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교수님을 만났다.

학교 다닐 때 나는 교수님을 잘 찾아가는 학생이 아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교수님 방에 가면 평소에 교수님을 잘 찾아가는 사람인 듯 착각하게 된다.

교수님들 방은 각기 다른데 한 가지 공통점이 책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책. 그게 내가 착각을 하는 이유일까.

 

어쨌든 어제는 결코 그 방에 함께 가리라 한 번 상상한 적 없는 친구와,

그것도 그 친구와 결코 찾아뵈리라 생각지 못한 교수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너무 재밌었다.

교수님은 책이 쌓여서 서로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테이블에

우리 둘과 마주 앉으시고 선물로 받은 건강음료를 건네시고

빡빡-담배도 피우시고-

나는 그 와중에 교수님 책 좀 주세요 ㅠ 하고 책구걸하고

결국 두 권있던 소설책 한 권을 얻어가지고 왔다.

그리고 교수님이 

꼭 유명해져야 된다고 

농담60 진담 40의 느낌으로 우리를 배웅하셨다.

친구는 이미 유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아니 너 이렇게 유명한 사람과 다니는 거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대답이..'저 얘 안 유명할 때부터 알았는데요 ㅠ'

그래, 뭐, 유메나한 히또가 저는 될 수 없지만

그래도 글을 계속 쓰지 않을까요.

그리고 교수님 평론도 이달 내로 읽을 게요-

(그냥 그때 아 진짜 좋아요! 하고 거짓말하는 게 나았을까..

여하간 솔직하게 안 읽었는데요..이래버려서;;;) 

 

교수님은 전날 술을 많이 드셔서

죽을 드시러 가시고

나는 친구가 부대찌개 사줘서 먹고

치즈사리 우동사리도 넣어서 먹고

오는 길에는 밀크티를 먹고

친구는 아메리카노

그리고 홧팅홧팅하는 분위기로 마무리하며 헤어졌다-

(그녀의 초록색 목도리가 급 눈에 선하네-)

(서로에게 주문 걸기: 잘 될 것이다아-라고)

 

 

에-

오늘 오전에

그동안 쓰고 있던 것을

일차 퇴고 했다.

안 그래도 그런 말 했는데

'이번에 다시 쓰려고 보니 나 왜 안 되는 줄 알겠더라,

아마 이것도 몇 년 후에 보면 또 그런 생각하겠지'

완벽해지지는 않겠지.

그래도 다른 거 하면서도 계속 써야지.

좋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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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1-12-15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유메나한 히또 되고 싶어요.
뭐, 사실 별로 상관 없지만.
유명한 친구가 있는 기분은 어떨까요?
전, 제 주변에 아무도 잘 나가지 않아서 너무너무 속상해요.
그리고 오늘은 안 유명한 친구와 당구쳐서 이겼어요.
전 소중하니까요 ㅋ

김토끼 2011-12-15 15:32   좋아요 0 | URL
친구가 유명하니 제 가치가 올라가요-
그렇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아 ;;
저 이번 여름에 포켓볼 배웠는데 새벽 한 시에 배워서 완전 정신없었음
저도 참 소중한데 말이죠..ㅎ

poptrash 2011-12-15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 보니 달려라 토끼 빌려 놓고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책은 연체가 되었고 도서관은 2월까지 휴관을 해버렸네요. 김토끼 님은 달려라 토끼 읽으셨어요? 혹시 김토끼 님은 달리기 잘 해요?

김토끼 2011-12-15 15:35   좋아요 0 | URL
안 믿으실지 모르지만
한 3개월동안 아침마다 조깅 40분 한 적 있었는데..
빨리 달리는 것과 오래 달리는 것 중 선택을 하라면
빨리 달리는 건 몰라도 오래 달리는 것은 그래도 못하지 않는 것 같아요.

