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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USA, 잠 못드는 세계

민주당 전당 대회 뒤에도 미 대선 박빙 승부… 왜 여건 유리한 케리가 부시를 따돌리지 못하나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도 케리는 부시를 따돌리지 못했다. 미 대선은 예전과 달리 뜨거운 여름부터 한껏 달궈질 것으로 보인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박빙 승부. 모든 여건이 케리 편인데도 이런 아찔한 승부가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 워싱턴= 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민주당 전당대회 다음날인 7월30일 오후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태운 버스와 조지 부시 대통령을 태운 버스가 펜실베니아에서 조우할 뻔했다. 두 무리의 긴 버스 행렬은 40마일 거리를 두고 펜실베이니아 서쪽의 70번 고속도로를 각각 지나갔다. 넓디넓은 미국 땅에서 두 후보가 같은 지역을 방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올 여름 두 후보의 일정은 자꾸 겹친다. 박빙의 싸움 속에서 양쪽 모두 일찍부터 접전 지역에 온 힘을 쏟는 탓이다.



△ 7월29일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수락연설을 하는 케리 후보(맨위)와, 7월21일 워싱턴에서 열린 기금마련 행사에 참석한 부시 대통령. 세계가 가슴을 졸이며 이들의 승부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GAMMA)

7월26~29일 보스턴의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날 때까지 부시 대통령은 고향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상대방이 잔치를 할 때는 판을 벌이도록 비켜주는 게 도리다. 또 그때 선거운동을 해봐야 언론의 주목을 받지도 못한다. 그러나 전당대회가 끝나기 무섭게 부시 대통령은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부 공업지대인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웨스트버지니아 등 4개 주를 버스로 돌았다.

전당대회 끝나기 무섭게 뜨거운 선거전

존 케리 민주당 후보 역시 전당대회 다음날부터 15일 동안 22개 주를 도는 버스 투어를 시작했다. 워싱턴에서 서부 캘리포니아까지 미 대륙을 종단한다. 대개 이런 먼 거리는 전세기를 이용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케리와 그의 러닝메이트 존 에드워즈는 오로지 버스와 기차만 이용할 계획이다. 밑바닥을 샅샅이 훑어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한표라도 더 끌어모으는 지상전의 중요성은 2000년 대선 이후 더욱 커졌다.

이번 대선은 어쩌면 2000년보다 더욱 치열한 접전이 될지 모른다. 부시와 케리 양 진영은 8월에 과거 어느 때보다 공세적인 선거운동을 벌일 계획을 세웠다. 과거엔 9월 초 노동절이 돼야 선거운동이 본격화했지만, 이번엔 선거전이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민주당 전당대회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나흘간의 전당대회 기간에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후보의 지지율은 당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그랬다. 문제는 지지율 상승의 폭이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 부시의 최측근 참모인 칼 로브는 “케리 지지율이 15%포인트 정도 상승할 것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정도면 8월30일~9월2일의 공화당 전당대회를 통해 충분히 만회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펄쩍 뛰었다. 로브의 이런 말엔 정치적 엄살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선 부동층이 별로 없다. 케리나 부시나 이미 지지층을 결집시켰기 때문에 전당대회를 통한 지지율 상승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칼 로브의 주장이 기대치를 한껏 높였다가 결과에 실망하게 만들려는 정치적 술책이란 게 민주당쪽 주장이었다.

민주당 결집해도 지지율은…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발표된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을 해석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7월29일 발표된 ‘조그비’ 여론조사에선 케리가 부시를 48% 대 43%로 5%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보다 케리의 지지율 상승폭이 크지는 않다. 전당대회 전, 같은 여론조사에서 케리가 부시를 2%포인트 앞섰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3%포인트가 더 벌어졌을 뿐이다. 더 재밌는 점은 두 후보 지지층의 견고함이다. 케리 지지율은 전당대회 전이나 후나 똑같다. 부시의 지지율만 3%포인트가 내려앉았다. 그게 케리가 아니라 부동층으로 옮겨지면서 부동층 비율이 그만큼 늘어났다.


