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세 번 빌려보고 드디어 구입한 책이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도 없는데, 그의 소설 창작법만은 열심히 읽는다. 이 책을 읽으면 작가와 굉장히 친해진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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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포트폴리오) 마로니에북스 Taschen 포트폴리오 10
마로니에북스 편집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거울을 보는 것 같다. 뭔가 '잃어버린' 기분이 들 때 한 장씩 펼쳐본다. 이상한 위로의 힘이 있는 그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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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인간
아베 고보 지음, 송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표정 없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눈. 

일방적으로 이쪽에 보이는 역할을 강요하는 오만한 눈. 

이 녀석, 어느 틈에 이런 수법을 터득했을까? 

말할 필요도 없이 표본이 된 것은 나다. 

113


상자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상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상자에 알맞는 인간이 필요하다. 아마도 이것의 반대, 그러니까 먼저 인간이 필요하고 그에 알맞은 상자가 필요하다는 명제는 어떠한 결론도 도출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인간은 상자에 맞춰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상자가 인간에 맞춰진다면, 그러한 상태는 너무나 '주체적'이라 '상자인간'으로 불리기 어렵다. 이것이 아베고보의 <상자인간>을 읽으며 받은 느낌이고, 이 느낌의 경로는 그다지 주체적으로 작용되지 않았다. 


소설은 독자에게 주체적으로 해석하기를 원하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 독자가 지극히 수동적으로 작품에 흡수되기를 바랄 수도 있다. 상자인간에 대한 독자마다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여기에 반박하고 싶은 기분이다) 왜냐면 상자인간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는 주어진 세계를 자발적으로 확장/축소할 수 없고 오직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가 우리를 확장/축소한다. 이때 우리는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쾌락을 적정선까지 만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움직이는 세계는 거기서 거기다. 아무래도 더 나아가거나 퇴보하는 느낌을 받기란 어렵다. 우리는 인지하는데, 그것은 세계가 더 나아가거나 퇴보하는 순간에 대한 인지일 뿐, 자신의 주체적인 움직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세계-나' 관계나 '주체-객체'에 대한 담론이 아니라 오직 상자인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이 상자인간에게 주체적으로 주어진 행위는 '쓰기'와 '엿보기'이다. 상자에 엿보기용 창을 뚫어 그곳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상자인간은, 엿보기용 창에 알맞게 진화하고 또 그에 알맞게 퇴화된다. 현대사회의 관음증에 대해 누누히 전해오는 그런 이야기와 비슷하다. 아베고보는 텔레비전 역시 그런 엿보기 심리에서 애용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쪽은 볼 수 있다, 그러나 보이는 쪽은 이 쪽을 볼 수 없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명확히 구분된 세계에서 보는 자는 항상 우위에 있다. 보이지 않으면 열등해질 이유가 없고 이러한 열등의 제거로서 엿보기 심리는 현대사회인이 상용하는 무엇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상자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보이지 않는 입장이 되는 것. 그러나 오직 보는 입장이 되는 것.


필사적으로 상자에 계속 들러붙어 있기 위해 

이대로 쓰는 걸 언제까지라도 계속할 심산이 아닐까.

136 


그렇지만 보이지는 않고 보기만 하는 삶에 어떤 의의가 있을까. (어쩌면 이것은 유의미한 삶이라는 명분에 지배당한 현대사회인의 노이로제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무의미'할까. 나는 여기에 어떤 답도 구하지 않는다. 방도가 있다면 상자인간처럼 '쓰는'자로서 쓰는 동안에는 오직 자기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아이러니는 바로 그 쓰는 행위때문에 상자인간은 상자를 떠날 수 없게 된다는 것. 그렇다면 쓴다는 것은 자신을 인식하게 하는 주체적 도구인 동시에 세상과 자신을 격리시키는 무거운 벽으로 존재한다. 쓸 때는 늘 자기 자신만으로 세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쓰는 동안 그 자신은 철저히 세상과 분리되어 있다. 