도서관이 2월까지 휴관?(공사하나요?)
웃겨버리는군요-ㅎ

김토끼 2014-12-05 13:24   좋아요 0 | URL
아.. 요즘 달려라 토끼를 보고 있습니다.. 3년이 지났네요
 
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유없이 책을 받는 일이 있다. 일단 줬으니 돌려받지않겠다 선언하거나 빌려준다며 딱히 기한을 정하지 않아 결국 내 책장에 남는 경우도 있고 혹은 버릴 책이라며 '가질래?'하고 묻는 사람도 있다. <도쿄 기담집>도 그런 경위로 (빌렸으나 반납일은 미정인 상태로) 손에 들어왔다. 평소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그의 저작을 모두 읽어치울 열정은 없는 탓에 정말 사소한 이유, 가령 표지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식의 이유로 읽지 않은 것도 꽤 있다. <도쿄 기담집>이 대표적인 경우다. 앞서 말한대로 누가 '읽어보라'며 손에 들려주지 않았다면 새표지가 나오기 전까지 아마 읽지 않았을 것이다.(나중에 이 표지의 기괴한 매력에 끌렸지만_책을 읽기 전까지 얼마간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던 건 사실이다.)

 

<도쿄 기담집>은 일본의 도시사람들에게 일어난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물론 팩트가 아니라 픽션! 그런데 진짜 픽션이기만 할까? 그런 생각도 든다.) 중단편집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에서 '고베지진'에 관해 쓰되 직접적인 피해자를 등장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여러 단편을 한 권의 소설집에 모았던 하루키다. 그는 마치 숙제하는 학생처럼 글을 쓰지만 억지를 부려 일단 끝내자는 식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인데 그의 글은 문장마다 단락마다 성실하고 세심한 고려 끝에 '쉽게'쓰여졌기 때문이다.(하루키의 개인 편집자인 부인 '요코'가 많은 기여를 한다.)

 

여기 등장하는 다섯 이야기 <우연한 여행자>, <하나레이 만>,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시나가와 원숭이>을 관통하는 것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즉, 기담)이다. 개연성에 입각한 소설읽기를 즐긴다면 이것저것 따질 부분이 많을 것이다. 예전에 한창 소설 쓰기를 배울 때,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루키를 비롯한 일본작가들을 읽지 않았는데 일본의 사소설적 경향이 플롯을 짜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판단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소설이란 그저 읽고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더욱이 소설은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작업이기도 하다.(물론 이 과정에서 개연성이 필요하지만) 애초에 전제가 그러하니 이런 작업은 항상 실패에 이른다. 그러니까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실패를 목격하는 행위에 다름아니다. 그런 실패의 목격이 소설을 읽는 목적인 것 같기도 하다.(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소설을 많이 읽어서 그런 것일지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지만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앞에서 말한 '세심한 고려' 외에도 말이다.) 다만 질서를 갖춰 열거하는 일이 귀찮기에 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다 할 뿐이다. 여러 이유 중 하나를 말하면 그가 치밀한 척하지 않아서 좋다. (약간의 스포일러!) 핫케이크를 구워달라 전화해놓고 집으로 오던 중 계단과 계단 사이에서 사라진 남편에 대해, 정해진 자리를 벗어나 스스로 움직이는 돌에 대해, 이름표를 훔치고 달아난_게다가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원숭이에 대해 정연한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일은 힘들고, 솔직히 불편한/불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도쿄 기담집>은 그런 불편하고 불필요한 방식을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이런 일이 일어나버렸어요.. 조금 재밌긴 한데 어쩐지 이해가 되지 않아..어쨌든 시간에 맡겨볼까..' 이런 느낌, 그러니까 설명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세계에서 '(매력적으로) 뭔가를 말하지 않는' 방식을 구사하는 하루키가 좋다.

 

솔직히 구구절절 설명하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래서 저래서 그렇다는 따위의 말을 늘어놓는 자신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납득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고 (어쩌면 너무 많아) 종종 곤란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말하는 동안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무엇보다 하고 있는 말이 진심인지 알 수 없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굳이 설명하지 않고 그냥 '일어났는데 뭘 어쩌란 말인가' 싶은 태도로 일관하고 싶다. 돌이켜 보면 하루키의 그런 '마인드'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은 마인드..는 아니고, 그물에 걸렸는데 거기서 빠져나갈 생각은 안하고 그물에 그물 나름의 삶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구나, 하고 현재상황에 충실한 마인드라고 할까.

