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전사
전욱수 / 한국독서지도회(관일미디어)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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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학문고 '우주의 전사'를 읽고 한국독서지도회에 드립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는데, 그래도 꼭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세 아이를 둔 엄마이자 경기도 일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사서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과학도서독후감대회를 한다는 얘길 하시면서 과학부장님이 공문의 한 페이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본 페이지는 학년별로 세 권씩 과학 추천도서가 있었는데, 우리 도서실에 그 책이 있는지 여부를 물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은 책이 바로 귀 출판사의 <우주의 전사>였습니다.

처음 표지를 봤을 때부터 조금 의아했는데, 전욱수 님이 엮었다는 얘기만 있지 저자가 누구인 줄은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화보들은 (비록 조금 오래된 듯했지만) 주거지형 우주도시나 구형 우주도시 같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 보였습니다. 저도 호기심이 일어서 처음부터 읽어 보았지요.(끝까지 읽어봐도 사진과 관계된 내용은 거의 없었습니다.)


머리말을 보니 '어린이 여러분의 미래를 향한 과학에 깊은 관심과 흥미를 싹 틔우고자 하여 미래 과학 문고를 출판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쓰시는 데는 유명한 아동문학가, 교육자, 그리고 과학자 여러분이 참여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과학동화에 대해서는 영 문외한인 저도 큰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을 쓰시는 데 참여하셨다는 유명한 아동문학가와 교육자와 과학자 여러분이 누구신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수상한 사나이, 애브너이기도 했다가 기리어드 대위이기도 한 사나이 하나가 달나라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호텔로 가는데, 호텔의 '인객꾼'이 그를 잡아끕니다.
인객꾼... 사전을 찾아봐도 나오지 않은 말입니다. 아마 호객(呼客)행위를 하는 사람을 얘기하는 듯한데...

좀 읽다가 또 걸리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런데 물 속에 들어가 열 살이나 젊어진 기분으로 있다가 한참만에 나와 보니, 겉옷도 내의도 죄다 없어지고 말았다.'
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아마 매끄럽지 못하게 번역한 문장이어서 그럴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간에 낀 말이 너무 많다 보니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열 살 젊어진다? 10년 젊어진다?

그 다음 페이지에는 적의 힘을 너무 얕보고 있은 것이다'라고도 나오네요. '있었던'이든지, 아니면 '있는'이 맞겠지요?

(여기까지 쓰다가 잠시 궁금해졌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초판이니까 그럴지 모른다. 어쩌면 내용을 손질해서 재판을 찍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편집부에 전화를 해서 확인했습니다. 표지는 바뀌었지만, 같은 책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계속 편지를 씁니다.)

그는 호텔에서 자신의 '두목'에게 다이얼을 돌립니다. 어쩌면 'boss'라는 말을 이렇게 해석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이 사람은 FBI의 요원이더군요. 그리고 그가 전화를 하려고 했던 사람은 국장입니다. '두목'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심한 해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마피아나 조폭 같은 뉘앙스를 풍기지 않습니까?

'그는 두목에게 직접이 아니라 중계하는 곳의 다이얼을 돌렸다' 어색하지요? '직접 전화하지 않고, 교환원에게 전화했다' 쯤이 좀 덜 어색할 것 같습니다.
이런 구절도 있네요.
'전연 엉터리다.'
전연이라 함은 전혀, 조금도... 이런 뜻이겠지요? 조금도 엉터리다? 좀 이상하지 않나요? 차라리 그냥 엉터리이다라고만 하시지요.

