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는 남성의 제국을어떻게 여성이라는 젠더의 균열을 통해 해체할 수 있을지 평생고민했다. 누구도 식민지를 이야기하지 않을 때, 여성이라는 존재에서 식민성의 기원을 발견했다. 이 차별의 구조를 바꾸는 일에 모든 열정을 바친 울프의 삶과 사상은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귀감이 된다. - P7
울프는 인상파 화가들과 자신의 글쓰기를 나란히 놓고자 했다. 울프에게 ‘모던 픽션‘은 인상파의 그림처럼 삶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삶‘이란 약동하는 생명 자체를 말한다. 모던 픽션은 주관의 눈을 배제한 객관적인 대상의 움직임만을 포착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 객관적 대상화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간의 주관마저 일종의 흐름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 P17
울프는 전통적인 소설 작법에 강력하게반발했다. 그에게 근대는 단단한 구조를 가진 소설로 담아낼 수없는 흐르는 세계였다. 급변하는 근대의 디테일을 잡아내려면 소설이 형식을 허물고 유연해져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울프는 에세이 곳곳에서 오래된 것과 단절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울프만큼 모더니즘의 이념을 비타협적으로 주장하고 실현해나간아방가르드 vant-garde (기성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혁신적 예술을 주장한 예술 운동 또는 그 유파)도 드물 것이다. - P23
레너드가 밝히고 있듯이, 울프의 일기는 마치 렘브란트의 ‘자화상‘ 처럼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태도 변화를 잘 보여준다. 그의일기는 방대한 양 때문이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의 소설과 씨름한울프의 모습을 증언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기는 그의 글쓰기에서 부가적이거나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글쓰기를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이런 의미에서 일기는 울프의 글쓰기에서 대체보충 supplement 이지 않았을까. - P30
그의 모더니즘은 전통의부정을 뜻한다기보다 글쓰기의 의미 자체를 재구성하는 쪽에 가까웠다는 진실 말이다. 그 재구성의 방향은 나의 의식‘을 중심에 놓는 것이었다. 그러나이 나는 근대 부르주아 미학이 옹호한 ‘성숙한 자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으로서 글을 쓰는 울프에게 ‘성숙한 자아는 이미 남녀라는 균열을 은폐하고 있는 환상이다. 울프에게 글쓰기는 훨씬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기의 재구성‘을 지향한다고할 수 있다. - P35
울프의 모더니즘은 ‘신여성‘이라는 남성적 시선의 대상화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여성의 관점에서 세계를 재구성하려는시도였다. 여기에서 여성의 관점은 단순하게 남성과 형평성을 고려해서 여성의 역할을 재규정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더 나아가서 남녀라는 구분 이전의 상태를 전제하는 것이다. 사회에 진입해 남녀로 나뉘는 순간, 이미 차이는 존재에 깊숙하게 새겨진다. 이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사회제도가 바뀌어야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래서 울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여성을 여성이게 만드는 규범 자체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 P38
앞서 이야기했지만, 울프의 글은 일기와 소설, 에세이로 분류할 수 있다. 셋은 따로 존재한다기보다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일기는 자기 자신의 치유를, 소설은 수준 높은 미학을, 에세이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확장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에세이야말로 이런 울프의 참여 의식, 다시 말해 정치성을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물이라는 생각이다. - P52
울프는 책을 잘 읽으려면 마치 자신이 그 책을 쓰는 것처럼 읽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법정에 앉아 있는 판관이 아니라 법정에선 피고인처럼 책을 읽으라는 말도 한다. 그러니까 피고인은 판관의 눈초리를 피해 이야기를 지어내야 한다. 책을 수동적으로읽지 말고 능동적으로 읽으라는 뜻이다. 울프는 법정에 선 범인의 공모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 P54
울프는 민주국가라는 대의가 제국주의의 폭력을 넘어설 수 있을지 회의했다. 그러나 결국그 가능성의 주체도 바로 대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고민은 비단 울프의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다시 울고를 읽어야 할 이유가 이렇게 또 하나 더해지는 것이다. - P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