△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케리 지지 연설을 하기 위해 참석한 클린턴 부부. 민주당이 유례없이 결집하고 '정치 스타'들이 지원을 호소해도 승부는 박빙이다. (사진/ GAMMA)

이건 의미심장하다. 케리는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을 확실하게 결집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케리의 잠재적 라이벌로 여겨졌던 힐러리 클린턴은 전당대회장에서 케리를 추어올리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하워드 딘과 민주당 좌파인 데니스 쿠시니치 하원의원도 케리에게 한표를 던질 것을 호소했다. 최근 수십년 동안 이렇게 단합이 잘 이뤄진 대회는 없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조그비’ 여론조사대로라면, 케리는 부동층을 자기 편으로 끌어오는 데는 아직 역부족이다.

8월1일 발표된 <뉴스위크> 여론조사에서도 케리의 지지율 상승폭은 그리 크지 않다. 랠프 네이더까지 포함한 3자 대결에서, 케리는 49%의 지지로, 부시(42%)를 7%포인트 앞질렀다. 네이더는 3%포인트였다. 3주 전 같은 여론조사에서 케리가 부시를 3%포인트 앞선 것과 비교하면, 전당대회가 4%포인트의 상승 효과를 가져다준 셈이다. <뉴스위크>는 “이런 상승폭은 뉴스위크의 역대 전당대회 여론조사 가운데 가장 작은 수치”라고 밝혔다. 심지어 공동 여론조사(8월1일)에선, 전당대회에도 불구하고 부시(50%)가 케리(47%)를 오히려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기까지 했다. 이것이 공화당 주장처럼 전당대회 효과가 미미했음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 주장처럼 “유권자들의 양극화 현상”을 반영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어쨌든 격차가 그 정도밖에 벌어지지 않은 게 공화당으로선 다행이다. 그러나 마냥 즐거워할 수는 없다. 박빙의 상황에선 언제나 상대방을 바짝 따라붙어야 한다. 한번 밀리면 다시 만회하기 힘들어질지 모른다. 공화당의 8월 대공세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케리는 전당대회를 통해 ‘베트남의 가장 위험한 전투지역을 자원해서 간 군인 출신’이란 점을 효과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는 이 경력을 국가안보 지도력과 연결시켜 유권자들에게 다가갔다. 공화당은 케리의 이런 이미지를 지우는 대신에 ‘너무 진보적이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란 딱지를 붙이려고 애쓰고 있다. 그 열쇠는 케리의 19년간의 상원의원 생활에 있다. “케리는 19년간의 상원의원 생활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왜 1년도 채 안 되는 베트남 참전 경험만을 떠드느냐”는 게 공화당 공격이다. 부시는 직접 케리를 가리켜 “내 적수(존 케리)는 상원의원 19년 동안 수천번의 투표를 했을 텐데 특별한 업적을 남긴 게 별로 없다. 그가 훌륭한 의도를 갖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부시 국정지지율은 계속 추락

사실, 여러 외부적 여건은 케리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인다. <뉴스위크> 여론조사에서 부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3주 전의 48%에서 45%로 다시 떨어졌다. 지속적인 지지율 추락에도 불구하고 케리와 박빙의 싸움을 벌이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부시의 고정표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지만, 국정지지율 추락은 그에겐 적신호와 같다.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를 방문한 케리의 유세장엔 가는 곳마다 1만명 이상의 청중이 몰려들었다. 정권교체를 향한 민주당원들의 뜨거운 열망을 반영한다고 현지 언론들은 평했다. 같은 무렵 역시 오하이오 도버를 방문한 부시를 마중 나온 건 두 자매의 현수막이었다. 그 현수막엔 “할아버지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젠 당신 차례다”라고 써 있었다. 2000년 대선에서 부시를 지지했던 오하이오는 부시 치하에서 20만개의 일자리를 잃었다. 4년 전 부시를 지지했던 다른 주들도 대개 상황이 비슷하다. 부시는 “경제가 바닥을 쳤다. 앞으로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유권자들은 느끼지 못한다. 올 4월부터 일자리 수는 계속 증가 추세에 있지만, 대부분이 임시직이라 아직 유권자들의 피부엔 와닿지 않는다. 부시 집권기간에 2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부시에겐 커다란 짐이다.


△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동안 미국의 한 시민단체가 보스턴에 군화를 전시했다. 이 군화는 이라크전에서 사망한 미군들을 상징한다. (사진/ GAMMA)

여기에 미군의 이라크 주둔 문제가 맞물리면서, 2000년 대선에서 부시가 이겼던 주들 가운데 상당수가 접전지역으로 돌아서거나 케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라크에 많은 병사들을 보낸 플로리다나 노스캐롤라이나, 웨스트버지니아 등은 모두 부시가 반드시 이겨야 할 지역들이다.

