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은 이 책을 읽고싶지 않았다. 읽지 않아도 어떤 책인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 마들렌이 일으키는 추억 1장면에 9페이지를 할애하는 극강의 주절주절과 더불어 주어 아래 서술어가 어디 붙어있는지를 매번 찾아야 하는  만연체 문장이라니..... 내가 가장 곤란해하는 대화 대상이 자기 얘기를 끊지 않고 끝없이 얘기하는 사람이다. 지금 직장에서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런 경우인데 그 사람이 얘기를 시작하면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다. 듣다보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런데 책조차도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고? 거부하겠다가 나의 확고한 결심이었는데.......


  그런데 정말 서양 쪽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끊임없이 소환되는 책이 바로 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얼마 전에 읽은 <상상속의 삶>에서도 또 이 책이 소환되고.... 하여튼 이 곳 서재에서도 이 책을 완독하는 서재인들이 제법 많아 우와 대단하다라는 감탄만 연발하고 부러움의 눈길만 보내기 어언 세월..... 어떤 일이든 자꾸 듣다보면 결국은 하게 되고, 책도 읽게 된다. <상상속의 삶>을 읽고 책나무님과 수다를 떨다가 그럼 우리 그냥 읽어볼까? 혼자서는 힘들 듯하니 물귀신처럼 이미 1권을 읽은 책나무님을 끌어들여 우리 둘이서 한달에 1권 읽기 어때요라고 내가 내 발등을 찍고야 말았다. 맘씨 좋은 우리 책나무님은 또 막 호응해주시고.... 나의 든든한 책 동반자 책나무님 사랑해요. ^^


8월에 여행갔다온다고 좀 바빠서 3일 전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100페이지 읽었다. 예상대로 극강의 주절주절이 펼쳐진다. 


  한편 우리 할머니의 두 여동생인 노처녀들에게는 할머니처럼 고결한 마음씨는 있었지만 그 정신은 없어서, 형부가 이같이 하찮은 일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이 두 분은 고상한 것을 동경했기 때문에.......그들의 청각이 일시적으로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청각 기관을 쉬게 함으로써, 진정한 기능 수축을 시작을 감내하게 할 정도였다.......  48쪽


  그러니까 자기들이 듣기 싫은 얘기는 안 들었다는 단 한 문장으로 해결될 말을 무려 한 페이지에 걸쳐서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으며 심지어 이것을 자신들의 청각기관을 쉬게 한다는 매우 우아한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ㅎㅎㅎ 우와 프루스트는 어쩜 이리 많은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이건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한마디를 한 페이지로 늘릴 수 있는 능력이라니.....


  그런데 나 역시 지금 이런 불평 불만을 늘어놓고 있지만 사실은 좀 이 책의 매력에 빠지고 있는 중이다. 주어와 서술어로 이루어지는 단문을 가장 명확한 문장으로 높이 치는 나 같은 단순한 사람에게 프루스트의 세계는 생경하지만 매력적이다. 그의 저 주절주절을 땀 흘리면 주어 서술어 찾아가면서 해독하다보면 마치 내가 콩브레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화자가 보는 인물들은 활자 속에 박제된 인물이 아니라 모순 투성이의 인간 그 자체를 다면적으로 보여준다. 인물들이 살아서 내 옆에서 주절주절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우아하고 다정한 화자의 할머니는 좋은 책과 문장, 교양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어린 손자에게 조르주 상드의 업동이와 양어머니 사이의 근친애를 다룬 책을 선물한다. 내용이 중요한게 아니라 작가의 명성과 우아한 문체를 중시하는 할머니는 당시 전형적인 부르조아적 교양의 단면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몇 페이지에 걸쳐서 이야기되는 화자의 어머니의 굿나잇 키스에 대한 강박적 갈구는 한편으로 뭐 이렇게까지 할건가 싶다가도 내가 어린 시절 꽂힌 어떤 것에 대해서 얼마나 상상의 나래를 폈던가를 생각하면 이해못할 것도 아니다. 불행히도 나는 내가 무엇에 그리 집착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이런 강박적 갈구는 저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텐데 -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상세하게 여러 페이지에 걸쳐서 쓸수가 없을테다 - 그런 것들을 기억하고 문장으로 끝도 없이 늘어놓으면서 결국은 독자를 자기 세계로 포섭해버리는게 프루스트의 힘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쨌든 생각보다는 덜 힘들고 - 힘들지 않다는게 아니라 생각보다는 덜 힘들다는 것이다. - 생각보다는 훨씬 좋다. 내가 어디쯤에서 이 여정을 그만둘지, 아니면 책나무님 말씀대로 우리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한 사람이 되어 자랑질을 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1권을 읽으면서 확실한건 생각보다 프루스트의 문장들이 재밌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완독 청신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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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6-08-2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상상 속의 삶 읽고 잃시찾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화이팅입니다!!

건수하 2026-08-2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두 분도 같이 읽으시는군요 ^^ 저는 주술호응 맞추기가 힘들어지면 (한 페이지 넘어가는 문장이라던가) 그냥 마음으로 느끼며 읽었어요. 지치실 땐 그렇게 넘어가보셔요 ^^ 완독응원합니다!

독서괭 2026-08-22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과 책나무님도 읽고 계시군요! 저도 <Imagined life> 읽으니 계속 프루스트 나와서 ㅋㅋ 읽어야하나 싶은데.. 책이 한국에 있다는 이유로 미루겠습니다 🤣

hnine 2026-08-22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부러워라. 혼자 읽는 것과 누군가와 함께 읽고, 거기다가 의견을 서로 나눌 수 있다면, 이건 완전 다른 얘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인용해주신 부분, 아주 이 책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해주는데 딱! 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