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자들은 말이야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아닌것 같고 깬다 싶어도 모두들 마음속에 예뻐지고 싶다는 생각을 다 갖고 있다구
(하기야 그건 어찌보면 남자들이 큰소리치고 싶고 멋있게 폼잡고 싶어하는거랑 비슷할수도 있어
또  나처럼 게을러서 그런 욕구가 아주 가끔 표출되는 여자도 꽤 많지만 어쨌든 비슷해)

근데 남자들이 잘 모르는게 있어
그게 뭐냐면 말야
여자들이 화장을 하고, 예쁘게 차려입고 어려보이고 싶어하고 하는건
 항상 남자들에게 잘보이고 싶어서라고 착각하는 거지
물론 가끔은 그럴때도 있어, 없는건 아냐
하지만 그건 정말 마음속의 일부일 뿐이라구
그게 아니라면 남자들이 저 패션은 진짜 아니다 하는데도
당당하게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여자들이 왜 있겠어
오히려 여자들은 같은 여자들의 의견에 더 민감하지....
남자들의 감각을 별로 안 믿거든....

그냥 그게 Girl이야.
영원히 젊고 예쁘게 있고 싶은 욕구
하지만 현실은 안 그렇지
누군들 흐르는 세월을 잡아둘 수 있겠어

요코는 12살 아래 띠동갑인 신타로를 보고 맘이 설레
누군들 바로 옆에서 젊고 멋진 남자를 보면 안그럴까...
아줌마인 나도 아마 약간은 마음이 설레일걸
그래서 요코가 참 귀여워
다른 여자들이 신타로에게 애교떠는걸 보면서 질투하고 안달하는 모습이....
하지만 그게 그대로 사랑이 되는건 아냐
요코의 Girl에 대한 욕망이 신타로라는 대상을 매개로 나타난것일거야
요코가 그걸 깨닫는 순간 새로운 요코가 탄생하는거야

세이코는 이제 과장이 되었어
세이코의 남편 히로보다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 되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부하직원인 이마이때문에 너무 너무 화가나
남자랍시고, 선배랍시고 온통 무시하고 제멋대로거든
그래도 세이코는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하면 나아질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남자들은 여자의 그런 배려를 항상 자신이 잘나서 여자가 찍소리 못하는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그런 남자는 정말 쓴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유키코는 잘나가는 광고회사의 회사원이야
그녀의 옆에는 일은 무지 잘하지만 하는 짓이나 입고다니는 것이나 아직도 자기가 20대 초반인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은 오미츠가 있어
하지만 말야 뭐 그럼 어때
오미츠는 그게 즐거워서 그럴 뿐인데....
누구한테도 피해 안주고 오히려 항상 주변을 활기있게 만들어주잖아
유키고 오미츠 등등 30대 아가씨 아줌마 다 그냥 자신을 사랑하면 되는거잖아

유카리 역시 30대 회사원이야
친구 메구미때문에 갑자기 아파트가 사고싶어졌어
하지만 원하는 아파트를 사기 위해선 희생해야 하게 너무 많아
누르고 누르며 자신을 희생해보지만 그 희생이 아파트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유카리의 선택은?
아파트냐 자신이냐!!!
그래도 유카리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 가는 과정은 참 재밌어
물론 유카리의 선택에 넉다운 되는 부장이 더 재밌긴 하지만.....

다카코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결혼했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도 있어
이혼하긴 했지만....
다카코는 슈퍼우먼이야
정말이라니까
그래서 솔직히 이 책에서 유일하게 마음이 좀 짠해!
아마 앞으로도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다카코는 잘 헤쳐나갈수 있을거야
아들을 위해서 철봉도 넘어보였고, 공놀이도 열심히 배웠잖아
그리고 같은 여성과 연대하는 법도 알게 되었고.....

세상의 여자들은 모두 Girl일때의 꿈을 잊지 않아
때로는 향수가 되기도 하고 자기비하가 될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 되고
같은 여자들끼리의 연대를 만들어내기도 해
뭐 가끔 여자의 적은 여자일때도 있지만
여자의 동지로서의 여자가 더 많은게 사실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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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9-30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늦게 까지 안주무시는군요. 저도 이 책 읽고 팠는데^^

바람돌이 2006-09-30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이야말로 주무셔야죠... 저도 이제 자러 갈려고요. 자야 내일 일어나서 출근할테니.... 이 책 공중그네랑 좀 비슷한 느낌이예요. 근데 작가가 남자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정도로 여자의 심리에 정통하네요. 재밌어요. ^^

하이드 2006-09-30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오쿠다 히데오. 정말 대책없이 낙관적이죠. ^^

바람돌이 2006-10-01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킬 앤 하이드님/대책없는 낙관주의라 정말 오쿠다 히데오에 대한 가장 절묘한 말인것 같습니다. 그의 책들에 대해 이만큼 적당한 다른 말이 더 없을것 같네요. 대단한 지킬님!!! 빨리 하이드님으로 돌아올수 있기를.....

kleinsusun 2006-10-20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재미있겠는데요. 필 확~꽂혀서 막바로 보관함으로!^^
 
 전출처 : 로드무비 > 파주 보광사






보광사엔 왜 장기수 묘역이 조성되어 있을까?
중생들 사는 세상엔 여러 모양이 있다

박상표 수의사

침묵하고 있는 풍경과 나누는 묵언의 대화

세상에 어찌 사연이 없는 풍경이 있을까마는 말을 붙이거나 농(弄)을 걸어도 풍경은 언제나 묵묵히 침묵하고 있다. 풍경은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 너스레를 떨지도 않고 남을 깎아내리기 위한 허튼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저 그곳을 찾는 사람과 묵언(默言)의 대화를 나눌 뿐이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廣灘面) 영장리(靈場里) 고령산(高靈山)에 있는 보광사도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절집이다. 그러나 보광사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들은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아무런 사연을 전해주지 않는다.

