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실비아 플라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삶을 비극이라 상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삶을 시작한다. 
                                                                      -W.B. 예이츠 

영국의 계관시인이었던 테드 휴즈의 전처이자 그 자신 유망한 여류시인이었던 실비아 플라스는 테드 휴즈의 외도와 잇따른 별거 후 하필 백년 만에 찾아온 영국의 혹한 속에서 옆방에서 노는 두 살, 한 살의 아이들이 먹을 것을 준비해 두고 가스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을 한다.
 

그녀의 이러한 최후로 인해 실비아는  창조의 뮤즈가 되기 위한 그 금제의 벽을 뚫고 스스로가 증여물이 되는 신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시인처럼 여겨졌다. 비극과 장렬한 최후와 치사한 치정극까지 버무려 윤색된 그녀와 그녀의 삶에 대중들은 열광한다. 아름답고 젊은 시인 부부. 한 명의 배신. 그리고 남겨진 자의 자살. 아이를 옆방에 두고 홀로 가스를 마시며 존재를 흩어버림으로써 어쩌면 남은 자들을 가장 극적으로 단죄해버린 그 간접적이고 슬픈 복수. 

결국 나를 파멸로 이끌고 말 것을 나는 욕망한다...... p.69  

이 일기는 그녀의 사후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했던 남편인 시인 테드 휴즈의 자의적인 검열을 거쳐 발간된다. 또한 죽기 직전의 일기는 그의 말을 빌리자면 아이들이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각된다. 그러니 우리는 조금 역겹게도 그녀의 휴즈에 대한 열렬한 경탄스러운 애정의 표현만을 내키지 않지만 꿀꺽 삼켜야 한다. 한편 세상에 나온 이 일기는 일순간 그녀를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남성 문화의 폭압하에 순교한 여성해방운동의 아이콘으로 등극시킨다. 또한 생전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단어하나하마다 그녀의 피가 밴 시들이 제대로 평가받게 된다. 그러니 그녀의 죽음은 남겨진 아이들의 아픔만을 제외한다면 어쩌면 그녀가 그렇게도 소망하고 기다렸던 세상의 상찬을 받는 역설적 계기가 되고 만다.
 

칠백여 페이지의 때로는 내면의 의식의 흐름에 침잠하여 읽는 이를 염두해 두지 않고 써내려간 일기를 읽어 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잡을 듯 해도 순간 나의 둔탁한 감수성의 그물코로 빠져 나가고 마는 그녀만의 독특한 어휘들과 그것들의 배열, 창작에 대한 강렬한 욕망들과 상치하는 일상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경멸, 때로는 분노들을 단지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 그녀의 십분지 일도 이해할 수 없음을 통감했다. 그럼에도 한 여류시인의 전 생애(그래봐도 삼십 년 남짓이지만)를 관조하는 일은 그것도 적법하게 훔쳐보는 일은 나의 삶들과도 맞물려 깊은 통찰과 어쩔 수 없는 애수를 자아내게 했다. 야금야금 그녀의 고백들을 갉아 먹다 보면 어느새 인간의 삶의 유한성과 그 불가항력적 비극의 무게에 짓눌려 치사한 질투와 자잘한 오만과 욕심들을 슬그머니 내려놓게 된다.  모든 이들이 삶의 그 강퍆함과 빈곤하지만 무자비한 서사 앞에서 연민과 용서와 이해의 대상으로 재편되는 순간 그녀의 일기를 읽는 일은 작지만 의미있는 깨달음의 새순이 움트는 경이로운 체험으로 승화된다.