이 정도는 그냥 거슬리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신경 좀 쓰시지...하는 정도로요. 그런데 거의 경악을 금치 못할 만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에게 자백을 받기 위해 적들이 하는 행동 중 하나입니다.
그가 맥주를 마셨던 맥주집의 여종업원을 데리고 와서 그를 위협하는 장면이지요.
'아가씨는 거의 알몸이다시피 옷이 벗겨 있었다.'
옷이 벗겨 있었는지 벗겨져 있었는지는 두 번째 문제로 하지요. 그 장면의 컷에는 제복을 입은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끌고 나오는데, 그 여자의 상반신에는 옷이 하나도 없습니다. 바스트포인트까지 적나라하게 보이지요. 그리고 가슴 밑부터 허벅지까지는 다른 사람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지만, 그 밑으로, 그러니까 허벅지부터 발까지는 역시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양말도 신발도 없습니다.
'그'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자 적들은 그 아가씨,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 아가씨의 손목을 자르고 미리 준비해 둔 플라스틱 깔때기로 피를 받습니다. 그 아가씨는 그냥 죽어버리지요.
'그가 지키려고 하는 마이크로필름의 튜브에는 몇 억이라는 인류의 생명이 걸려 있는 것이다. 그것에 비한다면 이 아가씨 한 사람의 생명쯤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 때문에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라고 그 다음 문장이 나와 있네요.
이게 아이들이 읽을 동화가 맞습니까? 아이들이 읽어야 할 동화에 이런 문장이 과연 되겠습니까? 인류 전체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 때문에 잔인하게 죽어가는 아가씨 한 사람의 생명쯤은 문제가 되지 않나요?
이것이 아이들이 읽는 동화란 말입니까?

헤어지면서 '또다시' 라고 인사를 한다거나(아마 see you later!의 해석인 모양이죠?), '죽음'을 당하거나(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반복되어 여러 번 나오는 걸 보면), 앞뒤 연결이 안 되는 이상한 문장들이 끼어 있는 책을 아이들에게 읽힐 생각을 하니 참 암담했습니다.
지금까지 무려 5권이나 되는 책이 도서실에 있었는데, 내용도 모르고 버젓이 끼워 둔 제 자신도 자책하게 됩니다.

책의 맨 뒤에 보니 로버트 하인라인 이라는 작가 소개가 나오네요. '우주의 용사들'이라는 책의 주인공에 대한 능력 설명이 나오는데, 아마 이 책 '우주의 전사'를 뜻하겠지요?
이 부분은 아예 한번 쓰고 다시 읽어보지도 않으신 모양입니다.

'작자 하인라인은 인간은 반드시 진보하며, 그러한 힘을 몸에 지닌다. 단 그 때에 초인들은 그 힘을 올바른 데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힘에는 힘, 눈에는 눈으로 맞서고, 정의를, 우리 지구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때문에 귀중한 것은 젊은 사람은 예의를 지키고, 엄격한 규율을 지키는 일입니다. 또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는 벌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문단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다 와 ~입니다 가 혼용되어 있는 데다 내용도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옮겨 둔 한 문단만 그러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전체가 다 그렇습니다.

또 한 가지 심한 내용을 발견했네요. 책을 덮고 보니 맨 뒷장에
'조우와 게일은 달나라로 가서, 달나라 식민지에 있는 부유한 노부부의 집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그 노부부는 우리의 편입니다. 그러는 동안 노부부는 지구에 돌아오겠지만, 조우와 게일 두 사람은 달에서의 생활이 좋고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남아 있기로 했어요.'
라고 씌어 있습니다.
맙소사!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책 읽어보셨나요? 교정 한 번이라도 보셨나요?
조우와 게일은 달나라에서 죽습니다. 달나라에 살고 있는 노부부는 책에 등장하지도 않고, 부유한 여인이 있는데, 그 여인은 우리의 편이 아니라 '적'의 우두머리입니다. 우두머리답지 않게 게일의 손에 가볍게 죽고(대사 한 마디 없이), 조우와 게일은 장렬하게 산화합니다.

이걸 아이들에게 읽으라구요? 것도 공문에 보니 3학년 이라고 학년까지 지정해주셨더군요.
귀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 책은 5, 6학년용 도서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전욱수 님의 엮음이 아니라 지음으로 되어 있고, 표지는 조금 바뀌어 있더군요.

저는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무슨 생각으로 만드셨는지. 그리고 이런 책을 과학도서 독후감을 쓰라고 아이들에게 선정도서로 지정하셨다니. 그리고 교육청이나 학교쪽에 로비만 하면, 그래서 책만 팔면 끝입니까? 혹시 아이 있으십니까? 아이에게 자랑스럽게 이 책을 읽히십니까? 아이에게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고 하시나요?

