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힘의 불균형이 관계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기가 일쑤다. 평등한 사회를 못 참는 것인지, 평화가 껄끄러운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강자의, 강자에 의한, 강자를 위한 질서는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고 강요하고 사라진다. 받아들이는 것이 약자의 의무이고, 요구하는 것이 강자의 권리라는 원칙이 인간 사회에서 늘 작용했다. 조공과 책봉, 봉신과 봉토. 한일합방, 한미 군사 협정. 외교는 비슷한 덩어리들만의 정치 놀음인 것을 우리는 ‘외교’를 통해서 깨닫는 중이다.

냉전시대에 탄생한 이 책은 그 질서를 뒤집는 정치풍자 소설이다. 쥐가 고양이를 물듯이, 다윗이 골리앗을 헤드락 거는 과정을 그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러니까 소설이다.
그랜드 펜윅이라는 가상의 소국가. 인구수가 6000이니 소도시만하다. 게다가 20세기에 14세기 무기(장궁과 철퇴)가 정규군에 보급되어 있다. 정말 소설 같은 설정이다. 그래야 더욱 극적이지 않겠는가.
이런 국가가 미국에 전쟁을 선포한다. 이유는? 국가 수입원이 와인인데, 인구증가에 따른 재정의 압박을 받고 있던 중, 냉전시대에 벌어졌던 미국과 소련의 위성국들에 대한 원조는 특별한 경우(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요충지)에만 이뤄졌기에 특별해지기 위해서 전쟁을 계획한다. 그러나 여차여차해서 Q폭탄이라는 어마어마한 폭탄을 얻게 되어, 지원도 받게 되고, 냉전도 종식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장면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인데, 냉전시대의 허무함을 잘 보여준다. 강대국들의 위선과 논리를 가볍게 가루로 만든다.

그 당시에 가졌을 만한 생각이다. 강대국 틈에서 죽느니, 약소국들이 힘을 합쳐 평화의 권리를 찾겠다는 발상, 그것은 제 3세계의 등장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풍자 소설로서는 시간의 흐름으로 빛이 바래는 것을 막지는 못하는 듯 하다. 현재도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평화를 힘으로 쟁취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그들의 놀이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위력의 폭탄으로 강대국들을 협박하여 얻은 평화가 진정한 평화인가? 긴장과 불신이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았는데 핵무기를 다 없앴다고 해결되는 일일까. 설령 그것이 기폭장치가 망가진 폭탄일지라 하더라도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것은 이미 평화의 기본 룰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절대 선이 절대 힘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관념의 세계일 뿐이다. 이 책의 마지막 한 줄이 이 책의 전부라고 한다면 대단한 풍자극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봐서는 그것은 아닌 것 같다.(유럽을 날려버리겠다는 협박은 너무나 진지했다) 논리적인 헛점이 많은 소설이지만, 그것보다는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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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8-2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라주미힌님, 킹 목사와 간디를 닮은... ㅎㅎ

라주미힌 2005-08-26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는 다 하죠 ^_^;;;;

2005-08-27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