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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9-20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헉! 눈 베렸다! 꽤액!

panda78 2005-09-20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뭐... 아주 이상하진 않지만서도... 그래도... ㅠ_ㅠ

라주미힌 2005-09-20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훼훼.. 내가 낫네욤. ㅡ..ㅡ;

비로그인 2005-09-20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하하하..어, 근데 이 사람..영화 '피스메이커'에서 핵탄두 업고(!) 뉴욕시내로 돌진하던 그 아자씨랑 좀 비슷해 보여요..약간 병적으로 예민해보이는 외모..

물만두 2005-09-20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부바부바~~~~~~~

날개 2005-09-2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리 나쁜 건 아닌것 같지만..... 옛날 모습을 생각하면...ㅠ.ㅠ

조선인 2005-09-20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확실히 꽃미남은 로맨스그레이로 이어지는군요.
저 섬세한 주름이라니. 멋집니다. @.@

물만두 2005-09-20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순이가 말했음다, 그래서 마이클 더글라스는 상줘야 한다니까... ㅠ.ㅠ

라주미힌 2005-09-20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곱게 늙어야 할텐데...
 







 

올훼스의 창 유리우스의 실제 모델

비요른 안드레센(Bjorn Andre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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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9-20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곳에서도 봤는데 진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어쩜 저렇게 이쁘게 생겼을까나..

panda78 2005-09-20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 눈이 즐거우니 슬쩍 퍼가 볼까나? ㅎㅎ

수퍼겜보이 2005-09-20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순정만화를 오려놓은 것 같군요. 옆에 꽃 그림이 안 따라나오는 게 이상할 정도.ㅋㅋ

라주미힌 2005-09-20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파마하면 좀 비슷할까요. ㅡ,.ㅡ;

panda78 2005-09-20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 머리만 비슷할지도!

물만두 2005-09-20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어우어우~~~

2005-09-20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5-09-20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호흡곤란... ㅎㅎㅎ

라주미힌 2005-09-20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찬투정 ㅋㅋㅋ.
저도 합니다. !!!! ㅡ..ㅡ;

날개 2005-09-2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 옛날에도 한번 본 적 있는데.... 정말 만화같이 생겼어요...+.+

비로그인 2005-09-22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 사진 보여줘요. 비슷한지 궁금해요. 으흐흐흐흐

라주미힌 2005-09-2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동건이라 생각하세욤. 오호호.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보고는 알게 되죠.
다른 누가 만든 게 아니고 바로 자신이 문제를 만들었다는 걸."

- 소포클레스

 

 

 
나는 내가 만든 '문제'로 고통스러워 하다가
죽을 운명인게요...

버그와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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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왕언니, 아에샤 오우다

[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편집인> franzis@hanmail.net


2차 세계대전 뒤 ‘약속의 땅’으로 몰려오는 유대인들과 내내 그 땅에 살아온 원주민 사이엔 잦은 충돌이 있었다.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은 ‘몽땅 우리 땅’이라며 건국을 선포했고 북미에서 원주민을 몰아내듯 ‘더는 삶의 의욕이 남지 않을 때까지 죽어라 밀어내기’ 작전이 시작됐다. 막 네살이 된 아에샤 오우다는 암살과 억류, 통금과 폐쇄가 그치지 않는 팔레스타인의 잔혹한 현대사를 고스란히 몸으로 살았지만, 밝고 천진하고 지혜로웠다.

세계생명문화포럼에서 만난 그녀 앞에서 ‘미국의 똘마니’로 살아야 했던 우리의 현실이 다시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1967년의 이른바 ‘6일 전쟁’은 내 유년기의 스산한 기억으로 남은 몇몇 ‘역사적 사건’의 초절정 감동 중 하나로, 거대 아랍과 약소국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 때 아랍 애들은 비겁하게 도망가느라 바빴지만 이스라엘은 외국에서 공부하던 학생까지 모두 귀국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싸운 결과 이순신 아니 박정희 장교 말씀대로 ‘필사즉생’하여 일당백의 솜씨로 물리쳤으니, 우리도 반드시 그들을 본받으리라!

그 ‘비겁한 애들’ 중 하나였을 아에샤는 23살 순정으로 팔레스타인 해방전선에 가담해 온갖 궂은일을 하다 2년 뒤 체포돼 구타와 강간의 공포에 떨며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10년 넘게 옥살이를 하는 동안 간수들의 히브리어도 저절로 배우고 “아에샤와 친해지면 곧 팔레스타인의 친구가 된다”는 소문이 퍼져 간수를 감시하는 간수까지 따로 생길 무렵, 양 집단의 교환협상이 이루어져 거짓말처럼 석방됐다. 하지만 ‘죄수’들은 곧 요르단으로 추방돼 15년을 살다 중동의 평화를 약속한 오슬로협정 덕에 1994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요르단에서 남자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는 곧 색출돼 추방당하니 연락이 끊긴 세월이 이어졌고, 아이를 갖고 싶었으나 자신의 ‘가임기’가 끝날 때까지 그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고 말할 때, 그녀의 쓸쓸함이 내 가슴을 후볐다.

