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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수학을
강석진 지음 / 해나무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가 가끔 황당하게 수학을 틀려온다.

언젠가 페이퍼에서도 말했지만, 정삼각형은 두 변의 길이가 같은 삼각형이다... 이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혼자 고고하게(우리 어릴 때의 표현으로 하자면 지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답 없음 이라고 써서 틀린다거나, 계산문제도 이상한 방법으로 풀어서 내미는 바람에(답이 맞으면 모르지만, 얼토당토 않은 답을 들이밀어서) 그 방법의 오류를 찾아주느라 한나절을 허비하게 한다.

별로 논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문과생 엄마는 가끔 한번씩은 아이의 말에 홀딱 넘어가서 문제가 틀렸다고 생각하기까지 하니, 우리집에서 수학은 골칫덩어리다.

이럴 때, 훌륭한 아빠가 나서서 아이와 함께 수학을 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이 아빠도 문과생인 데다가, (본인은 수학을 몹시 잘 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확인한 바 없고) 결정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그러니까 돈을 벌어오느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니 언제 아이와 함께 공부하겠는가.

아빠가 하는 일이라고는

오늘 무슨 좋은 소식 없어?

라고 가끔 아이의 점수를 확인하는 것밖에. 과정에는 전혀 함께하지 못하고 결과만 확인하는... 보통의 (나쁜) 아빠다.

그래서 이 아빠, 그러니까 서울대 수학과 교수인 강석진이라는 이 아빠를 둔 아이와 그만큼 짐을 벗을 수 있을 엄마를 참 부러워했다. 아빠가 대학교수니 시간 비교적 자유롭고, 게다가 전공이 수학이니 아이의 수학은 확실이 잡아주겠다... 게다가 수학적인 유전자까지 물려줬을 터이니... 금상첨화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집도 공부 때문에, 수학 때문에 가끔은 골치가 아픈 모양이다. (속으로는, 그래, 그 집이라고 별 수 있겠냐, 대한민국에서 수험생을 키우는 것이 어디 쉬운 집이 있겠냐... 그런 생각도 했다. 죄송합니다, 강석진 님!)

어쨌든, 수학만 잘 하는 게 아니라 글솜씨도 빼어난 강석진 이라는 사람 덕분에 책을 잡고 있는 내내 유쾌했다.

태어나자마자 축구공을 선물하며 펠레21 프로젝트를 수립했다가 허무하게 무너졌던 아빠,

아빠가 중학교 때 전과목에서 틀린 갯수보다도 더 많은 것을 한 과목에서 틀린 아들에게 훈계했다가 '잘났쇼~' 라는 말을 들었던 아빠, (사실 아들 입장에서, 서울대 출신에 예일대 박사에 서울대 교수인 아버지가 좀 버겁기는 하겠다)

특목고 준비 학원에 아들을 보내기 위해 속이 타들어갔던 아빠...

솔직히 말하자면, 엄살을 가장한 자랑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마저도 밉지 않았다.

물론 농담따먹기만 있는 책은 아니다. 수학을 잘 하는 비결도 나와 있고(매일 다섯 문제 이상은 풀어야 하고, 문제를 풀 때는 많이 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원리와 과정을 확실히 이해해야 하고, 수준에 맞는 문제를 고르고... 등등),

Resist the fashion as much as possible!

Believe what you are doing is important!

이런 말도 나와 있다. 책을 읽다가 위 두 문장은 내 다이어리 맨 앞에 적어두었다.

책을 덮으면서, 아이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아이가 가려워하는 그 부분을 긁어주지는 못하고, 다른 부분만 닦달하는 엄마 때문에 참 힘들겠다, 내 아들.(딸내미는... 아직 가려워하는 부분도 없다. 엄마 사랑만 목말라할 뿐.)

수학이 즐겁다는 아들에게(왜 즐거운 것과 성적과는 비례하지 않을까 하는 철학적인 생각은 그만 하고), 무식한 문제집들 들이밀지 않고 하루에 다섯 문제씩만 풀어라고... 해야겠다. 엄마는 그리 골치아파했던 그 수학을 즐거워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얼마나 대견한가.