7월24일의 선거인단 조사를 보면, 부시가 케리보다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부시에게 유리하진 않다. 부시와 케리가 접전 중인 플로리다, 미시간, 위스콘신 등 11개 주 가운데 펜실베이니아(선거인단 23명)와 오레곤(〃 7명) 등 2개 주는 머지않아 케리쪽으로 넘어올 것 같다고 은 전망했다. 또 케리 우세 주 가운데 접전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는 주가 메인, 미네소타, 워싱턴 등 3개 주(선거인단 총 25명)인 데 반해, 부시 우세 주 가운데 접전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는 주는 노스캐롤라이나, 콜로라도 등 7개 주(선거인단 총 73명)에 이른다. 주별 선거의 승자가 그 주에 걸린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미국의 독특한 ‘선거인단 제도’에서, 이런 상황은 케리에게 상당한 이득을 안겨주고 있다.

카리스마 부족이 케리의 아킬레스건

그런데도 전당대회까지 치른 케리가 부시와의 지지율 격차를 크게 벌리지 못한 건 뼈아픈 대목이다. 물론 미국 사회가 워낙 당파적으로 갈라져 부동층이 매우 적은 게 근본 이유다. 그러나 대중을 끌어모으는 카리스마의 부족은 여전히 케리에겐 아킬레스건이다. 호감도에서 부시는 케리를 앞선다.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취재기자 153명을 대상으로 비공식적인 여론조사를 했다. 언론이 케리에게 우호적이라는 공화당 주장이 타당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누가 더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워싱턴의 취재기자들은 12 대 1의 비율로 케리를 꼽았다. 비워싱턴 취재기자들도 3 대 1의 비율로 역시 케리를 꼽았다. 그러나 케리와 부시 중 누구를 담당하고 싶으냐는 질문엔 77명이 부시를, 67명이 케리를 꼽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케리는 재미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반된 평가가 올 11월 미국 대선을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꽃 튀는 접전으로 몰아가고 있다.

[2000년 대선에서 조지 부시와 앨 고어가 승리한 주]

조지 부시 승리 지역 30개 주(271명)
앨 고어 승리 지역 20개 주와 워싱턴DC(267명)


앨 고어가 승리한 주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워싱턴DC 델라웨어 하와이 아이오와 일리노이 매사추세츠 메릴랜드 메인 미시간 미네소타 뉴저지 뉴멕시코 뉴욕 오리건 펜실베이니아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워싱턴 위스콘신

조지 부시가 승리한 주 알래스카 앨라배마 아칸소 애리조나 콜로라도 플로리다 조지아 아이다호 인디애나 캔자스 켄터키 루이지애나 미주리 미시시피 몬태나 노스캐롤라이나 노스다코타 네브래스카 뉴햄프셔 네바다 오하이오 오클라호마 사우스캐롤라이나 사우스다코타 테네시 텍사스 유타 버지니아 웨스트버지니아 와이오밍

[조지 부시와 존 케리의 주별 우세 현황]


부시 우세 지역 (25개 주 217명)
몬태나 노스다코다 사우스다코다 아이다호 와이오밍 네브래스카 유타 콜로라도 캔자스 애리조나 몬태나 오클라호마 텍사스 아칸소 미시시피 테네시 앨라배마 조지아 인디애나 버지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켄터키 루이지애나 알래스카

케리 우세 지역 (14개 주 · 워싱턴DC 193명)
메인 버몬트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코네티컷 뉴욕 뉴저지 일리노이 미네소타 캘리포니아 워싱턴 델라웨어 하와이 메릴랜드 워싱턴DC

접전 지역 (11개 주 128명)
플로리다 오하이오 아이오와 네바다 뉴햄프셔 뉴멕시코 위스콘신 미시간 웨스트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 오리건

 

 

