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그만두다>와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읽고
아침부터 빵과 커피다. 아침식사 대신이다. 지난 밤 귀가하는 길 생협에서 사온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한 권의 책을 떠올린다. 취업난과 생활고로 허덕이는 20대 중반부터 30대 초중반의 현실을 조망한 <88만원 세대>. 그 때 저자가 대학생들에게 권한 일이 커피 체인 가지 말고, 동네 작은 카페를 이용할 것과 대형 마트 자주 가지 말고 학교 생협에서 조금씩 사라고 한 것이었다. 그것이 대기업 자본 논리에 놀아나지 않고 88만원 세대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실천적 방식이란 말이었다. 그 책이 온 사회를 휩쓸 듯 반향을 일으킨 것처럼 보이던 때도 있었지만, 그 뒤 상황을 생각해보면 실상 그 책을 읽었어야 할 세대는 그 책의 제목만 읽었을 뿐이었는지 모르겠다(실천하지 못한 나도 그렇다). 오랜만에 대학가에 갔더니 스타벅스를 필두로 온갖 체인 커피숍이 즐비해 있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다른 풍경이었던 걸 생각하면, 신기한 광경이었다. 몇 년 전 그 거리를 지나면서 '우리 학교에는 스타벅스도 없어'하고 투덜대던 자신이 떠올랐다. 오 마이 갓. 그렇다고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다.
착잡한 마음의 근원은 알지 못한 채 여러 날이 지났다. 그러다 우연히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훑다가 발견한 책이 <소비를 그만두다>와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이하 '시골빵집')>였다. 얼마 전 구입한 책 <쇼핑의 기술>과 <사토 리얼리스트>와 비교하면, 이 책들은 극점에 있는 책들이었다. 처음에는 <소비를 그만두다>를 주문해 읽고 시리즈물을 찾아 읽듯 자연스럽게 <시골빵집>을 주문했다. <소비를 그만두다>는 더 많은 소비가 조장되는 세태에 대한 관찰서다. 일본의 소비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더 많은 소비로 이어지는 과정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농락당하는 소비자의 모습도 보인다). <시골빵집>은 삶-노동-소비의 연결이 일치되는 삶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두 책은 연속적으로 보면 좋다. 공통의 결론은 '더 작아지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의 허점을 이용하는 거대자본기업 논리에서 벗어나려면(이타루의 말처럼 ‘자본주의 바깥으로 탈출 하려면’) '작지만 진짜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 다소 일본스럽다 해야 할, 단순하고 명쾌한 해답이지만, 당장 우리 현실에 접목시키기는 막연하다. 하지만 '작지만 진짜를 추구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 답은 갖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 속을 들여다보면 예상치 못한 일이 삶의 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가령 삶이 노동 중심에서 소비 중심으로 바뀐 사건을 '주5일제 도입'에서 찾는다. '주5일제'의 취지는 노동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제공하자는 차원에서 시행된 국가적인 복지 시스템이다. 한국 역시 주5일제를 시행하고 있고, 주6일제는 과노동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주5일제를 시행하여 뜻하지 않게 변화된 것은 삶에 대한 인식이 노동에서 소비로 전환된 점이다. 주6일 이상을 일할 때, 하루의 휴식은 다음 노동을 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주5일을 일하게 되자, 일하는 5일이 쉬는 2일의 휴식(즉, 소비)을 위한 시간이 된 것이다. 말하자면 기업의 발전은 주5일제의 영향이 컸다. 돈을 쓸 줄 모르던 사람들이 돈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주6일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돈을 쓰기 시작할 무렵 기업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결정적으로 소비 방식을 바꿔놓았다. 광고를 통해 구매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상품이미지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비 인격이 탄생했다. 개인의 고유성은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서 좋은 물건을 사느냐 마느냐로 대치되었다. 한편 다른 이들이 갖고 있는 것을 갖고 있지 못할 때 느끼는 사회적 탈락감을 모면하기 위해 사람들은 필요치 않은 소비를 하게 되었고, 소비란 필요치 않은 것을 사는 행위라는 인식이 일반화 되었다.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라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타자화된 자신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끌고 가기 위해 우리는 지나친 노동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더 적은 삶을 원하는 것이 힘들게 된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애초에 사람은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소비를 그만두다>의 저자 히라카와 가쓰미는 말한다. ‘사람은 욕심이 많은 존재다. 주변에 욕망을 완전 긍정하는 소비문화가 있으면 평온한 삶에 만족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욕망을 내려놓기 위해 주변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 수는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든다기보다 이미 있는 것에 만족하는 습관을 기른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소비를 그만두다, 211쪽) 누군가는 ‘난 욕심이 없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욕심이 없는 상태를 욕심내고 있는 굉장한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자신을 기만하지 않기 위해 일단 인정하기로 했다. 난 욕심이 많다, 살 수도 없는 명품 가방을 인터넷으로 보고 있다,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난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 욕망을 ‘작지만 진짜인 것’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시골빵집>의 다루마리는 그런 노력의 결과이다. 