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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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전에 저메인 그리어가 여성에게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래서 여성이 한 것이 지난 사반세기 동안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혁명을 낳았다. 여성 개인으로서, 전체 여성으로서, 이 행성에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다음 단계는 우리가 거울을 볼 때 무엇을 볼 것인가에 달려 있다.

여성이여, 무엇을 보겠는가? -458쪽


나는 이 책의 이 마지막 문장이 너무 좋다. 

문제를 문제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 어떤 억압구조도 바뀔 수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첫 발은 나의 우리의 억압을 바로보는 시선, 관점을 바꾸는데서 모든 것은 출발한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깨고 여성이 자기 존재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바로 이 "여성이여, 무엇을 보겠는가?" 아닐까?


인류 역사를 어떤 측면에서 보면 남성중심의 지배가 공고화해 온 과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계급의 발생과 동시에 소위 문명사회에서는 권력이 발생했고, 그 권력은 예외없이 남성 중심의 지배체제를 만들어왔다.

일이백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5,000년에 걸쳐서 만들어져 온 체제라는 것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성립되어 지금까지 겨우 300년간 이어져온 이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강고한지 보자.

겨우 300년짜리도 넘을수 없는 벽처럼 강고한데 5,000년의 지배체제는 어떨까?

이에 저항하는 페미니즘의 역사는 사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나 올랭프 드 구주의 여성의 인간 선언으로 기원을 얘기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사회운동으로서 등장하는 것은 20세기에 와서야였다고 할 것이다.

그 말은 이제 여성은 겨우 100년을 싸워왔다는 것이다. 

5천년과 100년이 페미니즘운동이 이겨내야할 시간의 간극이다.


단지 이러한 비교는 시간의 길이를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성 중심의 지배체제는 그 긴 시간만큼 자신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온갖 방면으로 확대 강화해왔고, 그 시간만큼의 다양성을 확보해와 여성들이 내면화하도록 강제해왔다.

시간과 공을 들인만큼 지배체제는 강고했다.

그런데도 여성들은 이 100년 사이에 많은 것을 이겨냈다. 

가부장제라는 그 끔찍하도록 강고한 체제의 균열이 시작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물론 충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도 이전의 가부장제로 역사의 흐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 운동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5천년이라는 시간은 그저 쌓인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여성이 이겨내야 할 그 시간의 간극이 정말로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

이 문제를 나는 한번도 남성 중심의 지배체제 가부장제의 반격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자본주의 체제의 과도한 상업주의의 폐해 정도로 보는게 내 인식의 다였던 것 같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수많은 여성이 저 연예인들처럼 나도 예뻐지고 싶다는 단순한 동경만으로 다이어트나 성형수술에 목숨을 걸고 덤비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그것이 단순한 동경이라면 말이다.

가부장제가 새롭게 만들어 낸 이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는 여성 전체에 대한 협박이었던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외모를 가꾸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청소년기에는 또래에서의 약자가 될 것이고, 사회에 나가서는 제대로 취직하거나 성공하기 힘들 것이며, 남성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

여성은 이 협박을 끊임없이 받고 그것을 자기 내면화해온 것이다.

그것을 부추기는 것은 또한 무수히 범람하는 포르노를 통해 여성 스스로 자기 성에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는 강박을 만들고, 여성은 남성이 지배하는 섹스로만 진짜 성적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이러한 위장은 또한 여성의 남성 의존성 - 남성의 시선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시선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수단으로 영원히 여성이 되지 않고자 하는 거식증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아 이정도면 정말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화장품 산업, 포르노 문화, 다이어트 산업, 성형수술이 이토록 미친듯이 폭주하며 성행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또한 이렇게 발달한 산업들은 여성들이 자신이 얻은 부를 오롯이 외모에 쏟아붓게 하고, 다이어트로 기진맥진한 몸은 더 큰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힘들게 함으로써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 이 세계의 정상으로 우리를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남성중심 지배체제가 5천년동안 이어왔던 지배를 '아름다움의 신화'는 너무도 유사하게, 그러면서 훨씬 더 교묘하게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는 남성지배체제 5천년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으므로 딱 그만큼 힘이 세다.

