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verick 22-철학책읽기에 관해 2]에 대해 댓글들을 달아주신 걸 보니까 문득 생각이 나서 철학사전 한 권을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요놈입니다요.
작년 10월 초에 프랑스에서 아주 뜻깊은 철학사전이 한 권 출간되었습니다. [Vocabulaire europeen des philosophies](쇠이유Seuil 출판사/로베르Robert 출판사 공동 출간)라는 제목이 달린 사전인데,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유럽철학어휘사전] 정도가 되겠고, 좀더 정확히 원문 그대로 번역한다면 [철학들에 대한 유럽어휘사전]이 되겠죠. 이 뒤의 번역은 아주 어색하지만, 이 사전의 기획 의도를 생각한다면 사실은 이런 번역이 훨씬 정확할 듯합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제목은 바로 다음과 같은 부제(이는 책 겉표지에는 없고 속표지에만 나와 있습니다)입니다. [Dictionnaire des intraduisibles],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번역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사전]입니다! 매우 데리다적인 발상을 담고 있는 이 부제(하지만 사전의 항목 집필자들이 꼭 데리다와 친분이 있거나 데리다의 철학을 따르는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는 이 사전이 시도하고 있는 지적 모험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그게 뭐나구요? 우선 이 사전의 편집담당자인 바바라 카생(Barbara Cassin, 고전철학 및 문헌학)의 말을 한번 직접 들어보죠.
유럽이 제기하는 가장 긴급한 문제 중 하나는 언어들의 문제다. 이 문제에 관해 두 가지 유형의 해결책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앞으로 그 언어를 통해 교류가 이루어질 지배적인 한 언어, 곧 세계화된 영미어를 선택하는 길이 있다. 또는 언어의 다원성을 유지하면서 매 경우마다 언어들 간의 차이의 의미와 잇점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길이 있는데, 이는 언어들 및 문화들 사이의 교통을 실제로 촉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유럽철학어휘사전: 번역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사전]은 두번째 시각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전은 과거보다는 장래에 시선을 두고 있다. 곧 이 사전은 회고적이고 화석화된 어떤 유럽―그러나 이는 어떤 유럽인가?―, 필경 [각 나라의] 특수성들만 더 부각시키게 될, 병렬적인 유산들의 누적에 따라 정의된 어떤 유럽보다는, 진행 중에 있고 활동 중에 있는, 곧 활동의 결과ergon라기보다는 활동energeia으로서의 유럽과 연계되어 있다. 이 유럽은 자기 자신을 더 훌륭하게 만들어내기 위해, 간격들, 긴장들, 전이들, 전유/고유화들appropriations, 오해들을 회피하지 않고 작업해나갈 것이다. (...)
이 사전은 1500쪽 가량에 400여 항목을 담고 있고 150여명의 필자들이 참가하고 있는데, 규모만으로 보자면 이 사전은 그리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닙니다. 이미 10여년 전에 프랑스대학출판부(PUF)에서 이보다 훨씬 방대한 규모의 철학사전(총 5권)을 펴낸 적이 있고, 독일이나 영미권에서도 훨씬 더 규모가 큰 철학사전들이 여러 권 나온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분량으로 따지자면, 몇 년 전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윤리학과 도덕철학 사전]이 이 사전보다 오히려 더 크다고 할 수 있죠. 따라서 외형만 놓고 본다면, 그저 “또 사전이야?”하고 지나칠 수도 있는 그런 사전입니다.
하지만 이 사전의 의의는 일차적으로 번역이라는 문제, 철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늘 부딪치게 되는 번역이라는 문제를 유럽철학(사)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가령 “Âme”라는 항목을 보면 이렇습니다. 보통의 철학사전은 이 항목에 관해, 그리스어의 “프쉬케psykhē”(또는 “누스nous”)에서 유래하고 라틴어의 “아니마anima”나 “멘스mens”를 거쳐 오늘날의 “암므âme”나 “가이스트Geist”, “마인드mind”에 이르게 된 경로를, 대표적인 철학자들(가령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로크, 흄, 칸트, 헤겔, 비트겐슈타인 등)의 몇몇 저작들의 발췌문들을 검토하면서 제시해줍니다.
그런데 이 사전 같은 경우는 이처럼 우리가 “정신” 또는 “âme”나 “Geist”, "mind"라는 상이한 단어들로 이해하는 어떤 것(그런데 이게 뭘까요?)이 각각의 상이한 시기에 각각의 상이한 언어로 변화되는 것 자체를 핵심적인 문제로 제기하고, 이러한 변화가 우리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탐구합니다.
데카르트를 예로 들면,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두 개의 언어로 철학을 한 사람으로, [방법서설](1637)이나 [정념론](1649) 같은 책은 불어로 썼고, [성찰](1641)이나 [철학원리](1644) 같은 책은 라틴어로 썼습니다. 더욱이 [성찰]이나 [철학원리] 같은 책들은 불어번역을 데카르트 자신이 감수했고, 내용을 일부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라틴어와 불어, 또는 불어와 라틴어 사이에 통상적인 의미의 원본과 번역본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몇몇 핵심 개념들의 차원에서 잘 드러나는데, “mens”나 “anima”라는 라틴어 단어와 불어의 “âme”나 “esprit”라는 단어가 그 한 가지 사례입니다. 곧 “âme”가 꼭 mens에 딱 들어맞는 번역어가 아니듯이, esprit 역시 “anima”에 딱 들어맞는 번역어가 아니라는 점이죠.
