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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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온 천사가 있었다. 죽음으로 넘어가는 고통스러운 최후의 길목, 그 천사의 도움으로 노인이 본 풍경은 열일곱 첫사랑 소녀가 강가에 배를 대고 그를 맞아주는 모습이었다. 노인은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십 대에 즐겨보던 미국드라마의 그 한 장면은 시리게 내 마음 한 켠에 박혀있다. 청춘이란 그런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태어나서 살고 죽는 사이에 가장 찬란한 순간, 그런 순간, 눈을 비비고 있어도 빛이 나는 그런. 죽는 그 순간에도 가장 붙잡고 싶은 가장 떠나 보내기 힘든 그런. 

윤교수의 말처럼 공교롭게도 더이상 청춘이라고 일컫기 힘든, 이제는 죽어도 요절이라고 불러주기 뭣한 그런 나이 서른 셋을 통과하며 윤이, 단이, 명서, 미루가 쓰고 읽고 걷고 울고 투쟁하고 좌절하고 분노하며 떠나 보내는 스무 살을 읽었다. 

자꾸 마음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에게도 오래전, 이라고 쓴 뒤에야 왜 그때 그러지 못했나, 싶은 일들. 살아가면서 아, 그때!라고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던 자책들을 주워모아 뒤로 뒤로 가고야 마는 처절한 스무 살의 기억들이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윤이, 단이, 명서, 미루가 통과했던 시대적 질곡을 밟고서야 개인의 고뇌를 들이밀 수 있었던 80년대의 청춘과는 빛깔이 달랐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소소한 일들을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의 틀로 걸러 그럴듯한 것들로 만들고 싶어 더 불행했던 그 청춘의 기억들이 별처럼 하나씩 깜빡거렸다. 그때의 나는 지극히 과장적이었다. 모든 생것들이 그대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들을 그때는 몰랐다. 소통이 실패해도 내가 쏘아올린 전파는 어디엔가 가 닿아 또다른 움틈을 만든다는 깨달음을 알지 못했다. 나는 무조건 슬프고 무조건 기뻤다. 나는 이들처럼 읽지도 쓰지도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걸으면서 타인과 현상을 다시 들여다 본게 아니라 배경을 음악처럼 내 눈에 문지르며 주로 자책하고 자악했다. 아쉽게도 뭔가를 본 사람 같은 윤교수로부터 이런 말을 선물받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짊어진 무게만큼 그만한 무게의 세계를 우리가 발로 딛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불행히도 지상의 인간은 가볍게 이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비상하듯 살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매순간 우리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합니다.산다는 것은 무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p.291

엄마를 잃고 이 도시에 온 나 윤이, 열심히 투쟁하고 분노하지만 정작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전화를 거는지도 모른 채 새벽마다 윤이에게 전화를 걸게 된 명서, 사라져 버린 연인과 그를 그렇게 만든 세상에 시위하듯 분신자살한 언니를 둔 미루,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사주고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던 단이. 이 넷은 젊음이 통과하는 상실의 길목의 체현 같았다. 이렇게 쫓기고 고독하고 불안하고 이렇게 두려운 그 골목 골목 사이마다 작가는 이런 날이 다시 올까?. 똑같은 날은 없어.라고 각인시키며 영롱하고 아름다운 구슬들을 굴려 넣는다.  

아.름.답.다. 그럼에도 진.지.하.다. 고 생각했다. 소설가들이 인간 자아의 실체를 뿌리 깊은 곳에 이르기까지 분명하게 드러내 줄 수 있는 과거를 재생해 내는 일을 하고 있다는 테렌스 데 프레의 얘기는 신경숙에게 가 공명한다. 그녀는 분명 자신이 직간접으로 통과해 온 청춘을 형상화했지만 그들은 저마다 우리의 껍질을 뚫고 들어와 우리의 스무 살을 불러 낸다. 이 소설의 보너스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 기억들을 흘러가는 꽃잎처럼 아름답게 보내는 방법을 넌지시 일깨우고 그 기억들이 박혀 있던 상흔들을 삶의 의미로 메워주는 일을 해주는 것이다. 살아있어서 그 눈부신 시절을 통과해오고 마침내 여기에 이르러서 다행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 그건 분명 신비의 묘약 같은 이 소설의 마력이다. 

