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를 빌려 드립니다 - 눈높이 어린이 문고 46 눈높이 어린이 문고 46
나가사키 겐노스게 지음, 신지식 옮김 / 대교출판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즈야는... 동경에서 엄마랑 단둘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4학년 소년이다. 어느 날, 손자를 대신 해 주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가즈야가 손자노릇을 해 드린 것은 세 번.  한국인 김씨 할아버지와 재미교포 아키코 할머니, 그리고 일본인 요코야마 할아버지이다.

김씨 할아버지는 일제시대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평생을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이름을 고수하고 한국인임을 잊지 않는 한국인 할아버지이다. 절대로 일본인에게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업에도 성공하고 아들도 한국인으로 훌륭하게 키워낸다. 그러나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하는 여자는 일본인. 그래서 의절하고 만다. 손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아키코 할머니는 전쟁 전에 미국으로 이민가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이 하와이를 공격하자 미국인들은 일본인과 그 자식들을 모두 잡아가 사막 한가운데 가둬버린다.(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ㅉㅉ) 할머니의 아들은 사막 한가운데서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간다. 그러니까 가즈야는 진짜 손자가 아니라 죽은 아들을 닮은 대역이었던 셈이다.

요코야마 할아버지는 학교 선생님 출신이다. 역시 전쟁 때, 젊은 소년들의 참전을 독려했다. 죄라면 정부 시책을 열심히 따르면서 애국한 죄밖에 없다. 그러나 아들은, 그리고 아들 또래의 동네 수많은 청년들은 전사하고 만다.

그러니까 모두들 전쟁의 피해자들이다. 침략당한 나라의 국민들도, 침략한 나라의 국민들도 모두.

내가 요즘 헷갈리고 있는 부분은 과연 진실이란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촘스키는 지식인의 책무 '인간사의 중대한 문제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과연 진실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주관적이지 않은 진실 혹인 진리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지 영 모르겠다.

예를 들면, 요코야마 할아버지는, 당시 참전을 독려하는 게 애국이었고, 그것이 진리라고 믿었으며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아들까지도 진리라고 믿는 일에 참가를 독려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았는데 잘못살았다고 손가락질을 당한다는 건, 남들의 손가락질보다도 스스로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회한이 가득하다는 건 정말 잔인하다.

작가는 이 책을 쓸 때 병상에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쓰러져서 왼쪽다리가 마비되어 한발 한발 다시 걷는 연습을 해야 했다고 한다.

한눈팔지 않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서, 땀투성이가 되도록 걷고 또 걸었단다.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의연한 척, 최선을 다해 걸었는데,

너 그 길, 아니야. 네 길은 나쁜 길이야. 이쪽으로 걸었어야지! 라고 누군가가 책망한다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법, 탈세하지 않고, 범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이렇게 사는 것도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사는 건데, 그렇게 살아온 너, 나빴어! 라고 말한다면...

스스로의 일에 확신을 갖고, 소신을 갖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그래서 가끔은 짜증스러우면서도 무지 부럽다. 나는 못해도 내 아이들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도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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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3-0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간힘을 바락바락 쓰며 힘을 다해 길을 달렸는데
마지막 날에 <그 길이 아니야>하는 판결을 받으면...
그것도 절대자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참담하겠어요.....

호랑녀 2006-03-08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자에게 의지하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질까요?
요즘 왜 이리 나의 생각이나 나의 길에 이렇게 확신이 없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들 문제도 그렇구요.

진주 2006-03-0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지를 하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고요, 그 보다 더 급한 건, 내가 가는 길이 맞느냐 안 맞느냐가 더 문제라고 하던걸요^^
 

몇 번 말했지만, 이제 4학년이 되는 큰딸내미는 조숙하다. 다른 많은 면들은 나이보다 어린데, 딱 한 분야, 사랑에 있어서는 지 엄마 마흔이 다되도록 한 번도 못해본 일들을... 한다.

그동안 마음에 들었다 안들었다 하는 친구는 많았지만 그냥 그저 그러했는데, 드디어 남친 내지는 커플 이라고 불리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아직 만 10살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일 첫데이트를 나간다. 둘이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단다. 남자아이의 엄마가 놀이공원에 가서 기꺼이 벌 서기로 했다. 둘이만 보내기는 너무 어려서.

이 남자애를 위해 난생처음으로 발렌타인 데이에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초콜릿도 샀고,

이 남자애의 장래희망이 지 아빠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걸 안 후에는 교묘하게 지 아빠가 하는 일을 흘렸으며(직접 말하지 않고 다른 여자애한테 말해서 그 말이 들어가도록 했다는 설이 있다. 진짜라면 ... 헉... 선수다),

심지어는 그 남자애에게 작업 들어가기 전에 그 아이의 엄마에게 먼저 작업에 들어가서 본인을 알렸단다.

