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할 수 없는 것을 지켜야 하는’ 시절은 슬프다. 정연주 씨는 미국 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지만 전형적인 미국식 민주주의의 신봉자였다. 한겨레 시절 조선일보를 맹렬히 공격하곤 했지만 동시에 좌파에게도 그 이상의 혐오를 드러내곤 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적절한 사고와 행태 덕에 KBS 사장이 되었는데, 오늘 그가 방송 공공성의 수호자처럼 일컬어지는 건 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이명박이 KBS 사장을 제 사람으로 갈아치우려는 건 참 꼴사나운 일이지만(그러나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김대중 노무현이 그랬듯) 착한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고작 정연주 같은 자를 지킨다는 건 슬픈 일이다. 개인 정연주가 아니라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정연주? 싱거운 소리들 마라.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사람들에겐 KBS가 공영방송인지 모르겠지만 대다수 인민의 처지에서 KBS는 공영방송인 적은 없다. 이를테면, KBS가 FTA나 비정규노동자 문제를 반대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공영방송이란 ‘사장과 대통령이 사이가 안 좋은 방송’이 아니라, 힘없는 대다수 인민의 편에 서서 자본/지배계급과 긴장을 이루는 방송이다. 그래서 세상이 힘있는 자들의 입맛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견제하는 방송이다.

- 냉정하게 말하면, 정연주와 이명박은 원수처럼 으르렁거리지만 ‘미국식 민주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로 역할을 분담하여, 결국 같은 세상을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왜 이명박과 같은 세상을 소망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가?