2지선다형, 부시냐 반부시냐

미 유권자들의 표심은 어디에… 변변찮은 정책대결, 오직 부시 지지와 혐오로 엇갈려

▣ 로스앤젤레스= 신복례 전문위원 boreshin@hanmail.net

민주당의 ‘미국에 대한 믿음’(Believe in America)이냐, 공화당의 ‘미국의 마음과 영혼’(Heart and soul of America)이냐.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을 향한 벼랑 혈투가 서막을 올렸다. 지난주 민주당은 보스턴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존 케리-존 에드워즈의 ‘존-존 커플’을 후보로 선정했다. 오는 8월30일 뉴욕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이 후보로 결정되면 11월2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건곤일척의 맞대결이 펼쳐지게 된다. 관전자들에게 이번 선거만큼 재미없는 싸움은 없을 것 같다. 인물도 변변찮고 무기도 신통찮다. 거창하게 내건 명분도 고리타분하기만 하다. 주인공인 유권자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도대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고 불평한다. 귀를 혹하게 하는 공약조차 없다.



△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민주당 케리 후보(맨위)와 공화당 부시 대통령. 양 진영 모두 이번 선거의 테마인 안보에 대해 어떤 정책을 내세울지 고심하고 있다. (사진/ GAMMA)

‘안보’만이 문제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이번 대통령 선거만큼 중요한 선거는 없었다. 벌어질 대로 벌어진 빈부격차와 갈라질 대로 갈라진 국론으로 미국은 현재 중병을 앓고 있다. 다음 4년간 병이 깊어진다면 더 이상 치유할 길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결과에 따라 미국의 앞길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은 근심과 초조함으로 판세를 지켜보고 있다.

이번 선거전의 특징은 답이 나와 있는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다. 선거전의 테마는 이미 정해져 있다. 바로 ‘안보’다. 현재 미국은 9·11 이후 테러전쟁과 그에 이어진 이라크 전쟁의 와중에 있다. 애국심이 뼈 속에 박혀 있는 미국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또다시 9·11 같은 끔찍한 테러가 일어날 것이냐는 데 쏠려 있다. 더구나 이미 더러운 전쟁이 돼버린 이라크에서 수많은 자국 군인들이 희생되고 미국이 지구촌의 공적이 되면서 안보 불안감은 더욱 높아졌다.

선거전에서 안보 테마의 위력은 한국의 유권자들이 가장 잘 안다. 폭발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어떤 반대 주제도 먹히지 않는다. 목숨과 재산이 날아갈 위기감 앞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단 하나밖에 없다. 갖은 실정과 심각한 이라크 전쟁 후유증에도 부시가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이유는 미국의 심장 뉴욕을 강타한 9·11을 경험한 미국인들이 충격을 잊지 않은 덕분이다. 지난 1992년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에서 승리했음에도 시골뜨기 빌 클린턴에게 참패한 것과 지금은 분명히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도 미국 경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실업자들은 넘치고 각 지역을 지탱해온 전통 제조업체들은 망한 지 오래다. 경제지표들은 그럭저럭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바닥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빈부격차가 커져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가구 수가 전국적으로 300만 가구가 넘는다. 그러나 이런 경제 문제는 이번 선거전에서 2순위로 밀려났다. 전통적으로 미국을 떠받쳐온 중산층 유권자들은 수입보다 많은 고지서들을 손에 들고서도 ‘안보’를 더 실감나게 느끼고 있다.

케리 진영과 민주당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어차피 부시 진영의 선거전략은 ‘힘의 미국’을 앞세운 안보논리다. 미국 내에서도 ‘악당’으로 공인된 부시는 다른 전략은 고려도 않고 있다. 그에 차별화하려면 힘만 믿고 날뛰는 지도자가 아니라 든든하면서도 유능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케리 후보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고작 상원 외교안보위원회 경력뿐이다. 유권자들에게 안보를 믿고 맡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게 케리 진영의 최대 숙제다. 하지만 이라크전 파병안에 찬성한 업보가 계속 발목을 잡고 있다. 부시쪽의 ‘줏대 없는 기회주의자’ 비난이 상당 부분 먹혀들었다. 부동층 유권자들은 케리에게 안보를 맡겨도 좋은지 반신반의하고 있다.

지난 30일(한국시간) 케리 후보는 50분간의 수락 연설에서 그동안의 유약한 이미지와는 달리 단호하고도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연설 직후 비공식 여론조사에서 2%포인트의 상승 효과를 봤다. 그러나 효력은 아직 미지수다. 전당대회 다음날 전통적 민주당 지지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면 톱기사에 “케리 연설은 부동층을 흔들었으나 매혹시키지는 못했다”는 제목을 뽑았다.