구구절절이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힘이 센지는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 생략하자.

하지만 그렇게 가부장제가 힘에 세보였지만 그것의 균열은 가부장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가부장제 네가 바로 문제야'라고 지적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아름다움이 이데올로기 네가 바로 문제야라고 지적하는 것.

우리 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를 자각하는 것.

거울을 보면서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변화를 나의 삶의 흔적으로, 내 노력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것.

그럼으로써 나의 몸을 나의 마음과 정신만큼 그렇게 같이 사랑하고 인정하는 것.

여성이 거울 속에서 봐야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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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2-26 10:05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와, 멋지고 뜨거운 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02-27 01:07   좋아요 5 | URL
이 책 자체가 멋지고 뜨거운 글이잖아요. 그러니 심지어 이 책에 얘기하는 것조차도 우리 모두 같이 멋지고 뜨거워지는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멋지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책읽는나무 2022-02-26 10: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감동적인 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02-27 01:07   좋아요 3 | URL
나무님까지 이렇게 얘기해주시니 갑자기 막 부끄러워지면서 그래도 막 좋아지는..... ㅎㅎ 역시 전 칭찬에 약한 인간이 맞았어요. ^^

미미 2022-02-26 11:25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박수를 보냅니다👏👏👏
이 책의 해제를 이 글로 바꾸었음 좋겠네요. 어떤 면에서는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가 꽤
공고하구나 느껴서 이 책을 읽으며 힘이 빠지기도 했었는데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의 성과를 보면 결코 여성이 약한 존재가 아님을 느낍니다.^^*

바람돌이 2022-02-27 01:10   좋아요 3 | URL
아이 참.... 부끄 부끄 ^^;; 전 해제에 대해서는 솔직히 별 생각없이 읽었는데 아마도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어서였던거 같아요. 어쩌면 이 책을 읽기 전의 제 수준이 딱 해제 수준이 아니었나싶은.... 다락방님 글 보면서 아 해제에 이런 문제가 있었구나 싶어 다시 보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제 글이 해제가 되는건 좀.....
여성은 이제 겨우 100년 싸워왔다 생각하면 진짜 그동안 페미니즘 운동이 이루어 온 것이 정말 엄청나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니까 우리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함께 싸워요. ^^

수이 2022-02-26 11: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는 소설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사람(타인)은 사람에게 거울이 된다는 구절이 나와요. 상대방이 제대로 된 거울을 들고 있으면 거기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한다고 해요. 여기에서 제대로 된 거울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주고 아껴주고 존중하는 관계를 뜻하기도 하구요. 나오미 울프의 이 책이 많은 여성들에게 동시에 수많은 남성들에게 제대로 된 거울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 싶습니다. 좋은 글 이른 아침 잘 읽었습니다.

미미 2022-02-26 13:05   좋아요 5 | URL
비타님! 그 소설 제목이 뭐예요? 궁금~♡

수이 2022-02-26 18:14   좋아요 2 | URL
Diasy Jones & The Six 입니다 미미님😊

미미 2022-02-26 18:36   좋아요 1 | URL
ㅠㅠ

수이 2022-02-26 19:01   좋아요 3 | URL
왜 울어요 ㅋㅋ 충분히 읽을 수 있어요 쉬워요 테일러 언니 소설

바람돌이 2022-02-27 01:22   좋아요 3 | URL
미미님과 함께 저도 ㅠ.ㅠ 비타님이 번역해줄 생각은 없으신지요. 그러면 제가 바로 읽을텐데 말이죠.
제대로 된 거울의 의미가 확 와닿네요. 내 옆의 사람들에게 좋은 거울이 되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

얄라알라 2022-02-26 11: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2월 가기 전에 여성주의.책읽기.미션 클리어.하려고 부지런히.캐치업하던중에.바람돌이님.리뷰가 독서 가이드처럼.친절하게.느껴집니다...바꾸기위해.필요한게.시선이라는.이야기가.1장 마지막.문장이었는데.바람돌이님.리뷰를 보니 마지막페이지.문장이기도 하군요...

