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왕언니, 아에샤 오우다

[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편집인> franzis@hanmail.net


2차 세계대전 뒤 ‘약속의 땅’으로 몰려오는 유대인들과 내내 그 땅에 살아온 원주민 사이엔 잦은 충돌이 있었다.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은 ‘몽땅 우리 땅’이라며 건국을 선포했고 북미에서 원주민을 몰아내듯 ‘더는 삶의 의욕이 남지 않을 때까지 죽어라 밀어내기’ 작전이 시작됐다. 막 네살이 된 아에샤 오우다는 암살과 억류, 통금과 폐쇄가 그치지 않는 팔레스타인의 잔혹한 현대사를 고스란히 몸으로 살았지만, 밝고 천진하고 지혜로웠다.

세계생명문화포럼에서 만난 그녀 앞에서 ‘미국의 똘마니’로 살아야 했던 우리의 현실이 다시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1967년의 이른바 ‘6일 전쟁’은 내 유년기의 스산한 기억으로 남은 몇몇 ‘역사적 사건’의 초절정 감동 중 하나로, 거대 아랍과 약소국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 때 아랍 애들은 비겁하게 도망가느라 바빴지만 이스라엘은 외국에서 공부하던 학생까지 모두 귀국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싸운 결과 이순신 아니 박정희 장교 말씀대로 ‘필사즉생’하여 일당백의 솜씨로 물리쳤으니, 우리도 반드시 그들을 본받으리라!

그 ‘비겁한 애들’ 중 하나였을 아에샤는 23살 순정으로 팔레스타인 해방전선에 가담해 온갖 궂은일을 하다 2년 뒤 체포돼 구타와 강간의 공포에 떨며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10년 넘게 옥살이를 하는 동안 간수들의 히브리어도 저절로 배우고 “아에샤와 친해지면 곧 팔레스타인의 친구가 된다”는 소문이 퍼져 간수를 감시하는 간수까지 따로 생길 무렵, 양 집단의 교환협상이 이루어져 거짓말처럼 석방됐다. 하지만 ‘죄수’들은 곧 요르단으로 추방돼 15년을 살다 중동의 평화를 약속한 오슬로협정 덕에 1994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요르단에서 남자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는 곧 색출돼 추방당하니 연락이 끊긴 세월이 이어졌고, 아이를 갖고 싶었으나 자신의 ‘가임기’가 끝날 때까지 그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고 말할 때, 그녀의 쓸쓸함이 내 가슴을 후볐다.

고향에 돌아온 그녀는 마을 곳곳에 군대가 들어서고 이스라엘 정착촌이 건설되는 현장을 목격하며 목이 멨지만, 땅도 싫고 싸움도 싫어 이스라엘 여성들과 손잡고 더는 피를 흘리지 않을 평화의 그날을 꿈꾸며 진정한 평화운동가로 거듭났다. 하지만 ‘완전한 승리’를 꿈꾸는 이스라엘 ‘전쟁영웅’ 출신들의 권력은 온건하고 합리적인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급진적인 인물을 키워 갈등을 부추기는 쪽으로 사태를 자꾸 악화시키고, 지금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은 실험에 걸려든 쥐들처럼 8m 높이의 장벽으로 곳곳을 막은 미로 속을 헤매며 지옥 탈출을 꿈꾸고 있다. 아에샤는 작은 관심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고, 멋진 가전제품과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한국에 이만큼의 자유와 평화와 풍요가 넘치기까지 어떤 고난과 인내와 용기가 있었는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꼭 알려달라고 맑고 고운 눈을 깜박이며 몇번이나 당부했다(http://stopthewal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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