지난 20일치 <월스트리트저널>은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이 고소득층에 지극히 편중됐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1면 머리로 올렸다. 5월 둘째 주 <타임>도 ‘일하는 빈민층(Working Poor)’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부부는 물론 온 가족이 일을 하지만 대부분은 의료보험도 없고 자녀가 대학교육을 받을 기회도 갈수록 줄어든다는 게 요지다. 결국 빈민층들에겐 미래가 없는, 가난의 대물림이 불가피하다는 암시를 던졌다.

미국 언론 중 가장 보수적인 두 매체의 기사는 미국의 현주소를 잘 나타낸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선거전이 정책대결 양상을 넘어 화해될 수 없는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사설처럼 선거전의 표심은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시와 케리 후보는 46~48%의 고정표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같은 지지가 인물과 정책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부시 지지’와 ‘부시 혐오’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 부시의 기반인 중산층 이상 백인 유권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요지부동이다. 오로지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화당과 부시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동층 노린 네거티브 전략 득세

케리 지지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 외에 대다수 유권자는 ‘부시 반대자’들이다. 부시와 공화당 정권의 독선과 아집에 질린 사람들이다. 특히 4년 동안의 정책으로 고통받아온 저소득층과 소수계는 ‘부시가 싫어서’ 무조건 민주당에 표심을 내준 상태다.

이같은 경향은 선거전에서는 최악의 신호다. 결국 승패는 부동층이 가르기 때문에 이들을 자극하기 위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이후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주요 방송 전파를 타고 있는 부시쪽의 ‘케리 비난 광고’가 먹혀든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나오는 연사마다 부시를 강력하게 비난한 것도 같은 전략이다. 현재 부동층은 전체 유권자의 7% 정도로 추산된다. 750만명이 넘는다. 부시는 싫지만 케리도 미덥지 못하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국 민주당의 운명은 이들에게 달린 셈이다.

사실 느닷없이 대통령 후보가 된 케리 진영의 최대 고민은 아직 그를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2400만명이 지켜본 것으로 집계된 전당대회 후보 수락연설로 많이 알려진 게 그나마 다행이다. 바로 다음날부터 전국 21개 주 버스 투어에 나섰다. 강행군을 하면서 유세 바람몰이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어차피 부동층의 향배에 승패가 걸린 만큼 판세가 백중세인 지역을 가장 우선적으로 찾아다니며 파고든다는 계산이다.

케리 진영은 경제와 세금, 의료보장, 에너지 자급자족, 안보 등 4개 테마로 공약을 잡고 부동층을 공략할 계획이다. 하지만 공약은 두루뭉술하게 짜였다. 사실 내놓을 정책도 딱히 뚜렷한 게 없는 형편이다. 경제 회생에는 묘안이 없고 세금은 부시가 감세 법안으로 선점한 지 오래다. 그나마 저소득층 의료보장이 관심사지만 연방정부의 적자투성이 재정 상태로 획기적인 정책을 세운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 케리쪽은 라틴계를 사로잡을 이민법 개혁에 기대를 걸고 있다.

케리는 정답을 찍을 수 있을까

결국 정책보다는 이미지 싸움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어차피 현 판세라면 지난 4년 전 대선처럼 득표율엔 앞서고 선거에선 질 가능성이 높다. 골수 지지층을 확보한 부시 진영에 비해 케리 지지층은 결속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일단 케리쪽은 공격 전술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정권의 실정과 이라크전 실패를 물고 늘어져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네거티브 캠페인이다. 또 에드워즈 부통령 후보를 비롯해 힐러리 클린턴, 하워드 딘 등 인기 있는 당의 스타들을 총동원해 바람몰이를 할 계획이다. 하지만 케리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전쟁 상황에서 지나친 공격은 역풍을 맞을 공산이 크다. 또 경제든 의료보장이든 가슴에 와닿는 공약이 없이 부동층 유권자들이 표심을 내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케리 캠프는 더욱 수읽기가 복잡하다. 케리가 이미 나와 있는 모범답안 중에서 단 하나의 ‘정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번 미국 대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2지선다형, 부시냐 반부시냐

