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 미국 대선과 한반도 - 상
부시 재선하면 한반도는 '고난의 행군'
정욱식/ 2004년 8월 6일
지난 7월 말 민주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미국의 대선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초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 부메랑에 맞아 재선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이렇다할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부시의 우세를 점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2004년 미국 대선. 2000년 대선에서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올스톱'이라는 참담한 경험을 한 우리로서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서 연재될 이번 기획에서는 한반도 정책을 중심으로 부시와 케리의 외교정책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대안은 무엇인지를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2004년 전세계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미국의 대통령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가는 항상 국제사회의 관심사였지만, 이번만큼이나 국제사회의 이목이 미국 대선으로 쏠리는 경우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유는 '부시의 미국' 자체가 너무나도 낯설었고 지구촌에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녀'라는 조롱을 받아왔던 유엔마저도 승인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명분도 근거도 없었던 이라크 전쟁을 강행한 것이 여실히 보여주듯, 부시 행정부는 무분별한 군사력의 사용과 일방주의적 외교로 전세계를 분노와 공포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가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고통을 받아온 인류사회가 미국 대선에 초미의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관심 속에는 부시에 대한 정치적 응징과 함께 부시가 재집권할 경우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새로운 미국 정부가 들어설 경우 '다른 미래'가 열릴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낙관이 자리잡고 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부시가 당선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올스톱'했던 쓰디쓴 경험을 한 우리로서도 부시의 재선 여부에 남다른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북핵 문제'로 표현되는 북미간의 대결 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한미동맹을 패권주의 도구로 삼고자 하는 부시 행정부의 재선 여부는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핵심적인 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시의 재선이 왜 위험한가?
그렇다면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면 한반도의 정세는 어디로 흘러갈까? 미국의 대선 이후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핵심적인 변수는 6자회담의 성패 및 북한의 태도, 2기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팀의 인적 구성,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정세, 미국-중국간의 전략적 이해관계, 주한미군을 비롯한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의 진행 상황 및 군사력의 변화 등이 있다. 이들 변수는 대단히 복잡한 함수관계를 만들면서 한반도의 정세를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먼저 북핵 문제부터 살펴보자. 부시가 재집권한 상황에서도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구성되기 위해서는 미국 대선을 전후해 6자회담에서 돌파구가 마련되어야 하고 북핵의 사찰 및 검증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북미 양측의 교집합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미국 내 강온파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어야 한다. 물론 강온파 사이의 갈등 해소 결과는 북한정권 교체에 대한 유혹을 확실히 버리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포기와 미국의 대북한 안전보장 및 정치적, 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로 대북정책의 목표를 확실히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최선의 조합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미국 대선 전에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북핵 프로그램의 불확실성과 '100% 검증이 불가능한 북핵 프로그램을 100% 검증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태도를 미뤄볼 때, 북한과 미국을 모두 만족시키는 사찰 및 검증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는 핵문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더라도, 미사일, 생화학무기, 재래식 군사력, 인권 문제 등을 제기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어야만 완전한 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북한을 압박할 것이다.
더구나 2기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은 1기 때보다 더 강경한 인물로 채워질 가능성도 높다. 1기 때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제임스 켈리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그리고 잭 프리처드 대북특사 등 '상대적인' 온건파가 힘겹게 초강경파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지만, 잭 프리처드는 강경파와의 불화로 2003년 8월 사임한 상태이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강경파와의 갈등과 건강상의 문제로 2기 행정부 인선 때 빠질 가능성이 높은 현실이다.
2기 행정부 때는 협상파가 득세하기보다는 오히려 딕 체니,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폴 월포위츠, 그리고 존 볼튼 등 초강경파가 주도권을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전망과 분석에 기초할 때, 2기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정세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최악의 시나리오란 전쟁의 발발이나 북한의 핵무장은 물론이고, 강압적인 수단에 의한 북한의 붕괴, 혹은 이 둘 가운데 하나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팽배해지는 상황의 지속을 말한다.
막강해지는 미국의 군사력
일단 확실한 것은 2기 부시 행정부는 1기 때보다는 훨씬 강화되고 유리한 형태의 대북한 군사력 사용 옵션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2기 때는 주한미군을 북한의 장사정포의 사정거리 밖으로 이동시키게 되고,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응한 미사일방어체제(MD)를 남한, 일본, 미국 본토에 배치하게 돼 북한의 미사일 전력을 적지 않게 무력화시킬 수 있으며, 주한·주일미군의 전력 증강과 신무기 개발 및 배치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정밀타격 및 신속한 전쟁 수행 능력을 상당 부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대북한 선제공격 계획인 '5026', 북한 붕괴시를 대비한 '5029', 그리고 북한 군사력의 소진 및 도발을 유도하는 '5030' 등이 상당히 구체화될 것이고, 일본을 한반도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형태로 미일동맹도 개편해 나갈 것이다.
이 밖에도 북한 등 이른바 "깡패국가(rogue state)"와 테러집단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및 보유를 방지하기 위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등 군사적 압박과, 북한의 지하시설을 겨냥한 지표관통형 소형 핵무기 등 최첨단 공격 무기의 개발 등도 가속화될 것이다.
