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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8-2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그래서 약간 그렇게 보입니다만, 순진무구한 듯....^^
 

중세 말의 현실은 난폭하고 냉혹하며 잔인했다. 기근과 질병과 전쟁이 곳곳에 만연해 있어서, 사람들은 죽음 앞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는 시기였다. 이때가 페스트로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져 갈 만큼 고통스러운 시기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고난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버텨 나가기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환상이었다. 그래서 현실을 기사도적 이상으로 환원시킨 것이다.

기사들은 스스로에게 고난을 부여했다. 이 시기는 그래서 서약의 전성시대가 되었다. 기사들은 온갖 괴상한 서약을 했다. 푸아투 지역의 한 기사단은 고귀한 태생의 남녀 연인들의 모임이었는데, 이들은 여름이면 두꺼운 옷과 털 외투, 모직으로 안을 댄 두건 따위를 입고 벽난로에 불을 떄야 했으며, 반면 겨울에는 털이나 모피로 안을 대지 않은 얇은 옷 하나만을 입어야 했다. 살을 에는 추운 날씨에 바닥에 나뭇잎을 깔고 벽난로는 나뭇가지 밑에 숨긴 채 위에선 얇은 홑이불밖에 덮지 않았다.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은 금욕적인 고행을 통해 사랑의 힘을 증대 시키겠다는 뜻이었으나, 사랑의 힘이 크게 자라기 전에 이 기사단의 여러 사람들이 그만 얼어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쨌든 이들은 소원대로 사랑의 순교자가 된 것이다.

어떤 영국인들은 프랑스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기까지는 한 눈으로만 보겠다는 맹세를 하고는 한쪽 눈을 헝겊으로 가리고 살았다. 아비뇽에 갇힌 브누아 13세는 풀려나기 전에는 절대로 면도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한 수난 기사단에 입단한 폴란드인은 9년 동안 한 번도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어떤 기사들은 자신이 정한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는 고기를 한입도 먹지 않겠다든지 하루에 빵 세 개만 먹겠다는 식의 맹세를 하기도 했다. 이슬람교도 한 명을 죽이기 전까지는 토요일마다 침대에서 자지 않겠으며, 15일을 계속해서 같은 마을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사람도 있었다.

기사도 ‘놀이’에는 확실히 사랑이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기마 시합은 에로틱한 요소들을 분출하는 좋은 기회였다. 기사들은 자기가 사모하는 부인의 베일이나 옷을 걸치고 나오는 것이 관례였다. 또 여인네들은 시합의 열기가 뜨거워지면 몸에 걸친 장신구들을 하나씩 벗어 던졌다. 그래서 마침내 경기가 끝나면 여인들은 머리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팔과 어깨마저 소매 없이 맨 살을 드러냈다.

기마 시합은 또 유부녀와 불륜을 벌이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였다. 한 대귀족이 주최하는 기마 시합에서 그 귀족의 부인은 자신을 흠모하는 세 기사에게 자기 속옷을 주면서 갑옷 대신 그 속옷을 입고 싸울 수 있는지를 물었다. 두 기사는 거절하지만, 세 번째 기사는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답한다. 이 기사는 그런 위험한 상태로 나왔다가 심하게 부상당하여 온몸에 상처를 입는다. 그는 죽어 가면서 피투성이가 된 찢어진 속옷을 귀부인에게 돌려주며 폐회식에서 그 옷을 걸치고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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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처음에는 고전 지식을 담은 출판물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지만,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걸작들을 인쇄하다 보니 그 수에 한계가 있었고, 그 두 가지 중 어느 언어로든 새로운 저작물을 쓸 능력이 되는 저술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출판사는 라틴어를 되살렸지만, 그것은 죽어가는 언어가 마지막으로 몰아쉬는 숨에 지나지 않았다.
출판 산업은 인쇄소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새로운 저작물을 내놓을 필요가 있었고, 라틴 어로 된 저작물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게 되자 각 지방의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지방어로 책을 펴내기 시작했다. 출판 산업은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등의 현대 언어들이 표준화 된 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출판은 각 나라에 나름의 언어를 만들어 주었을 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인쇄 양식이 발달하게 해 주기도 했다.
구텐베르그는 처음 책을 인쇄할 때 무거워 보이는 고딕체를 썼는데 이것이 루터의 성경 표준체가 되었고 그 뒤 독일어가 쓰이는 전역에서 표준체가 되었다. 알디네 출판사는 손으로 쓴 글씨와 비슷하게 구부러지고 약간 기울어진 형태의 서체를 사용했다. 이 서체는 출판사 이름을 따서 올더스(Aldine)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이탈리아 인이 출판에 사용한 새로운 지방어를 가리키는 이름인 이탤릭(Italic)이라 불리게 되었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

 

 

 

1500년 이전에 인쇄된 책을 인큐내뷸라(incunabula 요람, 시작이라는 뜻의 라틴어 incunabulum)라고 하는데, 그 수가 벌써 2천만 권이 넘었다. 당시 유럽인구가 7천만 명이라는 점과 비교해 보면 인쇄술이 도입된 초기부터 얼마나 많은 책들이 찍혔는지 알 수 있다. 16세기에는 20만 종에 2억권 정도로 추산된다.
인쇄술의 기능으로서 지식의 보급이라는 측면을 이야기했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기능이 있으니 그것은 지식의 정확성을 높인 것이다.