미 유권자들의 표심은 어디에… 변변찮은 정책대결, 오직 부시 지지와 혐오로 엇갈려

▣ 로스앤젤레스= 신복례 전문위원 boreshin@hanmail.net

민주당의 ‘미국에 대한 믿음’(Believe in America)이냐, 공화당의 ‘미국의 마음과 영혼’(Heart and soul of America)이냐.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을 향한 벼랑 혈투가 서막을 올렸다. 지난주 민주당은 보스턴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존 케리-존 에드워즈의 ‘존-존 커플’을 후보로 선정했다. 오는 8월30일 뉴욕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이 후보로 결정되면 11월2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건곤일척의 맞대결이 펼쳐지게 된다. 관전자들에게 이번 선거만큼 재미없는 싸움은 없을 것 같다. 인물도 변변찮고 무기도 신통찮다. 거창하게 내건 명분도 고리타분하기만 하다. 주인공인 유권자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도대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고 불평한다. 귀를 혹하게 하는 공약조차 없다.



△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민주당 케리 후보(맨위)와 공화당 부시 대통령. 양 진영 모두 이번 선거의 테마인 안보에 대해 어떤 정책을 내세울지 고심하고 있다. (사진/ GAMMA)

‘안보’만이 문제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이번 대통령 선거만큼 중요한 선거는 없었다. 벌어질 대로 벌어진 빈부격차와 갈라질 대로 갈라진 국론으로 미국은 현재 중병을 앓고 있다. 다음 4년간 병이 깊어진다면 더 이상 치유할 길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결과에 따라 미국의 앞길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은 근심과 초조함으로 판세를 지켜보고 있다.

이번 선거전의 특징은 답이 나와 있는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다. 선거전의 테마는 이미 정해져 있다. 바로 ‘안보’다. 현재 미국은 9·11 이후 테러전쟁과 그에 이어진 이라크 전쟁의 와중에 있다. 애국심이 뼈 속에 박혀 있는 미국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또다시 9·11 같은 끔찍한 테러가 일어날 것이냐는 데 쏠려 있다. 더구나 이미 더러운 전쟁이 돼버린 이라크에서 수많은 자국 군인들이 희생되고 미국이 지구촌의 공적이 되면서 안보 불안감은 더욱 높아졌다.

선거전에서 안보 테마의 위력은 한국의 유권자들이 가장 잘 안다. 폭발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어떤 반대 주제도 먹히지 않는다. 목숨과 재산이 날아갈 위기감 앞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단 하나밖에 없다. 갖은 실정과 심각한 이라크 전쟁 후유증에도 부시가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이유는 미국의 심장 뉴욕을 강타한 9·11을 경험한 미국인들이 충격을 잊지 않은 덕분이다. 지난 1992년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에서 승리했음에도 시골뜨기 빌 클린턴에게 참패한 것과 지금은 분명히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도 미국 경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실업자들은 넘치고 각 지역을 지탱해온 전통 제조업체들은 망한 지 오래다. 경제지표들은 그럭저럭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바닥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빈부격차가 커져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가구 수가 전국적으로 300만 가구가 넘는다. 그러나 이런 경제 문제는 이번 선거전에서 2순위로 밀려났다. 전통적으로 미국을 떠받쳐온 중산층 유권자들은 수입보다 많은 고지서들을 손에 들고서도 ‘안보’를 더 실감나게 느끼고 있다.

케리 진영과 민주당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어차피 부시 진영의 선거전략은 ‘힘의 미국’을 앞세운 안보논리다. 미국 내에서도 ‘악당’으로 공인된 부시는 다른 전략은 고려도 않고 있다. 그에 차별화하려면 힘만 믿고 날뛰는 지도자가 아니라 든든하면서도 유능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케리 후보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고작 상원 외교안보위원회 경력뿐이다. 유권자들에게 안보를 믿고 맡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게 케리 진영의 최대 숙제다. 하지만 이라크전 파병안에 찬성한 업보가 계속 발목을 잡고 있다. 부시쪽의 ‘줏대 없는 기회주의자’ 비난이 상당 부분 먹혀들었다. 부동층 유권자들은 케리에게 안보를 맡겨도 좋은지 반신반의하고 있다.