1기 때와는 판이하게 한반도의 군사적 상황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MD와 PSI 등 미국 주도의 군사체제에 한국이 참여해줄 것을 요구하는 압박도 높아질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미국 군사력의 증강이 곧바로 한반도의 전쟁 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전망은 여전히 어두운 반면에, 미국의 군사력이 이처럼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평화적 해결이 물 건너 간다면, 결국 미국은 군사력 사용을 고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 현대화도 부시가 그려놓은 큰 그림 아래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주한미군 감축 시기를 일부 조정할 가능성은 있지만, 당초 계획대로 2005년을 전후해 1만2500명을 감축하는 한편, 주한미군의 오산·평택으로 집결 및 전력 공백을 메운다는 명분으로 최첨단 무기체계의 배치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다.
또한 한국의 경제력에 걸맞게 국방비를 늘려 한국 방어 작전에서 한국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대포병 작전 등 주한미군이 맡아온 임무를 한국군에게 넘기는 것도 가속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란이냐, 북한이냐?
부시가 재집권할 경우 한반도의 정세와 관련해 이라크 등 중동 문제도 대단히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일단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자유선거와 헌법제정을 통해 이라크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이라크의 새로운 정부가 '친미' 성향이 되도록 대규모의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시는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에게 추가 파병 요청을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한국군의 임무 역시 미군과 함께 이라크 저항세력 및 테러집단 제거로 요청해올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는 한국이 파병을 해준다는 것 자체를 중요했지만, 재선에 성공하면 한국의 실질적인 도움을 고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시가 재선할 경우 한반도의 정세는 부시가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란에 대한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이란은 2004년 초에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추가의정서에 서명해 핵사찰을 받았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무리한 요구와 전력생산용 핵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던 유럽연합의 약속 위반을 문제삼으면서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더구나 2004년 7월 미국 의회의 9·11 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는 이란이 알 카에다와 연계를 갖고 있었다고 발표해, "부시가 재선할 경우 이라크 다음에 이란이 공격 목표물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2004년 7월 미국 하원은 이란의 핵무장을 억제·좌절·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모든 수단"을 미국 정부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결의안을 376대 3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고, 미국 정부 관리들은 부시가 재선할 경우 이란 내부의 폭동을 유발하는 등 이란 정권을 붕괴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1기 부시 행정부 때 "이라크냐, 북한이냐"는 논란이, 2기 부시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에는 "이란이냐, 북한이냐"는 것으로 바뀔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미중간의 뒷거래 가능성은?
미중 관계 및 양안 문제도 대단히 중요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전쟁 억지, 그리고 북한의 붕괴 방지를 대 한반도 정책의 핵심으로 삼아왔던 중국은 이 세 가지 목표의 동시 유지가 불가능해졌다는 판단으로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팔·다리를 걷어붙인 상황이다.
그러나 결국 6자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해지고 부시 행정부가 재선에 성공해 북한 체제 제거를 결심할 경우,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중국이 미국과의 갈등도 불사하면서 끝까지 북한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한반도가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놓이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2008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그리고 대만의 독립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조건만 맞는다면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붕괴시 중국의 직접적인 우려 사항, 즉 대량 난민의 중국 유입 문제와 주한미군의 북상과 관련해서, 미국은 난민 수용소 건설 등 경제적 비용을 부담하고 주한미군을 3·8선 이북에 주둔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중국에 해주는 한편, 미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시 한국에 압력을 행사해 간도 영유권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도 있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이러한 뒷거래를 하면, 한반도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북한을 둘러싼 미중 사이의 이해관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양안 문제이다. 이는 한반도가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놓여 있다는 지정학적인 의미와 함께, 미국 주도의 한미동맹 재편이 이뤄지면 한국 역시 미중간의 충돌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재선에 성공할 경우 양안간의 무력 충돌시 주한미군을 차출할 수 있도록 기지 재배치와 임무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한국을 MD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할 것이다. 이는 물론 중국을 자극하는 것이고 이에 따라, 한국이 중국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동북아의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와 양안 문제가 시기적으로 중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부시가 재선할 경우 임기인 2005-8년 사이에 중대한 고비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튼튼히 해야 한다며 미국의 요구를 상당 부분 들어주었던 노무현 정부는 부시 2기 때에도 똑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적 착오는 한미동맹이 지역동맹화가 되면서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미중간의 충돌시 한국도 빨려 들어갈 수 있는 소지를 제공하고 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튼튼히 한다는 한미동맹이 뜻하지 않게 중국을 적대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이와 같은 함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간의 충돌이 발생했을 경우 한국은 엄청난 딜레마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을 돕지 않으면 한미동맹이 위험에 빠지고 이에 따라 북핵 문제를 통제하기가 어려워지고, 반면에 미국을 도와주면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공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면, 남북한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을 계속해야 할 공산이 크다. 남북한이 2000년 대선 때처럼 미국의 대선 결과를 기다리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부시의 재선에 대비한 '예방 외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