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 알라딘이 막 생겨서 정말 신나게 드나들었어요. 요새는 방문이 좀 뜸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놀러갈 곳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정말 많은 분들의 글을 읽고, 그 분들이 추천한 책을 사고 그랬는데 벌써 10년이라니 세월이 아득하네요. 20주년에도 30주년에도 이런 글을 쓸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늘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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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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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눈만 돌리면 정유정이 있다.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사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강도로 이어나가는 소설이다. 어떤 소설들은 오솔길 같고, 어떤 소설들은 러닝머신 같은데 말하자면 후자다.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근육이 탄탄한 작가 같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는 않는 소설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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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친구와 통화하면서 문득 이런 질문을 받았다. 

"(무슨 말인가 열심히 하다가) 그런데 넌 왜 그렇게 영어에 열심인 거야?"

순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 뭐라고 대답했는지 지금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아마도 영어로 뭔가 읽거나 쓰거나 말할 때 느끼는 희열때문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 후 여러차례 그 질문을 떠올렸는데 딱 들어맞는 대답은 구하기 힘들었다.

 

막연히 그냥 외국어는 해야될 것 같아서, 라는 생각에 토익책을 붙들고 학원에 다닌 것이 약 3년 전이었다.

올 봄에도 영어회화학원 1년치를 쿨하게 끊었다.

매일은 못 가도 일주일에 최소 2번은 갔는데, 이번 달 들어 한 달 연기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자격증 공부였지만 더 심리적인 이유를 말하자면 학원에 가는 일이 즐겁지 않기 때문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침반을 듣기 시작했는데 거의 매일 1:1 수업이다.

수강생이 나뿐이라 영어로 말할 기회가 많으니 좋겠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꼭 그렇지 않다.

말하자면 무지 외롭다. 선생님과 나의 관계가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 같은 관계가 아니므로 1:1 수업은 한없이 쳐진다.

한 명이라도 우연히 나오면 반가워서 바짓단이라도 붙잡고 싶어진다.

그제서야 학원이 오직 학업을 위해서만 가는 것이 아닌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은 점은 학생이나 선생이나 한 쪽이 엄청난 텐션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니 선생 쪽이 그렇게 해주는 것이 좋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교육에도 스타일이 있는 것이고, 나도 고집스럽게 텐션 제로의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지 않은가.

 

학원은 학원이고 다시 영어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보는데 역시 답이 없다가

오늘 산책하면서 팟캣으로 김남주 번역가가 라디오에 나온 것을 들으며 그 이유를 조금 알았다.

한 달 전에 그녀의 역자 후기를 모은 <나의 프랑스식 서재>를 샀던 기억과 함께

로맹 가리, 프랑수아즈 사강의 이름 옆에 나란했던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다.

라디오 음성으로 전해오는 김남주 번역가의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쏙쏙 들어왔던 것은

나긋나긋한 톤도 그렇지만, 모국어로 말할 때의 파릇파릇하고 싱싱한 언어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는 세계에서 가장 이성적인 언어라고 한다. 무슨 국제회의 같은 곳에서는

소통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프랑스어를 공식언어로 채택한다. 사물도 성별을 구별하여 쓰니 더 할 말이 없다.

그런 프랑스어를 번역을 하는 사람이니 자신의 표현에 대해 정확해지려고 얼마나 노력해왔겠는가.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고 싱싱한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내가 꿈꿔오던 것이다.

그리고 외국어에 열심인 사람 중에는 모국어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내 주변에서도 영어나 기타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언어 구사력이 더욱 정확하다고 할까.

나에게 왜 영어 공부하느냐 물었던 친구도 꽤 예리하고 적절하게 말하는 편이다.

더 살아있는 언어, 적확하고 발랄한 언어로 말하고 싶은 의지가 해도 해도 늘지 않는 외국어를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요 며칠 말한대로 자격증 공부한다고 컴퓨터 용어만 봤더니 왠지 마음이 허전하다.

얼른 끝내고 내가 사랑하는/할 것들에 시간을 쏟고 싶다. 물론 그 중에는 영어도 포함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아마 계속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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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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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7년의 밤>은 그야말로 '핫'한 소설이었다. 정유정의 신작 <28>이 나오자 사그라들었던 인기가 다시 치솟았다. 서점에 가면 <28>옆에 <7년의 밤>이 쌓여 있었다. 읽고 싶다는 생각보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근래 읽은 책 중 가장 두껍고, 가장 빨리 읽은 책이다. 하나의 결정적 사건에서 시작되어 이야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과정을 이토록 치밀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는 소설이다. 나도 모르게 백 페이지가 넘어가 있을 때는, 나 자신이 그렇게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아니다. 깨닫고 보니 소설이 압도적인 것이다. 독자를 압도할 수 있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에는 늘 일장일단이 있다. 읽고 있는 동안 독서 감각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것, 그러나 읽은 후에 아주 개운하다. 뭔가를 생각하려해도 머리가 깨끗하다. 소설이 모든 걸 다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이건 순전히 개인의 취향 탓일 수 있다. 나는 섬약한 인간이라 너무 큰 이야기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작은 이야기들이 얽히고 설킨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솔직한 반응은 이렇다. <7년의 밤>에 온 신경이 휩쓸렸다. 잠들기 전에 읽으면 꿈을 꿀 것 같아서, 아침에 일어나면 읽었다. 최현수가 너무 불쌍하고 지독해서 마음이 쓰였다. 한 불우한 인간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만큼 철저히 보여주는 소설도 없을 것이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취재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나의 첫 예감은 맞았다.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읽어야 해서 읽은 소설이라는 것. 소설에 쏟은 작가의 공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오직 작가라는 타이틀 아래 문장적 감각만으로 소설을 써나가는 작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작가란 존재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7년의 밤>을 다 읽고 <28>을 읽으려다 첫 장을 읽고 그냥 뒀다. 아직은 <7년의 밤>을 보낼 수 없다. 밀어닥치듯 읽어서 소설이 소설을 밀어내지 않도록 얼마간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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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기 신간평가단 에세이 분야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설레고 즐겁네요 :) 히힛

 

 

 

 

1.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

 

엄마와 아들.