스미스여대의 9월 새학기가 시작되기 직전부터 테드 휴즈와 결혼하여 둘때 니콜라스를 낳고 데번에서 사는 얘기까지의 일기들이 그녀의 자살행에 대한 유효하고 직접적인 설명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기의 문구하나하나에서 흘러넘치는 자기 완성와 시창작에 대한 높은 지향과 괴리되어 있는 현실들의 간극 속에서 유영하며 치열하게 고뇌하는 그녀의 모습과 남편 테드를 자신이 설정한 완벽한 남성성의 현현으로 숭모하는 대목들은 결국 그런 남편의 배신과 두 아이를 홀로 떠맡아야 했던 그녀가 느꼈을 그 처절한 고통의 무게를 헤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글쓰기 작업을 종교적인 아우라로 휘감고 그것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삶을 희생할 용의가 있었던 이 여인의 사춘기 시절의 빛나던 영감들과 통통 튀는 재기들이 점차로 흐느적 거리는 자기 비하와 생계를 위하여 읽고 쓰는 시간을 때로는 포기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절망하는 모습들로 변질될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를 보게 된다. 때로는 사랑이 어떤 목표가 세계 전부를 덮어버리고 우리를 중심으로 지구가 돌던 그 시간들. 순간순간이 너무나 명료하고 너무나 지루해서 우리는 당연히 영원을 끌고 가는 아주 긴요한 중심축이 될 줄 알았던 그 시간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더이상 영원한 것은 없고 기쁜 일의 당사자가 되기 보다는 슬프고 짜증나는 일들의 예외가 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그럼에도 살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날마다 색색깔의 구슬이 꿰어진 한 줄 목걸이처럼 살고 싶어. 미래에 타지마할 같은 대건축물을 짓겠다고 악다구니같이 노력하며 그 설계도에 맞추려고 현재를 잔인하게 조각조각 찢어버리고 싶지는 않다.-.p.202 

그래, 실비아. 마치 나에게 하는 전언 같은 이 말들을 꼬옥꼬옥 눌러 담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겠어. 당신도 이제는 편안한 휴식을 제발. 테드의 그 여인도 결국 당신과 같은 전철을 밟고 말아. 그러니 당신이 떠나고 간 그 자리 해피엔딩은 없어. 그 예쁜 당신의 두 눈이 또 당신의 손 끝에서 그렇게나 힘겹게 태어났던 그 수많은 시구들이 당신의 딸 프리다에게 연결되고 있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테드는 말년에 당신과의 그 수많은 오해들과 슬픈 어긋남 대신 처음 공명했을 때의 그 눈부시도록 고귀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에 헌사를 바치게 되.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 <실비아> 

 

p.s.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또 그녀의 딸이 그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는 이 영화에 공식적으로 악언을 퍼부어댔지만 이 장면만큼은 눈물없이 볼 수가 없다.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이 둘을 데리고 나와 하루 종일 육아와 가사에 시달리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그녀의 존재의 이유였던 시를 썼다고 한다. 그녀의 아이들은 그럼에도 아름답게 자라났지만 둘째 아들 니콜라스도 결국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에 마침표를 찍었다. 자신들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우유와 빵을 준비해 놓고 가스가 샐까봐 문틈을 꼭꼭 여며놓았던 어머니처럼.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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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16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자녀를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용서되지 않아요.ㅜㅜ
책은 보기 어렵고 영화를 구해 보면 좋겠네요. 기네스 펠트로가 맡았다니 더욱 더.

blanca 2010-03-16 20:3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러니 딸은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들도 자살하고.... 책은 솔직히 인내를 요하는 독서였습니다.--;;

프레이야 2010-03-16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단, 콧등이 시큰하네요.
우리의 순정과 사랑도 어쩜 그리 변색될까요.
테드와 실비아의 고드름처럼 명징했던 감정이 영화를 보며 뒤로 갈수록 안타깝고 가슴 아팠어요.
집요하게 집착하며 흔들리던 실비아의 영혼도 그렇구요.
결국 테드 위주로 삭제되었던 부분이 많았던 것도..

blanca 2010-03-16 20:4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영화 보셨군요. 저도 너무 보고 싶어요. 테드는 얼마나 일기장을 교묘하게 삭제해 놓았는지 자신에 대한 헌사로 그득찬 부분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그 정도로 실비아가 그를 사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마녀고양이 2010-03-1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저는 읽다가 포기한 책인데, 다 읽으셨네요. 조금 읽다보니 같이 늪 구덩이에 빨려드는 느낌이라 덮어버렸던 기억이 있네요. 너무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던거 같아요. 얻는게 많으면 잃는 것도 많다.. 저는 천재들을 보면 그런 문구가 생각나요. 세상을 찬란한 색채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얻은 대신, 인생을 잃는게 아닐까 하는..

blanca 2010-03-16 20:41   좋아요 0 | URL
그죠.. 저도 중간 이후부터는 솔직히 참 힘들더라구요. 읽어온 장이 아까워서 꾹 참고 읽었답니다.^^;; 인생에서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어는 없는 것 같아요. 언제나.

stella.K 2010-03-2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일이 연속이로군요.
저도 이책 읽다 포기하게 될까 봐 못 읽겠던데 그래도 다 읽으셨네요. 축하합니다.^^

blanca 2010-03-22 14: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한동안 너무 책을 사서 지금은 있는 책 소진중이랍니다. 적립금을 조금 아껴 보려구요^^;;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다음 날, 그 분의 마지막 길을 흐느끼며 배웅하듯 끄느름한 날씨 속에서
아이 손을 잡고 걷다 보니
낯선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얘는 말을 잘 하나요?
사물을 가리키면 그걸 알아차리나요? 
정확히 몇 개월입니까?

