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여성 의류 코너에 풀어 놓으면 종일이라도 놀 수 있었던
연년생 여동생이 시집가고 나서 갑자기 테팔 후라이팬 행사 매장에서 한 시간을 버티는 모습.
조카에게 퍼부어 대던 물량 공세가 어느덧 수세 차원으로 바뀌는 것. ^^;;

아홉살 연하의 곱슬머리 남동생이 여친이 생기자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자주 오던 누나집에 드문드문 와서 그마저도 하루종일 쇼파에 누워 피곤해하는 모습.
핸드폰의 진동소리만 그를 일으킬 수 있다. 그의 여자친구를 싸이의 일촌평에서 찾아 따라들어가 염탐하는
매너없는 누나들의 모습.

미혼의 절친한 베프와 만나면 더이상 흥분하며 밤을 지새우던 공통의 화젯거리가 없다는 것.
너도 나도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은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마저 약간은 뜨악하게 느껴진다는 것. 

유부녀들과 만나 각자의 배우자와 아이 얘기만 하는 그 자리.
우리는 더이상 '나'와 '너'의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구나. 

결국 낯설어진 것들은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운하게 된 것들의 다른 이름.
난 낯설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서운한 거야.
'나'와 '너'가 공명하던 그 순간의 떨림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희미해져가는구나.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0-02-2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알라딘 서재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하이텔 시절부터 숱하게 온갖 모임과 카페 활동, 아고라같은 커뮤니티, 학교 동기 모임 등을 했어도, <알라딘 서재>처럼 비슷한 체취를 맡은 적이 없었답니다.

(어쩜 난 사람이 아닌거 아닐까?)

blanca 2010-02-25 21:39   좋아요 0 | URL
그죠? 너무 신기해요. 책을 좋아하고 책얘기를 하는 사람을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잖아요. 참 다행한 일이에요.

다들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지금은 한창 가정에 집중할 때라 점점 더 멀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학창시절 우정을 기대하는 건 음, 서로에게 너무나 큰 부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0-02-25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명의 떨림, 욕심일까요. 서운함일까요. 지향일까요..

blanca 2010-02-25 21:41   좋아요 0 | URL
다일것 같아요. 특히나 저에게는. 사람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자아성취를 해야 하는데^^;;;

302moon 2010-02-25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통의 화제가 없음과, 무엇보다도 서로의 일상이 너무나도 바빠,
멀어진 거리는 다시 좁혀지지 않는 친구 사이도 있는 거 같아요.
난독증으로 책을 읽지 못하게 됐으니,
너와 나의 공통분모 하나가 사라지는구나.…
말을 건넸던 친구도 문득 떠오르는 공감 글이었습니다.
저의 결혼한 친구들은 한창 아이 낳아 키우는 즈음이라,
더욱 못 만나게 되는 듯. T_T
윗분 말씀처럼 알라딘 서재가 있어, 참 좋아요. :)

blanca 2010-02-26 15:00   좋아요 0 | URL
302moon님 멀어지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또 그 만큼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는게 나이들어가는 것의 슬픈 점인 것 같아요. 이제부터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전부를 보여주거나 이해받기를 바라지는 않게 되더라구요. 알라딘 서재가 있어서 살지요^^;;

저절로 2010-02-26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이 겹쳐 인연이 된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고 나오니, 식당 사장님이 친굴 알아보시고는 '접때 함께한 친구분들이 아니네요'하니,'시절따라 친구도 흘러가네요, 지금은 이 친구와 놉니다'인생 다산것처럼 살포시 웃는다.

있을수 있는 평범한 장면과 대화였는데도 가슴이 찌르르..잠깐 그랬어요. 나는 변하면서 친구는 뒷뜰 그자리 그나무이길 바라는 건 무슨 심본지.


blanca 2010-02-26 15: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는 항상 받기만을 바라 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문제가 유년기와 결부가 되어 있는 것인지. 요즘 책들을 이런 문제를 다 걸핏하면 엄마와의 애착 문제로 설명하더라구요.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성장해야 되는데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노력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