이 책... 재밌고, 건질 것도 있었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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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2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6-22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살을 가장한 자랑, 귀엽죠?
가끔 재수없을 때도 있지만......
수학, 이라면 공포부터 느끼는 제게 아주 유용한 책이겠어요.^^

호랑녀 2005-06-22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런 단어 쓴 줄도 모르고 무지하게 찾았습니다...ㅜㅜ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의 저한테 맞는 책이었습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흥미를 보이는데, 도와줄 방법을 몰라서 고민했거든요. 돈도 없고, 열의도 없어서 학원은 보내기 싫고 말이죠.^^

sooninara 2005-06-22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기는군요..하루에 다섯문제라..
전 엄마가 가르치다보니 아이만 더 잡는것 같아서 고민돼요..
이제겨우 이학년인데도..ㅠ.ㅠ

진/우맘 2005-06-23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추천!

호랑녀 2005-06-23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발 추천을 누르시거들랑 누군지 흔적을 좀 남겨주소서...ㅜㅜ
다녀가신 분은 세 분인데 하나 더 많습니다...
 
마음속의 그림책 - 부모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의 호소문 에듀세이 3
이희경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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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가 얼마나 상대 못할 족속인지, 내가 얼마나 나쁜 인간인지 스스로 깨닫는다.

나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감히 나에게 덤비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는 얼마나 아이들을 내 마음대로, 내 기분대로 막대하는가. 어떤 날은 내가 짜증이 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짜증을 내며, 똑같은 일을 저지르고 잔뜩 움추려든 아이에게 또 어떤 날은 내 기분이 괜찮으니 그냥 웃으며 지나간다. 성질 더러운 내 뱃속에서 태어나서 내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내가 어릴 때도 그랬다. 내가 한 일에 따라서가 아니라 엄마의 기분에 따라 나는 좌우되었다. 내가 왜 당하는 줄도 모르고 당해야 했으며(그건 정말 야단을 맞는 게 아니라 당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므로 가끔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요행수를 바랬다. 엄마의 기분이 괜찮은 날은 또 그냥 넘어갈 수 있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마음이 답답해진다. 모든 케이스가 모두 내 아이들에게 해당되는 것 같고, 모든 케이스의 부모가 다 나인 듯하다. 늘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둘도 없는 내 아이들인 양 웃고 있지만, 그 탈 뒤에는 고슴도치가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다. 아무리 고슴도치라도 제 자식은 예쁘다는데 나는 그저 내 아이들이 내 맘대로 해도 되는 유일한 것들인양 그렇게 몰아댄다.

아이를 쥐잡듯이 잡은 밤, 이 책을 잡고 내내 우울해진다. 늘 열번만 세고 행동해야겠다.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나에게 필요한 건, 호랑이같은 순발력이 아니라 곰 같은 미련함이다. 둔하고 미련해서 그저 제 자식들을 믿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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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4-19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아이를 쥐잡듯이 잡으셨습니까^^ 울적해하지 마세요. 자식 키우는 데는 왕도가 없다고 생각해요. 꼭 열까지 세는 것만이 훌륭한 건 아니지 않나요?

책읽는나무 2005-04-1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은 아이를 키워보신 것처럼 말씀을 참 잘 하시네요!..ㅡ.ㅡ;;
정작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저또한 호랑녀님처럼 괜스레 울적해지네요!
요즘 저도 아이를 쥐잡듯이 잡고 나서 매번 후회하면서 또 상황이 반복되면 스팀이 팍팍~~~ㅠ.ㅠ
머리속에 차곡 차곡 세워놓은 이론적인 것은 실제상황에 접하게 되면 와르르 다 무너져버리더라구요!
그리고 또 후회하고.....이것이 삶이지 않을까? 싶어요!
후회의 연속속에 조금은 정말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조금은 한계단을 밟고 올라서고 있지 않을까? 란 생각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호랑녀 2005-04-19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흐흐... 아이랑 놀아주는 거랑 키우는 건 몹시! 다르답니다, 마태우스님. 저도 우리 애들에게 마태우스님같은 큰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위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님... 나만 그러는 게 아니겠죠...? 나아지기는 하는 걸까요? 에휴... 모르겠어요... 요즘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걍 혼자 살 걸 그랬다 싶기도 해요. 부모자격시험 봤으면 저는 엄마 못됐을 거에요. ㅜㅜ