왜 이곳에 장기수묘역 ‘연화공원’이 들어서게 되었는지, 어찌하여 한나라당의 색깔공세에 호응한 극우단체가 이곳을 훼손했는지, 언제 이곳이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원찰이 되었는지, 무슨 이유로 광주민중항쟁 당시 계엄사령관을 지낸 이희성이 1981년에 이곳에 호국대불을 세웠는지, 무슨 영문으로 1994년 새로 지은 원통전과 지장전의 바깥벽에 특이한 벽화를 그렸는지를 얘기해주지 않는다.

숙빈 최씨의 원찰, 고령사

보광사(普光寺)의 옛 이름은 고령사(高靈寺)였다. 고령사는 숙빈 최씨(1670~1718)의 원찰(願刹)이 되기 전까지는 그저 이름 없는 절집에 불과했다.『신증동국여지승람』권11의 양주목 불우(佛宇)조를 보면 “고령사(高靈寺) : 고령산(高靈山)에 있다”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에게 세숫물을 떠다 받치는 무수리 출신으로 숙종의 후궁이 되었다. 그녀는 3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들 중에서 금(昑, 연잉군)이 훗날 왕위에 올라 영조가 되었다.

그러나 숙빈 최씨는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 전인 1718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경기도 양주목 고령동(高嶺洞) 옹장리(瓮場里)에 묻혔고, 무덤의 이름은 ‘숙빈묘(淑嬪墓)’라고 불렸다. 이러한 상황은 18세기 중반에 제작된『해동지도』「양주목 지도」와 19세기 전반에 제작된『광여도』「양주목 지도」에 반영되어 ‘고령사’와 ‘숙빈묘’가 표기되어 있다.

1724년에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왕세제였던 연잉군이 왕이 되었다. 노론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된 영조는 자신의 어머니가 미천한 신분이라는 콤플렉스를 안고 있었다.

영조의 콤플렉스와 소령원, 육상묘, 어실각

영조는 이러한 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숙빈 최씨의 무덤(墓)을 소령원(昭寧園)으로 격상시키고, 그녀의 신주를 모시기 위한 사당(廟)으로 육상묘(毓祥廟)를 세웠다. 그리고 고령사를 원찰로 삼고 어실각(御室閣)을 세워 숙빈 최씨의 위패를 모셨다.

고대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형체인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저승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저승관에 따라 죽은 사람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당(廟)을 짓고, 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무덤(墓)을 만들었다.

한편 불교는 중생은 생전에 자신의 행위인 업장에 따라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천상(天上)이라는 육도윤회를 한다는 사후관을 가지고 있다. 왕실이나 귀족들은 망자(亡者)가 육도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함으로써 부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원찰(願刹)을 세웠다.

소령원과 육상묘, 그리고 보광사는 바로 이러한 저승관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1739년에 겸재 정선이 그린「육상묘도(毓祥廟圖)」(보물 873호)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담은 기록화라고 할 수 있다. 영조는 1753년에 육상묘를 육상궁으로 승격하였으며, 숙빈 최씨에게 화경(和敬)이라는 시호를 추시했다.

조선말에 고령사에서 보광사로 이름이 바뀌다

고령사가 언제 보광사로 이름을 바꾸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남아있는 문헌기록과 지도를 통해서 추정해보면, 조선후기에 보광사로 부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보광사 대웅보전에는 불국옹(佛國翁) 여여(如如)가 1869년(고종 6)에 쓴「고령산 보광사 상축서(高靈山普光寺上祝序)」가 걸려 있다. 응진전에도 1870년(고종 7)에 여여(如如)가 쓴「양주 고령산 보광사 십육성중전 이건기서(楊洲高靈山普光寺十六聖衆殿移建記序)」라는 판각이 걸려 있다. 이들 기록을 통하여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한 이후 봉은사나 보광사 등 왕실의 원찰도 함께 중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1872년(고종 9) 지방지도』중의「양주목 지도」에도 ‘소령원’과 ‘보광사’라는 표기가 나타난다. 1899년에 편찬된『양주군읍지(楊洲郡邑誌)』불우(佛宇)조에는 “고령사 : 주의 서쪽 40리 백석면이 있는데 지금은 보광사라 한다.”고 기록했다. 1901년에 낭응 경림(朗應鏡臨)이 지은「고령산 보광사 법전 중창 병단호기서(高靈山普光寺法殿重創幷丹호記序)」에도 ‘보광사’라고 표기했다.

노동자·농민·학생·전경이 어깨를 걸고 탑돌이를 하는 원통전 벽화

보광사의 원통전과 지장전 바깥벽에는 일반적인 사찰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벽화가 있다. 원통전(圓通殿)은 관세음보살이 사는 집이다. 원래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바로키테슈바라'에서 유래했는데,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라는 뜻이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관자재보살이라고도 부른다. 관세음보살은 모든 곳에 두루 있으면서 중생들의 고통을 씻어주고 소원을 들어준다.