- 알다시피, KBS 사장은 원래 강준만 선생에게 제의되었고 강선생은 거절했다. 강선생은 지금 아이들과 선샤인뉴스를 만든다. 강준만.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다르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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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발행인 노릇을 하고 있는 어린이잡지 <고래가그랬어>에 최규석이 ‘코딱지만 한 이야기’라는 꼭지를 연재했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보는 우화 같은 것이었는데 분량은 짧아도 함축과 은유가 많은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연재를 쉬기 얼마 전에 실린 ‘불행한 소년’이라는 작품이 말썽이 나서 몇몇 독자가 항의하고 정기구독을 취소하는 일이 있었다. 내용인즉슨 아주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나 참고 또 참으며 평생을 죽도록 노동했으나 결국 비참하게 인생을 마치게 된 사내가 제 정당한 분노를 늘 삭이게 했던, 그리고 이제 죽어가는 그에게 “비참해하지 말아요. 당신의 삶은 가치 있는 삶이었어요.”라고 말하는 천사를 죽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천사는 그저 천사의 탈을 쓴 악마에 불과했지만 기독교(개신교)가 비공식적 국교이다시피 한 국가인 한국에서 발행하는 어린이 잡지에서 천사를 죽이는 장면을  실었다는 것은 문제가 될 만한 일이었다.
실은 그 작품이 편집부에 들어왔을 때 편집장이 걱정이 된다며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문제가 되겠지만 문제없는 작품”이니 싣자고 했다. 싣지 않았으면 말썽도 없었을 테니 작가에겐 책임이 없었지만 <고래가그랬어>의 지지자인 최규석은 독자수를 늘이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줄였다는 데 대해 몹시 미안해했다. 그때 최규석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게 그렇게 충격적인가요? 저는 늘 소 잡고 돼지잡고 하는 것 보고자라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미안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그 말 속엔 얼마간의 야유가 들어 있었다. 제 새끼들을 볼 것 안 볼 것 들을 것 안 들을 것 알뜰하게 다 가려가며 키울 수 있는 안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야유. 최규석은 그런 야유를 할 만한 사람이다. 그는 늘 소잡고 돼지잡고 하는 것 보고자란 사람, 볼 것 안 볼 것 들을 것 안 들을 것 다 가리며 키울 수 없는 조건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대한민국 원주민>은 바로 그 기록이다.
나는 이 책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보았다. 잡지에 연재될 때 몇 번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보니 본 게 거의 없었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전체적으로 매우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 만화가 후배의 소개로 대학 졸업작품집에 실린 최규석의 작품을 본 이후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 등 그의 주요한 작품들을 모두 보아왔지만 이번처럼 강한 인상을 주는 적은 없었다. 두어 시간 그렇게 빠져서 책을 다 보고나서야 난 그 두어 시간 동안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참, 이게 다 지 이야기지.’ 그 이야기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한 아이의 체험임을 되새기며 난 가슴이 저렸다.
그리고 이삼십년 전이었다면, 말하자면 한국의 인텔리들(이를테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민중이 각별한 의미를 갖던 시절이었다면 이 책은 지금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졌겠구나 싶었다. 어쩌면 이 책은 ‘민중의 자식이 그린 가슴 아픈 성장기’라 수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90년대 이후 한국의 인텔리들은 더 이상 민중이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대신 시민이라는 말을 즐겨 쓰게 되었다.(그렇게 된 사연과 과정은 생략하기로 하자. 다만 분명한 사실은 민중은 예나 지금이나 민중이라는 것. 그리고 민중은 인텔리들이 자신들을 위해 ‘투신’하던 시절이나 자신들을 ‘배신’하고 시민을 말하는 지금이나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인텔리들의 민중과의 관계는 실재했던 게 아니라 단지 인텔리들끼리의 가상극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오늘 한국의 인텔리들에게 민중은 그들이 오래 전 외치던 대로 ‘역사의 주인공, 생산의 주인공’이 아니라 단지 부인할 순 없지만 애써 외면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런 변화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원주민>은, 이른바 진보적인 성향의 인텔리들이 즐겨 읽는 잡지에 연재되고 역시 진보적인 인텔리들을 주요한 독자로 하는 출판사에서 발행된 이 책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사실 이런 질문은 매우 싱거운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이미 그에 대한 답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은 ‘한 민중의 자식의 가슴 아픈 성장기’를 이젠 제 세계관이나 사회적 실천에 결코 연결시키지 않은 채 잠시 구경하려는 인텔리들에 대한 야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그 야유가 작가 자신에게까지 뻗어있다는 점이다. 최규석은 이젠 모든 면에서 ‘원주민이 되어버린 민중’에서 떨어져 나와, 단 한 번도 입신양명을 꿈꾼 바 없으나 어느 새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만화가가 되어버린 자신에 대한 야유를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야유는 사회적 지위와 문화자본이 갈수록 늘어가는 제 삶의 추이와 속도에 정직하게 맞추어져 있다. 부모와 누이들과 형에 관한 이야기들을 가까스로 마친 작가는 책의 끝 무렵 제 옆얼굴을 그린 페이지 왼편에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나와는 꽤 다른 환경에서 자랄 내 아이’에 대해 적는다.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근래 보기 드문 민중 출신 작가’가 제공한 ‘모처럼의 민중 구경’이 되었을지도 모를 이 책은 작가 자신에 대한 야유, 심지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야유를 포함하면서 ‘그들’에 관한 책이 아니라 ‘우리(인텔리들)’에 관한 책이 된다.
말하자면 이 책은 우리의 잃어버린 야유를 복원하는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민중에 대해 ‘우리끼리’ 해치운 개연성 없는 투신과 배신에 대해 정당한 야유를 받은 바 없이 살아왔으며, 우리의 삶이 이렇게 욕지기가 날 만큼 졸렬해진 것 역시 우리가 세상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야유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면서부터였음을 복원하게 한다. 모든 ‘우리’에게 이 책을 권한다. 모처럼의 구경은 어느새 모처럼의 정화가 될 터이니. (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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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11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글이 있었네요~ 야유하는 능력을 되찾아야 인간다운 인간이 되겠군요.
 

지하철에 사람이 듬뿍듬뿍 담겨져 있다..
오늘의 부평-신도림 직통 열차는 .... 거의 사우나 수준이었다...
열차 천정에 목욕탕에서나 보던 물방울이 송이송이 맺혀 있었으니...

