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 ‘폭력 악순환’ 누가 책임지나
작년에 나는 이라크에 있었다. 미국 대통령 부시가 항공모함 위에서 멋지게 종전 선언을 했건만,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폭격에 무너진 것은 건물들만이 아니라 이라크인들의 삶이다. 전투가 끝나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가난한 순서대로 무너진다. 예컨대 바그다드 변두리 ‘알 카마리야’ 주민들은 수도관이 낡아 수돗물이 간신히 나온다 해도 오염되어 끓여먹어야 하는데, 전쟁 이후 가스 공급이 끊겨 그럴 수마저 없으므로 이웃 마을에서 물동이로 물을 받아다 먹었다. 그런데 이웃 마을도 역시 가난하여 그 물마저 오염되었다 했다. 한낮에는 섭씨 60도에 육박하는 가혹한 더위에 그들이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목이 멘다. 물가는 몇 배나 뛰는데 가난한 가장들은 태반이 일자리를 잃었고 식구들은 전염병과 영양실조로 시름시름 쓰러진다. 전쟁은 무엇보다 반민중적이다.
-美깃발 아래선 모두 점령군-
전쟁은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일년 반이 넘도록 미군이 이라크를 재건하지 못하는 이유는 군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아부 그레이브 감옥 고문’ 사건과 ‘팔루자 학살’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미군은 이라크인들을 위해 거기 있지 않다. 재건해야 할 이라크를 강압하고 해방시켜야 할 이라크 민간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군 깃발 아래 있는 모든 외국군은 점령군이요, 이라크인들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여러 갈래이고 그들 모두가 김선일씨를 살해한 ‘알 자르카위’ 같은 극단주의자들은 아니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평범한 이라크인들의 애국심이야말로 저항세력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며, 점령이 폭압적일수록 이들의 저항도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건축장비와 의료품을 싣고 갔다 한들 한국 파병군은 군대이며, 이라크에서 하게 될 일은 다름 아닌 이라크인들을 상대로 한 전쟁이다.
한 시인이 “전쟁의 책임이 히틀러 같은 호전적 정치인들에게만 있겠는가, 그에 동조하거나 그를 묵인했던 대중들에게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 과반수가 파병이 아무런 명분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또한 과반수가 우리나라 사정상 피할 수 없는 일로 본다고 한다. 그 과반수라고 호전적인 성품은 아닐 것이다. 단지 지금처럼 평온한 일상을 원할 뿐. 그러나 그런 소박한 욕구의 대가가 전쟁이다. 이것이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다. 이라크와 아랍 세계 전체의 증오와 보복으로부터 이제 대한민국 전 국민과 해외 동포들까지 안전할 수가 없다. 테러리스트들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사정을 이유로 다른 나라에 군대를 보낸 횡포를 반성해야 한다. 그들도 사정이 있고 서구에 침탈당한 수십 년 동안 그렇게라도 항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야 무지무지 쌓였다. 이라크에 자원해서 간 파병부대 병사들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전쟁에 휘말려 들었고, 우리 땅이 바로 전쟁터가 되었다는 무서운 진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나는 또 다른 생각이 든다. 과연 정치인들은 어떤 책임을 질까. 히틀러가 2차대전 이후 독일 국민이 겪은 참담한 고난에 대해 무슨 책임을 졌으며, 미국 침공의 명분을 제공한 사담 후세인은 또 어떤가. 정치인이 자살하건 전범으로 처형당하건 개인적 불행일 뿐 전쟁을 겪은 국민들에게는 어떤 보상도 되지 못한다. 이라크 파병은 노무현 정권의 명백한 실책이되, 대통령이 실각한다 해도 그 실수는 무마되지 않는다. 파병을 부추기고 주장했던 언론들, 파병을 가결시켰던 국회의원들, 파병의 논리를 꾸민 이른바 국방 전문가들, 그들 중 누가 자신들이 야기한 폭력과 피의 악순환에 대해 책임질 것인가. 국가의 운명을 거머쥔 집권세력과 기득권층은 행운의 혜택은 제일 먼저 누리되, 국가에 닥친 불행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필경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이용해서 빠져나갈 뿐. 책임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
-명분없는 파병 철회 마땅-
모든 인간은 평온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도 전쟁은 그치지 않는다. 내가 평온하기 위해서는 남이야 그렇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결국은 국가간 전쟁으로 비화한다. 그러나 실제로 전쟁을 치르게 되는 것은 국가라는 추상적 권력이 아니라 평온하게 살기만 바라는 너고 나고 우리다. 평화는 의지가 필요하다. 국가의 위험한 결정을 막아야 한다. 국가는 책임지지 못한다. 국민의 힘으로 이라크에 파견된 한국군을 되돌려야 한다.
〈오수연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