이런 조금 황당하고 직설적인 질문들.
그 아주머니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가족 중에 누군가가 어쩌면 손주중의 하나가 발달지연을
보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곧잘 우리는 비슷한 누군가는 어떤지를 궁금해하며 위로도 받고
걱정도 더하고 그러면서 고민의 모서리를 다듬는다. 
 

몇 개월 후 가게 될 어린이집 탐방후 아이는 거기에 있겠다고 집에 안가겠다고 서럽게 울어댄다.
어린이집에 안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에 있겠다고 우는 아이를 보니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벌써 엄마 품에서 벗어나려는 건지, 엄마와의 시간이 만족스럽지 못해서였는지, 그도 아니면
거기에서 커다란 눈을 끔벅이던 귀연 제또래 남자애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집 앞 조그마한 미용실. 딸애의 한 줌도 안되는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예의 미용사 아주머니가 포상격으로 주던 사탕이 없자
황당해하며 기다리는 아이를 데리고 사탕을 하나 사서 빨려 줬다.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받이 또 비슷한 연령의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얘는 누구를 닮았나요?
아빠를 닮았다구요? 내 딸도 아빠 판박인데.
그래서 가르쳐야 하는 거예요. 안되도 왜 안되는지 설명해 주고 가르쳐 주고 그래야지, 어쩌겠어.
왜냐, 자식이니까.
내 딸은 이십대 후반이 되서야 이제 내 말을 이해하더라구.
근데 왜 시집을 안가지?
이제 서른 네 살인데. 

저랑 동갑이네요! 

그러자 갑자기 시작되는 말
즈 앞으로 아파트도 있는데 말이야.   

아빠를 고대로 닮아 고집을 피울 그러나 이제는 조금 유순해졌으나
시집을 안 간다는 나랑 동갑의 아가씨가 떠올라 괜히 웃음이 나왔다.
야무지고 사랑스러울 것 같다.

집에 와서 안자겠다는 아이를 억지로 재워 놓고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조금 읽는다.
서른 살에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아넣고 자살했다는 그녀.
테드휴즈의 아내이기도 했던 그녀의 빛나던 소녀 시절 그 시적이고 찬란한 어구들을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다보면 또 맥락없이 프레이야님 서재에서 본 최명희의 그 명징하고 유리알 같은
문장들이 생각나 <혼불>을 구해야한다는 강박에 중고서점을 뒤지게 된다. 

기적처럼 갑자기 나타난 <혼불> 세트. 밀란 군데라의 <농담>도 보퉁의 <동물원에 가기>도
김혜리의 <그녀에게 말하다>도 아니 실비아의 일기도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절판되기 전에
법정스님의 <일기일회>도 읽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주문해 놓고 역설적으로 제발 판매자가
천천히 배송해 주기시를 기대하며 숙제하듯 그러나 또 아껴가며 실비아의 일기를 읽는다.    

법정 스님의 유언처럼 결국 글을 쓰는 것도 말빚을 지는 일일텐데.
말하고 쓰는 일에서 결코 해방될 수 없어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쓰고 하고 마는 얘기들이 남기고 갈 의도되지 않은 그 부스러기들에 대한 우려와 연민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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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0-03-1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정스님의 <일기일회> 주문하셨군요.^^ 부러워요~
제가 보고싶은 책들은 거의 판매중단이고 일시품절입니다.ㅜ.ㅜ

blanca 2010-03-13 22:45   좋아요 0 | URL
벌써 그렇군요...아직 일기일회 주문은 못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0-03-1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서른 넷이군요.

blanca 2010-03-13 22:45   좋아요 0 | URL
만으로는 서른 둘입니다.^^;; 노자님 나이도 궁금해지는데요.

후애(厚愛) 2010-03-14 07:53   좋아요 0 | URL
저두 궁금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3-14 15:14   좋아요 0 | URL
아니...왜들 이러시나...호기심 많은 누나들!

