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친구와 통화하면서 문득 이런 질문을 받았다.
"(무슨 말인가 열심히 하다가) 그런데 넌 왜 그렇게 영어에 열심인 거야?"
순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 뭐라고 대답했는지 지금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아마도 영어로 뭔가 읽거나 쓰거나 말할 때 느끼는 희열때문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 후 여러차례 그 질문을 떠올렸는데 딱 들어맞는 대답은 구하기 힘들었다.
막연히 그냥 외국어는 해야될 것 같아서, 라는 생각에 토익책을 붙들고 학원에 다닌 것이 약 3년 전이었다.
올 봄에도 영어회화학원 1년치를 쿨하게 끊었다.
매일은 못 가도 일주일에 최소 2번은 갔는데, 이번 달 들어 한 달 연기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자격증 공부였지만 더 심리적인 이유를 말하자면 학원에 가는 일이 즐겁지 않기 때문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침반을 듣기 시작했는데 거의 매일 1:1 수업이다.
수강생이 나뿐이라 영어로 말할 기회가 많으니 좋겠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꼭 그렇지 않다.
말하자면 무지 외롭다. 선생님과 나의 관계가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 같은 관계가 아니므로 1:1 수업은 한없이 쳐진다.
한 명이라도 우연히 나오면 반가워서 바짓단이라도 붙잡고 싶어진다.
그제서야 학원이 오직 학업을 위해서만 가는 것이 아닌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은 점은 학생이나 선생이나 한 쪽이 엄청난 텐션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니 선생 쪽이 그렇게 해주는 것이 좋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교육에도 스타일이 있는 것이고, 나도 고집스럽게 텐션 제로의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지 않은가.
학원은 학원이고 다시 영어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보는데 역시 답이 없다가
오늘 산책하면서 팟캣으로 김남주 번역가가 라디오에 나온 것을 들으며 그 이유를 조금 알았다.
한 달 전에 그녀의 역자 후기를 모은 <나의 프랑스식 서재>를 샀던 기억과 함께
로맹 가리, 프랑수아즈 사강의 이름 옆에 나란했던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다.
라디오 음성으로 전해오는 김남주 번역가의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쏙쏙 들어왔던 것은
나긋나긋한 톤도 그렇지만, 모국어로 말할 때의 파릇파릇하고 싱싱한 언어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는 세계에서 가장 이성적인 언어라고 한다. 무슨 국제회의 같은 곳에서는
소통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프랑스어를 공식언어로 채택한다. 사물도 성별을 구별하여 쓰니 더 할 말이 없다.
그런 프랑스어를 번역을 하는 사람이니 자신의 표현에 대해 정확해지려고 얼마나 노력해왔겠는가.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고 싱싱한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내가 꿈꿔오던 것이다.
그리고 외국어에 열심인 사람 중에는 모국어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내 주변에서도 영어나 기타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언어 구사력이 더욱 정확하다고 할까.
나에게 왜 영어 공부하느냐 물었던 친구도 꽤 예리하고 적절하게 말하는 편이다.
더 살아있는 언어, 적확하고 발랄한 언어로 말하고 싶은 의지가 해도 해도 늘지 않는 외국어를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요 며칠 말한대로 자격증 공부한다고 컴퓨터 용어만 봤더니 왠지 마음이 허전하다.
얼른 끝내고 내가 사랑하는/할 것들에 시간을 쏟고 싶다. 물론 그 중에는 영어도 포함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아마 계속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