우리말로 쓴 우리의 청춘소설을 들고 나온 작가는 작가로서의 진중한 고민들과 소망들을 슬며시 끼워넣는다. 독자는 예기치 않게 그녀의 속내를 엿보게 되는 은근한 즐거움에 취하게 된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리고 어느날엔가는 눈 내리는 새벽에 이 책상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가 가만히 엎드린 채 눈을 감고 싶다. 그게 지상에서의 나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면 한다. -p.26 

폭력에 이로운 문장은 단 한 문장도 써서는 안된다.-p.89 

결국 하고 싶었던 그녀의 말. 그리고 남은 말은 우.리.다. 나와 너에 관한 얘기는 내가 그쪽으로 갈게,로 연결되고 만다. 모르는 백 명을 포옹해주는 모습을 촬영하는 프로젝트의 도정에서 다시 나타난 명서의 모습은 그런 얘기들이 모인 것이다. <어디엔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그래서 서로를 찾고 마침내 만나고야 마는 모습을 환기한다. 이별하지 않기 위해 약속을 남용했던 청춘은 그런 얘기들로 이루어진 한 장이다. 이런 깨달음들을 가지고 다시 그 시간들을 살고 싶다. 인생의 맨 끝에 청춘이 있어야 한다는 명서의 말을 울컥 삼킨다.

잃어버린 것들에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정말이다. 그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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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3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글은 참 아름다워요^^

blanca 2010-05-31 13:53   좋아요 0 | URL
마기님 고마워요~ 아름답다니...과하지만 기분이 둥둥 뜨는 칭찬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5-3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이란 겪는 사람은 괴롭고, 훔쳐보는 사람은 부러운 그런거죠.
블랑카님... 진짜 20세로 돌아가고 싶으세여? 저는 절레절레... ^^
지금 하세요, 못한 것들. 문화센터의 수강생 언니들이 "저보고 내 나이 40만 되면 좋겠다" 그런답니다. 아하하.

blanca 2010-05-31 13:5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안그래도 친정엄마가 야단치더라구요. 자기도 젊으면서--;; 이렇게 얘기하면서요. 저도 원래 절레절레였는데요. 갑자기 올해부터 그러고 싶어졌어요. 참 이상하지요? 이것도 과정인가봐요. 다시 절레절레가 되겠지요?

비로그인 2010-06-0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눈물이 차오른다는 것. 그 느낌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습니다..

기억, 잊지 못하는 장면들. 어쩌면 저는 그것들을 떠올리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blanca 2010-06-01 17:30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결국 추억도 자기 삶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견디기 위해서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잊지 못하는 장면들이 있죠. 정말~ 갑자기 한 장면이 생각나서^^

강래희 2010-06-04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너무 예뻐요
전 초등학생 같아 부끄럽네요 ^^

blanca 2010-06-05 22:14   좋아요 0 | URL
예쁘다니, 괜히 쑥쓰러워지는걸요^^;;
 
순례자의 책
김이경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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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있을 법한 것에는 끌리지 않는다.
오히려 믿기지 않는것, 불가능한 것에 그것도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에 마음이 끌린다.
 - 페르난도 페소아 

열 여섯 살에는 모든 불가능한 것들에, 불온한 것들에 끌렸다. 스무 살에는 껍질이 달보드레한 것들에 중독되었다. 서른 살에는 물질의 권능에 사로잡혔다. 서른 중반. 나의 과거를 사로잡았던 모든 것들이 시간 속에 박제되어 있음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나의 사후에도 나를 여전히 미치도록 사로잡는 것은 임을 수긍하게 되었다.  

책에 대한 책은 용모가 매력적인 이성을 알아가는 과정의 포문을 연다. 인간성까지 그럴듯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책에 대하여 썼다는 것만으로 책중독자들의 기본적인 호의는 깔고 가는 셈이다. 이 책의 저자 김이경은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이 첫 소설집임을 고백하는 실책을 범한다. 첫소설. 무엇이든 그 서투름과 설익음을 광고하는 접두어 밑에서 솟아오르기란 쉽지 않다. 그래, 그러니까 이게 겨우 처음이다, 이거지. 누구나 마음속의 이러한 속삭임을 저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처음이라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니라 처음이니까 이러저러할 것이다,라는 구획 안에 재빨리 구겨넣고 적당히 무시해주는 타성을 먼저 학습한다.  

