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양상추
에쿠니 가오리
김난주 옮김, 소담출판사, 2011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작가들이 쓴 에세이를 좋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양한 에세이를 비롯해 츠지 히토나리의 파리 체류기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작법서,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재밌게 읽어왔다. 무슨 연유인지 이번에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두 일본 작가의 에세이집이 동시에 출간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과 에쿠니 가오리의 <부드러운 양상추> 이렇게 두 권이었고, 모두 주문하려고 보니 하루키 책은 수령을 며칠 기다려야해서 일단 에쿠니 가오리의 책만 주문했다. 토요일, (난생 처음으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책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날은 너무 피곤해 집에 돌아와 씻고 곧 잠들었으므로 일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책을 풀어봤다.

일단 띠지에 걸린 작가의 프로필 사진이 바껴있었다. 단정하게 머리를 틀어올린 청순한 옆얼굴에서, 앞머리를 내리고 브라운 오렌지 계열로 염색한 짧은 웨이브 스타일. 그러나 그녀의 글에서 느껴지는 정갈함은 잃지 않았다.(사진과 실물이 상당히 다르기로 유명한 작가이긴 하지만) 친구 중에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을 좋아하는 이가 있어서 예전에 소장하고 있던 에세이집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친구에게 그 책을 준 것이 뿌듯한 한편, 문득 내 책장에 그 책이 없다는 사실이 쓸쓸할 때가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좋은 카카오로 만든 홍차 초콜릿이나, 바닐라 크림이 들어간 마카롱 같은 느낌이라 매일 먹고 싶은 건 아닌데 한 번씩 너무도 생각날 때가 있다.

그리고 오늘, 일요일 아침, 첫 챕터의 '따뜻한 주스'를 읽었다. 구름 낀 어둡고 추운 날, 개와 두 시간에 걸친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생각한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따뜻한 주스였다. 뭐가 어찌됐든 우선은 따뜻한 주스를 마셔야겠어, 그렇게 생각했다."(8,9) 그러나 그녀는 따뜻한 주스가 뭔지, 실제로 있기나 한지 모른 채로, 토베 얀손이 엮은 <무민 골짜기의 겨울>에 나온 따뜻한 주스를 상상하는 것으로 이 상상에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번 책은 출판사 측에서 꽤 신경을 쓴 모양으로 책 안 곳곳에 일러스트도 담겨있다. 예전에 배수아의 글에서 책에 그림을 담거나, 활자를 조정하는 일로 독자의 상상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읽은 듯 한데,(배수아의 소설 <붉은 손 클럽>에 그런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책과 어울리는 일러스트라면, 오히려 독자가 상상하지 못한 부분을 끌어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물론 그럴 경우가 흔치 않겠지만) 어쨌든 이 책의 일러스트의 성공여부를 떠나 덕분에 선물용으로도 좋은 책이 된 듯하고,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 한다면 속지에 이렇게 쓰고 싶다. 

'매일 조금씩, 식사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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