나는 지금 담배를 물었네....

성냥을 그었어....

불꽃이 내 벗은 무릎을 비추지....

담뱃불을 그 무릎에 가까이 대보네....

틀림없이 열을 느꼈어....

모든 것이 다, 의심할 바 없는 현실이야. 

지금 여기에서 내가 쓰는 것을 멈추면 

그 다음의 한 글자, 한 구절도 나올리 없어."


"....라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어딘가 다른 장소에서 쓰는 거지도 모르지."


"누가?"


"가령 나라고 해도 괜찮아."


"당신이?"


"그래, 내가 쓰는 건지도 몰라. 

나를 상상하면서 쓰는 자네를 상상하며,

 내가 계속 쓰는 건지도 몰라."


"무엇을 위해서?"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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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의승 옮김 / 뜻이있는사람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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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보면, 딱히 독후를 어찌 할 바를 모르겠는 소설이 있다. 좌절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지극히 따분한 소재와 자본의 힘에 기댄 이기적인 인간과 순수한 욕망을 쫓는 사람 간의 갈등 같은 지극히 단조로운 구도인 <위대한 개츠비>는, 읽고 나서 '정말 충격적입니다' '마음이 따뜻해져요' 하는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것을 읽는 동안 분명한 것은, 어느 로맨스 소설에서 볼 법한 인물 관계도와 그 안에서 쉽게 예측가능한 사건을 축으로 도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는 인간 내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붙잡아두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것은 스무 살 적에는 약간 지루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소설 속 이야기가 결코 내 삶과 결부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개츠비의 삶은 사치스럽고, 아메리칸 드림이 곳곳에 전염된 당시의 미국은, 쟁취할 꿈이나 대상이 없는 스무살 여자 아이에게 허공에 뜬 세상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칠, 팔년 쯤 흘러 다시 읽으니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결코 개츠비나 데이지의 입장에 있지 않으며, 그나마 소설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다면 그것은 개츠비가 설정한 화자_어쩌면 자신은 개츠비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지만 개츠비에게 일어난 사건에 내적으로 깊이 관여된_ 닉일 것이다. 


사실 독자는 개츠비에 대해 노출되어 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자신의 내적 성장을 통해 개츠비에게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는 '닉'이라는 인물을 통해 여과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가 공감하게 되는 이는 '개츠비'가 아니며, 개츠비에게 뭔가를 기대했다면, 더군다나 제목만 보고 위대한 뭔가를 기대했다면, 그 기대는 여지없이 좌절되고 만다. 읽는 입장에서 지적, 감정적 동의를 구하는 이가 '닉'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왜 개츠비가 위대한 것인지요?'하는 물음을 그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 경우에는 스무살 적에 '개츠비'에 초점을 두고 있던 시야가 이제는 '닉'쪽으로 확대된 것에 의의를 둘 수도 있다.


예전에 소설가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정말 잘 써진 소설은 어떤 한 구절이 와 닿는 게 아니라 소설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한 권의 소설을 읽고 났을 때 잔상이 밀려오는 것이란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책을 보다가 좋은 구절이 나오면 꼭 메모를 남기는데 위대한 개츠비를 읽을 때는 두 번 다 그런 작업을 거치지 않았다. 그저 소설을 다 읽고, 덮었을 때 희붐하게 눈 앞에 펼쳐지는 에클버그 박사의 눈, 그리고 톰 뷰캐넌과 데이지의 이기심, 인물들 간의 모호한 관계, 그리고 '왜 닉은 그토록 개츠비를 옹호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남았다. 이러한 잔영과 의구심이 소설을 다시 들춰보게 한다면, 이 소설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다만 다시 보고 싶게 만들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부시절 서양문학산책이란 교양수업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분석해서 조망한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면, 그때는 아메리칸 드림의 좌절과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라는 두 개로 분리된 사회의 상징성, 그리고 개츠비가 바라보는 초록불빛이라는 이상향과 개츠비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의 껍데기일 뿐인 데이지라는 당시 일반적 인간군상 같은 것을 배웠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개츠비를 읽고나서 그런 역사적 사상적 배경을 심오하게 따져보기 않기 때문에, 이 소설이 역사의 한 줄기에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진다. 아무리 읽어도 잘 모르겠다. 나에게 이건 소설에 반영된 '시대상'이 아니라 그런 시대상을 창조해낸 소설로 보였으니까. (그리고 이런 소설이 아무래도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보다 훨씬 높이 평가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_이미 있는 것을 소설 속에서 보여줄 때도, 여기 없는 것처럼 표현해야지, 그래야 독자는 소설에 속아넘어간다)