60세와 30세.

환갑잔치 대신 떠난 엄마와 아들의 300일간 세계 여행.

 

홀로 떠나는 여행을 권하는 시대에 엄마와 아들의 여행 이야기는 흔치 않다. 어느 순간 서로 소원해진 관계에서, 자식은 부모에게 '일단 가자'고 말하지 못하고, 말한다 한들 부모는 자식에게 '그러자'고 대답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게 하고, 이렇게 책으로 그 이야기를 전한다. 하던 일도 그만 두고 엄마 가게로 쳐들어가 '세계를 무대로 신나게 한 판 놀고 오자' 저질러 버린다. 이건 뭐지, 하며 무심결에 들어간 저자의 블로그(http://blog.naver.com/sneedle)에서 그의 따뜻한 진심이 새록새록 느껴진다. 사진도 멋지다. 나도 모를 사이 평범하고 또 특별한 모자(母子)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2. 나의 핀란드 여행

 

별로 상처 받을 것도 없던 대학 시절, 오히려 상처라면 무료하디 무료한 나날이었을까. 그 몇 달간 내 전부였던 영화가 있었다. 바로 <카모메 식당>. 풍경좋고 할 일 없는 핀란드에서 일본 여자 세 명이 카모메 식당을 운영하는 이야기였다. 이 책의 저자 가타기리 하이리(미도리役)가 카모메 식당에 등장한 여자 중 하나인 것을 책 소개를 보며 알았다. 그래, 미도리는 만화 주제가를 부르며 나타났지...난 그 당시나 지금이나 그녀를 배우라 생각하기보다 그냥 미도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미도리가 핀란드 카모메 식당에서 일하며 여기저기를 하릴없이 돌아다니기만 한 게 아니라 이렇게 여행기까지 집필한 것이 당연지사라 여겨진다. 미리보기로 살짝 읽었는데 무엇보다 꾸미지 않은 글솜씨가 마음 편하다. 카모메 식당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3.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

 

어쩌면 도시인의 판타지는 시골의 작은 책방같은 것일지 모른다. 대신 그 책방은 후줄근하고 너저분하면 절대 안된다.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 때 비로소 판타지는 완성된다. 그리고 그 완성이 현실일 때 그것은 한없이 부러워진다. 바로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처럼. 독사 굴 같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이름도 생소한 애팔래치아 산맥의 시골 마을 빅스톤 갭으로 들어간 애서가 부부는 그곳에서 자신들의 책방을 세계 최고로 사랑스러운 곳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나 같이 책과의 동거에 망상을 키우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이 아닌, 남들과 비교 불가능한 다른 삶은 충분히 가능하다는데, 그렇다면 당신,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음.. 글쎄 그 전에 나는 이 책부터 얼른 읽고 싶다. 

 

 

 

 

 

 

 

4. 여름의 묘약

 

문학 평론가 김화영의 프로방스식 산문.

스물 일곱, 프랑스 외무성의 지원으로 엑상프로방스에 머물게 된 한 청년은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한국문학의 유일무이한 불문학자이나 문학평론가로 살아가게 될 것을, 그 덕분에 우리가 카뮈와 장 그르니에를 읽고 프랑스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될 것을. 그 시작을 상기하면 저자에게 프로방스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곳일 테다. 아마도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도 그 뜻깊은 순간에 공감하게 되리라. 제목도 잘 지었다. '여름의 묘약'이라는 이 달콤한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며 주문을 거는 듯하다.

 

 

 

 

 

 

 

5. 당신이 나를 부족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사진이 많고 글이 적은 책을 좋아한다. 특히 여행 에세이라면 더욱 그렇다. 독자의 감성을 충분히 채워주고 저자의 모든 것을 표현하기보다 그만의 경험을 소박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꽤 괜찮고 귀엽다. 나중에 손자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는 저자는 여행지에 가면 한 곳을 정해 최대한 현지인인 척 머무른다고 한다. 여행지 100배 즐기기에 몰두하며 하루에도 수십 곳을 방문하는 여행이라는 노동에서 벗어난  여유로움이 책표지부터고스란히 느껴진다. 잠깐 스쳐간 사람이 아니라 오래 머무른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감성이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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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3-08-06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13기 신간평가단의 일원으로서(에세이 분야) 인사차 들렀습니다.
참 뜬금없죠? 저도 쑥스럽기는 합니다.
활동 기간 동안이나마 자주 들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

김토끼 2013-08-22 21: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꼼쥐님 페이퍼 가서 잠깐 보고 왔어요. 좋은 분 만나게 되어 반갑네요^^ 앞으로 자주 뵈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