 

만약 하루키 소설을 줄곧 읽어온 사람이라면 <도쿄 기담집>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단편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에 그의 전작인 <벌꿀파이>의 소설가 쥰페이가 나오기 때문이다. 당시 <벌꿀파이>에서 쥰페이는 서른 여섯이었고 여기서는 서른 한 살의 쥰페이를 볼 수 있다. 쥰페이의 아버지가 어린 그에게 인생에서 진정한 의미의 여자는 3명이다, 하고 말하는 의미심장한 장면도 한 번 읽으면 잊기 힘들다.(문득 <위대한 개츠비>의 첫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이 단편을 읽은 날 도서관에서 <벌꿀 파이>를 다시 찾아읽었다. 몇 년이 지나, 같은 인물이 또 다른 소설에 등장한다는 것이 역시 재밌었다.(예전에 써둔 리뷰도 봤는데, 이건 재미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시나가와 원숭이>가 좋았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말은 하루키의 책 제목)을 가장한 채로 시나가와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인데, 이유없이 이름을 잊어버려서 은팔찌에 이름을 새겨 걸고 다닌다. 나중에는 원숭이를 통해 자꾸 이름을 잊어버리는 원인을 찾게 되는 줄거리다. 흔히 좋은 소설은 독자에게 '쓰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소설이라고 한다. 나는 <시나가와 원숭이>를 읽으면서 뭔가 쓰고 싶어졌다. 실제로 여러 개의 메모를 남겨뒀는데 이 메모들은 시나가와 원숭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너무 뚜렷해 내가 쓴 것이 아니라.. 시나가와 원숭이가 쓴 것처럼 여겨졌다.(?) 

 

빌린 책이고, 다 읽은 책이니 이제 돌려줘야 하는데 곧바로 돌려줄 수가 없다. 한 번 더 읽을까, 하고 마음으로 저울질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읽고자 마음 먹은 책들이 있는데 어떡할까 싶다.(정말_쓸데없는 고민_그러나 진심으로 고민한다) 음...모르겠다. 지금은 리뷰를 다 쓰고 컴퓨터를 끄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 차가운 공기 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씻고 따뜻한 밥을 먹어야지. 한 번 더 읽을지 말지는 밥을 먹고 생각해야겠다..(해놓고 다음 날 돌려줬다..) 

 

 

 

밑줄

 

"이름을 새겨 넣은 팔찌를 만든 것은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미즈키가 얘기를 끝내자, 상담원은 처음에 그렇게 말했다. "당신이 행한 대처 방법들은 모두 옳아요. 우선 실제적으로 불편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나가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요-이상한 죄책감을 갖거나, 생각에 잠기거나,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대신에, 현실적으로 문제를 대처하는 거예요. 당신은 상당히 영리하군요. 게다가 팔찌가 아주 멋지네요. 잘 어울려요."

(시나가와 원숭이,210쪽)

 

 

"아가씨와 잘 지내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어. 첫째, 상대방의 얘기를 잠자코 들어줄 것. 둘째, 입고 있는 옷을 칭찬해 줄 것. 셋째, 가능한 한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줄 것. 어때, 간단하지? 그 정도로 했는데도 효과가 없다면, 차라리 단념하는 게 나아."

"그것 참 현실적이고 알기 쉽네요. 수첩에 적어놓아도 괜찮지요?"

"나야 상관없지만, 그 정도는 그냥 머리로 외울 수 있어야 하지 않아?"

"저는 꼭 닭처럼 세 발자국만 걸어가면 기억했던 걸 다 까먹어버린다니까요. 그래서 무엇이든지 메모를 해둬요. 그런데 아인슈타인도 저랑 비슷했대요."

"아인슈타인이?"

"잘 잊어버리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완전히 잊어버리는 게 문제지."

"좋을 대로 생각해" 하고 사치는 말했다.

(하나레이 만,97-98쪽)

 

 

사실 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점괘에 마음이 끌린 적도 없다. 일부러 점쟁이에게 손금을 봐달라고 찾아갈 거라면, 차라리 내 머리를 쥐어짜내서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내려고 할 것이다. 결코 뛰어난 머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쪽이 해결하기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초능력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윤회에도, 영혼에도, 육감에도, 텔레파시에도, 세상의 종말에도 솔직히 말해서 흥미가 없다. 전혀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유의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별로 상관없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나는 다만 개인적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적지 않은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의 조촐한 인생 여기저기를 다채롭게 만든다. 그에 대해서 나는 무엇인가 적극적인 분석을 했는가? 하지 않았다. 그런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갈 뿐이다.