중세의 서책 사정을 상상해 보자. 이떄 지식의 중요한 보존 장소는 수도원이었다. 주로 수도사들이 책을 베끼는 일을 담당했는데,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로 꼽혔다. 따라서 무엇보다 많은 책을 만들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람이 피곤하면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의도적인 왜곡이다. 수도사들은,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옮겨 적다가 아무래도 어떤 부분이 성경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내용을 바꿔 쓰기도 하였다. 이런 일을 두고 양심에 거리끼는 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어서, 도리어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학자에게 자신이 한 수 가르쳐 주었노라고 뿌듯해 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아리스토텔레스 책이라고 하는데 책마다 내용이 다 달랐다.

우리나라의 인쇄술은 지식의 정확한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는 무척 공을 들였으나 지식의 보급이라는 점에서는 취약했다. 만일 한글이 알파벳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다면 몇십 종류의 활자만 만들면 되었을 터이나, 글자가 한자식으로 조합되어야 하므로 모든 글자마다 하나씩 활자를 만들어야 했다. 따라서 일찍이 한글 인쇄가 그리 활발하지 못했고, 18세기에 들어서도 필사본으로 문학 작품들이 유통되었다. 그 대신 정확성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철저해서 “한 장에 한 자의 잘못이 있을 때에는 감독관과 조판인이 태형 30대요, 한 장에 한 자의 글자가 너무 검거나 너무 희미한 불량 인쇄일 때에는 인쇄인에게 태형 30대를 가한다”고 했으니 인쇄광의 충원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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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힘의 불균형이 관계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기가 일쑤다. 평등한 사회를 못 참는 것인지, 평화가 껄끄러운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강자의, 강자에 의한, 강자를 위한 질서는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고 강요하고 사라진다. 받아들이는 것이 약자의 의무이고, 요구하는 것이 강자의 권리라는 원칙이 인간 사회에서 늘 작용했다. 조공과 책봉, 봉신과 봉토. 한일합방, 한미 군사 협정. 외교는 비슷한 덩어리들만의 정치 놀음인 것을 우리는 ‘외교’를 통해서 깨닫는 중이다.

냉전시대에 탄생한 이 책은 그 질서를 뒤집는 정치풍자 소설이다. 쥐가 고양이를 물듯이, 다윗이 골리앗을 헤드락 거는 과정을 그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러니까 소설이다.
그랜드 펜윅이라는 가상의 소국가. 인구수가 6000이니 소도시만하다. 게다가 20세기에 14세기 무기(장궁과 철퇴)가 정규군에 보급되어 있다. 정말 소설 같은 설정이다. 그래야 더욱 극적이지 않겠는가.
이런 국가가 미국에 전쟁을 선포한다. 이유는? 국가 수입원이 와인인데, 인구증가에 따른 재정의 압박을 받고 있던 중, 냉전시대에 벌어졌던 미국과 소련의 위성국들에 대한 원조는 특별한 경우(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요충지)에만 이뤄졌기에 특별해지기 위해서 전쟁을 계획한다. 그러나 여차여차해서 Q폭탄이라는 어마어마한 폭탄을 얻게 되어, 지원도 받게 되고, 냉전도 종식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장면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인데, 냉전시대의 허무함을 잘 보여준다. 강대국들의 위선과 논리를 가볍게 가루로 만든다.

그 당시에 가졌을 만한 생각이다. 강대국 틈에서 죽느니, 약소국들이 힘을 합쳐 평화의 권리를 찾겠다는 발상, 그것은 제 3세계의 등장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풍자 소설로서는 시간의 흐름으로 빛이 바래는 것을 막지는 못하는 듯 하다. 현재도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평화를 힘으로 쟁취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그들의 놀이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위력의 폭탄으로 강대국들을 협박하여 얻은 평화가 진정한 평화인가? 긴장과 불신이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았는데 핵무기를 다 없앴다고 해결되는 일일까. 설령 그것이 기폭장치가 망가진 폭탄일지라 하더라도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것은 이미 평화의 기본 룰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절대 선이 절대 힘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관념의 세계일 뿐이다. 이 책의 마지막 한 줄이 이 책의 전부라고 한다면 대단한 풍자극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봐서는 그것은 아닌 것 같다.(유럽을 날려버리겠다는 협박은 너무나 진지했다) 논리적인 헛점이 많은 소설이지만, 그것보다는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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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8-2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라주미힌님, 킹 목사와 간디를 닮은... ㅎㅎ

라주미힌 2005-08-26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는 다 하죠 ^_^;;;;

2005-08-27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盧대통령 “97년 대선자금 수사 않는게 좋겠다”
입력: 2005년 08월 24일 18:21:03
 

노무현 대통령이 24일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 당시 불법 정치자금 수사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혀 파장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등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즉각 “사실상 수사중단 압력”이라며 강력 비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97년도 대통령 후보들을 다시 대선자금 가지고 조사하는 수준까지 가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X파일과 관련해 삼성의 이학수 부회장과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간에 당시 여당후보를 지원하는 문제를 논의한 내용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반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논란이 일 전망이다.

전날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도청 테이프 내용과 관련해서도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노대통령은 “이회창 후보의 경우 세풍 사건으로 조사를 받았고, 나중에 거듭해서 조사를 받았는데 지금 테이프 1개 나와 가지고 다시 조사를 한다면 대통령인 내가 너무 야박해지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2002년 대선자금도 검찰이 현역 대통령까지 다 조사했고, 그것도 회사에 가서 장부를 압수해 조사를 시작하는 특별한 수사방법으로 조사가 이뤄졌다”며 “대선자금 문제는 이제 정리하고 새로운 역사로 가야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노대통령은 “피해자가 분명히 있는 사안의 경우 개별 사실의 진상규명이 1차적 조건이지만, 정경유착이나 국가적 범죄 등 사회구조적 범죄의 경우 구조적 요인을 밝히는 것이 진상규명”이라고 덧붙였다.

〈김광호기자 lubof@kyunghyang.com

 

 

웃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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