지장전은 지장보살이 사는 집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진 모든 중생들을 다 구제할 때까지 부처가 되기를 거부하고 그들을 구원하는 일에 온 힘을 다 바치고 있다. 지장보살은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하고 있고, 저승세계인 명부(冥府)를 관장하는 진광대왕·염라대왕·전륜대왕 등 10명의 시왕을 권속으로 거느리고 있다. 그래서 지장전을 명부전(冥府殿), 시왕전(十王殿), 호세전(護世殿)이라고도 부른다.

보광사 원통전의 벽에는 정병을 들고 흰 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머리띠를 질끈 동여 맨 노동자, 삽을 든 농민, 책가방을 둘러 맨 학생, 전투모를 쓴 전경 등을 두루 보살펴주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또한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전투경찰 등 모든 중생이 어깨를 걸고 부처님을 상징하는 석탑을 빙 돌면서 탑돌이를 하는 그림도 있다.

불기 2540년(서기 1996년) 9월 7일에 완성한 이들 그림들은 마치 80년대 대학가의 걸게그림을 연상하게 만든다. 사실 걸게그림은 불교의 괘불탱화(掛佛幀畵)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원통전 벽화는 빈부와 귀천을 가리지 않는 불교의 자비정신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관세음보살의 따사로운 손길은 왕이나 왕비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 학생, 전투경찰에 이르기까지 뭇 중생들을 두루 어루만져준다. 그 손길에는 차별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러기에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떠나 비전향장기수들의 묘역을 조성했던 것이리라.

게 눈 속의 연꽃

지장전의 벽에는 모든 민중들이 용이 이끄는 지혜의 배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부처의 세계로 나아가는 그림이 있다. 반야용선에 탄 사람들의 모습은 서양인이나 중국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이를 통하여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구름 위의 허공 속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구체적 현실 속으로 내려와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1994년에 신축하기 전에는 이 건물을 ‘호세전(護世殿)’이라 불렀는데, 황지우 시인의 ‘게 눈 속의 연꽃’이라는 작품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시인 황지우는 호세전 벽화에 그려진 게 눈 속의 연꽃을 보러 문학평론가 김현과 함께 보광사를 다녀온 이야기를 시와 대담(평론)으로 남겼다.

게는 바다로 나아가는 반야용선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김현과 황지우는 결국 게 눈 속의 연꽃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 벽화를 촬영한 사진이 보광사 종무소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몇 년 전 홍수가 나서 아쉽게도 분실되었다고 한다.

계엄사령관이 석조미륵보살입상을 시주한 까닭은

보광사 뒤편 언덕에는 1980년 5월에 계엄사령관을 지낸 이희성이 시주했다는 거대한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위압적으로 서 있다. 이 미륵상은 고령산의 산세나 절집의 규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자비·우정’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마이트레야’에서 유래한 미륵보살은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년이 지나 세상에 출현할 미래의 부처라고 한다. 그는 용화수 아래에서 세 번의 설법을 통해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들을 구제할 예정이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무슨 생각으로 12.5m가 넘는 거대한 미륵보살상을 시주했을까?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죄를 씻고 극락왕생을 꿈꾸었는지, 현세의 뛰어난 무공(?)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는지 궁금하다.

우익단체 회원들의 장기수 묘역 '연화공원' 훼손

보광사 진입로 왼편 야트막한 언덕에는 장기수 묘역인 ‘연화공원’이 있었다. 연화공원에는 금재성(1998년 8월 사망), 최남규(1999년 12월 사망), 정순덕(2004년 4월 사망), 손윤규(1976년 4월 사망), 정대철(1990년 사망), 류락진(2005년 4월 사망) 등 여섯 명의 비전향장기수 유골이 안치되어 있었다.

최근 한나라당과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연화공원에 대해 색깔시비를 제기했다. 이에 고무된 대한민국애국청년동지회·대한민국HID특수임무청년동지회 등 우익단체 회원들이 지난 12월 5일에 보광사에 난입하여 빨간 스프레이를 뿌린 다음 비석을 때려 부수었다. 또한 우익단체 회원들은 장기수들의 유골을 파헤치고, ‘남파 공작원은 영웅이고 북파공작원은 역적이냐’ ‘연화공원을 찬양조성한 주지 일문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러한 사태로 인해 연화공원은 철거되었고, 장기수들의 유골을 다른 곳으로 이장하였다.

연화공원에 묻혔던 여섯명의 장기수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1998년 당시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해 유해마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비전향장기수 금재성의 자그마한 묘비를 진입로 왼편 호젓한 숲속에 세웠다.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의사 고 금재성지묘 - 선생은 일제강점하 민족해방투쟁으로 3년의 소년옥과 해방 후에는 조국통일을 위해 57년 투옥되어 30년의 형옥 속에서도 전향을 하지 않고 당신의 지조를 지키며 빛나는 생을 마치다. 부인 이명숙, 아들 금환·금충렬, 딸 금두심”

금재성은 1924년 충남 대전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한 다음 해 온 가족이 함경도 원산으로 이사했다. 해방 전 원산에서 노동운동에 가담한 그는 1944년 금촌 소년 형무소에 투옥되었으나 해방직후 출소 했다. 출소 후 원산으로 돌아가서 45년 5월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해방 후 독찰대(헌병) 원산지구 대장으로 있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인민군으로 참전하였다.