그러나 이 책들에 관한 불온한 상상들을 선포한 저자의 이 첫소설집은 인간성까지 좋은 퀸카를 존재감없는 중매쟁이 덕택에 불시에 만난 듯한 환희를 선사한다. 시대와 지역을 종횡무진하며 책에 관한 역사와 숨은 얘기에 서사를 가미한 열 편의 얘기는 픽션의 형식을 띤 책에 관한 아담하고 내밀한 역사이다. 

저승에서 저마다 자신의 자서전을 기록한다는 저승은 커다란 도서관, 패설에 빠진 조선 사람들의 얘기인 상동야화, 분서의 역사, 인피(사람의 피부) 장정에 관한 섬뜩한 이야기, 일본 에도시대의 걸어다니는 책대여점 가시혼야를 두고 벌어지는 기담, 말하는 사람을 책으로 대여하는 얘기, 장서가들, 중세유럽의 도서문화, 책도둑, 표제작인 순례자의 책 등 애서광들을 달뜨게 할 매혹적인 책에 대한 얘기가 인문학적 해설과 함께 다채롭게 수록되어 있다. 

특히 책을 사랑하는 애인의 어깨피부로 장정한 실제 사례를 통한 책의 몸에 관한 시선과  역으로 사람의 몸 자체를 하나의 텍스트로 읽는 것에 대한 얘기는 문자가 단순히 추상적이고 접촉 불가한 텍스트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숨쉬고 호흡하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생명으로 확장되는 체험을 가능케 한다. 전자책의 등장과 각종 영상매체들로 인한 문자텍스트에 대한 경시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또한 살아나가는 일 그 자체가 삶으로 엮이고 그 삶이 하나의 텍스트로 치환되어 장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 하나하나에 대한 존귀한 무게감을 실어주는 일이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은 하나의 역사가 죽는 것이다. 누구나 등에 자신의 삶의 장서를 지고 다닌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외할아버지가 나그네들에게 "말하소!"라고 외쳐대며 그들의 얘기를 듣기를 열망했던 것은 우리에게는 본능적으로 삶을 이야기화하려는 경향과 그것에 매혹당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와 보르헤스처럼 천국을 도서관으로 상상한다면 그리고 내가 과연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 도서관의 사서를 꿈꿔본다. 언제나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힘이 오늘을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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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06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미있겠다.. 이거 확 끌리네요.
당장 살펴보러 가야겠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나는 아침 식사 전에 불가능한 일 여섯가지를 상상하지.

blanca 2010-05-06 12:13   좋아요 0 | URL
마녀 고양이님 이 책 진짜 매혹적이에요. 픽션이라지만 책에 관한 역사에 작가가 상상력을 덧붙인 정도지 소설집이 아니라 책에 관한 소소한 얘기들을 풀어놓은 역사책 같답니다. 추천해요!

로드무비 2010-05-06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순례자의 책> 땡스투가 들어왔던데 혹시 blanca 님이 누르신 건가요?
아주 오래 전 '책에 관한 오브제전'이라는 전시회가 있었거든요.
이상하게 그 전시회가 가끔 생각납니다.
<순례자의 책>과도 통하는 부분인데, 님의 리뷰가 꽝 도장을 찍는군요.

blanca 2010-05-06 12:53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님 제가 맞을 거예요^^ 책에 관한 오브제전이요? 아, 듣기만 해도 가보고 싶어지네요.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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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젖먹이 남동생을 잃은 아홉 살의 나는 진정으로 위로가 필요했다. 슬픔의 당사자들인 가족이 서로를 위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더군다나 누가 짐작이라도 했을까? 아홉살의 누나가 땅거미가 걸어들어 오는 그 시간 하루도 빠짐없이 방바닥에 엎드려 동생 때문에 운다는 것을. 돌이켜 보면 거창한 위로를 기대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너에게도 위로가 필요하고 너의 슬픔을 죄책감으로 덜어내지 말라고 얘기해 줬으면 됐을 것을.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중 

여덟살 생일을 맞는 스코티의 행성이 그려져 있는 케잌은 주인공의 죽음으로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아들을 생일날 교통 사고로 잃게 된 부부는 주문한 생일케이크를 찾아 가지 않는다고 여러 번의 괴전화를 건 빵집 주인을 찾아간다. 큰 외상 없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한 아들의 죽음 앞 뒤엉킨 슬픔과 충격, 배려받지 못한 아픔에 대한 배신감 등으로 그들은 분노한다. 하지만 막상 그들 부부의 사연을 알고 난 빵집 주인이 진심어린 사과를 하며 따뜻한 계피롤빵을 내어주며 자신의 소외된 삶을 고백하고  부부의 상실감을 다독거려주자 그 기묘한 만남은 밤을 지새우게 되고 다사로운 햇살 같은 것이 된다.  