이 용의주도함이 왜 수학문제를 풀 때는 나타나지 않는 걸까!!!

봄방학을 하면 둘이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는데... 아무리 봐도 전체관람가 영화가 없다. 남자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놀이공원에 가지 않겠느냐고. 아무리 찾아도 영화가 없다고.

내 딸...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서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다. 그 말괄량이 아가씨가 왠 내숭. 엄청 얌전한 척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두 아이의 집이 멀다. 어디서 만났으면 좋겠느냐고 남자아이가 물은 모양이다.

그럴 땐 니가 날 데릴러 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더니 웃음으로 얼버무리면서 농담이야 라고 덧붙인다. (흥, 농담이기는)

결국 그 아이가 우리집에 데리러 오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 참...

배워야겠다. 이제라도 남편에게 왕내숭 떨어서

나도 공주대접 받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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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2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께 배우세요^^

호랑녀 2006-02-28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제와서 제가 내숭떨면
이기 미칬나...
이러지 않을까요, 혹시? ㅠㅠ

비로그인 2006-02-28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제 딸네미도 얼마 안 남았군요... 수학 문제가 인생의 다가 아니니 따님이 나중에 그 치밀함으로 큰일을 할수있을 겝니다 ^^

진주 2006-02-28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이런 일이!
우리 애는 중학교 가도록 초콜릿 하나 줄 여학생 하나 없는 거죠? ㅡ.ㅜ

세실 2006-03-0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조숙합니다. 제 딸도 4학년이 되는데 아무 생각이 없어요. 흑..
전 왜 이리 부러운거죠???
오늘 날씨 추운데 잘 댕겨오겠죠?

비로그인 2006-03-0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건강한(?) 방향으로 조숙한 듯 싶네요.
저도 한 조숙하긴 했습니다만, 초등학교 3학년 때 인간의 죽음과 사후세계를 고민하다 우울증에 빠졌던 걸 생각하면;;;

호랑녀 2006-03-0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침에 그 아이의 엄마한테 인계해주고 왔습니다.
수학문제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긴 하지요... 그래두...
우리 큰애도 그래요, 진주님. 발렌타인 데이에 빈손으로 왔어요 ㅠㅠ
세실님... 전 적응이 잘 안 됩니다. 제가 잘 모르는 분야여요.
여대생님... 헉... 너무 조숙하셨어요. 아무래도 철학을 하셔야겠어요.
 

결혼하고 만 12년이 안 됐는데, 친정 시댁 더부살이 시절을 빼고, 10번째 집이다.

수요일 아침에 결정해서 저녁에 계약하고, 토요일에 하기로 했다. 지난 번 이사는 일요일에 결정하고 목요일에 했으니까 거의 막상막하로군.

1. 이삿짐센터 다섯 군데 전화해서 그날 이사 가능하다는 세 군데 견적보고, 결국 제일 비싼 집(사장이 직접 나오겠다는 말과 10년 넘었다는 말에 넘어가서 5만원 더 주고)으로 계약했다.

2. KT에 전화해서 지금까지 쓴 전화요금 정산(전화를 그대로 남겨주고 가야 해서), 메가패스 이전 예약

3. 가스철거 예약

4. 경비아저씨에게 미리 보고(아저씨가 사람 좋은 집이 이사 간다고 무지 슬퍼하셨다. 재활용쓰레기 버리는 거랑 전자제품 폐기물 버리는 거 다 알아서 해주시겠다고 했다. 음... 담배값이라도 드려야겠다 ^^;;) -

5. 관리비정산 - 이건 내일 찾으러 다시 가야 한다

6. 정수기, 비데 연락

7. 이사들어갈 집 청소 예약(시간이 세시간 정도밖에 안 비어서 내가 가서 청소할 틈이 없다. 덕분에 호사를 누린다. 내가 죽니, 돈이 죽지.)

8. 주소이전(주간지, 일간지, 홈쇼핑, 보험회사, 자동차회사)

9. 오늘중으로 빨래 끝내서 말리기.(그래야 내일 넣고 모래 아침 일찍 이사하니까)

10. 아이 유치원 차 연락(담주부터 그쪽 노선 타야 한다)

11. 옆집 인사 - 이건 아직 안했다.

가만... 뭐 빠진 거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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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2-16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힘드시겠군요....

hnine 2006-02-16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어디로 가시나요??