고향에 돌아온 그녀는 마을 곳곳에 군대가 들어서고 이스라엘 정착촌이 건설되는 현장을 목격하며 목이 멨지만, 땅도 싫고 싸움도 싫어 이스라엘 여성들과 손잡고 더는 피를 흘리지 않을 평화의 그날을 꿈꾸며 진정한 평화운동가로 거듭났다. 하지만 ‘완전한 승리’를 꿈꾸는 이스라엘 ‘전쟁영웅’ 출신들의 권력은 온건하고 합리적인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급진적인 인물을 키워 갈등을 부추기는 쪽으로 사태를 자꾸 악화시키고, 지금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은 실험에 걸려든 쥐들처럼 8m 높이의 장벽으로 곳곳을 막은 미로 속을 헤매며 지옥 탈출을 꿈꾸고 있다. 아에샤는 작은 관심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고, 멋진 가전제품과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한국에 이만큼의 자유와 평화와 풍요가 넘치기까지 어떤 고난과 인내와 용기가 있었는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꼭 알려달라고 맑고 고운 눈을 깜박이며 몇번이나 당부했다(http://stopthewal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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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수학, 히파티아

[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기획위원 franzis@hanmail.net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른 흉노족이 다뉴브 강가에 닿고, 게르만족은 좀더 살 만한 남쪽으로 민족의 대이동을 시작하던 4세기 말,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로마제국은 ‘예수는 인간보다는 훨씬 더 신에 가깝다’는 니케아회의의 결정을 팍팍 밀며 ‘못 믿는 자’들을 엄단했다.

이 무렵 국제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세계적인 첨단 학문의 집결지일 뿐 아니라 대립하는 종교들의 본거지여서 ‘종교간의 갈등’으로 스산했다. 유대인과 비기독교신자들은 힘 좀 쓰는 교회 권력자들의 손에 의해 추방되고 배척당하는 일이 잦았으나, 헬레니즘의 본산지인 만큼 철학과 자연과학의 전통으로 성령의 불길에 저항하는 지식인 또한 적지 않았다. 이들 중에 수학자 테온은 유난히도 영특한 딸 히파티아를 무릎에 앉히고는 예술과 문학, 자연과학과 철학에 눈을 뜨게 하고 여러 나라에서 온 지식인들과 교류를 통해 지적 소양을 쌓게 했다. 또한 다양한 종교의 교리를 빠짐없이 가르치고 그에 대한 ‘분별력’까지 북돋아 어떤 신앙도 딸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단속했다.

히파티아는 아테네에 가서 플루타르크와 그의 딸이 운영하는 신플라톤 학파 계열의 학교에 유학하고 돌아온 뒤 처음에는 귀족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비밀과외’를 하며 냉철한 사유법을 가르쳤다. 또한 아버지와 함께 ‘원추곡선의 계산법’을 추가시킨 유클리드 기하학의 개정판을 냈는데, 근대에 이르러 데카르트와 뉴턴 등이 새로운 과학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녀의 교본은 1천년이 넘는 세월 내내 ‘수학의 정석’ 자리를 굳건히 지킨 셈이다.

수학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성, 아버지를 능가하는 명성을 얻게 된 히파티아 선생님은 하얀 무명의 망토 차림으로 여러 학교에 출강하며 시내를 활보했는데, 절세미인이던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유학 온 학생들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고, 숱한 왕자와 철학자로부터 구혼을 받았으나 “나는 진리와 결혼했노라”는 깜찍한 화법으로 모두 물리치며, 물질세계를 벗어난 인간 본성의 신적 요소, 즉 영혼을 찾으라고 이 불쌍한 영혼들을 다독였다. 영혼은 “우리 내부의 진실한 눈”이니, 이를 통해 미모무상도 깨우치고 대신 모든 존재의 궁극적 원인인 ‘철학적 신’에 이르기를 독려했으니, 기독교도들의 ‘아버지 하느님’은 좀 무안했겠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 하느님’의 제단에 바칠 ‘처녀 제물’로 낙인찍히고 415년 어느 날, 주교였던 키릴로스의 앙숙인 남자와 친하게 지낸 일이 화근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출강을 나가던 그녀의 마차에 달려든 기독교 광신도들은 히파티아를 낚아채 발가벗긴 뒤, 성소로 끌고 가 굴 껍데기로 온몸을 짓이기고 불길에 처넣어버리는 것으로도 부족했던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있던 그녀의 저작은 죄다 꺼내서 분서갱유를 하고, 다양한 소문을 퍼뜨리며 ‘완전범죄’를 감행한 탓에 최근까지도 ‘여성은 수학을 못 하거나, 하면 못 쓴다’는 편견 혹은 미신이 잔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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