자식을 가져보지 못한 빵집 주인은 그들 부부의 슬픔을 예단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짐작할 뿐이라고 덧붙인다. 위로의 계명 같다. 상대의 슬픔을 어떻게 속속들이 공감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그런 기대나 단정은 치워버리고 시작할 일이다. 그저 슬퍼하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 슬픔이 풀어 헤쳐져 저절로 흐를 수 있게 자그마한 통로 하나를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위로에 현란한 테크닉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위로가 무엇인지 모르고 덥석 그것을 거머지고 휘두르려 하면서 상대를 은근하게 조종하려 하지 않았던가? 혹은 위로가 필요함을 알면서도 무심코 눈감아버리는 무의식적 방기를 습관화하지는 않았는지. 위로는 카버의 얘기처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그런 것같다. 

그리고 표제작 <대성당>. 이미 김연수가 <<세상의 끝 여자친구>><모두에게 복된 새해-레이먼드 카버에게>로 노골적인 오마주를 바친 작품이다. 아내의 친구를 카버는 맹인으로, 김연수는 인도인으로 설정하였고 카버는 그 불의의 방문객과 화자(남편)가 대성당을 함께 그리는 것으로, 김연수는 인도인이 그린 코끼리 그림으로 소통의 절정을 형상화한다. 

맹인과 정상시력을 가진 사람이 함께 눈을 감고 손을 겹쳐 대성당을 그린다는 상상만으로도 나에게는 카버를 읽을 이유가 충분했다. 그리고 실제 그 작품을 다 읽고 났을 때는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더듬을 수 없는 지점 벼락 같은 것이 쾅 쳤다. 사람의 감정의 파고를 언어로 온전하게 가두어 둘 수 없음이 아쉬울 정도로 그럴 정도로 경이로운 느낌이었다. 소통의 장벽을 설정해 놓고 그것을 뛰어넘는 순간의 현현을 보여주는 그 지점, 화자는 외친다. "It's really something" 

 하루키와 김연수의 뜨거운 오마주를 한 몸에 받는 카버는  체호프와 닮아 있다는 극찬을 받았다. 단편소설의 성취를 판단하는 준거점에 떡 버티고 있는 체호프(정말 극렬하게 동의한다!)에 비견되었던 그의 단편소설집을 받아들고 난 감상은 참으로 복잡다단하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하나하나 다 흥미롭고 훌륭했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드라마틱한 재미도 오헨리 같은 기가 막힌 반전도 없이 조곤조곤 얘기해 나가는 그의 사람 간의 소통에 대한 희구의 체현들이 어쩌면 취향에 안맞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대성당>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 두편은 작가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작품이기도 한 만큼 이 두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작가에게 큰 빚을 진 것 같다. 그러니 리뷰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인 별점을 찍는 순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에 대한 야박한 별점과 이 두 작품에 고작 다섯 개의 별점밖에 주지 못할 그 통탄 사이에서 망설여졌다.

김연수의 번역은 의외로 직역이었다. 말미에 밝혀 둔대로 카버의 문체를 살리고 싶었던 탓이었다고 한다. 어색한 부분의 번역투 문장들에 대한 해명이기도 하지만 잘 읽히는 유려한 의역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번역자의 색깔이 불거지고 매끄러운 의역이 좋았지만 원작자의 의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편집해 버릴 위험을 고려한다면 직역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읽는 입장에서 번역은 언제나 아쉬운 여지를 남기지만 그 지난한 노고의 과정 그 자체로 고마워해야 할 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소통을 갈구한다. 고독의 향유도 결국은 소통의 열망에 대한 고독한 위장에 불과하다. 일면식 없다 갑자기 비집고 들어오는 낯선 이와 어느 순간의 전부를 공유하며 감정이 오고가는 길목에서 카버가 우리의 소망을 대변한다. 나는 충분한 위로를 받은 것 같다. 늦어버렸지만. 혼자라도 시나몬롤빵 탐사를 떠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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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4-15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에서 두번째 문단의 번역에 대한 이야기, 공감되네요.
의역이 지나치면 그럴 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 좋다고들 하던데 전 못 읽었어요.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는 글귀에도 동감^^

blanca 2010-04-15 21:5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는 최근들어 의역의 함정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게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요.

