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뭔가 주저주저할 때가 있다. 그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며, 그 작가의 문체, 때로는 그 작가의 철학까지 긍정하게 되면, 마치 그 작가 생전의 기행, 편향된 사상, 정치관까지 동조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런 작가가 미시마 유키오다. 


미시마 유키오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 자위대의 궐기를 주장하며 할복 자살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이 대목은 더없이 거북하다. 그의 극도의 탐미주의가 아슬아슬하게 횡단하는 윤리의 경계 부분도 그러하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고의 가치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작가의 윤리관, 가치관에 의심이 들 지경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금각사>를 불태우는 이 천재 작가에 대한 연상들은 반쯤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의 작품 세계로 들어갈수록 미시마 유키오라는 사람을 우리는 철저히 오해한 게 아닌가 하는 심증을 떨칠 수 없다. 하루키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대하고는 자신이 방탕한 생활을 한다고 오해하지만 실은 지극히 담담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충실히 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고백을 한 것처럼 미시마 유키오도 세상 사람들의 오해로 규정되는 캐릭터를 강제로 부여받은 게 아닐까. 실제 그의 에세이나, 소설들에 우경화된 제국주의나 전체주의적 시각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미시마는 자신을 천재 작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극우라고 정치적 입장을 작품 속에 표명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어떤 고정된 가치관에 유보적이고, 퇴폐미와 유미주의에 대해서도 한 발 물러서는 입장에 더 가까웠다. 그의 마지막 죽음의 어처구니 없는 전시에 대해서는 또 다른 관점에서 비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다. 




미시마 유키오의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솔직한 고백록이다. 당연히 문장들은 아름답고, 묘사력 또한 출중하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그의 자신 없어하는 머뭇거림들이다. 흔히 일본 작가들의 사소설에서 발견하게 되는 비대한 자아 따위는 없다. 그는 작중 캐릭터와 작가 자신을 혼동하는 다자이 오사무가 싫다고 일관되게 말하고, 세상에서 유리된 듯 하지만 그 현실에 우뚝 서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좋다고 거듭 고백한다. 여기에 우리가 미시마 유키오 하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미친 천재 작가는 없다. 십대의 치기, 자기 중심주의에 대한 철저한 해체, 반성의 대목도 그렇다. 


지금 내가 빨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스물다섯 살의 나는 하양이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마흔 살의 나는 그것을 초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리를 분별할 수 있을 때까지 소설을 쓰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현실이 확정되는 순간, 그것은 소설가에게 죽음일 것이다.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 <소설가의 휴가>


마지막에 실린 <팽이>는 미시마 유키오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어느 날, 집앞에서 하염없이 이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젊은 작가를 기다리던 십대 소년에게 미시마 유키오가 허용했던 단 하나의 질문. 그건 바로 "선생님은 언제 죽습니까?"였다. 십대의 어느 순간, 돌던 팽이가 돌연 투명해지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게 되는 그 유일한 순간에 대해 미시마 유키오는 이야기한다. 진짜가 출몰하는 그 찰나에 대하여. 우리는 잊고 사는 것이다. 자신을 추앙하는 무리들에게서 온갖 찬사를 받던 이 작가는 이 엉뚱하고 무례한 질문으로 자신의 삶이 어떤 죽음으로 마감될지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예술은 예술로서 다 용인될 수 있는가, 에 대한 거대한 질문에 온몸으로 답한 한 작가의 생애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답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에세이를 읽는 일이 의미를 지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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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2-15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얼마전에 잠자냥 님도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글을 쓰셨는데, 이젠 블랑카 님도! 미시마 유키오란 작가는 도대체 어떤 작가이길래 잠자냥 님과 블랑카 님 두 분 모두, 책 잘 읽고 글도 잘 쓰시는 두 분 모두 이렇게 기꺼이 페이퍼를 헌정하시는걸까요.....

blanca 2026-02-15 19:5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봄눈>으로 시작해 보세요. 좀 과할 데도 있지만, 문장이 말도 못하게 아름답습니다. <금각사>도 그렇고요.

카스피 2026-02-16 0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시마 유키오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시절(45년 2월) 징집명령을 받았으나 당시 페결핵으로 오진을 받아 병역 부적격 판정을 받았는데 당시 징집된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전쟁터에서 전사해 일종의 죄의식을 가졌다고 합니다.하지만 일각에선 일본 제국의 군인으로서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을 동경한 미시마 유키오가 오진을 이용해 징집을 피했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이는 전후에 그가 병약했던 육체를 단련하고 극단적인 군국주의 성향과 자위대 궐기 촉구, 할복 자살 등의 행보를 보인 이유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은 미시마 유키오의 탐미주의적 문학관을 많이 이야기 하는데(옐ㄹ 들면 금각사),부도덕 교육강ㅇ좌를 읽으시면 5~60년대 일본 사회를 위선적 도덕관을 비판하고 풍자했던 그의 날카로운 통찰과 역설의 유머를 느끼실수 있을실 겁니다.

blanca 2026-02-16 10:41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미시마 유키오가 극우 군국주의자라는 평이 있는데 개인적 사상관이나 작품을 통해 보면 그렇게 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마지막 죽음의 명분이 너무 뜬금 없어서 생 전체가 오해받게 됐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봅니다.

2026-02-16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2-16 13: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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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6 14: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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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6 16: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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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6 17: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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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2-24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잉 이 책 읽으셨네요! 이 글도 이제 봤어요. 오잉… 미시마는 일단 이번달엔 그만 읽으려고 하는데 땡투할게요! 😸

blanca 2026-02-24 14:42   좋아요 1 | URL
이 책에는 또 다른 미시마의 모습이 나옵니다. 정말 종잡을 수 없다는. 심지어 자신이 천재 작가가 아니라 은행가 같은 그저 성실한 평범한 작가라고 자평하는데... 사춘기의 자아 비대에 대해서는 반성하는 모습까지. 이런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돌변한 건지 의아해져요.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