진주 2005-05-13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우리같은 엄마들은 애들을 쥐잡듯이(흐흐) 잡더라도, 마태님같은 큰아빠가 있으면 애들이 얼마나 좋을까요...큰아빠!
호랑녀님, 솔직하게 쓰셨네요. 님 뿐만 아니라 우린 가끔 애들을 우리 맘대로 좌지우지 하려고 덤비는 적이 꽤 많아요 그쵸? 반성합니다....

호랑녀 2005-05-16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은... 안 그러실 것 같은데...요?
혹시 진주님도 가면이셨을라나?
 
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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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고개를 떨구고 한밤중에 들어오던 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김훈의 칼의 노래를 집어들었다. 괜히 내가 비장해진다. 쌀 씻고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에 비장해져서 어쩌란 말이냐. 왜 내가 비장해진다는 말이냐.

나는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에게 몰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산만한 나는 늘 주변인물 중 내가 몰입할 대상을 찾는다. 그런 내가 김훈의 책만 읽으면, 그 비장함에 빠져버린다. 내가 이순신인 것으로 착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몰입했을 한 사람을 생각했다. 그 역시 자신이 이순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는 이순신보다는 선조에 더 가깝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가 이순신인지 선조인지.

다시 내 본연의 위치로 돌아와서 이순신의 휘하에 머물렀던 장수들 그리고 군졸들을 생각한다. 어쩌면 그들은 이순신의 휘하였기 때문에 더 오래 살았을지 모른다. 이순신의 지휘를 받았기 때문에 더 많이 싸울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늘 굶주렸다. 명나라 군사들이 취해있을 때 군사들은 굶주렸고, 명나라 군사들이 취해서 토해놓은 것을 우리 백성들은 다시 먹었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운 것일까. 대체 누구를 위해 싸운 것일까. 종묘사직이라는 것이, 나라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사무실에서 윗사람과 잘 지내지 못하는 내 남자를 보면서 나는 다시금 이순신을 떠올린다. 윗분이 바뀌면 사람들은 그 사람의 성향을 분석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이 남자는 예전에 묵살당했던 자기 의견들을 다시 다 찾아내고 있다. 아마 새로운 사람에게 다시 다 내보일 것이다. 늘 그렇다. 자신을 맞추어 일하기보다는 그저 묵묵히 옳다고 믿는 일을 한다. 말주변도 없는 사람, 늘 깨지면서 또 나선다.

아마 그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이순신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의 윗사람도 스스로를 이순신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리고 그 윗사람도 스스로를 이순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이니.

어쩌랴. 이땅의 수많은 이순신들을... 이순신은 이순신과 섞이기 힘들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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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4-16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땅의 수많은 이순신들...' - 비장한 글이지만 미소 한 자락 흘리면서 가도 되죠...? ^^

마태우스 2005-04-16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줄이 재미있어서 웃었는데요, 다 읽고 나니깐 심각해져 버렸어요...... 저는 그냥 원균 할래요....

호랑녀 2005-04-17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내친김에 KBS 홈페이지 들어가서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 첫회부터 대본 다 독파해버렸습니다. ... 저는 지금 이순신입니다. (그런데 드라마 대본을 보다 보니, 왜 또 나는 날발한테 필이 꽂힙니까?)

숨은아이 2005-04-19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땅의 수많은 이순신들을... 이순신은 이순신과 섞이기 힘들 터인데..."에 추천을 한 세 번쯤 보내고 싶습니다. 전... (등장인물 이름들을 제대로 모름;;;) 아무튼 이순신보다는 사기장이가 더 좋아요. :-)

호랑녀 2005-04-1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숨은아이님... 이순신에게서 벗어나려고 노력중입니다. 그 안에 너무 빠져있다 보니 생활이 아니되옵니다. 은수 던가... 그 사람 말하는 건가요? 장평의 뺨을 때리던...