아영엄마 2006-02-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이사 다니는 거 무지 힘든데 또 이사가시어요.. (근데 이사갈 때 챙겨야 할 게 무지 많구먼요. 저는 한 번만 해보고 그것도 5-6년 지난 일이라 가물가물)

조선인 2006-02-16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전격z작전이네요. @.@

가을산 2006-02-16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어디로 가시나요?

호랑녀 2006-02-16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대전에서 대전이여요. 아파트만 바뀌는 겁니다. ㅠㅠ

sooninara 2006-02-1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세요. 전 오늘 계약했는데..머리가 아파요.
이사도 자주해야 도사가 되는건데..전 결혼하고 2번 이사해서..이번이 3번째라지요.

호랑녀 2006-02-17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테랑...ㅋㅋ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인터넷하믄서 놀고 있잖아요. 베테랑이라기보다는 배째랑입니다 ㅠㅠ
수니님 드뎌 계약하셨군요 ^^ 이제 금방입니다.

반딧불,, 2006-02-1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 잘하시길...

마태우스 2006-02-17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번이나 하셨다니, 마음이 아프네요. 하지만..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제 노하우가 생겨서 이사에는 베테랑이 되셨겠어요. 일단 푹 쉬시고, 화이팅.

호랑녀 2006-02-20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무사히 했습니다. 반딧불님 감사.
마태우스님, 별로 마음 아프시지 않아도 되요. 제가 죽나요? 돈이 죽지 ^^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가구 못박아 고쳐가면서 이사하는 건 첨이랍니다.

진주 2006-02-25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쯤 새집에서 짐정리 하고 계시겠네요.
저도 이사 많이 해서 힘들었는데 호랑녀님께서 저보다 한 수 위이십니다^^(저는 8번) 애 학교 들어가면 한 군데서만 사는 게 좋은데....쩝....

털짱 2006-02-27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이사하게 되면 이런 순서로 준비해야겠어요. 삶의 지혜를 전해주는 페이퍼였습니다.^^

호랑녀 2006-02-27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러게요. 학교 옮겨다니는 게 아이들은 스트레스인데, 대전에선 안 옮기려고 해요. 내 맘대로.
털짱님 지혜 씩이나요...^^;;
 
네모의 책 - 자기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네모의 여행 네모의 여행 시리즈 3
니콜 바샤랑 외 지음, 도미니크 시모네 지음, 박창화 옮김 / 사계절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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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 날아갔다. 잘 쓰지도 못하는 리뷰, 그나마 겨우 쓴 게...ㅠㅠ)

사서교사시절, 도서관에 자주 오던 6학년 아이들이 있었다. 그중 H와 Y.

H는 또래 아이들의 책을 많이 읽었다. 동화책은 안 읽은 게 없었고, 초등학생용으로 나온 고전들도 제법 많이 읽었다. 원작동화를 특히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000 총류부터 900 역사 전기까지 골고루 엄청 읽어댔다.

Y는 독서수준이 무지 높은 아이였다. 토지도 청소년판으로는 성이 안차서 21권짜리 원작 그대로 읽었고, 혼불이며 역사소설들도 섭렵했다. 김훈의 책을 읽고 감동할 줄 아는 아이였다.(솔직히 김훈의 책은 그 온갖 화려체 때문에 지루할 때가 많다.)

Y에게 책을 권하면 한 번도 재미없다는 얘길 안 들었는데, 딱 한 권, 네모의 책 만은 별로 재미없더라고 했다. 반면 H는 이 책을 무지 즐겁게 읽었다. 제일 감동받은 책 몇 권 중에 하나로 꼽았다. 조금 의아했다.

책을 읽어보니, 두 아이의 성향 차이였다. 이 책은 백과사전적인 내용이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네모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사람의 몸은 어떻게 생겼고, 그 사람이라는 존재가 사는 지구는 우주의 어떤 존재이며, 지구의 탄생은 어떠했고, 그 지구에서 인류가 탄생한 것은 또 어떠했고... 인류의 역사, 그리고 네모의 조상인 프랑스인, 프랑스의 역사...

그야말로 지구과학, 생명과학, 역사를 망라한 백과사전적인 내용이 H에게는 재미있었고, Y에게는 덜 땡겼던 것이었다. 또 한가지 차이가 있다. H는 미국에서 1-2년 초등학교를 다녔고, Y는 제주도까지밖에 안 가 보았다. 세계사가, 이야기로 읽는 게 아니라 이렇게 르뽀처럼 된 세계사가 Y에게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의 이야기였다면 달랐겠지. 우리나라의 이야기로 이런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적당한 작가가 나서지 않아서일까?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글 잘 쓰는 과학자나 역사학자, 철학자들 무지 많던데.

