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처음에는 고전 지식을 담은 출판물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지만,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걸작들을 인쇄하다 보니 그 수에 한계가 있었고, 그 두 가지 중 어느 언어로든 새로운 저작물을 쓸 능력이 되는 저술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출판사는 라틴어를 되살렸지만, 그것은 죽어가는 언어가 마지막으로 몰아쉬는 숨에 지나지 않았다.
출판 산업은 인쇄소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새로운 저작물을 내놓을 필요가 있었고, 라틴 어로 된 저작물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게 되자 각 지방의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지방어로 책을 펴내기 시작했다. 출판 산업은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등의 현대 언어들이 표준화 된 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출판은 각 나라에 나름의 언어를 만들어 주었을 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인쇄 양식이 발달하게 해 주기도 했다.
구텐베르그는 처음 책을 인쇄할 때 무거워 보이는 고딕체를 썼는데 이것이 루터의 성경 표준체가 되었고 그 뒤 독일어가 쓰이는 전역에서 표준체가 되었다. 알디네 출판사는 손으로 쓴 글씨와 비슷하게 구부러지고 약간 기울어진 형태의 서체를 사용했다. 이 서체는 출판사 이름을 따서 올더스(Aldine)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이탈리아 인이 출판에 사용한 새로운 지방어를 가리키는 이름인 이탤릭(Italic)이라 불리게 되었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

 

 

 

1500년 이전에 인쇄된 책을 인큐내뷸라(incunabula 요람, 시작이라는 뜻의 라틴어 incunabulum)라고 하는데, 그 수가 벌써 2천만 권이 넘었다. 당시 유럽인구가 7천만 명이라는 점과 비교해 보면 인쇄술이 도입된 초기부터 얼마나 많은 책들이 찍혔는지 알 수 있다. 16세기에는 20만 종에 2억권 정도로 추산된다.
인쇄술의 기능으로서 지식의 보급이라는 측면을 이야기했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기능이 있으니 그것은 지식의 정확성을 높인 것이다.

중세의 서책 사정을 상상해 보자. 이떄 지식의 중요한 보존 장소는 수도원이었다. 주로 수도사들이 책을 베끼는 일을 담당했는데,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로 꼽혔다. 따라서 무엇보다 많은 책을 만들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람이 피곤하면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의도적인 왜곡이다. 수도사들은,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옮겨 적다가 아무래도 어떤 부분이 성경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내용을 바꿔 쓰기도 하였다. 이런 일을 두고 양심에 거리끼는 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어서, 도리어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학자에게 자신이 한 수 가르쳐 주었노라고 뿌듯해 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아리스토텔레스 책이라고 하는데 책마다 내용이 다 달랐다.

우리나라의 인쇄술은 지식의 정확한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는 무척 공을 들였으나 지식의 보급이라는 점에서는 취약했다. 만일 한글이 알파벳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다면 몇십 종류의 활자만 만들면 되었을 터이나, 글자가 한자식으로 조합되어야 하므로 모든 글자마다 하나씩 활자를 만들어야 했다. 따라서 일찍이 한글 인쇄가 그리 활발하지 못했고, 18세기에 들어서도 필사본으로 문학 작품들이 유통되었다. 그 대신 정확성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철저해서 “한 장에 한 자의 잘못이 있을 때에는 감독관과 조판인이 태형 30대요, 한 장에 한 자의 글자가 너무 검거나 너무 희미한 불량 인쇄일 때에는 인쇄인에게 태형 30대를 가한다”고 했으니 인쇄광의 충원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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