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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라트비아인 ㅣ 매그레 시리즈 1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의 첫 책.
<수상한 라트비아인>은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인물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가며 봐야했다.
<백년동안의 고독>이나 <카라마죠프씨네 형제들>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카라마죠프씨네 형제>들은 중도에 포기했지만..)
나는 본격 추리문학이 뭔지도 잘 모르고
기껏해야 읽은 추리소설이라곤 홈즈 1권인가..(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소년탐정 김전일> <탐정학원 Q> <명탐정 코난> 같은 건
중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읽어대서_'추리'라는 항목에 특별히 거부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재미'를 느끼지도 않았는데
조르주 심농의 책도 '재미있다'는 건 아닌데
문득 깨달았을 뿐이다.
사건을 쫓아가는 것은 곧 인간의 숨은 심리를 쫓아가는 것이고
너무 휴머니즘에 젖어있는,
진지한 인간일 수록_자신의 삶에 집중 할 수록_타인의 마음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한다는 점.
이것은 꼭 이 책을 통한 교훈은 아니고
다른 책을 읽어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요즘 본 책들에서는 그런 것을 뚜렷하게 감지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추리문학'이 때때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면서도
작품성을 인정받는 이유가 결국 '인간의 발견'에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추리만화에서도 보면 범행을 저지른 인간들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을 알고나면 범인을 동정/이해 하게 된다.
일본 추리계의 여신(?) 미야베 미유키는 자신의 소설에
미치광이, 정신병자, 아무 이유없이 범행을 저지르는 냉혈한을 범인으로 등장시키지 않는다 한다.
자극적인 사건에만 주목하는 추리문학은 자신의 소임이 아니다는 식의 대답을 했다.
(정확한 건 기억이 안 나지만 이런 의미였다.)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으레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수상한 라트비아인을 읽으면서 나도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았고
또 생각해보면 다른 소설을 읽을 때도
마지막이 비틀린 이야기를 좋아하는 성향이다.
스포일러!!
하지만 이 소설에는 충격적인 반전이라 할 만한 게 없다.
그렇지만 나는 좀 충격을 받긴 했다.
그것은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 동안의 인물 간의 관계가 이래저래 얽혀 있었다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놀랐던 것은 매그레 반장이 범인인 한스와 단 둘이 밤에 남아 있을 때
한스가 권총이 놓인 침대 쪽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감한 뒤
급하게 술을 한 잔 들이킨 장면이었다.
그렇지만 끝 부분에서 방관자로 남으려 한 매그레에게
무책임하다는 멍에를 씌울 수는 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해선 안 될 일을
순간순간 판단하며 살아온 '형사'였을 테니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거의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판단에 옳고 그름의 여부를 따질 수가 없었다.
그 판단은 오직 한스 자신에게 맡겨야 할 문제일 수도 있다.
어쩌면 한스는 매그레 반장이
자신을 말려주기를 바랐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런 선택을 했다.
어떤 마음이었는지와는 상관없이_입안으로 총구를 들이민_
한스의 죽음으로 사건은 종결된 것이다.
스포일러 끝
책제가 <수상한 라트비아인>인 까닭은
단순히 범인의 행태가 '수상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 수상함은 매그레의 훈련된 감각이 발견한
범인의 두 인격에서 기인한다.
한데 피에트르-표도르는 내면적인 차원에서부터 진짜 피에트르이거나 표도르라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반장이 받은 인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었다.
즉 저 라트비아인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적 본질에서까지 피에트르이면서 동시에 표도르다!
필경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니 어쩌면 항상, 그토록 다른 두 인생을 번갈아 살아왔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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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하는 이를 한편으로 증오하는
기형적인 감정 혹은 그러한 습관에서
동경하며 증오하는 이는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복잡한 마음이 많은 작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이기도 하고
어쩌면 '갈등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이
이런 관계를 찾아 헤매는 건 아닌가 싶었다.
다만 그런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과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수상한 라트비아인인 한스는
쌍둥이 동생에 대한 그런 애증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한 여인(베르트)를 향한 진실한 사랑이
그에게 뭔가를 깨닫게 한 순간
그는 오래 드리우고 있던 동생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그저 자기 자신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인간의 고통은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자기 자신으로 자립할 수 없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빠른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묘사로
인물의 옷차림이나 그들이 모여 있는 장소의 분위기를
선명히 그릴 수 있는 게 좋다.
신문기자로서 1천 편의 기사를 쓴 것이 그가 글을 쓰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는데
보도기자 특유의 간결한 문구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모든 패를 다 보인 상태에서 진행되는 소설이
마지막까지 모든 걸 숨기려드는 소설보다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독자가 발견해야 할 것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사건 속 인물들의 진심이다.
(진심 쪽이 진실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
많은 수사 과정에서,
형사와 그 형사가 추궁하는 용의자 사이에 우정 어린 관계가 생성된다고 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주장일지 모른다.
한데 상대가 막무가내 짐승 같은 종류가 아니라면,
둘 사이에 일종의 친밀감이 싹트는 것은 거의 언제나 사실이다.
이는 물론 몇 주, 혹은 몇 달이라는 기간 동안
경찰과 범죄자가 서로에게만 몰두했을 경우를 전제로 하는 얘기다.
수사관은 용의자의 지난 과거를 어떻게든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한다.
또한 용의자의 사고를 재구성하고, 가장 사소한 생각들까지 내다보려 애쓰기 마련이다.
둘이 각자 밀고 당기는 게임에 모든 걸 거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대면하는 상황이란 워낙 드라마틱해서,
평범한 삶 속의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냉담함 따위는 일거에 녹아버리기 일쑤다.
이를테면 죽을 고생을 다해 범죄자를 검거하고 난 뒤부터
바로 그 범죄자를 향한 인간적인 애정을 품게 되고, 감옥에 수감된 그를 찾아가,
마침내 교수대에 오르기까지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 주는 형사들이
세상에는 부지기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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