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 
빵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밀가루가 부풀면서 시작된 빵의 역사 같은 것 말고
나 개인적인 범주에서 빵의 시작말이다.

가장 유력한 시기는 
어머니가 제과제빵 학원에 다니면서 부터이다.
나는 그게 무엇이건 그 '맛'을 알면
그때부터 거침없이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맛'을 안다는 것은 꽤 오묘한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가령 '빵맛'을 알기 위해서 
어떤 이는 빵을 한 번 맛보면 되지만 
어떤 이는 빵을 여러 번 맛보다가 갑자기 득도(?)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전자와 후자 모두에 포함된다. 

내가 빵을 두고 '천상의 음식'이라고 느낀 첫 사건은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 피자트럭이 와서 피자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동네 아이들에게 무료로 그것을 나눠주던 때였다.
아주 긴 줄에 서서 기다림 끝에 받아 먹은 그 작은 피자 한 조각은 
정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맛이었다. 
'아니 세상에 이런 것이 있나!' 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왠지 또 다시 줄을 서서 이 피자라는 것을 두 번이나 맛본다는 것이
무례한 짓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 먹고 그만 두었지만
그 뒤로도 계속 피자가 준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제과제빵 학원에 다니시게 되었고 
학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저녁이면 
우리 집은 빵세례 속에서 행복해했다.
레몬 케이크, 생크림 케이크, 도넛, 식빵, 야채뺭 등등 
잠들기 전에 그런 빵들을 계속 먹으니
살이 안 찔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배가 나온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사람의 배가 이렇게 해서 앞으로 나오는 것이구나, 하고
굉장히 어린아이 다운 사고를 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빵을 맛보면서  
나도 모르게 서서히 빵맛에 젖어 들고
어느새 빵이란 것을 먹지 않는 삶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십 여년을 살면서 
매일매일 쉬지 않고 빵을 먹다보니 
어느 날 식도염에 걸리게 되었다.
빵도 빵 나름인데
내가 워낙 이런 저런 빵을 먹다보니
꼭 원료가 좋은 빵만 먹은 게 아니었고 
당시에 외식만 하면 꼭 밀가루 음식만 먹어대서
내 위장이 조금씩 약해졌던 것이다. 

(여기서 위장이 약해진 것은  
식도염의 결정적인 원인이다.
약해진 위장이 소화를 제대로 못시키면서
위산이 식도쪽으로 올라오게 되고 
그러면서 식도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쨌든 식도염에 걸렸고 
의사 선생님이 '빵 먹으면 안 돼요.'하고 말했을 때
내 머릿 속에는
'그럼 어떻게 살라는 건가요?'하는 말이 딩딩 울렸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식도염의 고통 속에서
(사실 고통이라기보다 답답함인데, 정말 무시무시하다.)
밀가루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고 두 달을 버텼다. 

'거의 완치' 판정을 받고부터 
또 빵을 먹기 시작한지 벌써 3년쯤 지났을까.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두어 번은 먹는 것 같다.
이것도 줄여야 할 텐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빵 대신 떡을 먹어보기도 하지만
며칠 간은 떡이 맛있다고 하다가도
역시나 빵이 줄 수 있는 것을 떡은 줄 수 없다는 점에서
다시 빵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것이 무엇이간데?) 

그래서 내가 왜 이럴까 하고 궁금하던 터에 
신문에 나온 기사 하나를 보게 되었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작곡하신 분의 인터뷰였는데
그 분이 자신은 어른이 되어서도 서구적인 음식을 더 좋아한다며
아무래도 어린 시절 전쟁 통에 구할 수 있는 먹을 거리가 빵 같은 거여서 하도 먹다보니
아예 그런 쪽으로 입맛이 길들여 진 것 같다고 하셨다.  

사람의 입맛에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이 녹아 있다는 게 신기하고 
안타깝고 그랬다. 나 역시 나의 시간들이 내 입맛에 쌓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신기하고 안타까운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빵이라는 것은 
언제 먹든 빠져들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역시 나에게 이것은 운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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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0-04-0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어머니가 놀고 있는 아들이 안쓰러우셨는지 계란 한 판과 우유, 빵을 사들고 오셨어요.
덕분에 오늘 아침은 빵으로.

사실 저는 한국인 입맛인데, 국을 안끓여 먹으니 집에서 밥 먹기가 곤욕이에요.