숨은아이 2005-04-2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름이 그런가요? 아무튼 그 사람말고도 전에 이순신을 구해준 이도 사기장이고... 하여 사기장이들이 좋아요. ^^
 
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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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 종부 이야기...참 싫은 소재다. 페미니스트는 못 되지만, 다가오는 명절... 충분히 머리 아픈 큰며느리 입장에서, 종가, 종부 이야기는 알고 싶지도 않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어차피 뻔하지 않은가.  그 결론이란 게 별 게 있겠는가. 결국 종부로서의 숙명을 받아들여서 산다거나, 심지어는 사명감까지 갖는다거나... 아니면 도망간다거나.

내가 이 책에 지금까지 손을 선뜻 대지 못한 이유였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전혀 페미니즘의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도 할 말 다 했고, 게다가 깔끔한 문체며 마무리까지.

더욱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니 이 소설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소설이 작가 주변의 이야기가 아니라 취재를 통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 소설 속의 편지들, 그 보석같은 편지들도 작가의 창작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고 난 생각한다. 내가 혹시 글을 쓴다면,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내 역량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이문열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몹시 궁금해졌다. 이문열의 선택에 나오는 그 장씨부인은 이 책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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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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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이름을 보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소설을 읽고 별로 개운해진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참 피하고 싶은 작가인데, 그녀를 떠올리며 난 또 이 책을 잡고 말았다.

역시 소설은 그녀 특유의... 건조함, 절제된 감정, 안타까움, 어두움... 등등이 묻어 있었다.

8년을 동거했는데, 한 여자를 처음 본 지 3일만에 남자는 집을 나간다. 그것도 새 여자와 함께 할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어떤 언질도 없었다. 그냥 남자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생겼고, 그래서 오래 된 사랑을 버린다. 오 마이 갓!

그러나 8년짜리 사랑은 남자를 보내지 못한다. 남자는 떠나갔으되 여자의 마음은 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사랑이라는 여자와 함께 산다. (남자는 떠났으니 불순한 상상들은 마시길.)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기묘한 삶을 작가는 참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런데 살아보아서들 알겠지만, 어디 세상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만 존재하는가. 내가 5년쯤만 젊었더라면 너무나 답답해했을 그 오래된 사랑의 모습을 지금은 어쩌면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두 권만에 난 세뇌된 것일까.

소설을 덮을 즈음, 마침내 사랑은 끝나간다. 늘 위태롭던 새로운 사랑은 영영 멀리 떠나고, 그리고 그녀도 사랑이었는지 미련이었는지 집착이었는지 알 수 없는 짐을 내려놓는다. 다 이해하는 듯한 마음이던 내 마음도 함께 홀가분해 진다.

그래도 그러기에 첨부터 내려놓지 그랬느냐는 그런 말은 하지 못하겠다. 내내 들고 있었기에 내려놓으니 더 홀가분하다.

참 이상한 일이 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혼자 사는 나를 꿈꾸고 있다. 헉, 빨리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나보다 나이 많은 아들까지 더하면, 난 아들 둘 딸 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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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1-18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이럴 때나 혼자 사는 꿈을 꾸어보지, 안 그렇습니까? 그런 순간도 없으면 깝깝해서 어쩌라고요^^

호랑녀 2005-01-1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고맙습니다 깍두기님...
지금까지 해송이 그림솜씨에 넋을 빼다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늘 책 속에 푹 빠졌다가 돌아오면... 온 집이 폭격맞은 집입니다요...

kleinsusun 2005-01-1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하하는 저녁>읽으면서 참 슬펐어요.
자기를 떠나버린 남자를 못 잊어서,
그 남자를 아예 못 보느니 차라리 그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랑 같이 살면서
그 남자를 한번이라도 더 보려하는,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 집착,그 미련.
그걸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애처롭기도 하고 오히려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사랑이란건....참 마음대로 안되는 건가봐요.

호랑녀 2005-01-20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맘대로 되면, 이성을 갖고 되면... 그게 어디 사랑이겠습니까...
제가 좀더 어렸을 때는, 15개월의 시간이 참 아깝게 느껴졌을 것 같은데, 지금은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더 나이 들면 또 어떻게 변할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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