이 책은 저에게는 저 위의 두 단편만 너무 좋았답니다.^^;;

후애(厚愛) 2010-04-16 0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시고 주말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세요.^^

blanca 2010-04-16 14:35   좋아요 0 | URL
후애님, 감사합니다. 드뎌 오늘부터 봄이 온 것 같은 날씨이네요. 벚꽃도 참 예쁘고. 후애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마녀고양이 2010-04-1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연수 님 작품 읽기는 포기한지라,,, 그분의 번역작인데, 문체까지 살리기 위해 직역이라면 역시 포기하렵니다.
김연수 님 작품은 묘하게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요. 공감을 형성하는 분들이 따로 있는듯 합니다.

무조건적인 공감은 아는척이 될 수 있는 듯 해여. 상대의 느낌을 같이 받아주는게 아니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신을 위안하고 그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어요... 빵집 주인 참 좋은 분이네요.

아침부터 시나몬롤 빵이라~ ㅠㅠ. 살 빼야 하는데. 블랑카님. 우리 몸빼 바지 모임 하나 만들까요?

blanca 2010-04-16 14:39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조언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들어주는 과정에서 이미 위로가 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시나몬롤빵이 카모메 식당에도 나오잖아요. 그 때부터 먹고팠는데 제빵 잘하시는 분들은 그거 보고 구워 드시더라구요. 마녀고양이님도 한 번 시도해 보세요.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밴드바지 ㅋㅋㅋ 편한 옷에 중독되면 위험합니다.^^;; 제가 밑위 길이 긴 청바지 없냐고 하니까 옷가게 점원이 피식피식 웃으면서 그런건 딴데 가서 찾으라고 하던걸요.

穀雨(곡우) 2010-04-1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이는 것에만 집착해서 그런지, 전 직역의 고통에 난독증에 빠질 때가 있더군요.
하지만 그 미묘한 차이이로 인해 어마어마한 궤도이탈이 되는 현실을 볼 때는
번역의 고통에 백배동감.
김연수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긴 책이라고 하니 읽어 봐야 겠습니다.
그리고 소통에 대한 멋진 생각에 아울러 공감합니다.

blanca 2010-04-16 14:41   좋아요 0 | URL
곡우님. 번역이 작품 자체를 어그러지게 만들고 아예 작가와의 소통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직역과 번역의 절충점은 참 미묘하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직역이 솔직히 잘 안 읽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곡두님이 어떤 작가분들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집니다.^^

기억의집 2010-04-2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나몬 듬뿍 들어간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어요.전 이양반 소설에 매력을 못 느끼겠어요. 이 책 말고 제발 조용히 좀 해줘 읽었는데.....
전 하루키가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노동자문학의 소설가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blanca 2010-04-21 12:02   좋아요 0 | URL
솔직히 체호프라는 극찬까지 받을 정도는 아니더라구요. 기억의집님 하루키는 좋아하세요?

기억의집 2010-04-21 18:57   좋아요 0 | URL
흐흠, 하루키 엄청 좋아해요. 한 20년빠라고 할까나~~~ 근데 요즘 오쿠다 히데오의 올림픽의 몸값 읽으면서 하루키에 대해 약간 삐긋거리기 시작했어요. 하루키가 보는 세상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일큐팔사 3권을 어떻게 끝낼지 모르겠지만...닫혀 있는 세계를 활짝 열어놓았으면 좋겠어요.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박완서 외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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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독자가 결코 자신에게서 경험하지 못했을 무언가를 분별해낼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기구일 뿐이다. 따라서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기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은 진실하다고 입증된다.                                                                                                - 프루스트