정전협정 이후 인민군을 제대하여 원산 주을전기전문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던 금재성은 1956년 평화통일을 선전하는 정치공작원으로 선발되어 고향 땅 대전으로 내려왔다. 남파된 이듬해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그러나 유신시절의 악법 가운데 하나였던 사회안전법으로 다시 청주보호감호소에 수감되었다가 1989년에 사회안전법이 폐지되어 출소했다. 수감 중 그는 비인간적인 전향고문에 저항해서 싸웠다. 출소 후에는 췌장암으로 오랜 기간 병마와 싸우다가 1998년 8월 17일에 세상을 떠났다.

중생들이 사는 세상은 여러 가지 형상이 있으나…

1999년 12월 11일에는 87세의 비전향장기수 최남규 노인이 사망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오갈 데 없는 그의 유해를 또 다시 보광사에 안치했다. 최남규는 청진교원대학 지리학교수로 일하다가 1957년에 소위 ‘평화통일을 위한 대남 정치공작사업’에 동원되었다.

남파된 직후에 체포된 그는 비전향자라는 이유로 29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징역을 살았다. 1989년에 사회안전법이 폐지되어 출소한 그는 오랜 옥고를 치른 후유증으로 폐렴·중풍·치매를 앓다가 1999년 12월 11일 서울의 보라매병원에서 사망하였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은 작가 류시춘이『안개너머 청진항』(창작과비평, 1995)이라는 제목으로 소설화시키기도 했고,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이 엮은『현대사 증언록 1 ; 끝나지 않은 여정』(대동, 1996)을 통하여 알려지기도 했다.

정순덕은 1963년에 지리산에서 체포된 여성빨치산으로 22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손운규는 빨치산 출신으로 유신정권의 조직적 전향공작과 고문·폭력 등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1976년에 사망했음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밝혀냈다. 정대철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전한 빨치산으로 21년6개월 동안 투옥되었다. 류락진은 빨치산·혁신정당·호남 통혁당 재건위·구국전위 사건 등으로 모두 4차례에 걸쳐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남과 북은 이들을 서로 상반되게 평가하고 있다. 남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간첩’ 또는 ‘빨갱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북에서는 ‘통일애국투사’ 또는 ‘의사’로 찬양하고 있다. 이처럼 분단과 냉전이 만들어낸 적대의 골은 도저히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깊기만 하다. 아마 옳고 그름을 따져 이들에 대해 통일된 평가를 내리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전쟁의 당사자들이 옳고 그름을 따져서 화해와 평화를 이룰 수는 없다.

종교의 역할이 바로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광사 원통전 벽화의 화기(畵記)에는 “중생들이 사는 세상은 여러 가지 형상이 있으나 반드시 부처님의 법 가운데로 돌아온다(衆生世界諸形相 必竟歸來佛法中)”는 글귀가 적혀 있다. 그러기에 아미타불과 관음보살은 따스한 손을 내밀어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계엄사령관 이회성, 노동자, 농민, 학생, 전경, 비전향장기수뿐만 아니라 소, 말, 개, 돼지, 새, 물고기까지 세상의 모든 존재를 두루 어루만져 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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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안재성의 소설 <경성 트로이카>를 읽으며 문득 떠오른 분이 있어 검색하다가
파주 보광사의 연화공원과 원통전 벽을 알게 됐다.
오래 전, 윤후명의 무슨 소설('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였던가?)을 읽다가
아주 상세하게 소개된 세종문회회관 외벽의 승천하는 선녀들 부조가 
그렇게도 보고싶더니만......
그 소원을 푸는 데 5년 걸렸다.

바다야 항상 좋지만 가을에는  山寺가 더 운치있다.
가을이 저물기 전에 꼭 가서 보고 싶다.
그 정다운 벽화를, 숲을, 절집을, 그리고 묘역을......





보광사 대웅보전 뒤......

 


보광사 원통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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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를 시작했어요.
이제 3주 정도 되었군요.
뭐 매일 하는건 불가능하고 일주일에 두번씩...
워낙에 안 움직여주던 몸에 이게 어딘가 싶어 일주일에 딱 이틀만 한답니다.
뭐 그것도 벌서 결석을 두번이나 했구만요.

어쨋든....
수십년간 구부러져 있던 뼈들을 온통 바로 바로 펴려니 온 몸이 비명을 지릅니다.
남따라 할 것 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만큼만 하라지만 그것도 저에겐 너무 큰 고통이예요.
거기다가 같이하는 열댓명의 사람중 가장 처지는 부진아의 아픔까지.... ㅠ.ㅠ

더군다나 오늘은 마주보고 하자는데 딱 마주본 사람이 가장 우등생이었다니....
거의 연체동물 수준으로 몸이 막 휘어지는데....
선생님한테 손을 번쩍 들고 짝이 맘에 안든다고 바꿔달랬어요.
묵살당했어요. 흥!!!

요가를 하는 내내 드는 생각
"내가 내 몸을 이렇게 확대해도 되는거야?"