특별한 삶을 살고 싶어 방황하던 젊은 시절을 보낸 이타루가 시골에서 빵 만드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궤적을 좇다보면 자본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진정한 삶을 향해 가는 훌륭한 방식을 배울 수 있다. ‘물건이 흔한 세상인지라 만드는 사람은 자기 상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차이를 부각시키는 차별화나 브랜드의 중요성을 끝없이 강조한다. 하지만 시골빵집의 관점에서 보면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별화하려고 만든 물건에도 크게 의미 있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개성이라는 것은 억지로 만든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 진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원래 가진 인간성의 차이가 기술과 감성의 차이, 발상의 차이로 이어질 때 나타나는 것이며, 필연적인 결과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제빵사의 길을 걷기 전 나는 남들과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만 생각했다. 게릴라 라이브를 감행해 학교 축제를 망친 것도 독특한 행동을 해서 튀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학 기간이 끝난 다음에는 머리 양쪽을 바싹 깎고 가운데 부분만 기르는 모히칸 스타일을 하고 다닐 정도였다. 나는 그 때 진심을 다해 나를 던질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210쪽) 시골빵집 다이마루는 모든 직원에게 매출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빵을 판매하는 건 주 4일, 나머지 3일 중 하루는 빵 만들 준비를 하고 이틀을 쉰다. 자연재배한 재료만 사용하고 천연균을 이용해 빵을 만든다(기다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정성을 들인다). 그렇게 만든 빵의 가격은 350엔 정도. 다이마루는 이윤을 목표로 하지 않기에 노력에 정당한 가격을 책정한다. 그들의 빵을 믿고, 그 노력을 믿는 사람들이 멀리에서 찾아와 빵을 산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이타루는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돈을 쓰는 방식이야말로 사회를 만든다’(위의 책, 232쪽) 그리고 이 지점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매일 인터넷을 쇼핑몰을 들락거리며 옷이며 가방이며 화장품이며 찾아보는 탓은, 근원적으로 더 좋은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소비가 과연 더 좋은 삶으로 자신을 이끄는가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돈을 쓰기만 할 뿐 산 것들을 활용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많고, 따지고 보면 옷이나 가방의 원단이나 화장품의 원재료들이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 내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게 되었다고 100% 자신할 수도 없다. 확인할 수 없으므로 광고이미지에 의존해서, 내가 산 것은 좋은 것이라고 믿게 된다. 반대로 공격적인 광고로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 것 중 상품의 공정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가. 개인적으로 그렇게까지 세세히 찾아본 적은 없다. 쉽게 확인 할 수 없기 때문인데, 그렇기 때문에 마케팅은 더 공격적이 되는지 모르겠다. 음, 그렇지만 당장 모든 소비 패턴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확인절차를 거쳐서 좋다고 판명된 것만을 산다고 하면 살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부터 시간을 들여서 하나씩, 조금씩 소비 패턴을 바꿔가면서 ‘작지만 진짜인 것’을 찾아가야겠다(그리하여 지난 저녁 오는 길에 생협에 들러 공정무역 커피와 우리밀 빵을 샀다). 그리고 내 삶도 그렇게 ‘작지만 진짜인 것’이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 부지런히 살아가야겠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마지막 장을 소재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 한 사람이라도 더 읽는다면 좋을 책이 있고, 이 책은 그러한 책이 분명하다.
우리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내딛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가능하다면 시골에서 우리처럼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면 더 좋겠다. 꼭 그 길이 아니어도 자기 안에 있는 힘을 키우고, 땅과 터를 다지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면 좋겠다.
우리 안의 힘이 당장에 꽃을 피우지는 않겠지만 스스로 자신을 키워가다 보면 언젠가는 만개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쉬지 말고, 싫증 내지 말고, 자신을 연마하면 길은 열린다.
매일 돈을 쓰는 법을 바꿔보는 것도 경제를 부패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부패하지 않는 돈도 쓰기에 따라서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돈에는 미래를 선택하는 투표권으로서의 힘이 있다. 몇 년에 한 번 있는 선거의 한 표보다 매일 쓰는 돈이 현실을 움직이는 데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믿을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정당하게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윤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고 흙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돈을 쓰는 방법이다.
돈을 쓰는 방식이야말로 사회를 만든다.
자리가 잡히고 균이 자라면 먹거리는 발효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상인과 장인이 크면 경제로 발효할 것이다. 사람과 균과 작물의 생명이 넉넉하게 자라고 잠재능력이 충분히 발휘되는 경제. 그것이 시골빵집이 새롭게 구워낸 자본론이다. 빵을 굽는 우리는 시골 변방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의 태동을 오늘도 느끼는 중이다.(위의 책, 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