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뎌 개학했습니다. 하루 24시간 한달동안 붙어있기가 엄마 입장에선 얼마나 고역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 방학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굿을 한판 벌였습니다. 이름하여 밀린 방학숙제 하룻만에 해치우기!

3학년 딸내미 방학숙제 중에 동물 2종류, 멸종위기동물 1, 멸종동물 1종류를 조사하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미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벼락치기의 귀재 에미의 피를 타고 난 딸내미는, 이틀 전에 그런 숙제가 있다고 엄마한테 보고하는 것이였습니다. 하루는 자료찾는다고 하루종일 컴 앞에 앉아있더니... 나니아연대기 배우들 사진만 몽땅 뽑아두었습니다.(피터가 멸종위기 동물이냐, 아발론이 멸종동물이냐? 하면서 한대 쥐어박았습니다 ㅠㅠ) 그렇게 하루를 소비하였습니다. 이제 하루 남았슴다.

결국 성질 급한 에미가 나서서 사이트 찾아주고, 심지어는 요약해서 프린트해주고... 지가 밑줄그어 정리하면 마침내 타이핑까지 해주고야 말았습니다.(선생님, 죄송합니다. 우쨌든 끝내야 했습니다 ㅠㅠ)

돌고래, 상어, 자이언트 팬더(멸종위기종), 그리고 콰가얼룩말(멸종동물) 이렇게 네개를 골랐더군요.

책 몇권과 몇몇 사이트와 어린이과학동아를 참고해서, 뭐 거의 베끼다시피 했습니다. 그래도 황우석 사태를 보고 느낀바가 있어서, 맨뒤에는 <참고> 라고 해서 책이랑 웹사이트랑 잡지 이름과 페이지 다 적어두었습니다. - 더 그럴싸해졌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난데없이 그거 프리젠테이션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는 겁니다.(얘네들은 말도 참 거창하게 하네요. 프레젠테이션이라니... 걍 발표라고 하믄 될 것을...)

그래서 네 종류의 책만들기에 나섰습니다. 사실 파워포인트로 하면 훨씬 간단하지만, 그건 엄마가 손을 대준 게 너무 표나는지라...ㅠㅠ

아이디어맨인 딸내미, 별로 고민 없이, 각 동물을 두꺼운 도화지에 프린트해서 자른 다음에, 그 형태대로 A4용지에 대고 몇장 잘라서 뚝딱 미니북을 만들더군요. 그래도 동물별로 대여섯장씩은 해야 하니 수십장이 되어서 엄마랑 동생까지 나서서 잘라주었습니다. (얘는 늘 이렇습니다. 자기 일에 온식구를 쉽게 동원시킵니다. 우린 뭐에 홀린 듯이 돕고 있습니다 ㅠㅠ)

돌고래는 신체부위별로 하는 일 적기, 상어는 상어에 대한 재미있는 내용 적기(책 보고 베꼈쥬), 팬더는 퀴즈 10개랑 답 적기 이런 걸 했는데, 콰가얼룩말은 자료가 별로 없어서 들어갈 내용 적기가 어려운 겁니다. 보고서하고는 좀 달라야 하니까...

그랬더니 자기가 콰가얼룩말이라고 하면서 글(? 딱 다섯문장)을 쓰더만요.  

나는 1883년 8월 암스테르담의 한 동물원에서 죽은 마지막 콰가 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콰~콰~ 운다고 하여 콰가얼룩말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멋진 핸드백을 갖기 위해 내 가족과 내 친구들을 죽였습니다.

제발 우리를 죽이는 것을 멈춰주세요. 우리들도 여러분들처럼 가족,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동물들을 계속 죽인다면 결국은 인간들도 모두 죽고 말 것입니다.

콰가얼룩말은 아프리카 사막지대에서 살았는데, 머리부분까지만 얼룩무늬가 있어서 좀 독특하니까, 처음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갔을 때 무자비하게 사냥을 해서 멸종되었다고 합니다.

우쨌든, 이렇게 쓰더니 갑자기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 겁니다. 내참, 자기가 글을 쓰면서 자기가 울다니요.(정말 이럴 떄는 누구 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열두시 반까지 숙제를 마치고 마침내 온 식구는 잠을 잤습니다.

그 시간까지 4학년 오빠도 안 자고 있었는데, 뭐했게요?

밀린 일기 한달치 썼습니다.

맨 마지막날 일기는 딱 두 줄, 이겁니다.

휴, 드디어 다 썼다. 이제 일기 밀리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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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02-07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웃고 갑니다만,
담주월요일날의 제 모습을 보는것 같아요.
오늘부터 바짝 고삐를 죄어서 숙제 시켜야겠어요.깜사합니다.

아영엄마 2006-02-07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공.. 요즘은 애들 숙제가 거의 엄마 숙제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이들 체험 보고서 쓸 사진 뽑고, 종이에 붙여서 쓰는 것만 아이들이 하게 만들어주고 있어요. (그 외에도 자료찾는 건 아무래도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네요) 아무튼 호랑녀님이나 아이들도 숙제를 거창하게 해내시는 걸 보니 대단한걸요. @@-우리 아그들은 아직 며칠 남았다고 급한 마음이 안드나 봅니다. 일기는 일주일에 두 번, 독서록에 두 번 정도로 정해주었는데 그나마도 미루어서 몰아서 하고 있으니..

아영엄마 2006-02-07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얼마나 감동적인 문장입니까! 스스로 저런 문장을 지어 쓸 줄 안다는 것이 대단하지요~~ (음.. 근데 사진이 안 보여요.. 저만 그런가??@@)

호랑녀 2006-02-0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부디 미리미리 점검하소서.
사진은 네이버에서 퍼오면 늘 안보였던 걸 또 잊어버렸어요. 지웠어요 ㅠㅠ

반딧불,, 2006-02-0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주물럭주물럭.
고생하셨어요^^

chika 2006-02-0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쓰셨어요!
그런데 그 마지막 문장, 압권인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