(우연한 여행자,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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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라트비아인 매그레 시리즈 1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의 첫 책.
<수상한 라트비아인>은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인물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가며 봐야했다.
<백년동안의 고독>이나 <카라마죠프씨네 형제들>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카라마죠프씨네 형제>들은 중도에 포기했지만..)

 

나는 본격 추리문학이 뭔지도 잘 모르고
기껏해야 읽은 추리소설이라곤 홈즈 1권인가..(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소년탐정 김전일> <탐정학원 Q> <명탐정 코난> 같은 건 
중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읽어대서_'추리'라는 항목에 특별히 거부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재미'를 느끼지도 않았는데
조르주 심농의 책도 '재미있다'는 건 아닌데
문득 깨달았을 뿐이다.
사건을 쫓아가는 것은 곧 인간의 숨은 심리를 쫓아가는 것이고
너무 휴머니즘에 젖어있는,
진지한 인간일 수록_자신의 삶에 집중 할 수록_타인의 마음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한다는 점.

 

이것은 꼭 이 책을 통한 교훈은 아니고

다른 책을 읽어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요즘 본 책들에서는 그런 것을 뚜렷하게 감지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추리문학'이 때때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면서도

작품성을 인정받는 이유가 결국 '인간의 발견'에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추리만화에서도 보면 범행을 저지른 인간들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을 알고나면 범인을 동정/이해 하게 된다.

일본 추리계의 여신(?) 미야베 미유키는 자신의 소설에

미치광이, 정신병자, 아무 이유없이 범행을 저지르는 냉혈한을 범인으로 등장시키지 않는다 한다.

자극적인 사건에만 주목하는 추리문학은 자신의 소임이 아니다는 식의 대답을 했다.

(정확한 건 기억이 안 나지만 이런 의미였다.)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으레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수상한 라트비아인을 읽으면서 나도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았고

또 생각해보면 다른 소설을 읽을 때도

마지막이 비틀린 이야기를 좋아하는 성향이다.

 

스포일러!!

하지만 이 소설에는 충격적인 반전이라 할 만한 게 없다.

그렇지만 나는 좀 충격을 받긴 했다.

그것은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 동안의 인물 간의 관계가 이래저래 얽혀 있었다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놀랐던 것은 매그레 반장이 범인인 한스와 단 둘이 밤에 남아 있을 때

한스가 권총이 놓인 침대 쪽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감한 뒤

급하게 술을 한 잔 들이킨 장면이었다.

 

그렇지만 끝 부분에서 방관자로 남으려 한 매그레에게

무책임하다는 멍에를 씌울 수는 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해선 안 될 일을

순간순간 판단하며 살아온 '형사'였을 테니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거의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판단에 옳고 그름의 여부를 따질 수가 없었다.

그 판단은 오직 한스 자신에게 맡겨야 할 문제일 수도 있다.

어쩌면 한스는 매그레 반장이

자신을 말려주기를 바랐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런 선택을 했다.

어떤 마음이었는지와는 상관없이_입안으로 총구를 들이민_

한스의 죽음으로 사건은 종결된 것이다.

스포일러 끝

 

책제가 <수상한 라트비아인>인 까닭은

단순히 범인의 행태가 '수상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 수상함은 매그레의 훈련된 감각이 발견한

범인의 두 인격에서 기인한다.



한데 피에트르-표도르는 내면적인 차원에서부터 진짜 피에트르이거나 표도르라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반장이 받은 인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었다.

즉 저 라트비아인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적 본질에서까지 피에트르이면서 동시에 표도르다!

필경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니 어쩌면 항상, 그토록 다른 두 인생을 번갈아 살아왔는지도 몰랐다.

152


 

동경하는 이를 한편으로 증오하는

기형적인 감정 혹은 그러한 습관에서

동경하며 증오하는 이는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복잡한 마음이 많은 작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이기도 하고

어쩌면 '갈등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이

이런 관계를 찾아 헤매는 건 아닌가 싶었다.