비로그인 2010-06-02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권에 대해 비슷한 마음이 들어 잠시 눈 감았다가 갑니다. ^^

blanca 2010-06-02 09:14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제 옛날 글에 왔다 가셨네요.^^ <혼불> 때문에 오셨는가, 싶네요. 저는 유일하게 소설을 읽고 그 등장인물이 살아 있다고 느낀 책이 <태백산맥>,<혼불>, <안나 카레니나>입니다. 지금도 제 가슴 속에 그 몇몇이 살아 있어요. 특히나 <태백산맥>이랑 <혼불> 등장인물은 서로 만나기도 합니다.ㅋㅋ
 

정말 지금까지 저 기다렸어요?
 

소개팅날 두 시간이나 늦게 나타난 사람치고는 너무나 뻔뻔스럽게 그는 싱글거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시간이나 배회하며 처음 대면할 가능성에 목매단 여자가 된 나는 그런 그의 천연덕스러움과
미남형과는 거리가 멀게 처진 눈꼬리에 매달린 장난기어린 웃음이 싫지 않았다. 

쉘 위 댄스 봤어요? 안 봤으면 같이 봐요.
우리집 현관 층계참 그는 다짐이라도 받아두려는 듯 계속 쉘 위 댄스를 연호했다. 두 시간이나 늦게 나타난 바로 그 첫날.
그리고 그 후 우리는 오년하고도 한 달이 모자란 그 날 부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우연히 퇴근하는 당신을 먼발치에서 보게 되었지요. 부지런히 뛰어가 총총히 길을 걸어 내려가는
당신을 따라잡았습니다. 눈이 온 날이었습니다. 습기에 젖은 당신의 머리칼이 곱슬거렸습니다. 설마 동의할까 싶으면서도
나는 춤추러 가자고 제안했지요. 당신은 대답했습니다. "와이 낫", 좋다고. 담백하게. 1947년 10월 23일이었습니다.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 중    
 

 

누구나 사랑을 시작할 수는 있다. 성적인 이끌림에 대한 기대, 환상 같은 화학적 흥분의 보조제가 분비되며 우리를 독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결혼이라는 사회적 의례를 지나 자잘한 삶의 고충들에 뒤덮이고, 급작스런 고난으로 뭉그러지기도 하며 노년의 길목에 다다랐을 때에도 변함없는 사랑을 주장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의 얘기는 넘쳐나도 반세기 이상을 해로한 노부부의 사랑에 대한 얘기는 하는 데도 들어 주는 데도 인색해지게 된다.  

삼인칭의 타자로서 내 앞을 가로막는 '그'를 이인칭의 상대인 '너'로 전환시키고, 그 너에 다시 '나'를 포개서 내 안에 그와 너가 공존하면서 생활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아, 나는 언제 이런 사랑 한번 해보나.- 김 훈 

김훈이 한탄하며 부러워했던 이런 사랑의 주인공들,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이자 언론인, 사회생태주의학자인 앙드레 고르가 여든두 살의 생일을 앞둔 불치병에 걸린 아내 도린에게 보내는 이 연서는 그들의 첫 만남부터 죽음을 앞둔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노력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사랑에 대한 애달픈 복기와 그 사랑이 생명 그 자체의 연대에 대한 소망으로까지 확장되어나가는 경로를 짚어나가는 과정에 대한 보고다.  

정념에 이끌린 감각적이고 짜릿한 유효기간을 준수하지 않으면 부패해 버리고 마는 허약한 사랑 대신 그들이 가치관을 공유하고 서로의 약속을 준수하며 서로의 내면에 서로의 공간을 내어준 엄격한 사랑은 지속가능한 사랑에 대한 하나의 범례 같다. 

사르트르와 교유하고 실존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애정에 천착했던 이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은 아내가 불치병에 걸려 일상의 독립적 생활이 불가능해지자 모든 공적인 활동을 접고 20여년 간 간호하게 된다. 