참, H가 엄청 감동받았던 부분은 맨 마지막, 교수가 네모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어린 아이일 때는 사실 자신이 누구인지, 뭐가 될지 잘 알 수가 없단다. 어른을 닮고 싶지는 않아도 크고는 싶지. 먼저 이 말을 해 주고 싶구나. 너무 많이 변하지 마라, 네모. '남들'과 똑같이 되지는 마라. 끊임없이 '왜', '어떻게' 하고 질문하도록 해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질문하는 것이 대답보다 더 중요하단다. 질문이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야...(중략)... 너는 네모야. 특히 너는 네모가 될 거야. 너는 평생을 통해 참된 네모가 되어 갈 거야.

이 부분을 보여주면서 물었다.

선생님, 참된 H는 뭘까요? 저는 지금 어떤 H인가요?

머릿속 단순하고 생각 없는 사서교사는 무지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깊은 눈동자의 H에게 '야, 그거 알면 내가 여기서 이러구 있겠냐?' 라고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 목소리 깔고 무지 폼잡으면서 대답했다.

글쎄. 지금 내가 어떤 대답을 한들 그게 진실이 되겠니? 참된 H는 네가 스스로 찾아야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선생님도 아직 참된 나 자신을 모르겠다. 평생을 통해 되어가는 거라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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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2-0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훌륭한 사서선생님~~~
주제 정해지셨네요. 호랑녀님이 만들어 주세용~
H와 Y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반딧불,, 2006-02-09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욧. 직접 쓰셔요^&^
음. 소피의 세계랑 느낌이 비슷한가요??

호랑녀 2006-02-09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H군, 초등학교때는 상위권이었지만 1등은 아니었는데, 일산의 모 중학교에서 전교1등이라는 소문이 요기까지 들립니다.
이런 책은 내공이 좀 있는 사람이 써야 합니다. 네모의 책도 역사학자랑 편집자가 쓴 책일 거에요, 아마. 고마워요. 저를 그렇게 봐주시다니 ㅎㅎ
소피의 세계는 좀더 철학적인 냄새가 강하구요, 네모의 책은 좀더 백과사전적인 냄새가 강합니다. 그래서 쫌더 재미있었어요.
참, 날아갔던 내용 중에 이런 거 있었어요. 주인공 이름이 왜 하필 네모여서, 자꾸만 네모 반듯한 얼굴이 떠올라서... 몰입에 방해가 되었어요. 특히 너는 네모가 될 거야 이러면 악담을 해라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니깐요 ㅠㅠ

반딧불,, 2006-02-09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전 쥘베른의 네모선장을 떠올렸는데 아닌가 보네요.
백과사전이라 갈수록 이런 책이 땅기긴 한데요.
그렇지만 아이의 나이가 있으니 안되겠죠^^;;
허기는 뭐 언제나 아이들 책이었나요. 제 만족감을 위한 책이엇죠.

세실 2006-02-0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일산의 모중학교 전교 1등이면 굉장하군요...에고....
 

드뎌 개학했습니다. 하루 24시간 한달동안 붙어있기가 엄마 입장에선 얼마나 고역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 방학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굿을 한판 벌였습니다. 이름하여 밀린 방학숙제 하룻만에 해치우기!

3학년 딸내미 방학숙제 중에 동물 2종류, 멸종위기동물 1, 멸종동물 1종류를 조사하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미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벼락치기의 귀재 에미의 피를 타고 난 딸내미는, 이틀 전에 그런 숙제가 있다고 엄마한테 보고하는 것이였습니다. 하루는 자료찾는다고 하루종일 컴 앞에 앉아있더니... 나니아연대기 배우들 사진만 몽땅 뽑아두었습니다.(피터가 멸종위기 동물이냐, 아발론이 멸종동물이냐? 하면서 한대 쥐어박았습니다 ㅠㅠ) 그렇게 하루를 소비하였습니다. 이제 하루 남았슴다.

결국 성질 급한 에미가 나서서 사이트 찾아주고, 심지어는 요약해서 프린트해주고... 지가 밑줄그어 정리하면 마침내 타이핑까지 해주고야 말았습니다.(선생님, 죄송합니다. 우쨌든 끝내야 했습니다 ㅠㅠ)

돌고래, 상어, 자이언트 팬더(멸종위기종), 그리고 콰가얼룩말(멸종동물) 이렇게 네개를 골랐더군요.