다만 그런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과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수상한 라트비아인인 한스는

쌍둥이 동생에 대한 그런 애증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한 여인(베르트)를 향한 진실한 사랑이

그에게 뭔가를 깨닫게 한 순간

그는 오래 드리우고 있던 동생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그저 자기 자신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인간의 고통은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자기 자신으로 자립할 수 없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빠른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묘사로

인물의 옷차림이나 그들이 모여 있는 장소의 분위기를

선명히 그릴 수 있는 게 좋다.

신문기자로서 1천 편의 기사를 쓴 것이 그가 글을 쓰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는데

보도기자 특유의 간결한 문구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모든 패를 다 보인 상태에서 진행되는 소설이

마지막까지 모든 걸 숨기려드는 소설보다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독자가 발견해야 할 것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사건 속 인물들의 진심이다.

(진심 쪽이 진실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


많은 수사 과정에서,

형사와 그 형사가 추궁하는 용의자 사이에 우정 어린 관계가 생성된다고 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주장일지 모른다.

한데 상대가 막무가내 짐승 같은 종류가 아니라면,

둘 사이에 일종의 친밀감이 싹트는 것은 거의 언제나 사실이다.

이는 물론 몇 주, 혹은 몇 달이라는 기간 동안

경찰과 범죄자가 서로에게만 몰두했을 경우를 전제로 하는 얘기다.

수사관은 용의자의 지난 과거를 어떻게든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한다.

또한 용의자의 사고를 재구성하고, 가장 사소한 생각들까지 내다보려 애쓰기 마련이다.

둘이 각자 밀고 당기는 게임에 모든 걸 거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대면하는 상황이란 워낙 드라마틱해서,

평범한 삶 속의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냉담함 따위는 일거에 녹아버리기 일쑤다.

이를테면 죽을 고생을 다해 범죄자를 검거하고 난 뒤부터

바로 그 범죄자를 향한 인간적인 애정을 품게 되고, 감옥에 수감된 그를 찾아가,

마침내 교수대에 오르기까지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 주는 형사들이

세상에는 부지기수인 것이다.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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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로style샐러드
-한 접시에 담은 절대 영양식!
웅진리빙하우스
 
서점에 가면 꼭 보게 되는 코너 중 하나가 요리서적이다. 직접 요리를 한 적은 많지 않은데, 샐러드 같이 간단한 것은 재료를 사다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한다. 최근에 요리를 '잘 하는' 것의 중요성을 더욱 생각하게 됐는데, 어떤 재료를 어떤 식으로 응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령 타샤 할머니가 그렇게 오래도록 날씬하고 건강하게 살면서, 정원을 꾸미고 그림을 그리고 이웃과 나눌 크리스마스 칠면조를 구우며 살 수 있던 것은 그녀가 요리를 잘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자연주의자 스콧 니어링의 부인인 헬렌 니어링도 그렇다. 그녀가 쓴 요리책인 <소박한 밥상>을 보면, 일단 그녀는 '맛'이라는 것은 재료의 신선함과 재료들 간의 적당한 조화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고, 인생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의 저자 미레유 길리아노는 뵈브 클리코의 CEO를 역임하면서 일 년 중 300일을 외식으로 보내지만 요리와 재료에 관해 명민하게 대처할 줄 알고 바로 이런 영리함이 그녀를 날씬하고 건강하게 만들었다.(그녀가 과일을 냉장보관하지 않고 싱크대에 올려둔 채로 하루를 두는 것은 기억할 만하다. 덜 익은 메론을 싱크대에 둔 채로 잠이 들면 다음 날 집 안에 향기로운 메론 냄새로 가득해진다고 하니까.)
 