요가를 하고 나서 드는 생각
"건강하게 잘살아보겠다고 이 짓 하다가 교통사고 나서 죽으면 무지 억울하겠다."

그래도 요가의 효과는 있긴하네요.
일단 늘 온몸이 찌뿌둥하던게 좀 덜해졌고,
결정적으로
나이보다 한 10년은 넘게 먼저 찾아온 오십견 증세 - 어깨에 맨날 한 5kg짜리 쌀푸대를 얹고 다니는 듯한 증상이 한 2kg짜리 쌀푸대로 바뀌었어요.
그놈의 쌀푸대를 완전히 치우는 날까지 어쨋든 요가는 요만큼이라도 계속할랍니다.
결국 계속 내 몸을 학대하겠다는 말이구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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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 2006-09-2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홧팅!!!(저, 저도 요새들어 헬스 다닌다는....)

바람돌이 2006-09-29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연사랑님도 홧팅!!! 저는 헬스장은 만약 다닌다면 아마 한달의 3분의 2는 결석할 것 같아요. 지금 요가하는 것도 직장에서 업무 마치고 선생님 불러서 하는 거니까 하지.... ㅠ.ㅠ

실비 2006-09-2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조금 고생한다고 느껴도 시간 좀 지나면 몸매가 이뻐진다고 할까요..
저 한달해봤어요..^^;;;;;

바람돌이 2006-09-29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님 / 아니 한달만에 예뻐질 몸매라면 요가같은거 안하셔도 되겠구만요. 저는 한 10년쯤 하면 나아질라나요? ^^

세실 2006-09-29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가끔 옥주현비디오 틀어놓고 하는데 제법 땀도 나고, 유연성도 생기는 것 같아요~~~ 쌀푸대가 점점 줄어든다니 다행입니다.
부담없는 운동중에 하나인듯 합니다. 바람돌이님 화이링!!!

내이름은김삼순 2006-09-29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가를 한번도 안 해봤는데,,제가 몸이 한 뻣뻣하거든요^^;;
바람돌이님, 저도 홧팅입니다! 요가로 예뻐진 그리고 다듬어진 몸매도 공개해 주실꺼죠?^^

sooninara 2006-09-29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팅!! 저도 요가반에서 가장 지진아였어요.ㅠ.ㅠ
그 설움은 정말..말로 표현을 못하죠?
그래도 쌀푸대를 없애는 그날까지..바람돌이님이 연체동물이 되는 그날까지..호호
열심히 하세요.

반딧불,, 2006-09-29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제가 아마 그럴 듯 합니다.
우쨌든 화이팅!!!

BRINY 2006-09-2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여름에 더위 먹고나서 요가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고 있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요. 추석 뒤에는 꼭 시작해야할 듯.

waits 2006-09-29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바람돌이님 반가워요! 저도, 금연을 강권하는 사람들한테 항상 얘기하거든요. "... 교통사고 나서 죽으면 무지 억울하겠다." ㅎㅎ 그래도 요가 열심히 하셔요. ^^

클리오 2006-09-29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가 같은거 하고나면 몸도 정신도 훨씬 가벼워지던데요. 규칙적인 운동이 좋다하고, 직장에서 한다니 열심히, 꾸준히 하세요... ^^

바람돌이 2006-09-29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저의 뼈와 살들은 부담스럽다고 비명을 질러요. 집에서 하신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저는 천성이 워낙 게으른지라 집에서는 그저 뒹굴거리는게 제일 좋아요. ^^
속삭인님/저도 한 3년하면 님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3년이 아니라 3개월이 목표입니다. ^^
김삼순님/일주일에 이틀 해서 몸매가 어떻게 되리라는 기대는 아예 안한답니다. 저는 오직 제 어깨에 쌀푸대 치우는게 목표예요. ^^
수니나라님/오 반가워요. 지진아끼리..... 근데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아닌 사람들이 정말 많던데요. ^^
반딧불님/어쨌든 화이팅 고맙습니다. ^^
브리니님/근데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요것도 안맞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뭐 시험삼아 한달만 해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나어릴때님/저는 금연 강권안하는데요. 뭐 어차피 한 번 사는거 그러게 좋은걸 안하면 죽을때 억울해서 어떡하겠니 뭐 이런 생각? ^^
클리오님/네 열심히 할게요. 절대로 도중하차 안하고.... 일단 결심은 빵빵합니다. 요가 매트도 새로 샀으니 돈이 아까워서.... ^^

내이름은김삼순 2006-09-30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늦은 새벽까지 안 주무셨군요, 주말인데 늦잠 주무셨을까요? 아님,학교 가셨나?^^ 님의 어릴적 이야기 들으니 저도 잼있었어요, 본전 뽑기 위해 보통 4시간이란 말씀에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요, 오늘 다녀오니 목욕탕 3천원밖에 안 받는거 있죠? 너무 싸요~ㅎㅎ 님처럼 4시간이면 본전 뽑고도 남겠죠?^^;; 암튼 즐거운 주말 되시길^^ 요가도 열심히^^

전호인 2006-09-30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많이 학대하셔도 괜챦을 듯 합니다