우리는 삶 속에 포박당해 근시가 된다. 삶의 이미지를 제대로 굴절시켜 줄 광학기구가 필요한 것이다. 살아 있는 우리가 삶 속에 발을 담그고 있고 잊혀진 추억들과 잊혀진 사람들이 죽음 속에 갇혀 있다면, 소설가들은 삶과 죽음 그 가파른 경계를 유영하고 다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얘기를 듣는다. 경계선상에서 두 세계를 흘낏 둘러볼 수라도 있는 그들의 얘기는 언제나 생경하고도 항상 익숙하게 들린다. 생경한 것은 흐릿하게 보이던 세상이 갑자기 또렷하게 떠오르는 순간이고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결국 그 얘기들은 우리 안에 있었던 것들을 건져 올린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박완서, 이동하, 윤후명, 김채원, 양귀자, 최수철, 김인숙, 박성원, 조경란.
우리 시대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자신의 삶을 기꺼이 소설에 헌납했다. 언뜻 그들의 단편소설들은 소설적 장치를 빌린 자기고백서 같은 성격을 띤다. 소설집이 일종의 에세이이자 작가들의 뼈아픈 자기 성찰록으로 치환되어 떠오르는 것은 소설적 허구의 한계를 깨고 도약하고자 하는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 같아 경이롭다. 이야기가 삶 그 자체로 용해되어 버린다.  

이 책의 제목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는 박완서의 표제작에서 왔다. 유년시절 작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 본 노을은 두려움과 슬픔으로 채색된다. 이는 이동하의 입을 빌어 한 생의 일몰에 대한 목격으로 연결된다. 서로 다른 작가 둘이 해거름 풍경에서 조우한다. 해가 지며 주홍빛으로 풀어내는 그 아스레함이 애잔하고 처연한 것은 삶의 마침표, 죽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순환적 풍경은 삶과 죽음의 현현이다. 유년기 작가 둘의 눈동자는 그것을 어렴풋이 체감한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 둘은 소설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사물들과 자연현상들에서 삶과 죽음의 추상적인 화두들을 휘핑크림처럼 걷어낼 수 있는 재능은 글쓰는 자들만의 특권이자 업고이다. 윤후명과도 이 작가 둘은 교차한다. 전쟁에 관한 얘기다. 

우리에게는 도저히 필설로 다 말할 수 없는 전쟁, 전쟁이라는 것이 있지 않았던가.-윤후명 <모래의 시> 중 

6.25의 경험을 공유하는 작가들은 저마다의 이향을 겪는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가 길 위에서 방황한다. 한 명(박완서)은 고향의 개념을 확장하여 사람 사는 곳으로 발을 디딤으로써 귀향의 과제를 완수하고, 다른 한 명(이동하)은 귀향 의지 자체를 포기한다. 이는 의미의 완성을 포기한 윤후명과도 상통하는 대목이다. 나름대로 귀향의 과제를 마무리 짓기 위해 그들은 증언의 욕구를 달래야 했다. 그것이 바로 소설을 쓰는 일로 연결된다. 자기 인생의 증언은 가장 절실하고 진실할 수 있는 작품의 소재가 되지만 그 함정 안에 웅숭그리고 있다 보면 그 자신도 청자도 모두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소설 작업의 실마리를 풀어 나갔던 소재가 어느새 소설을 더 넓은 지평으로 확대하지 못하는 하나의 한계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것을 깨는 일은 이 소설가들이 영원한 과업으로 현재진행형이 아닐까.

양귀자의 요절한 천재 화가 오빠의 얘기가 인상에 남는다. 동네 슈퍼에서 우연히 만난 오빠의 후배에게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스스로 생의 마침표를 찍은 셋째 오빠의 회상은 생을 견디어 나가는 것에 실패한 피붙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더불어 천재로서 기억되는데 드라마틱한 방점을 찍은 자살의 선택에 대한 근원적 의문과 호기심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의 이정표가 된다. 양귀자의 소설은 뜻밖에 최수철의 <페스트에 걸린 남자>에서 조언들을 얻는다. 죽음에 대한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삶의 충동인 에로스와 죽음의 욕망인 타나토스의 만남을 목격한다. 자살충동은 기실 삶에 대한 강력한 욕구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는 얘기는 양귀자의 오빠가 견디어 내지 못한 것은 죽음에 대한 충동이 아니라 삶의 분출하는 충동을 일상의 자잘한 고충들에 녹여내는 일이었다.