다 긁어 모으면 최소... 1.5리터 생수 한 통은 될 정도.
저것이 바로 '내 몸에 가까운 물'이로구나... 
흡수가 빠른... 배출도 빠른...

에어컨의 출력은 최대였음에도 인간의 체온이 그것을 능가했다는 것을
신도림역에 내리면서 바로 느꼈다.

실외온도가 더 시원하다니 ㅡ..ㅡ;;;

도시인으로 산다는건 아침부터 서로에게 타액을 발라주고,
아침에 무엇을 먹었나 냄새로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인 것이다.
앞 뒤 양 옆의 뜨끈뜨끈한 아저씨들과 '온정'을 나누며
서로가 '혼자'가 아님을 굳이 확인한다.. (피곤하게시리...)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감이 왜 필요한가를 절실하게 느낀다.
아.. 내 몸에서 나는 타인의 향...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전까지 선택적이지 못한 이 열나는 상황....


대한민국이라는 지하철은 변함없이 에어컨 없는 닭장처럼 순환선을 향해 도는구나..
그러니깐 돌아버리지. 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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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8-08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우리는 같은 지하철역에서 내릴텐데, 왜 한번도 마주치지 못했을까요? ㅎㅎ


라주미힌 2008-08-09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워낙 평범해서 눈에 잘 안 띄어요.. ㅎㅎ
 

물신주의 배격한다고, 신자유주의 몰아내자고, 승자 독식이 싫다고 백날 중얼거려봤자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소한 욕심을 차단하는 것, 소박한 삶을 각오하고, 더 용감하고 더 행복해질 것.

나는 대구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살기는 했지만 친척이 죄다 영남권에 거주하므로 가족과 합류하는 즉시 ‘제2외국어’권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런데도 “오빠야~”로 시작하는 살갑고 애교 넘치는 대구 계집애의 말투는 전혀 구사하지 못하며, 대구 남자의 사투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자고로 경상도 남자 말투란 부산과 구미야말로 제 맛이다, 하는 다소 편협한 취향이 있으며, 실은 전라도 오빠들의 걸쭉한 사투리에 꺅꺅 자지러지는 소녀의 마음 역시 남몰래 간직하지만, 서울에서 산 지 25년이 넘어도 영혼 어딘가에 화인처럼 짙게 새겨진 경상도 사투리 한마디는 해가 갈수록, 고단한 신자유주의가 깊어질수록 더 진해진다. 그것은 바로, “마, 괘앤~찮타”이다. 최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백수가 되고 나니, 더욱더 그 말을 주문처럼 되풀이하게 되었다. 마, 괘앤~찮타.

신자유주의가 깊어질수록 주문처럼 되뇌는 말

회사를 그만두기까지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상사가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만 2년6개월 다녔으면 제대할 때가 됐습니다.” “두 번 생각 안 해볼 거냐?” “소도 30개월 이상이면 광우병 걸립니다.” “그만두면 뭐 할 건데?” “대형 바이크 면허도 있고, 오토바이 있으니까, 퀵서비스나 할랍니다.” “웃기지 말고.” “정말입니다. 밥 먹을 수 있으면 뭐든 해야죠.” “….”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그날 퇴근 뒤에도 그 말 한마디를 종일 생각했다. 밥, 밥, 밥. 밥이 다 뭐라고. 밥만 먹으면 될 거 아닌가. 괘앤~찮타, 밥만 먹으면 된다. 밥만 먹으면 된다는 거, 이것은 사실 그토록 오랫동안 내가 애써 무시해왔던 진실이었다. 밥만 먹으면 될걸, 자꾸 더 바라니까 그토록 인생에 잡다한 고뇌가 많았다 싶다. 월급 타기 위해 하는 노동이 그 노동으로 인한 고통을 풀기 위한 소비를 낳고, 그 소비가 다시 월급을 타기 위한 노동을 운명적으로 부르는 광경을 수없이 겪고 또 보았다.


