영적 성장을 위한 그 노력의 지향은 하느님과 같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얘기하는 하느님이 반드시 기독교적 하느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캇 펙은 심지어 칼 융의 집단무의식 개념을 차용해 온다. 그는 정신질환이 개인의 의식적 의지가 무의식의 신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때 발생한다고 덧붙인다. 여기에서 신은 일종의 신성으로 이해된다. 인간의 영적 고양의 그 지향점으로서 우리 인간 자체의 그 무한한 잠재 능력에 대한 완전한 신뢰에서도 신은 발현된다. 그러니 그의 신은 인간의 그 완전함으로의 열린 가능성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다름아니다. 무신론이어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사랑이다. 나 자신과 타인의 성장을 배려한 그 무한하고 조건없는 사랑과 믿음. 무엇보다 그 근시안적이고 순간적인 그 허약한 욕망들을 향해 뻗어 있는 촉수들을 거두고 영적인 성장을 향해 전진하려는 그 진화선상에 나를 두는 것. 끊임없이 소비적인 본능에 몸을 내맡기려는 그 관성에 역행해 성장하고 단발적인 본능들을 억제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또다른 본능에 귀기울이는 것. 전체의 일부로서의 자아의 그 연결지점을 의식하는 것.  

임상의로서 삶 전체를 영성과 연결짓는 통찰의 시선까지 나아간 그의 얘기를 듣는 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치유의 과정이었다. 나의 우울로 얼룩져 어룽대던 세상이 갑자기 말끔하게 닦여 그 청명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여 보여 줬다. 순간의 착시일지라도 이런 착시는 대환영이다.  우리는 걸었고 지금도 걷고 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이런 책을 반드시 어떤 길목에서 건네받아야 한다. 그래야 덜 후회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항상 더 현명하고 더 친절하니 그의 손을 잡고 걸으면 훨씬 덜 힘들게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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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3-0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꽤 두텁던데,, 다 읽으셨단 말입니까.. ㅠㅠ
전 저 시리즈 3권 사놓은지가 어언 2년.. 아직도 손도 못 대고 있어요. 아우 창피.

그나저나 블랑카 님의 글은 읽을 때마다 생각하는거지만, 정말 흡입력있으시군요. 부럽습니다.

blanca 2010-03-01 23:20   좋아요 0 | URL
시리즈 세 권 다 사놓으셨어요? 우와~ 근데 이거 생각보다 글자가 크고 들여쓰기를 많이 해서 잘 읽히더라구요. 상담에도 관련하여 아주 유용할 것 같아요. 덜 바쁘실 때 한 번 읽어 보세요~ 마녀 고양이님 서재로 놀러갈랍니다.

저절로 2010-03-02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님께만 오면 질러요.두텁다는 대목에서 망설였지만 지르게 해줘서 고마워요.제대루 지르면 넘 행복하단 거 벌써 알고계시죠?

글구, 제가 서재질 한거 얼마안돼 그러는데요, 어디 서재에 가보니 thanks to 해주시라 하던데, 뭐하는겐지 알아야 도움을 드리든 할거같아서요(이거, 쪽팔림 각오하고 드린 말씀이에요~)

blanca 2010-03-02 13:51   좋아요 0 | URL
저에게만 오면 지르신다니 ^^;;; 저는 중고로 구입했는데 에파타님도 한 번 찾아보세요. 알라딘 중고 서점. 그리고 Thanks To는 책 구입하실 때 그 상품의 아래 리뷰나 관련 페이퍼 하단을 클릭하시면 되요. 하는 사람은 마일리지를, 받는 사람은 적립금을 얼마 주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여러 해 동안 서재가 있는지도 몰랐답니다. ㅋㅋㅋ
 

 

