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를 빌려 드립니다 - 눈높이 어린이 문고 46 눈높이 어린이 문고 46
나가사키 겐노스게 지음, 신지식 옮김 / 대교출판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즈야는... 동경에서 엄마랑 단둘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4학년 소년이다. 어느 날, 손자를 대신 해 주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가즈야가 손자노릇을 해 드린 것은 세 번.  한국인 김씨 할아버지와 재미교포 아키코 할머니, 그리고 일본인 요코야마 할아버지이다.

김씨 할아버지는 일제시대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평생을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이름을 고수하고 한국인임을 잊지 않는 한국인 할아버지이다. 절대로 일본인에게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업에도 성공하고 아들도 한국인으로 훌륭하게 키워낸다. 그러나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하는 여자는 일본인. 그래서 의절하고 만다. 손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아키코 할머니는 전쟁 전에 미국으로 이민가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이 하와이를 공격하자 미국인들은 일본인과 그 자식들을 모두 잡아가 사막 한가운데 가둬버린다.(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ㅉㅉ) 할머니의 아들은 사막 한가운데서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간다. 그러니까 가즈야는 진짜 손자가 아니라 죽은 아들을 닮은 대역이었던 셈이다.

요코야마 할아버지는 학교 선생님 출신이다. 역시 전쟁 때, 젊은 소년들의 참전을 독려했다. 죄라면 정부 시책을 열심히 따르면서 애국한 죄밖에 없다. 그러나 아들은, 그리고 아들 또래의 동네 수많은 청년들은 전사하고 만다.

그러니까 모두들 전쟁의 피해자들이다. 침략당한 나라의 국민들도, 침략한 나라의 국민들도 모두.

내가 요즘 헷갈리고 있는 부분은 과연 진실이란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촘스키는 지식인의 책무 '인간사의 중대한 문제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과연 진실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주관적이지 않은 진실 혹인 진리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지 영 모르겠다.

예를 들면, 요코야마 할아버지는, 당시 참전을 독려하는 게 애국이었고, 그것이 진리라고 믿었으며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아들까지도 진리라고 믿는 일에 참가를 독려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았는데 잘못살았다고 손가락질을 당한다는 건, 남들의 손가락질보다도 스스로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회한이 가득하다는 건 정말 잔인하다.

작가는 이 책을 쓸 때 병상에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쓰러져서 왼쪽다리가 마비되어 한발 한발 다시 걷는 연습을 해야 했다고 한다.

한눈팔지 않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서, 땀투성이가 되도록 걷고 또 걸었단다.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의연한 척, 최선을 다해 걸었는데,

너 그 길, 아니야. 네 길은 나쁜 길이야. 이쪽으로 걸었어야지! 라고 누군가가 책망한다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법, 탈세하지 않고, 범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이렇게 사는 것도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사는 건데, 그렇게 살아온 너, 나빴어! 라고 말한다면...

스스로의 일에 확신을 갖고, 소신을 갖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그래서 가끔은 짜증스러우면서도 무지 부럽다. 나는 못해도 내 아이들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도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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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3-0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간힘을 바락바락 쓰며 힘을 다해 길을 달렸는데
마지막 날에 <그 길이 아니야>하는 판결을 받으면...
그것도 절대자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참담하겠어요.....

호랑녀 2006-03-08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자에게 의지하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질까요?
요즘 왜 이리 나의 생각이나 나의 길에 이렇게 확신이 없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들 문제도 그렇구요.

진주 2006-03-0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지를 하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고요, 그 보다 더 급한 건, 내가 가는 길이 맞느냐 안 맞느냐가 더 문제라고 하던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