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고민은
이 책을 방금 다 읽었는데, 줄긋기를 참고 또 참았다. 다시 또 읽지 않을 책은 처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좋은데 두 번 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줄을 긋고 싶다. 어쩌지?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자꾸 읽게 되는 책이라도 과거에 내가 줄을 그어 놓은 그 책의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거기에 줄을 그었나, 싶은 대목들. 자를 대고 긋지 않아 울퉁불퉁한 줄들. 차라리 간지를 붙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너무 많은 간지를 붙여야 하면 그건 그대로 또 문어발처럼 책 밖으로 나달거려 보기 싫다. 간지를 붙여 처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왜 이렇게 참아야 할 것들 투성이지? 아, 간소하게 사는 건 정말이지 너무 힘들다. 이게 다 폴 오스터 때문이다. 끝까지 당겼으면 이렇게 망설이지 않았을 텐데 이건 좀 애매모호한 지점이다. 솔직하고 섬세하고 유려한데 이 책만으로는 딱 그만의 그 무엇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나와, 모두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는 그의 고백이 사실이었다. 이 유년 시절의 기억들은 자꾸 나의 그것들과 섞인다. 전부인과의 연애 시절의 편지들은 이십 대 초반의 그것들처럼 솔직히 지극히 과장되어 있고 무모하고 좀 유치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줄을 그을 색연필도 엊그제 새로 산 근사한 연필도 있는데 조금 기다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