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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의 책 - 자기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네모의 여행 ㅣ 네모의 여행 시리즈 3
니콜 바샤랑 외 지음, 도미니크 시모네 지음, 박창화 옮김 / 사계절 / 2002년 8월
평점 :
(훨훨 날아갔다. 잘 쓰지도 못하는 리뷰, 그나마 겨우 쓴 게...ㅠㅠ)
사서교사시절, 도서관에 자주 오던 6학년 아이들이 있었다. 그중 H와 Y.
H는 또래 아이들의 책을 많이 읽었다. 동화책은 안 읽은 게 없었고, 초등학생용으로 나온 고전들도 제법 많이 읽었다. 원작동화를 특히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000 총류부터 900 역사 전기까지 골고루 엄청 읽어댔다.
Y는 독서수준이 무지 높은 아이였다. 토지도 청소년판으로는 성이 안차서 21권짜리 원작 그대로 읽었고, 혼불이며 역사소설들도 섭렵했다. 김훈의 책을 읽고 감동할 줄 아는 아이였다.(솔직히 김훈의 책은 그 온갖 화려체 때문에 지루할 때가 많다.)
Y에게 책을 권하면 한 번도 재미없다는 얘길 안 들었는데, 딱 한 권, 네모의 책 만은 별로 재미없더라고 했다. 반면 H는 이 책을 무지 즐겁게 읽었다. 제일 감동받은 책 몇 권 중에 하나로 꼽았다. 조금 의아했다.
책을 읽어보니, 두 아이의 성향 차이였다. 이 책은 백과사전적인 내용이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네모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사람의 몸은 어떻게 생겼고, 그 사람이라는 존재가 사는 지구는 우주의 어떤 존재이며, 지구의 탄생은 어떠했고, 그 지구에서 인류가 탄생한 것은 또 어떠했고... 인류의 역사, 그리고 네모의 조상인 프랑스인, 프랑스의 역사...
그야말로 지구과학, 생명과학, 역사를 망라한 백과사전적인 내용이 H에게는 재미있었고, Y에게는 덜 땡겼던 것이었다. 또 한가지 차이가 있다. H는 미국에서 1-2년 초등학교를 다녔고, Y는 제주도까지밖에 안 가 보았다. 세계사가, 이야기로 읽는 게 아니라 이렇게 르뽀처럼 된 세계사가 Y에게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의 이야기였다면 달랐겠지. 우리나라의 이야기로 이런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적당한 작가가 나서지 않아서일까?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글 잘 쓰는 과학자나 역사학자, 철학자들 무지 많던데.
참, H가 엄청 감동받았던 부분은 맨 마지막, 교수가 네모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어린 아이일 때는 사실 자신이 누구인지, 뭐가 될지 잘 알 수가 없단다. 어른을 닮고 싶지는 않아도 크고는 싶지. 먼저 이 말을 해 주고 싶구나. 너무 많이 변하지 마라, 네모. '남들'과 똑같이 되지는 마라. 끊임없이 '왜', '어떻게' 하고 질문하도록 해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질문하는 것이 대답보다 더 중요하단다. 질문이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야...(중략)... 너는 네모야. 특히 너는 네모가 될 거야. 너는 평생을 통해 참된 네모가 되어 갈 거야.
이 부분을 보여주면서 물었다.
선생님, 참된 H는 뭘까요? 저는 지금 어떤 H인가요?
머릿속 단순하고 생각 없는 사서교사는 무지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깊은 눈동자의 H에게 '야, 그거 알면 내가 여기서 이러구 있겠냐?' 라고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 목소리 깔고 무지 폼잡으면서 대답했다.
글쎄. 지금 내가 어떤 대답을 한들 그게 진실이 되겠니? 참된 H는 네가 스스로 찾아야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선생님도 아직 참된 나 자신을 모르겠다. 평생을 통해 되어가는 거라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