백화점 여성 의류 코너에 풀어 놓으면 종일이라도 놀 수 있었던
연년생 여동생이 시집가고 나서 갑자기 테팔 후라이팬 행사 매장에서 한 시간을 버티는 모습.
조카에게 퍼부어 대던 물량 공세가 어느덧 수세 차원으로 바뀌는 것. ^^;;

아홉살 연하의 곱슬머리 남동생이 여친이 생기자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자주 오던 누나집에 드문드문 와서 그마저도 하루종일 쇼파에 누워 피곤해하는 모습.
핸드폰의 진동소리만 그를 일으킬 수 있다. 그의 여자친구를 싸이의 일촌평에서 찾아 따라들어가 염탐하는
매너없는 누나들의 모습.

미혼의 절친한 베프와 만나면 더이상 흥분하며 밤을 지새우던 공통의 화젯거리가 없다는 것.
너도 나도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은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마저 약간은 뜨악하게 느껴진다는 것. 

유부녀들과 만나 각자의 배우자와 아이 얘기만 하는 그 자리.
우리는 더이상 '나'와 '너'의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구나. 

결국 낯설어진 것들은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운하게 된 것들의 다른 이름.
난 낯설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서운한 거야.
'나'와 '너'가 공명하던 그 순간의 떨림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희미해져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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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2-2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알라딘 서재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하이텔 시절부터 숱하게 온갖 모임과 카페 활동, 아고라같은 커뮤니티, 학교 동기 모임 등을 했어도, <알라딘 서재>처럼 비슷한 체취를 맡은 적이 없었답니다.

(어쩜 난 사람이 아닌거 아닐까?)

blanca 2010-02-25 21:39   좋아요 0 | URL
그죠? 너무 신기해요. 책을 좋아하고 책얘기를 하는 사람을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잖아요. 참 다행한 일이에요.

다들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지금은 한창 가정에 집중할 때라 점점 더 멀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학창시절 우정을 기대하는 건 음, 서로에게 너무나 큰 부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0-02-25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명의 떨림, 욕심일까요. 서운함일까요. 지향일까요..

blanca 2010-02-25 21:41   좋아요 0 | URL
다일것 같아요. 특히나 저에게는. 사람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자아성취를 해야 하는데^^;;;

302moon 2010-02-25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통의 화제가 없음과, 무엇보다도 서로의 일상이 너무나도 바빠,
멀어진 거리는 다시 좁혀지지 않는 친구 사이도 있는 거 같아요.
난독증으로 책을 읽지 못하게 됐으니,
너와 나의 공통분모 하나가 사라지는구나.…
말을 건넸던 친구도 문득 떠오르는 공감 글이었습니다.
저의 결혼한 친구들은 한창 아이 낳아 키우는 즈음이라,
더욱 못 만나게 되는 듯. T_T
윗분 말씀처럼 알라딘 서재가 있어, 참 좋아요. :)

blanca 2010-02-26 15:00   좋아요 0 | URL
302moon님 멀어지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또 그 만큼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는게 나이들어가는 것의 슬픈 점인 것 같아요. 이제부터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전부를 보여주거나 이해받기를 바라지는 않게 되더라구요. 알라딘 서재가 있어서 살지요^^;;

저절로 2010-02-26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이 겹쳐 인연이 된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고 나오니, 식당 사장님이 친굴 알아보시고는 '접때 함께한 친구분들이 아니네요'하니,'시절따라 친구도 흘러가네요, 지금은 이 친구와 놉니다'인생 다산것처럼 살포시 웃는다.

있을수 있는 평범한 장면과 대화였는데도 가슴이 찌르르..잠깐 그랬어요. 나는 변하면서 친구는 뒷뜰 그자리 그나무이길 바라는 건 무슨 심본지.


blanca 2010-02-26 15: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는 항상 받기만을 바라 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문제가 유년기와 결부가 되어 있는 것인지. 요즘 책들을 이런 문제를 다 걸핏하면 엄마와의 애착 문제로 설명하더라구요.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성장해야 되는데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노력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