집 안 식구를 (처음 나를 만나던 날 나를 두 시간넘게 기다리게 했던 그 사람도 포함하여)이 모두 잠 든 자정 그 시간. 이 얇은 책자의 마지막 대목 앞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감히 울지 못했다. 이렇게 옮겨둘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 이상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어느 리뷰어의 얘기처럼 감히 리뷰도 쓸 수 없다.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 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p.89~90

그는 약속을 지켰다. 2007년 9월 22일 이 부부는 잠자듯 나란히 침대에 누워 함께 주사를 맞아 삶을 마감한다. 그가 쉘 위 댄스로 와이 낫을 얻어낸 지 육십 여년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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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0-03-12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강과 사르트르 얘기에 댓글을 달고 싶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찾을 수 없어 달지 못했어요.
여전히 할 말을 찾진 못했지만 이번엔 한마디 달아야 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blanca 2010-03-12 22:04   좋아요 0 | URL
댓글이 가슴을 울리네요. 잘 읽었다,는 말이 힘을 나게 합니다.

프레이야 2010-03-1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감동적이에요.
아세요? 님의 글은 늘 이렇게 마음 저 깊은 곳을 울려요.^^

blanca 2010-03-12 22:04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저는 오늘 프레이야님 따라 열심히 혼불 뒤지다 득템했답니다. 오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지만 몸 재계하고 있는 책 다 떨어내고 혼불 독서에 열중하려구요. 프레이야님 같이 읽어요. 외롭지 않게요^^;; 혼자 대하소설 읽는거 넘 외로워요.

후애(厚愛) 2010-03-1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감동받았어요.^^
전 1년 연애 그리고 결혼 13년이에요.
다음주가 13년 되는 날이거든요.ㅎㅎ
주말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세요~

blanca 2010-03-13 13:27   좋아요 0 | URL
우와! 후애님 결혼연차를 들으니 저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은 격이 되었습니다^^;; 미리 결혼 기념일 축하드려요. 낭만적인 이벤트를 준비중이신지도 궁금하네요. 행복한 후애님 부부도 다사로운 주말 보내시기를 바랄게요^^

후애(厚愛) 2010-03-13 14:4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감사합니다*^^*
나가서 외식을 하기로 했어요.
이벤트는 제가 한국 나가서 알라디너 분들과 하려고요.^^
아직 멀었지만 제가 이벤트 할때 참여해 주실거죠?

마녀고양이 2010-03-16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노트북>이 생각나는 리뷰네요. 노트북의 노부부를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펑펑 울었는데, 이 책도 그렇군요.
긴 인생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자박자박 걸어갈 동반자가 있다는거 너무 행운인거 같아요.

blanca 2010-03-16 20:43   좋아요 0 | URL
노트북이 정말 감동적이라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보려고 했었는데 다운만 받아놓고 미처 못봤네요. 부부애라는 것에 다시 그리고 나이든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어요. 노력해야지요.

stella.K 2010-03-19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영화 저도 봤는데. 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ㅠ
그래서 브랑카님은 그분과 지금 몇년째 살고 계신가요?(이런 거 물어봐도 되려나...ㅋ)

blanca 2010-03-19 14:53   좋아요 0 | URL
ㅋㅋㅋ 스텔라님. 제 세례명이 스텔라여서 반갑습니다.(물론 냉담중이지만요--;;) 물어보셔도 됩니다. 오년째 살고 있습니다.^^;; 얼추 십년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네요.

stella.K 2010-03-19 15:10   좋아요 0 | URL
헉, 정말요? 그러니까 정말 반가운데요?
전 개종을 해서 쓸 일이 없는데 인터넷 개정을 하려다 보니 그만...찔끔.
스텔라를 세례명으로 쓰는 사람 많지 않을 것 같은데..그렇지 않나요?^^

순오기 2010-03-19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스트특종 당선~ 축하해요!
쉘 위 댄스~ 암, 안 봤으면 말을 말아야지요.^^

blanca 2010-03-19 20: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적립금은 언제나 달콤합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당신이 녹음해 준 그 편지를 듣곤 하지. 당신은 참 친절한 여자야. 그 친절을 받을 자격이 내게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런데 당신 그것 알아요? 요새 나한테 썰어주는 고기가 너무 큰 것 말이야. 점점 나에 대한 존경심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인데..." 

그녀는 절대로 그가 볼 수 없는, 하지만 기억은 할 지 모를 사랑스럽지만 서글픈 눈웃음을 지으며 이미 몸의 반쪽이 마비되고
눈마저 멀어버린 이 지성의 권화 같은 노인을 바라보았다. 더듬거리며 흘리며 그녀가 잘라주는 음식을 되는 대로 집어넣고 까페의 배경음악과 걸맞지 않아 한없이 우스꽝스러워보이는 그 경련들까지 동반한 그의 쇠락한 모습이 그녀의 그에 대한 오마주를 전혀 침범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의아한 일이었다. 