바람돌이 2006-09-3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순님/어젯밤에 너무 늦게 자는 바람에 오늘 아침 출근해야되는데 늦잠자서 죽는줄 알았습니다. 우리집 애들은 주로 할머니랑 동네목욕탕을 가는데 한 번 가면 안올려고해서 할머니가 달래는데 애를 많이 먹는다죠. 저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목욕탕을 무지하게 좋아합니다. ^^
전호인님/무술로 단련된 님이야 몸의 학대가 익숙하시겠지만 저는 지금만으로도 죽을 지경입니다. 더 이상은 무리인줄 아뢰옵니다. ^^

내이름은김삼순 2006-10-01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님아~아직 안 주무시고 계셨나요? 전 목욕 갔다와서 낮잠을 자뒀더니 잠이 또 안 오네요,,ㅠ 님의 말씀에 빨리 <걸>읽고 싶어져요^^ 라라피포 보고 저 정말 충격이 좀 컸다죠,,표지부터 빨간색에 요상한 형체가 뭔가 있겠다 싶었는데 첫편부터 아주 변태같은^^;;
아,,저도 빨리 자야겠어요, 오늘은 일요일이니 님 푸욱 늦잠좀 주무시길,,아셨죠?^^ 그리고 행복만땅 10월 시작하시길,,

바람돌이 2006-10-0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순님 늦잠은 커녕 내일 아침은 더 바쁘게 생겼습니다. 내일이 예린이 유치원 운동회날이거든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온 집안 식구 출동입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동생네 아이랑 같은 유치원이라서 도시락은 동생이 싸기로 했다는거죠. 저는 과일과 음료수 과자..... 님은 정말 10월에 행복만땅이어야 할텐데.... 그쵸? ^^
걸은 라라피포와는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라라피포에 비해서는 모범생스럽다고나 할까요? ^^
 
역사용어 바로쓰기
박명림, 서중석 외 지음 / 역사비평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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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의식을 구속하고 제약한다.
더군다나 역사용어는 당연히 그냥 어떤 사실을 단순히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건을 어떤 말로 이름지를 것인가에는 그 사건의 성격과 평가가 모두 들어있다고 봐야한다.
19세기 동학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농민항쟁의 표현법인
동학농민운동, 농민반란, 갑오농민전쟁은 이 사건에 대한 전혀 다른 관점을 표현하고 있다.
농민반란을 제끼고 얼핏 비슷해보이는 동학농민운동과 갑오농민전쟁만 비교하더라도 항쟁의 주체와 주요성격을 누구를 중심으로 볼것인가에 대한 아주 큰 이견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역사용어 표현을 쓰기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무지함을 통탄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용어들을 별다른 생각없이 써왔는지...
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생각의 방향을 바꾸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음도 느끼게 된다.
역사용어라는 것이 단순히 용어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관의 문제로 나아갈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  - 삼국시대에 대한 문제제기
사실 삼국시대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래된 것이었고, 따라서 교과서는 그에 대한 답을 준비해놨다. 즉 가야는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뭐 나도 솔직히 여기에 대해서 딱히 동의한다기보다는 별 생각이 없었다.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그런 생각이 얼마나 정치 중심적이며 지배층 중심적인 생각인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왜 한 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정치제제나 지배층의 지배력 정도라는 한 가지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져야 하는가? 그들이 이룬 사회체제와 문화의 성숙도는 왜 일고의 가치도 업이 배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 자체를 가로막는 대답이 바로 저 중앙집권화란 개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중앙의 권력집중에 너무도 익숙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저 대답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 건 아닌지.... 생각의 전환은 늘 쉽지 않다. 그럼에도 늘 필요한 것이다.

위의 삼국시대 용어문제와 통일신라시대라는 용어문제를 제외하면 나머지 책의 내용은 모두 근현대사에 해당한다. 아무래도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다 보니 왜곡이나 용어의 혼란이 가장 심할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다.

이 책의 내용들은 일률적이지는 않다. 책의 머리말에 보면 전체 내용을 5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1. 그동안 통용되어온 기존의 용어를 비판하고 새로운 용어를 제안하거나 대안 검토를 제안한 경우
     - 삼국시대를 사국시대로, 신사유람단을 1881년 일본시찰단으로, 소군정의 실체를 묻고 소군정이라는 말 자체가 인정되지 않음을 얘기하는 경우, 외국 국가명에 들어가는 관습적 이미지를 바꿀 것을 제안하는 경우같은 것들이다. 이 중에서 외국 국가명 표기법에 대한 문제 제기는 참 신선했다. 관습이니까 뭐 그렇게 별 생각없이 써 왔었고 고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제기를 하기가 어려웠으리라 보이는데 그 관습 자체도 필요하다면 바꿔야 함을 역설한것이 좋았다고나 할까...

2. 혼용되고 있는 용어들을 소개하고 바람직한 용어를 대안으로 제시한 경우
  - 위안부, 정신대, 공창, 성노예는 모두 같은 사실을 지칭하고 있으나 혼용되어 쓰여지고 있다. 역사적인 상황을 정확히 고려한다면 군대 성노예가 맞는 표현이나 그 단어가 주는 어감의 섬뜩함이 현재 살아계신 당사자 할머니들에게 또다른 아픔이 될 것을 고려한다면 아직은 군 위안부로 그대로 통용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라는 말에 동의한다. 역사용어의 엄정함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
또 한 예로 무정부주의와 아나키즘이 혼용되고 있는데 무정부주의라는 말이 그 부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말이라는 역사적 연원을 밝히면서 아나키즘의 내용을 다시 정리해내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읽다보면 용어의 정리속에서 역사적맥락을 다시 정리하기에도 깔끔한 책이다.