바람돌이 2022-02-27 01:24   좋아요 4 | URL
아 저는 일단 저 혼자 생각해보려고 일부러 이 글의 리뷰는 안 읽었어요. 이제 찬찬히 다른 분들의 글들을 한번 찾아서 읽어보려구요. 얄라알라님말처럼 1장의 마지막 문장과 책 전체의 마지막 문장 두가지가 제일 와닿더라구요. 이 책에서도 줄곧 이야기하는게 결국 무엇이 문제인지를 아는 것이 변화의 시작일테니까요.

얄라알라 2022-02-26 11: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990년 이후 시점에.함몰된채 읽다가 5000년 긴 관점에서 생각하며 읽어야겠다고...이재서야2장 읽은.늦깍이는 생각합니다^^바람돌이님.감사드려요~~

mini74 2022-02-26 14:2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거울 속에서 봐야 하는 것, 뭉클하네요. 바람돌이님 ~

바람돌이 2022-02-27 01:26   좋아요 4 | URL
그래서 이제는 제 뱃살도 사랑하려구요. ㅎㅎ 나를 사랑한다는건 나를 인정한다는거고 결국은 나의 몸 역시도 나를 이루는 일부분이라는걸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거 같아요. ^^

다락방 2022-02-26 19:34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이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것이 저는 진짜 짜릿하게 기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접하고 나서야, 그러니까 보거나 읽거나 듣고 나서야 아 내가 전에는 이랬는데 하고 돌이켜 보게 되잖아요. 이 책이 바람돌이 님께 읽는동안 그런 시간을 준 것 같아서, 이 책을 제가 쓴것도 아니면서 이 짜릿한 기쁨은 제가 가져가네요.
책의 내용을 아주 멋지게 정리해주셔서 미미님의 댓글처럼 이 글을 이 책의 해제로 바꾸고 싶네요. 도대체 이런 좋은 글을 두고 이 책은 왜 그런 멍청한 해제를 쓴건지..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어 너무 즐겁네요, 바람돌이 님. 이 책이 제대로 독자를 만난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후훗.

바람돌이 2022-02-27 01:27   좋아요 5 | URL
좋은 책을 소개하는 사람의 가장 큰 보람은 그 책을 읽은 사람이 아 이책을 보고 나는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말하는거잖아요. 그러니까 다락방님이 뿌듯하고 짜릿한 것은 당연한거죠. ^^
사실 한동안 머리 아픈 책 안 읽고 싶어서 가벼운 책들만 계속 읽어왔는데 다락방님덕분에 저도 올해 여성주의 책들을 제대로 읽어보자 결심하게 되었으니 제가 더 기쁘고 감사합니다. ^^

희선 2022-03-01 0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천년이라니 그렇게 길군요 한국과 북한 역사가 거의 오천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성이 여성을 생각하게 된 건 백년이군요 백년이라 해도 시작해서 다행 아닌가 싶어요 여성이 몸이나 얼굴을 가꾸어야 한다고 협박한 거였다니... 오랫동안 그런 게 이어져 왔으니 그렇게 받아들인 건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야겠지요


희선

바람돌이 2022-03-02 01:17   좋아요 0 | URL
뭐 우리 역사가 5천년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뻥이고요. 계급이 발생한 청동기와 고조선부터 치면 3천년 정도.... 물론 구석시 신석기로 가면 훨씬 오래됐죠. ㅎㅎ 여성이 몸이나 얼굴을 가꾸는게 나쁜건 아니잖아요. 근데 그걸 자기가 하고싶어서 자신의 몸의 건강을 해치지 않고 그런다면 그건 그저 개인의 자율성이겠지만 온 사회가 그걸 여성에게 강요하고, 직장에서나 사회 일반에서 여성에 대한 평가의 수단으로 삼는 것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고찰을 이 책이 준거 같아요. 좋은 책이었고, 이런 외모강박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