1년이 채 안 되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그 기괴한 노인과 젊은 금발의 총명하고 도발적인 이 여인의 기묘한 저녁식사를 열흘마다 목격하게 된 사람들은 수군댔다. 

"아무래도 사르트르가 노망이 든 것 같아요. 저번에는 글쎄 클로즈리 데 릴라에서 음식을 질질 흘리며 아기처럼 손으로 사강이 잘라준 고기를 먹으면서 큰 소리로 웃고 있더라니까요."  

                                                                                                          용서하세요! 사르트르와 사강! 이 졸저를...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흠뻑 빠져 그에 대한 사랑과 신뢰, 경의를 바치는 장면에 배석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 오마주를 받은 그 누군가를 궁금하게 여기게 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에서이기도 하지만 나도 그에게 사로잡힐 수 있을까, 하는 재미있는 시험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 답을 나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벼락 맞은 남자밖에 없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 사르트르는 1905년 6월 21일에 태어났고, 나는 1935년 6월 21일에 태어났다. 이 지구에서 그 없이 삼십 년을 더 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사강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중 



 

 

 

 

 

 

 

 

 

그들이 이 세상에 사는 한 나는 그들에게 붙어다니니라. 붙잡을 수 없고 이름없는 그 존재로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현존하리라. - 사르트르의 <말> 중

이 세상을 향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산하기 위하여 왔다는 사내. 장 폴 사르트르. 오늘날 그를 얘기하지 않고 인간의 실존을 논하기란, 지성인의 행동과 사회참여를 주장하기란 분명 쉽지 않다. 그렇다면 그의 예언은 적중한 셈이다. 우리는 그를 읽고 그를 말하면서 그가 언어로 변환되어 영생하는 그 길목에 서 있다. 그가 그렇게나 기다렸던 내일, 독자들의 눈과 귀와 입 속에 자신이 현현하기를 바랐던 순간은 그가 얘기했던 2013년이 훨씬 안되어서 실현되었다.  

 <말>은 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자마자 바로 거부하고 또한 문학과의 고별식을 거행하는 데 이정표가 되었던 작품이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서전의 하나로 공인된다는 이 작품은 사르트르가 읽고 쓰는 데 있어 유물론자이자 서사석 관념론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연원을 유년시절을 복기하며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이 순례는 우려와는 달리 그의 의외의 발랄한 기지와 투명한 관조로 더없이 유쾌하고 인상적이고 반짝이는 도정이었다. 유년시절의 삽화들은 하나의 흥미로운 성장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을 반복하고 자기라는 고질병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얘기하는 그가 사람이 제게 차지하는 자연스러운 자리를 결정하는 유년시절에 천착한 것은 당연하다. 그의 유년에서 출발하여 생애 전반을 좌우한 긴 그림자는 생후 1년이 안 돼 죽어버린 아버지의 부재와 그를 대신하여 허약하면서도 세속적인 문인의 위임장을 쥐어주었던 외할아버지의 권능이었다. 

세상에 훌륭한 아버지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일반법칙이다. <...> 다행히도 그는 일찍 죽었다. 안키세스를 업은 아이네아스들(효도의 예시로 인용)이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나는 혼자 강을 건넌다. 일생 동안 자식의 등에 매달려 있는 그 보이지 않는 아버지들을 미워하면서. 젊어서 죽어서 미처 내 아버지 노릇을 할 기회가 없었던 한 사나이, 지금 같으면 내 자식 정도의 나이밖에 안 될 그 사나이를 나는 내 뒤에 멀리 버려 놓았다. -p.22 