언젠가 사라질 시간을 지금 살아주고 있다고 여자는 느낀다. 현재를 살고 있다기보다 사라질 것이 분명한 시간을 살아주고 있다고 느낀다. 언젠가는 이미 먼 과거가 되어 있을 시간을 살아주고 있는 사람들......-김채원의 <등 뒤의 세상> 

브라우닝의 시구처럼 현재는 과거로 허물어져 가고 있다. 우리는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로 스러지는 길목에서 그저 시간의 흐름에 무기력하게 몸을 싣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죽음도 삶도 결국 시간의 흐름 속 인간의 인식의 한계가 명명한 하나의 참조점 이상이 아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항시 망각하고 말아버리는 이 중요한 진리들을 문장 사이의 공백에 사려깊게 물려 놓은 작가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렇게 삶을 견디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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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0-04-08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서 읽고 있어요. 단편이라 심심풀이 땅콩처럼 읽고 있는데, 양귀자선생님때문에 샀어요. 아주 오랜 만에 글 쓰셨다고하셔서 샀지요. 그런대로 괜찮았어요. 아주 오랜만에 읽는 것이라서 약간 거리감이 있긴 했지만..... 근데 이야기삘은 많이 떨어지신 거 같았어요. 블랑카님 말씀대로 이동하의 작품이 결말이라고 생각해야겠네요^^

blanca 2010-04-08 22:46   좋아요 0 | URL
양귀자 좋아하세요? 그죠, 너무 오랫동안 안 나와서 저는 이런 생각까지 했어요. 소설가가 소설을 안 쓰며 사는 삶은 어떨까, 하고. 그렇다고 안써지고 쓰기 싫은데 계속 억지로 쓸 수도 없고 원래 이런 구석에 관심이 많아서요^^;; 책을 읽고 나면 작가의 삶이랑 일상이 너무 궁금해져요. <모순>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기억의집 2010-04-09 09:44   좋아요 0 | URL
양귀자 선생님은 글 써서 성공했으면 그길로 문단에 몸 바쳤어야했는데, 엉뚱하게 음식점을 내거나 해서 그런데 많이 신경쓰시는 거 같아요. 도서출판 살림도 양귀자 선생님 부군이 운영할걸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처음 출판사 그만두고 차린 출판사가 살림이었는데..

전 우리나라 작가들에게 불만이 많아요. 주제도 이야기도 소재도 너무 한정되어 있어서... 게다가 이야기의 끈을 단편이든 장편이든, 그러니깐 양귀자 선생의 이번 단편 제목처럼 단절을 이어주어야하는데 그걸 못하더라구요. 장정일씨도 이번 구월의 이틀 실망했어요. 예전과 같은 에너지가 하나 없더라구요.

2010-04-09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9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얘기. 그런 얘기는 언제나 모래 바람이 남기고 간 입안의 서걱거림처럼 애잔한 여운을 남긴다.
역사 소설은 배경과 굵직한 사건들의 리얼리티의 기둥 사이로 잊혀진 우리들의 삶의 서사를 통과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얘기되어야 하는 것들과 얘기해야 하는 것들,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그것들의 얽힘과 때로는 저것들의 폐기의 지점이 실패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검은 꽃>은 참 읽고 싶었던 작품이다. 경영학 석사까지 마친 작가의 이력이 막상 소설 창작의 길로 내닫고 주요 문학상을 싹쓸이하고 10여개 국에 번역되어 나가는 성공까지 거두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상당히 이채로운 일이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가끔 읽게 된 인터뷰 내용이나 에세이들까지 나는 그저 김영하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정작 그의 소설은 화장실에서 신문에서 연재되던 <퀴즈쇼>를 드문드문 읽은 게 전부였으면서도 나는 그의 보헤미안적 삶의 기행에 무조건 열광했고 무언가를 하고 싶으면 할 수 있고 쓰고 싶으면 쓸 수 있는 그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를 아는 체하기 위해 <검은 꽃>을 읽겠다고 집에서 몇 정거장이나 떨어진 도서관에 돌도 안된 아기를 들쳐없고 받아 온 그의 책은 산산히 분해되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돌적으로 이 책에 덤벼들었는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너덜너덜해진 그 책의 갈라진 배 속에서 탈출을 준비하고 있던 그 수많은 속지들을 순서대로 추리면서 나는 그를 알기를 단념했다. 한마디로 내키지 않았다. 책을 읽은 자는 말이 없었지만 적어도 그 책을 정리했던, 혹은 꺼내주었던, 또 나에게 건네 주었던 그 사람들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돌보지 않은 그 의식적인 책에 대한 무관심과 무례함이 싫었다.  

