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아이가 제법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엄마, 엄마는 내가 뭐가 되었음 좋겠어요?

글쎄? 네가 특별히 어떤 직업을 갖기를 바래본 적은 아직 없는 것 같은데? 네가 되고싶은 거, 네가 신나게 할 수 있는 거. (그게 돈도 좀 되면 좋겠고... 이건 속엣말)

오늘 학교에서 심리검사를 했는데요, 산을 그려보래요. 그래서 저는 좀 튀어보려고 화산을 그렸거든요? 봉우리 부분이 약간 패여 있는 걸루요.

그런데?

그런데 산 봉우리 갯수가 자기가 되고싶어하는 것 갯수래요. 어떤 애는 수십 개를 그린 애도 있고, 어떤 애는 두세 개, 어떤 애는 딱 한 개. 그런데 저만 봉우리가 없어요. 엄마는 왜 나한테 의사가 되라, 뭐가 되라... 그런 얘기 안해요?

피만 보면 질겁을 하면서 네가 의사 되란다고 될래? 어쨌거나 잘 찾아봐라. 미리 정해두고 그 길로 쭉 가도 좋겠지만, 이것 저것 잘 둘러보고 가도 되지 뭘. 잘 찾아보면 네가 하고싶은 일이 있겠지 뭐.

가볍게 얘긴 했지만, 가슴 한켠이 괜히 허전해지기도 하고, 철렁 해지기도 했다. 이건 또 무슨 심리인가.

돌이켜보면, 내내 나는 꿈이 없었다. 뭐든 시켜만 주면 잘해낼 것 같긴 한데, 뭔가를 위해 올인해 본 기억이 없다. 강렬하게 나를 끌어당길 일을 못 만난 게야... 라고 지금껏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라 나는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했던 거였다. 무슨 일을 하기도 전에, 그 일을 해내지 못할 것이 두려워서 늘 비겁하게 피해왔다. 그걸 인정한 게 작년이었다. 마흔을 한 걸음 앞뒀던 해에.

이 책, 촐라체를 읽으면서 내내 머리를 쥐어짰다. 나의 촐라체는 뭔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상민과 영교가 목숨을 걸고 올랐던 그 촐라체가... 도대체 나에겐 뭐란 말인가. 도대체 이들은 왜 그리 기를 쓰고,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그곳을 오르는가. K2나 클리프행어를 보면서도 나는 늘 그것이 의문이었다. 도대체 저게 뭐라고, 저들은 저렇게 기를 쓰고 오르는가 말이다.

영교가 크레바스로 떨어졌을 때, 목숨을 걸고도 로프를 자르지 않았던 상민. 도대체 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그 로프는 나에겐 뭘까.

인터넷으로, 도도하고 차가운 빙벽 촐라체를 찾아보면서, 나는 내 뜨거운 열정이 뭔가, 그 열정이라는 것이 나한테 존재는 했었던 것일까 생각한다. 올해는 아이들과 함께 내 안의 촐라체를 찾아보는 길을 나서볼까. 그러다... 바람이 나서 훨훨 날아가버리면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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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8-03-31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도 별거 엄섰고, 그저 내 자리에서 내 일에 충실히 살겠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감사히 누리겠다...식의 애매모호한 컨셉뿐임다. 그러나 늘 사는건 바쁘고 치열하지 않던가요...제게도 촐라체가 엄다는게,가끔 우울하지만...촐라체를 인식하지 않아도 열정은 있었던거 같아요....이쯤되면 괜찮은 자기합리화? ^^; 근데 마지막 멘트가 예사롭지 않슴다. 나쁘지도 않구여..ㅋㅋ

호랑녀 2008-04-02 18:01   좋아요 0 | URL
어릴 때부터 꿈을 갖고 한발한발 다가가는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열정은... 글쎄 순간순간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요즘 좀 퍼져있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비정규직만 오갔더니, 일하고싶어도 일자리도 없습니다. 마흔살 넘은 아줌마 비정규직으로 쓰기가 좀 곤란한가봐요 ^^;;

2008-04-02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랑녀 2008-04-02 18:03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뭘 위해 열심히 사는지 잘 모르겠어. 그저 엄마가 가라고 하니까 학원 가는 거고, 눈앞에 시험준비 하는거고... 나무들은 보는데 숲을 보는 건 생각도 못하는 것처럼 보여 ^^
이 나이에 꿈 찾아 헤매는 게 좀 우스워보이기도 한다.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