그는 스스로에게 초자아가 없다고 선언한다. 그가 권력이라는 암에 걸리지 않은 것도 기실은 부자 관계에서 복종을 강요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 알맞게 죽어주었다고 표현하는 그 아버지에 대한 약간의 경멸과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그리움은 가족 관계에서 체험되는 그 오류가 덕지덕지 들러붙은 위계에 대한 그의 감정과 같다. 싫지만 경멸하고 싶지만 우리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가정에서 습득한 원시적인 그 양식들과 의례들에 집착한다. 그것이 없어서 그가 훌륭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고독하게 파고들었는 지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는 비교적 온순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역할을 연기하는 것에 귀재였다고 자인한다. 우리는 안다. 아이 만큼 사랑받는 능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하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또 기억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 그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남용하기도 했음을. 누구나 어른들의 기호에 맞는 그 역겹지만 무용하지 않았던 연극을 해 본 경험이 있다. 이런 과도한 남에 보여지는 타자적 자아에 대한 인식이 유년시절부터 있었다는 것은 참 흥미롭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요조도 연극에 빠진다. 어른들을 웃겨주기 위하여 익살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것을 깨고 나오는 과정이 통과의례인 성장의 관문이 되겠지만 그 후에도 우리는 남에게 보여지는 자기를 의식하며 연극 배우가 되는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반부의 '읽기'와 후반부의 '쓰기'로 나뉘어진 이 책의 구성이 내용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주로 유년시절 외가에서 과부가 된 어머니와 살아가며 외가의 그 허식적이고 모순된 가풍에 어떻게 적응해 갔는지의 얘기와 성전처럼 보였던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미친듯이 읽고 쓰며 언어로 사물을 포획하는 일에 매료되었던 작은 사내애의 생활들에 대한 반추다.  그 반추는 우리의 유년을 같이 짚어가는 것으로 병행된다. 사르트르가 할아버지에게 과장된 몸짓으로 달려가 안기고 보봐리 부인의 마지막 장들을 씹어넣다시피 하며 정독하고 온갖 영웅소설을 짜집기해 그 환타지의 주인공에 자신을 싣고 달리는 모습들은 또 우리의 유년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다만 그가 자연과 사물을 직접 체험하기 전에 언어로 그것들을 둘러싸고 마는 오류를 범하고 이 오류가 지배하는 관념론적 인식의 습관에서 탈피하기 힘들었다는 고백에서 우리와 조금 다른 기차를 탄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랬기에 그가 뱉어낸 그 수많은 언어들이 우리의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실리적인 언어들과는 다른 우월한 위계에 안착하게 된 것일테지만 말이다. 

"깜깜해도 쓸 수 있을 거야." 어두운 방에서 끼적이는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에게 그가 던진 장난기 어린 장담은 슬픈 예언이 되고 만다. 그는 말년에 완전히 실명한다. 그리고 쓰지 못한다. 다만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도 공기 중에 흩어져 갔던 바로 그 날. 사강은 되뇌인다. 정말 사랑한 사람만 할 수 있는 말. 정말 아픈 이별의  바로 그 순간에만 할 수 있는 말. 그를 만나 그의 말을 듣고 그를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을 동정하면서도 부러워한다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나로서는 오랫동안 죽음에게, 가면을 쓴 종교에게 내 인생을 우연에서 구출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이었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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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얘기. 그런 얘기는 언제나 모래 바람이 남기고 간 입안의 서걱거림처럼 애잔한 여운을 남긴다.
역사 소설은 배경과 굵직한 사건들의 리얼리티의 기둥 사이로 잊혀진 우리들의 삶의 서사를 통과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얘기되어야 하는 것들과 얘기해야 하는 것들,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그것들의 얽힘과 때로는 저것들의 폐기의 지점이 실패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검은 꽃>은 참 읽고 싶었던 작품이다. 경영학 석사까지 마친 작가의 이력이 막상 소설 창작의 길로 내닫고 주요 문학상을 싹쓸이하고 10여개 국에 번역되어 나가는 성공까지 거두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상당히 이채로운 일이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가끔 읽게 된 인터뷰 내용이나 에세이들까지 나는 그저 김영하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정작 그의 소설은 화장실에서 신문에서 연재되던 <퀴즈쇼>를 드문드문 읽은 게 전부였으면서도 나는 그의 보헤미안적 삶의 기행에 무조건 열광했고 무언가를 하고 싶으면 할 수 있고 쓰고 싶으면 쓸 수 있는 그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를 아는 체하기 위해 <검은 꽃>을 읽겠다고 집에서 몇 정거장이나 떨어진 도서관에 돌도 안된 아기를 들쳐없고 받아 온 그의 책은 산산히 분해되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돌적으로 이 책에 덤벼들었는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너덜너덜해진 그 책의 갈라진 배 속에서 탈출을 준비하고 있던 그 수많은 속지들을 순서대로 추리면서 나는 그를 알기를 단념했다. 한마디로 내키지 않았다. 책을 읽은 자는 말이 없었지만 적어도 그 책을 정리했던, 혹은 꺼내주었던, 또 나에게 건네 주었던 그 사람들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돌보지 않은 그 의식적인 책에 대한 무관심과 무례함이 싫었다.  