   

ⓒ난나그림
밥만 먹으면 안 될 게 없을 텐데, 밥만 먹으면 되는 건데 밥벌이의 고통을 소비로 푸는 것은 간결하며 신속하고도 비겁한 방식이었다. 그렇게도, 돈을 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다. 밥 먹고 나면 커피도 마시고 싶고, 유행하는 청바지도 하나 사고 싶고 아찔한 하이힐도 하나 사고 싶고, 예쁜 색깔의 립글로스도 하나 사고 싶고, 거기 어울리는 마스카라도 갖고 싶고, 여기 잘 어울리는 핸드백도 하나 갖고 싶고, 하는 식으로 인생은 사소하고도 귀엽기까지 한 욕심으로 인해 순식간에 번잡스러워진다. 사표를 쓰면서 생각했다. 이제 밥, 밥만 생각해야지. 밥만 먹으면 된다.

속으로 외웠다. 괘앤~찮타. 밥이면 됐지. 비싼 반찬 못 먹어도 된다. 밥만 먹어도 사람은 산다. 커피 못 마셔도 안 죽는다. 30년 된 다세대 셋방 살아도 안 죽는다. 아직 젊은데 경사 급한 산동네 좀 올라간다고 안 죽는다. 비싼 밥 먹는다고 천년만년 사는 거 아니다. 드럼 세탁기에 돌린다고 옷에 금칠 되는 거 아니다. 명품 화장품 바른다고 갑자기 절세미인 될 것도 아니고, 프리미엄 진 입는다고 순식간에 제시카 알바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깨 펴고, 괘앤~찮타. 물신주의를 배격한다고, 신자유주의를 몰아내자고, 승자 독식이 싫다고 백날 중얼거려봤자 아무짝에도 소용없으니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은 사소한 과욕을 차단하는 것, 그리고 하얗고 예쁜 밥알만 생각하는 것. 그러면서 그 밥알처럼 소박한 삶을 각오하고, 더 용감하고 더 행복해질 것. 행복이라는 것도, 각오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니까. 모든 88만원 세대 여러분에게도, 괘앤~찮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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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08-08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히.. 상큼..

누구나 모순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인지하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하고 합리화하면서 주저하는 이들에게... 어떤 용기가 필요할까.. 그건 잘 모르겠넹..
삶의 대안을 스스로 찾을 여유조차 없으니... 따라할 만한 마땅한 모델도 없고..
하얗고 예쁜 밥알... 이젠 돌아갈 수 없는 먼 곳의 얘기같기도 하고..

로쟈 2008-08-08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하얗고 예쁜 밥알만 생각하는 것'이 이명박주의와 먼 거리가 아닌 듯싶은데요...

라주미힌 2008-08-08 09:01   좋아요 0 | URL
쥐박이는 압축적이고 집중화된 욕망의 결정체라서 좀 성격이 다르다고 봐요..

순오기 2008-08-08 0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먼(뭔) 소리에요?
라주미힌님 글인가 퍼온 글인가 헷갈려서~~~ 누가 백수됐단 건지?
밥 먹고 살기가 얼마나 버거운데요~~~ ^^
앗, 김현진 글이구나~ 깜딱 놀랬다누...ㅜㅜ

라주미힌 2008-08-08 08:58   좋아요 0 | URL
김현진씨 글이에용... 글은 시사인에 실린 거구요..
글, 생각이 맛깔나는 젊은이.. ㅎㅎㅎ
 

전담경호대 구성… 경찰 2만3000여명 배치

 

 

 

지은 죄가 많은 거 세상이 다 아니까...

보수단체의... 부시 방한 환영 집회는 또 뭐여...

하여간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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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8-05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걍 식민지 선언하는 게 낫겠다는. 꼴을 보니.

시비돌이 2008-08-05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쇠고기 청문회에서 어느 관료가 '쇠고기 수입은 우리가 미국에 선물로 준 것이 아니라 미국이 우리에게 선물로 준 것'이라는 참으로 머슴스러운 발언을 하셨잖아요. 그게 지금 한국의 본질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