<위대한 개츠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급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얻은 것 같다. 번역본이 여러가지라 무엇이 좋을지 따져보면 평생 못 볼 경우도 있을 듯하다. 나는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보았고 나쁘지 않았다.(김의승 번역, 뜻이 있는 사람들)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보면 자신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는데, 난 이제 한 번 남았다. 한 번 더 보면 정말 하루키랑 친구가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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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2-01-1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키 때문에 읽었는데, 여러 번역본을 전전하며 읽어도 통 감흥을 못 느끼다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김영하가 번역한 개츠비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나이를 먹은 건지, 정말 번역을 잘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영하를 더이상 읽지 않는 나이에 그가 번역한 개츠비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니 조금 아이러니 같기도 하고. 저도 대충 하루키랑 친구 먹으면 될 것 같은데 연락처를 도통 모르겠네요...

김토끼 2012-01-16 14:17   좋아요 0 | URL
하루키한테 메일 보내보세요!!나 세번 봤는데 친구해줘여~ (으아) 영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저도 후다닥 도서관으로 날아가서 김영하 번역 찾아봐야지요-

노이에자이트 2012-01-1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대한 개츠비>를 헌책방에서 산 70년대 삼중당 문고 번역본으로 읽었어요.뒤 편에 독자가 쓴 독후감이 실려 있는데 당시에도 우리나라에선 독자들 사이에 꽤 알려져 있었다네요.사실 헤밍웨이 소설은 지명도에 비해서 실제로 읽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그런 반면에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소설 중에선 꽤 읽히는 편이죠.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으로 영화화되었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김토끼 2012-01-17 08:57   좋아요 0 | URL
아항 그렇다면 하루키가 소개하기도 전이겠네요. 삼중당이라면 정말 오래된 문고본 아닌가요? 저도 가끔 시내 서점가면 보는데요. 장정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오직 책만 읽겠다는 사람에게 가격도 싸고 좋은 것 같아요. 개츠비..영화는 안 봤는데요_ㅎ 사실 영화가 있다는 것도 지금 알았어요^^

노이에자이트 2012-01-17 17:03   좋아요 0 | URL
요즘은 헌책방에도 삼중당문고가 잘 안 나오더라고요.세로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읽기 힘들죠.

영화가 70년대 중반에 나왔을 겁니다.로버트 레드포드가 30대였죠.

김토끼 2012-01-18 11:53   좋아요 0 | URL
로버트 레트포드가 30대. 그 사람 지금 할아버지 아닌가요? 전 영화배우 잘 모르지만..정말 세월이 엄청나군요. 그런데 개츠비는 지금봐도 뭔가 젊은 느낌_문학은 그렇지 않나요? 작가가 젊을 때 쓰면 젊은 느낌을 주고 늙어서 쓰면 늙은 느낌을 주고..전 그러던데 ㅎ
 
어제 뭐 먹었어? 3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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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소한 감정. 연애에는 갖가지 형태가 있는데, 기본적인 감정선은 다들 비슷한 것 같다. 어쨌든 식사를 같이 할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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