제발 이 책은 다시 제대로 번역해서 재판을 찍으시거나, 안 팔린 책들은 폐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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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5-17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호랑녀란 닉네임처럼 신랄한 리뷰군요. 폐기해야 할 책이란 제목부터 박력이 넘쳐납니다. 늦게 와서 죄송하구요,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 아이 셋 키우시느라 애 많이 쓰시겠네요. 저희 누나도 아들만 셋인데, 거의 죽습니다.

호랑녀 2004-05-1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마태우스님, 저 양처럼 순한데요? 닉네임이 조상님 탓에 그냥 어쩌다 그리 되었을 뿐! ^^ 와 주신 것으로도 영광이옵니다.

panda78 2004-05-17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책이 아직도 남아있군요! 놀라워라.. 저는 아마 끝까지 못 읽고 책을 발기발기 찢어버렸을지도.. ^^;; 추천도서.. 믿을 게 못되는 건 여전하군요..

호랑녀 2004-05-18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공신력 있는 단체의 추천도서가 아니라면 정말 믿을 게 못됩니다 ^^ 요즘은 자기 출판사에서 그냥 무슨무슨 연구회 이런 단체 만들어서 추천도서 자기들걸로 골라서 학교에 뿌려요. 학교에만 뿌리면 그냥 무시하면 되는데, 때로는 교육청에서 공문으로 내려오더군요.
(도서실책, 발기발기 찢으면 아니되옵니다. 절차를 밟아서 폐기해야지요. ^^)

숨은아이 2004-06-25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그런 출판사가 있다는 것도 통탄할 일이지만, 교육청의 업무 태만이란... 그래도 지시에 무심코 따르지 않고 일일이 읽어보시는 호랑녀님 같은 사서교사가 계시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호랑녀님, 지적하신 "죽음을 당하다"는 표현은요, 틀린 말이 아니랍니다. 아마 "죽임을 당하다"고 해야 맞다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 전 "죽임"이란 사동형을 쓰고 바로 "당하다"란 피동형을 쓰는 게 (문법엔 맞겠지만) 우리말에 어울리는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은 "생명이 없어진 상태"를 뜻하고, 그런 상태를 당하게 되었다는 뜻에서 "죽음을 당하다"도 틀리지 않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죽음"이란 표제어 아래에도 그 표현이 용례로 나와 있구요.

호랑녀 2004-06-25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렇군요... 무식~ㅠㅠ 해서 용감했습니다.
평소에 잘 나오지 않는 말이라 그냥 입에 걸려서, 찾아보지도 않고 썼네요.

제가 이런 책이더라고 담당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니지만,) 다른 학년 중 어떤 반은 기어이 이 리스트 중 한 권을 읽고 오게 하기도 했습니다. 가끔 힘 빠집니다.

숨은아이 2004-06-27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닥토닥... 기운 내세요.

아프락사스 2009-04-29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F소설가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를 번안했거나 축약해서 내놓은 번역본인 모양이군요. (이 책에 앞서 1995년에 시공사에서 동명의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고, 이후 행복한책읽기에서 『스타쉽 트루퍼스』 혹은 『스타십 트루퍼스』라 하여 두 차례 개정 재간되었습니다) 멀쩡한 정역본이 한 차례도 아니고 세 차례나 나온 작품인데 이런 책이 아직도 절판되지 않고 나오는 걸 보면 신기하다면 신기하달까...

그 책에서는 하인라인을 어떻게 소개했을지 모르겠으나 그는 『스타십 트루퍼스』같은 군국주의적 소설만 쓴게 아니라 여성 해방을 주장하는 소설이나 아이들을 위한 SF소설을 쓰기도 한 사람입니다. 그의 소설에서는 아이들의 정신적 능력이 어른들의 그것과 동등한 위치에 서야 한다는 내용이 많았다고 하지요. (라고 어정쩡하게 말하는 건 그의 소설들이 『스타십 트루퍼스』를 제외하곤 정말 최근에야 소개되기 시작한 탓입니다.) 여러모로 어린 아이들에게도 권해줄만한 작가인데 출판사를 잘못 만난 탓에 이리 되었으니...

sayonara 2017-05-3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이런 후진적인 출판문화같으니라고.... 아직도 간간이 저런 책들이 있지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