지난 30일(한국시간) 케리 후보는 50분간의 수락 연설에서 그동안의 유약한 이미지와는 달리 단호하고도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연설 직후 비공식 여론조사에서 2%포인트의 상승 효과를 봤다. 그러나 효력은 아직 미지수다. 전당대회 다음날 전통적 민주당 지지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면 톱기사에 “케리 연설은 부동층을 흔들었으나 매혹시키지는 못했다”는 제목을 뽑았다.

지난 20일치 <월스트리트저널>은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이 고소득층에 지극히 편중됐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1면 머리로 올렸다. 5월 둘째 주 <타임>도 ‘일하는 빈민층(Working Poor)’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부부는 물론 온 가족이 일을 하지만 대부분은 의료보험도 없고 자녀가 대학교육을 받을 기회도 갈수록 줄어든다는 게 요지다. 결국 빈민층들에겐 미래가 없는, 가난의 대물림이 불가피하다는 암시를 던졌다.

미국 언론 중 가장 보수적인 두 매체의 기사는 미국의 현주소를 잘 나타낸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선거전이 정책대결 양상을 넘어 화해될 수 없는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사설처럼 선거전의 표심은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시와 케리 후보는 46~48%의 고정표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같은 지지가 인물과 정책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부시 지지’와 ‘부시 혐오’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 부시의 기반인 중산층 이상 백인 유권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요지부동이다. 오로지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화당과 부시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동층 노린 네거티브 전략 득세

케리 지지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 외에 대다수 유권자는 ‘부시 반대자’들이다. 부시와 공화당 정권의 독선과 아집에 질린 사람들이다. 특히 4년 동안의 정책으로 고통받아온 저소득층과 소수계는 ‘부시가 싫어서’ 무조건 민주당에 표심을 내준 상태다.

이같은 경향은 선거전에서는 최악의 신호다. 결국 승패는 부동층이 가르기 때문에 이들을 자극하기 위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이후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주요 방송 전파를 타고 있는 부시쪽의 ‘케리 비난 광고’가 먹혀든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나오는 연사마다 부시를 강력하게 비난한 것도 같은 전략이다. 현재 부동층은 전체 유권자의 7% 정도로 추산된다. 750만명이 넘는다. 부시는 싫지만 케리도 미덥지 못하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국 민주당의 운명은 이들에게 달린 셈이다.

사실 느닷없이 대통령 후보가 된 케리 진영의 최대 고민은 아직 그를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2400만명이 지켜본 것으로 집계된 전당대회 후보 수락연설로 많이 알려진 게 그나마 다행이다. 바로 다음날부터 전국 21개 주 버스 투어에 나섰다. 강행군을 하면서 유세 바람몰이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어차피 부동층의 향배에 승패가 걸린 만큼 판세가 백중세인 지역을 가장 우선적으로 찾아다니며 파고든다는 계산이다.

케리 진영은 경제와 세금, 의료보장, 에너지 자급자족, 안보 등 4개 테마로 공약을 잡고 부동층을 공략할 계획이다. 하지만 공약은 두루뭉술하게 짜였다. 사실 내놓을 정책도 딱히 뚜렷한 게 없는 형편이다. 경제 회생에는 묘안이 없고 세금은 부시가 감세 법안으로 선점한 지 오래다. 그나마 저소득층 의료보장이 관심사지만 연방정부의 적자투성이 재정 상태로 획기적인 정책을 세운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 케리쪽은 라틴계를 사로잡을 이민법 개혁에 기대를 걸고 있다.

케리는 정답을 찍을 수 있을까

결국 정책보다는 이미지 싸움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어차피 현 판세라면 지난 4년 전 대선처럼 득표율엔 앞서고 선거에선 질 가능성이 높다. 골수 지지층을 확보한 부시 진영에 비해 케리 지지층은 결속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일단 케리쪽은 공격 전술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정권의 실정과 이라크전 실패를 물고 늘어져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네거티브 캠페인이다. 또 에드워즈 부통령 후보를 비롯해 힐러리 클린턴, 하워드 딘 등 인기 있는 당의 스타들을 총동원해 바람몰이를 할 계획이다. 하지만 케리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전쟁 상황에서 지나친 공격은 역풍을 맞을 공산이 크다. 또 경제든 의료보장이든 가슴에 와닿는 공약이 없이 부동층 유권자들이 표심을 내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케리 캠프는 더욱 수읽기가 복잡하다. 케리가 이미 나와 있는 모범답안 중에서 단 하나의 ‘정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번 미국 대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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