김토끼 2010-04-13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국 없이 밥 먹는 걸 싫어하는데요. 오늘 아침에도 밥상머리에 앉아 최초로 한 말이 '국은?'이었다는.. 그나저나 빵은 잘 드셨는지요? 저는 아침으로 빵 먹어보는 게 소원이예요. 식도염 후에 속으로 정해놓은 기준이 있어서 '식사로 빵은 절대 안 돼' '오전 11시 이전에 빵은 절대 안 돼' 뭐 이런 게 있거든요
 


  '소이 러브'라는 기계가 있다. 콩을 넣어 두부나 두유를 만드는 기계다. 오래 전에 사둔 것인데 깜빡 잊었다가 어제부터 다시 사용하고 있다.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순수한 두유를 먹고 싶어서다. 20분 만에 물을 데우고 콩을 갈아 두유를 만들어 내는 '소이 러브'를 정말 '러브'하지 않을 수가 없다. 뭐. '소이 러브'가 두유를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화난 사람이 시끄럽게 구는 것 같아 도무지 '러브'할 수 없지만.  

  어쨌든 불린 콩을 윙이이잉- 갈고 나면 콩비지와 두유가 나온다. 콩비지는 나중에 달걀을 섞어 부쳐 먹으려고 사기 그릇에 따로 담아 두었다. 어쨌든 완성된 두유,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은 순수한 두유는 정말 담백하다. 나는 유리그릇에 가득 담아 놓고 뜨거운 두유가 식기를 기다리며 즐거워했다. 내일부터는 왠지 더욱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로 즐거웠다.

  이런 아름다운 두유를 모두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에, 당장 식구들에게 두유를 먹이려 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분주한 오빠가 먹지 않는다고 성화를 냈기 때문이다.(화까지 내다니..) 집 안에 그런 오빠 말고 사람이 없어서, 고래고래 안 먹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오빠에게 기어코 두유를 한 컵 줬다. 어쨌든 그렇게 한 컵을 떠넘기고 조금 있으니 엄마가 돌아와서 엄마에게도 한 컵 드렸다. 엄마는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셨다. 음. 나는 기쁜 마음으로 잠시 두유 곁에서 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 엄마가 두유에 설탕을 엄청 집어넣었다. 하필이면 그 순간 엄청난 양의 설탕이 두유 속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해버렸다. 난 정말 이런 순간이 싫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다행인데 봤으니 두고두고 마음이 상할 것이 뻔했다. '소이 러브'가 20분 동안 고생해서 순수한 두유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다니.

  나는 엄마에게 '엄마랑 나는 가치관이 너무 달라. 난 정말 이런 게 싫어.'하면서 속상한 마음을 어떻게든 말로 퍼부었다. 아무리 퍼부어본들 마음이 좋아지지 않을 것이지만.(듣는 엄마도 마음이 아프실 것이다.) 난 정말 감미료 같은 걸 넣는 게 싫다. 그게 싫어서 순수한 두유를 만든 건데.

  이제 어쩔 수 없다. 하나로 뒤섞인 설탕과 두유를 어떻게 분리하겠는가. 물리학자라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역시 일반 가정에서 설탕과 두유를 분리하는 일 따위는 불가능한 것이다. 혹시 카이스트 같은 곳에 가면 분리할 수 있을까? 정말로 카이스트 기숙사에서는 매일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건 정말 만약의 일인데, 만약 카이스트 커플이 두유를 만들다가 갑작스런 싸움으로 기분이 상해 헤어진다면, 한쪽에서는 두유 속에 들어간 설탕은 내가 가져온 것이니 어서 설탕을 분리해 돌려달라고 하지 않을까? 그럼 나머지 한쪽은 실험실로 들어가서 비커나 스포이트 등을 들고 열심히 두유와 설탕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두유와 설탕처럼 그들도 서서히 두 쪽으로 갈라지고 마는 것이다.

  배불러서 잠도 못잘 정도로 두유를 마신 게 후회된다.(설탕이 어쩌네 저쩌네 해도 결국 배부르게 먹었다, 나란 사람이란..) 역시 순수한(순수에 가까운) 두유라 해도 과음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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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13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소이 러브가 기계였던 건가요?!

저는 일전에 메신저에 등록되어있는 남자선배가 메신저 대화명을 꽤 오랜동안 '소이러브'라고 해놨길래, '소이'라는 이름을 가진 걸그룹의 멤버인줄로만 알았어요.

김토끼 2010-04-1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사전을 찾아보니까 'soy'는 'soybean'의 줄임인가봐요. 그러니까 이건 '콩'이고..말하자면 '소이러브'는 '콩사랑'쯤 되려나요..^^; 다락방님의 남자선배님은 콩을 엄청 좋아하셨을까요..아니면 다락방님 생각대로 걸그룹의 소이를 좋아하셨을지도ㅎ 설마 기계이름을 아-설마 그럴 리가요.(어쨌든 소이러브가 콩으로 뭔가 만들어주는 기계의 상표인 건 맞아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