책 몇권과 몇몇 사이트와 어린이과학동아를 참고해서, 뭐 거의 베끼다시피 했습니다. 그래도 황우석 사태를 보고 느낀바가 있어서, 맨뒤에는 <참고> 라고 해서 책이랑 웹사이트랑 잡지 이름과 페이지 다 적어두었습니다. - 더 그럴싸해졌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난데없이 그거 프리젠테이션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는 겁니다.(얘네들은 말도 참 거창하게 하네요. 프레젠테이션이라니... 걍 발표라고 하믄 될 것을...)

그래서 네 종류의 책만들기에 나섰습니다. 사실 파워포인트로 하면 훨씬 간단하지만, 그건 엄마가 손을 대준 게 너무 표나는지라...ㅠㅠ

아이디어맨인 딸내미, 별로 고민 없이, 각 동물을 두꺼운 도화지에 프린트해서 자른 다음에, 그 형태대로 A4용지에 대고 몇장 잘라서 뚝딱 미니북을 만들더군요. 그래도 동물별로 대여섯장씩은 해야 하니 수십장이 되어서 엄마랑 동생까지 나서서 잘라주었습니다. (얘는 늘 이렇습니다. 자기 일에 온식구를 쉽게 동원시킵니다. 우린 뭐에 홀린 듯이 돕고 있습니다 ㅠㅠ)

돌고래는 신체부위별로 하는 일 적기, 상어는 상어에 대한 재미있는 내용 적기(책 보고 베꼈쥬), 팬더는 퀴즈 10개랑 답 적기 이런 걸 했는데, 콰가얼룩말은 자료가 별로 없어서 들어갈 내용 적기가 어려운 겁니다. 보고서하고는 좀 달라야 하니까...

그랬더니 자기가 콰가얼룩말이라고 하면서 글(? 딱 다섯문장)을 쓰더만요.  

나는 1883년 8월 암스테르담의 한 동물원에서 죽은 마지막 콰가 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콰~콰~ 운다고 하여 콰가얼룩말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멋진 핸드백을 갖기 위해 내 가족과 내 친구들을 죽였습니다.

제발 우리를 죽이는 것을 멈춰주세요. 우리들도 여러분들처럼 가족,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동물들을 계속 죽인다면 결국은 인간들도 모두 죽고 말 것입니다.

콰가얼룩말은 아프리카 사막지대에서 살았는데, 머리부분까지만 얼룩무늬가 있어서 좀 독특하니까, 처음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갔을 때 무자비하게 사냥을 해서 멸종되었다고 합니다.

우쨌든, 이렇게 쓰더니 갑자기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 겁니다. 내참, 자기가 글을 쓰면서 자기가 울다니요.(정말 이럴 떄는 누구 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열두시 반까지 숙제를 마치고 마침내 온 식구는 잠을 잤습니다.

그 시간까지 4학년 오빠도 안 자고 있었는데, 뭐했게요?

밀린 일기 한달치 썼습니다.

맨 마지막날 일기는 딱 두 줄, 이겁니다.

휴, 드디어 다 썼다. 이제 일기 밀리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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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02-07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웃고 갑니다만,
담주월요일날의 제 모습을 보는것 같아요.
오늘부터 바짝 고삐를 죄어서 숙제 시켜야겠어요.깜사합니다.

아영엄마 2006-02-07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공.. 요즘은 애들 숙제가 거의 엄마 숙제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이들 체험 보고서 쓸 사진 뽑고, 종이에 붙여서 쓰는 것만 아이들이 하게 만들어주고 있어요. (그 외에도 자료찾는 건 아무래도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네요) 아무튼 호랑녀님이나 아이들도 숙제를 거창하게 해내시는 걸 보니 대단한걸요. @@-우리 아그들은 아직 며칠 남았다고 급한 마음이 안드나 봅니다. 일기는 일주일에 두 번, 독서록에 두 번 정도로 정해주었는데 그나마도 미루어서 몰아서 하고 있으니..

아영엄마 2006-02-07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얼마나 감동적인 문장입니까! 스스로 저런 문장을 지어 쓸 줄 안다는 것이 대단하지요~~ (음.. 근데 사진이 안 보여요.. 저만 그런가??@@)

호랑녀 2006-02-0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부디 미리미리 점검하소서.
사진은 네이버에서 퍼오면 늘 안보였던 걸 또 잊어버렸어요. 지웠어요 ㅠㅠ

반딧불,, 2006-02-0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주물럭주물럭.
고생하셨어요^^

chika 2006-02-0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쓰셨어요!
그런데 그 마지막 문장, 압권인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