이런 정보에 근거한 여러 가지 동기(건강과 다이어트, 시각적이고 정신적인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두 권의 요리책을 주문했다. <고베 밥상>과 <비스트로 스타일 샐러드>.(재밌는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인터넷 서점에 '비스트로'를 검색하면 '레비-스트로스'가 나온다.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의 저자. 그에게도 먹는 건 중요했을까ㅎ) 그 중 <비스트로스타일 샐러드>는 예전부터 서점을 오가면서 언젠가 사야지 마음먹고 있던 책이었다. 웅진의 임프린트인 웅진리빙하우스에서 발간된 이 책은 따로 저자 표기를 하지 않았고, 비스트로 스타일을 음식점을 취재해 그 음식점들의 레시피 중 몇 가지를 공개해 두었다.
책에 나온 소개를 따르면 비스트로라는 말은 '프랑스 가정식 메뉴를 제공하는 소박하고 친근한 음식점을 뜻한다. 반면, 우리가 국내에서 비스트로 메뉴를 즐긴다고 말하는 것은 어원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즐기는 모습의 단편이 반영된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비스트로 샐러드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이어진다. '끊임없이 오픈하는 감각적인 카페들이 점차 맛에 대한 집착까지 강해지면서, 비스트로의 거하지 않은 일품 요리를 응용해 카페 메뉴를 특화했다....오가닉과 웰빙 지향 추세를 적극 반영해 몸에 좋은 식재를 엄선하는 한편으로, 한 끼 식사로 손색없는 영양 밸런스와 맛, 볼륨까지 고려해 특제 샐러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잠깐 훑어봤는데 토마토와 양상추, 푸른 잎 채소, 치즈와 약간의 고기, 달걀, 양파가 필요할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살 수 있는 만큼 사서 저녁에 만들어 두고 자면 내일 아침 바로 꺼내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조금만 부지런해지면 건강하고 날씬한 삶은 멀리 있지 않다는 희망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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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양상추
에쿠니 가오리
김난주 옮김, 소담출판사, 2011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작가들이 쓴 에세이를 좋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양한 에세이를 비롯해 츠지 히토나리의 파리 체류기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작법서,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재밌게 읽어왔다. 무슨 연유인지 이번에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두 일본 작가의 에세이집이 동시에 출간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과 에쿠니 가오리의 <부드러운 양상추> 이렇게 두 권이었고, 모두 주문하려고 보니 하루키 책은 수령을 며칠 기다려야해서 일단 에쿠니 가오리의 책만 주문했다. 토요일, (난생 처음으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책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날은 너무 피곤해 집에 돌아와 씻고 곧 잠들었으므로 일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책을 풀어봤다.

일단 띠지에 걸린 작가의 프로필 사진이 바껴있었다. 단정하게 머리를 틀어올린 청순한 옆얼굴에서, 앞머리를 내리고 브라운 오렌지 계열로 염색한 짧은 웨이브 스타일. 그러나 그녀의 글에서 느껴지는 정갈함은 잃지 않았다.(사진과 실물이 상당히 다르기로 유명한 작가이긴 하지만) 친구 중에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을 좋아하는 이가 있어서 예전에 소장하고 있던 에세이집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친구에게 그 책을 준 것이 뿌듯한 한편, 문득 내 책장에 그 책이 없다는 사실이 쓸쓸할 때가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좋은 카카오로 만든 홍차 초콜릿이나, 바닐라 크림이 들어간 마카롱 같은 느낌이라 매일 먹고 싶은 건 아닌데 한 번씩 너무도 생각날 때가 있다.

그리고 오늘, 일요일 아침, 첫 챕터의 '따뜻한 주스'를 읽었다. 구름 낀 어둡고 추운 날, 개와 두 시간에 걸친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생각한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따뜻한 주스였다. 뭐가 어찌됐든 우선은 따뜻한 주스를 마셔야겠어, 그렇게 생각했다."(8,9) 그러나 그녀는 따뜻한 주스가 뭔지, 실제로 있기나 한지 모른 채로, 토베 얀손이 엮은 <무민 골짜기의 겨울>에 나온 따뜻한 주스를 상상하는 것으로 이 상상에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번 책은 출판사 측에서 꽤 신경을 쓴 모양으로 책 안 곳곳에 일러스트도 담겨있다. 예전에 배수아의 글에서 책에 그림을 담거나, 활자를 조정하는 일로 독자의 상상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읽은 듯 한데,(배수아의 소설 <붉은 손 클럽>에 그런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책과 어울리는 일러스트라면, 오히려 독자가 상상하지 못한 부분을 끌어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물론 그럴 경우가 흔치 않겠지만) 어쨌든 이 책의 일러스트의 성공여부를 떠나 덕분에 선물용으로도 좋은 책이 된 듯하고,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 한다면 속지에 이렇게 쓰고 싶다. 

'매일 조금씩, 식사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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