3. 혼용되고 있는 상이한 용어들을 소개하고 이 용어들이 사용되는 담론의 맥락을 비교분석한 경우
   --- 특별한 대안이 제시되어있지 않고 그저 각 용어들이 사용되는 맥락을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경우이다. 마지막에 소개된 중국애국주의의 실체: 신중화주의, 중화패권주의, 민족주의를 인상깊게 읽었는데 아무래도 동북공정이니 해서 시끄러운 덕분이다. 이것은 용어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재의 중국의 애국주의를 어떻게 볼것인가의 관점을 얘기하고 있다. 결론은 중화패권주의나 신중화주의로 보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앞서가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 현재의 중국의 애국주의는 민족주의의 수준에서 얘기할 수 있으며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더 두고봐야하지만 그렇다고 미리 앞서가서 난리를 부릴 이유는 없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논리에 우리가 그대로 휘말려드는게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어쨌든 제발 동북공정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그만했으면 좋겟다. 지금은 차분하게 학문적인 대응과 토론이 필요한 단계가 아닐런지....

4. 의미변천사를 포함하여 기존 용어의 의미를 상술한 경우
책의 전체 내용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쉽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다. 역사적으로 백성, 평민, 민중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 지를 적은 글이라든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시대에 따라 어떤 방법으로 쓰여져왔는가 같은 내용들이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의사와 열사는 어떻게 다른가" "양력과음력'의 사용 같은 경우도 편하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5.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경우
해방공간에서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과를 둘러싼 찬/반탁운동에 대해 찬탁이라는 용어가 성립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당시의 사회상과 좌우익의 대립을 다시 한 번 차분하게 정리하는 글도 괜찮았고, 한국전쟁을 표현하는 6.25라는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반공적, 냉전적 논리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글도 좋았다. 또한 6.25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새로운 평화의 페러다임을 제공하는 논리도 신선했다.

워낙에 많은 필진들이 참가하다보니 일관된 관점이나 서술방향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 대해 용어를 통해 사고의 전환이나 패러다임의 변화를 고민해볼 수 있게 하는 글들이 많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의 모든 글들에 동의하는것은 아니고 또 어떤 부분은 지나친 문제제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대부분이 고민을 하고 새롭게 생각해야할 이야기들이었다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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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0-15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아 갑니다. 축하드려요^^

바람돌이 2006-10-16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잠 안 올때 아무곳이나 펼쳐서 한 장씩 읽어나가도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도 하구요. ^^
 

9. 무정부주의와 아나키즘
* 아나키즘- 정당한 국가란 있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사회 내의 제도들에 대한 모든 정치적 사회적 강제의 폐지를 요구하며, 더 나아가 인간의 인간에 대한 모든 강제적 권위행사를 부정했다. 따라서 아나키즘이 지향한 사회는 자유로운 개인이 적정규모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연대하여 점차 큰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데 있었다.
흔히 생각되어지듯이 아나키즘이 '무정부주의'로 번역되는것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무정부주의라는 용어는 188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번역어로서 '무정부혼란상태'라는 혼란이 강조된 의미의 번역어이다.
하지만 권력에 대항한 아나키즘의 목표는 '무정부' 상황에 놓이는것이 아니라 권력의 분산에 그 주안점이 있었다.오늘날 아나키스트는 '자유사회주의', '자유공산주의'등의 용어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우리나라 식민지 시기 조선의 아나키스트는 테러리즘과 결합했다.(김원봉, 윤세주 등의 '조선 의열단') 이들의 테러는 테러 그 자체가 아니라 선전수단으로서의 테러의 역할을 강조. 봉기나 총파업같은 민중의 직접행도이 계속해서 일어나서 모든 민중이 참가하게 되면 결국 일제의 식민지 권력과 자본주의 사회는 타도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식민지 아나키스트들이 이후 개인 단위의 테러리즘 대신에 군사훈련을 바탕으로 한 무장투쟁으로 바꾸고 점차 사회주의적 성향을 지닌 정당형태로 변화해간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오늘날 개인의 자율성과 창조성을 강조하는 아나키즘은 국가사회주의 붕괴이후 전일적 체제로 자리잡은 세계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자치, 민주, 환경드으이 과제를 해결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해 줄것이다.