그런 <검은 꽃>이 김영하의 컬렉션으로 재발간되어 왔다. 풍선처럼 부풀 대로 부푼 기대 앞에서는 그 어떤 작품도 경이로울 수 없다. 송곳처럼 까칠한 시선 앞에 그의 무미 무취한 캐릭터들과 소설적 비약들이 내내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거슬렸다. 두툼한 분량도 아닌데 진도가 안나갔다. 그러나 조금씩 밀고 나가는 그의 이야기들이 마침내 영원한 마침표를 찍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작품이 이룬 성취에 박수를 쳐 줄 수 있었다. 지극히 소설적인 그의 목소리가 결국 소설은 현실의 재현이 아님을 현실의 그 수많은 한계와 난관을 뛰어넘는 인간의 꿈꾸는 눈동자에 대한 사려깊은 응시임을 온몸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1905년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에 팔려나간 1032명의 그들의 이야기. 애니깽으로 회자되는 그 잊혀진 그들의 이름을 두드려 깨우고 그들의 꿈을 복기한 이야기. 언제나 잊혀진 역사 속 이야기들을 다시 듣는 일은 힘겨운 추체험이다. 역사 속 이름없는 민중들의 사소하지만 그들에게는 전부인 삶의 이야기가 훑고 간 자리. 심지어 남의 나라 혁명의 부속품으로까지 이용되고 버려진 그들을 기억하는 일은 하나의 의무 같다. 그게 남은 자의 최선이자 도리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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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3-09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여, 이런 책이 좋은 책이며 한번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진짜 손이 안 간답니다. 읽으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해요. 읽은 이후 다가오는 질척한 상념이랄까 우울이랄까 현실 직시랄까 이런 것들을 이겨낼 용기가. 좋은 소설들은 더 마음을 울려놓잖아요.. ㅡㅡ;;

그래서 맨날 읽는 책이 일반 교양(과학, 심리, 역사)와 경제와 자기 경영 여행, 그리고 현실 도피적인 추리 소설과 환타지를 왔다 갔다 한답니다. 블랑카님 대단해여!

blanca 2010-03-09 14:22   좋아요 0 | URL
그런데 이런 책들의 한계는 그냥 결말을 열어놓아서 허무하다는 거예요. 지금 한창 소설에 조금 질려서 저도 마녀고양이님처럼 일반 교양 분야로 넘어가려 합니다. 소설은 약간 집중이 안되는 경향도 있고 어릴 때의 그 몰입되는 순간도 이제는 없더라구요. 슬퍼요, 흑흑.

순오기 2010-03-10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의 책은 하나도 안 읽어서 몰라요.ㅜㅜ

blanca 2010-03-10 13:33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읽고도 김영하를 아직 잘 모르겠어요. 재능이 많은 작가임에는 분명한데 저랑 완전히 코드가 맞는 것 같지는 않고 그래요^^;;

저절로 2010-03-10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혈이 심해 그래,이젠 도서관이야. 괜히 대출이란 게 있겠어? 하며 도서관으로 달려가면,
쩝~ 꼴들이 말이 아닙디다. 성질같아선 그 너절한 책들 확 바닥에 패대기쳐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구입 희망도서란에다 '웬만하면 새로들 장만하시죠' 소심하게 적어놓고 도망치듯 나옵니다. 끙.


blanca 2010-03-10 13:35   좋아요 0 | URL
그죠? 진짜 너무 심한 책들이 있어요. 읽다가 절로 불쾌해지는.... 도서관도 멀고 불쾌한 경험도 좀 하고 나니 점점 멀어지네요. 중고샵을 많이 이용해 보려고 해는데 사실 그것도 책을 계속 늘리는 일이니 서재에 대한 로망만 계속 커지고... 그래서 답은 책을 최대한 천천히 보기로 했어요^^;;

꿈꾸는섬 2010-03-10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알라딘 김영하 컬렉션 광고는 봤는데 클릭을 안해봤거든요. 검은꽃이 개정판으로 나왔군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하네요.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었어요.^^

blanca 2010-03-11 14:34   좋아요 0 | URL
책은 실물이 참 이쁘더라구요. 이렇게라도 뒤늦게 읽어보니 기분이 좋더라구요. 꼭 읽고 싶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