그런 <검은 꽃>이 김영하의 컬렉션으로 재발간되어 왔다. 풍선처럼 부풀 대로 부푼 기대 앞에서는 그 어떤 작품도 경이로울 수 없다. 송곳처럼 까칠한 시선 앞에 그의 무미 무취한 캐릭터들과 소설적 비약들이 내내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거슬렸다. 두툼한 분량도 아닌데 진도가 안나갔다. 그러나 조금씩 밀고 나가는 그의 이야기들이 마침내 영원한 마침표를 찍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작품이 이룬 성취에 박수를 쳐 줄 수 있었다. 지극히 소설적인 그의 목소리가 결국 소설은 현실의 재현이 아님을 현실의 그 수많은 한계와 난관을 뛰어넘는 인간의 꿈꾸는 눈동자에 대한 사려깊은 응시임을 온몸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1905년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에 팔려나간 1032명의 그들의 이야기. 애니깽으로 회자되는 그 잊혀진 그들의 이름을 두드려 깨우고 그들의 꿈을 복기한 이야기. 언제나 잊혀진 역사 속 이야기들을 다시 듣는 일은 힘겨운 추체험이다. 역사 속 이름없는 민중들의 사소하지만 그들에게는 전부인 삶의 이야기가 훑고 간 자리. 심지어 남의 나라 혁명의 부속품으로까지 이용되고 버려진 그들을 기억하는 일은 하나의 의무 같다. 그게 남은 자의 최선이자 도리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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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3-09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여, 이런 책이 좋은 책이며 한번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진짜 손이 안 간답니다. 읽으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해요. 읽은 이후 다가오는 질척한 상념이랄까 우울이랄까 현실 직시랄까 이런 것들을 이겨낼 용기가. 좋은 소설들은 더 마음을 울려놓잖아요.. ㅡㅡ;;

그래서 맨날 읽는 책이 일반 교양(과학, 심리, 역사)와 경제와 자기 경영 여행, 그리고 현실 도피적인 추리 소설과 환타지를 왔다 갔다 한답니다. 블랑카님 대단해여!

blanca 2010-03-09 14:22   좋아요 0 | URL
그런데 이런 책들의 한계는 그냥 결말을 열어놓아서 허무하다는 거예요. 지금 한창 소설에 조금 질려서 저도 마녀고양이님처럼 일반 교양 분야로 넘어가려 합니다. 소설은 약간 집중이 안되는 경향도 있고 어릴 때의 그 몰입되는 순간도 이제는 없더라구요. 슬퍼요, 흑흑.

순오기 2010-03-10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의 책은 하나도 안 읽어서 몰라요.ㅜㅜ

blanca 2010-03-10 13:33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읽고도 김영하를 아직 잘 모르겠어요. 재능이 많은 작가임에는 분명한데 저랑 완전히 코드가 맞는 것 같지는 않고 그래요^^;;

저절로 2010-03-10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혈이 심해 그래,이젠 도서관이야. 괜히 대출이란 게 있겠어? 하며 도서관으로 달려가면,
쩝~ 꼴들이 말이 아닙디다. 성질같아선 그 너절한 책들 확 바닥에 패대기쳐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구입 희망도서란에다 '웬만하면 새로들 장만하시죠' 소심하게 적어놓고 도망치듯 나옵니다. 끙.


blanca 2010-03-10 13:35   좋아요 0 | URL
그죠? 진짜 너무 심한 책들이 있어요. 읽다가 절로 불쾌해지는.... 도서관도 멀고 불쾌한 경험도 좀 하고 나니 점점 멀어지네요. 중고샵을 많이 이용해 보려고 해는데 사실 그것도 책을 계속 늘리는 일이니 서재에 대한 로망만 계속 커지고... 그래서 답은 책을 최대한 천천히 보기로 했어요^^;;

꿈꾸는섬 2010-03-10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알라딘 김영하 컬렉션 광고는 봤는데 클릭을 안해봤거든요. 검은꽃이 개정판으로 나왔군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하네요.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었어요.^^

blanca 2010-03-11 14:34   좋아요 0 | URL
책은 실물이 참 이쁘더라구요. 이렇게라도 뒤늦게 읽어보니 기분이 좋더라구요. 꼭 읽고 싶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