10. 반탁은 있었지만, 찬탁은 없었다
흔지 1945년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과인 신탁통치안에 대해 우익과 좌익이 반탁과 찬탁의 논리로 대응했다는 것은 하나의 상식처럼 통한다. 그것을 상식으로 전파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역시 국정 국사 교과서다.하지만 정확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찬탁이라는 용어는 성립하지 않는다. 좌익이 주장한 것은 모스크바 3상 협정에 대한 지지였지 찬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모스크바 3상협정의 내용인데 그 내용은,
첫째 임시 조선민주주의 정부를 조선인들로 조직한다.
둘째, 미소공동위원회를 조직하고 조선의 민주적인 정당 및 사회단체와 협의하도록 한다.
셋째, 최고 5년을 기한으로 하는 한반도에 대한 4개국 신탁통치 협약을 조선임시정부와 협의한 후 미영소중 4개국에 제출한다는 것이다.
결국 당시의 열강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던 한반도의 상황에서 통일정부로 나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인데 주목해야 할것은 셋째항이 절대적인 결정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익은 3항을 절대적인 결정사항으로 왜곡하고 좌익의 의견을 찬탁으로 몰아부쳐 나라를 팔아먹는 것으로 흑색선전을 남발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은 남북의 분단이라는 상황을 낳고야 말았다. 따라서 찬반탁운동은 찬탁이라는 말이 내포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고 역사적 상황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이제 '3상협정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으로 표현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1. 한국전쟁/6.25를 기억하는 방식
세상에 전쟁의 시작을 기념하는 나라는 없다. 그것도 내전의 시작을.... 6.25 한국전쟁에 대한 필자의 다른 의견들도 경청할 만했지만 남한의 6.25기념일을 폐지하고 북한의 7.27 전승기념일을 역시 폐지하고 전쟁이 끝난 7월 27일을 남북공동으로 '한반도 평화의 날'로 설정, 전혀 다른 의미로 기념하자는 말이 와닿는다. 아 이런 발상의 전환도 있구나싶은 생각.

12. 외국 국가명 표기를 바꾸자
현재는 우리나라의 공식적 외국어 표기는 인명이나 지명에 대해 소리나는대로 표기한다는 원칙을 공포한 바 있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써오고 있는 국가의 명칭에서 한자어로 표기된 것을 음역하거나 의역하여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 영구, 중국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명칭들은 19세기 말에 대부분 정착된 것들인데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쓰여지고 있다. 필자는 바로 이 관습에 의문을 제기한다. 뭐 여러번 얘기된 것이기도 하지만 미국이라는 이름에 어쩔수 없이 풍겨지는 아름다운 나라라는 이미지. 중국이라는 말에서 또한 감지되는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의 이미지.... 관습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관습은 또한 만들어 나가는 것. 원래 그들의 발음대로 유에스에이나 쭝궈 같은 용어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동의한다.

13. 간도, 간도출병
문헌에서 '간도'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880년대이다. 이 시기 간도는 두만강 맞은 편의 개간지를 가리키던 것인데 이후 일본이 간도문제에 개입하면서 그 범위가 남만주 일대로 확대된다.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간도 되찾기를 주장하는 이들의 인식은 일본의 간도 인식에 기반해있다.간도협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간도되찾기'를 주장하는 이들의 국수적인 고토 회복 의식은 간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중국측의 입장에 반대하면 할수록 만주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서 간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논리와 공명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간도문제는 좀더 공부가 필요하다. 지금 현재의 교과서는 아주 애매하게 처리해놓은 상태. 백두산 정계비를 근거로 간도가 우리땅이다라고 하고 일본의 간도협약의 불법성을 강조하지만 교과서 서술 자체가 헛점이 너무 많아 어디서 치고 나와도 무너지기 딱 알맞다.아니 애초에 남만주 일대를 우리땅으로 설정하는 논리 자체가 결국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다. 간도는 독도와 다르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그건 그렇고 공부는 해야겠구만....

14. 중국 애국주의의 실체
현재의 중국애국주의를 보는 우리나라의 관점은 '신중화주의론'내지는 '중화패권주의론'으로 보는 관점이 하나다. 주로 동북공정에 피튀기며 분노하는 주류 언론과 한국의 중국 연구자들이 보고 있는 시각이다. 다른 관점 하나는 중국의 애국주의는 아직은 민족주의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중국의 애국주의를 신중화주의나 중화패권주의론으로 보기 위해서는 중화주의의 핵심인 화이사상과 중국중심의 위계적 세계체제의 구성노력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현재 중국의 행보에는 어디에도 그런 관점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애국주의는 중국민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데는 관심이 있지만 서구 중심주의와 같은 계서적 차별의식으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다. 또한 중국은 미국과 달리 일방적으로 타국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거나 자신들이 규정한 민주주의적 가치 실현을 표방하며 군사력까지 동원해 특정한 국가를 자국의 이해관계의 희생물로 삼는 역사는 만들고 있지 않다. 그외 중국의 애국주의 교육이나 동북공정도 보다 차분히 들여다보면 아직은 팽창주의적이라기 보다는 발전주의적 제3세계 민족주의에 보다 가까운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애국주의는 민족주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중화주의로 보는 것은 어쩌면 중국이 중화상상을 가지고 있던 중국의 연속이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는 단절의 역사를 가져왔다는 것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태도일 수 있다. 또한 그 연속선상에서 지나치게 미래에 그러하리라는 추측으로 중화주의라는 딱지를 세우는 것은 성급한 오류 내지는 중국을 미리 견제하고자 하는 진짜 패권주의 국가 미국의 논리를 그냥 따라가는 것에 다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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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9-28 0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정리해주시고 계시네요. 감사해요^^ 전 보관함에 두고 아직 사보지 못했거든요. 리뷰도 기대합니다.

바람돌이 2006-09-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이 카테고리는 정말로 저의 주관적인 책 정리라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뭐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도 제가 잘 아는 얘기나 아이면 저에게 정리의 필요성이 없는 부분은 다 빼버리니까요. 그래도 뭔가 한가지라도 다른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다행이고요. ^^ 글구 리뷰도 하는김에 어젯밤에 그냥 써버렸답니다. 덕분에 오늘 늦잠자서 아침에 무지하게 허둘거렸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