예컨대 데카르트가 사용하는 라틴어 “mens”는 중세철학의 전통과 관련해 볼 때 매우 혁신적인 어휘죠. 이 개념은 신체, 또는 좀더 일반적으로는 물질적인 연장의 질서와는 전혀 무관한 정신, 또는 사유의 질서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위 데카르트의 이원론이라는 것을 어휘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이 “멘스”라는 개념이죠. 그런데 문제는 [성찰]이나 [철학원리] 같은 데카르트의 주요 철학 저작의 불어 번역본(곧 데카르트 자신이 직접 감수해서 출간된 데카르트 당대의 번역본)에는 이 단어가 “âme”라는 불어로 번역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왜 그게 문제냐구요?? 그 자체만으로 본다면 별 문제가 될 게 없죠. 문제는 데카르트가 말년에 쓴 [정념론](이 책은 데카르트가 직접 불어로 썼습니다)에서도 “âme”라는 불어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정념론]의 불어 원제가 “Passions de l'âme”입니다), 이 때 데카르트가 “âme”라는 단어로 지시하고 있는 어떤 것은, 데카르트가 [성찰]이나 [철학원리] 같은 책에서 지시하고 있는 것, 곧 “mens”, 순수한 사유실체로서의 “정신”과는 상이한 어떤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이 때의 “âme”는 신체나 물질과 구분되는 순수한 사유실체라기보다는, 신체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에 따라 놀람과 기쁨, 슬픔, 사랑과 미움 등의 정념들에 따라 변양되는, 이를 테면 정념론적 차원에 있는 마음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의 불어 단어 “âme”가 한편으로는 순수한 사유실체로서 “mens”를 가리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념적인 실체를 가리키기도 하는 사태가 벌어진 거죠.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단순히 단어 차원, 어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곧 이러한 용어상의 혼란은 데카르트 철학의 혼란, 난점을 드러내주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순수한 사유실체로서의 “mens”와 정념들의 차원에서 파악된 “âme”, 이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데카르트 자신도 명쾌한 답변을 갖고 있지 못했다는 거지요. 더 나아가 이러한 애매성은 근대철학 내내 지속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변용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mens”와 “âme”, 또는 “esprit”라는 용어들 사이의 관계는 “단순히” 번역의 차원을 넘어서, 중세철학에서 근대철학으로 넘어오면서 일어난 개념적인 혁신과 그것이 담고 있는 이론적 난점들 및 긴장, 애매성을 표현해주는 한 사례가 되는 셈입니다.
“Âme”라는 항목에 관해 잠깐 살펴봤는데, 이 사전에 수록된 여러 항목들의 내용이 대개 이런 것들입니다. 이런저런 용어에 대해 간편하고 도식화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그 용어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생겨났고, 또 어떤 난점과 긴장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후대의 철학자들에 의해 어떻게 전위되는지, 이런 번역과 발명, 소통과 변형의 과정을 추적하고 있죠. 따라서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하고 지루한 내용이 될 수도 있는데, 기고자들의 뛰어난 역량 때문인지, 매우 집약적이면서도 명쾌한 설명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 사전이 기획된 계기는 1990년에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있었던 한 학술회의였습니다. “철학자들을 번역하기Traduire les philosophes”라는 제목이 붙은 이 학술회의는, 특히 근대철학에서 한 나라의 철학이 다른 나라로 수입, 전파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번역을 비롯한 여러 언어적인 문제를 다루는 회의였죠. 다수의 중견 철학자들이 참여한 회의였고, 상당히 재미있는 논의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 회의를 계기로 이 문제를 좀더 체계적으로 다뤄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되고, 오랜 기간의 작업과 진통을 거쳐(발리바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러 차례의 무산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출간된 게 바로 이 책입니다.
몇 년 전부터 나온다나온다 예고만 되길래 긴가민가했는데, 마침내 지난 해 10월에 출간이 되어서, 곧바로 주문해서 구입했습니다. 흑, 그런데 정가가 95유로, 할인을 해도 90유로 가까운 가격,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12만원이 넘는 가격이어서, 사고나서는 솔직히 좀 후회도 되더군요.(도서관에 신청해서 복사를 하면 ... 하고 말이죠. -_-v) 하지만 좋은 사전을 구입했다는 뿌듯한 감정이 더 크다(이 놈의 뿌듯함 때문에 내가 못살아요 ... ㅠ.ㅠ)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군요. ^^;;;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제가 이렇게 이 사전을 소개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는, 여러 서재 주인장들께서 번역본만 읽는다고 우울해하시길래, 위로의 차원에서(헉, 진정 위로인가, 아니면 또다른 염장인가??) 소개해드린 겁니다. 번역의 어려움이나, 번역하면서 번역 불가능한 어떤 것을 경험하게 되는 일은 비단 우리에만 고유한 일은 아니라는 거죠. 이 사전이 증언해주고 있다시피 서양철학사는 어쩌면 번역 불가능한 것과의 대결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랍철학에서 헬레니즘철학으로, 다시 헬레니즘철학에서 중세철학으로, 그리고 다시 근대철학에서 현대철학으로 넘어오면서 계속해서 사람들은 번역 불가능한 어떤 것과 직면하게 되고, 이것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가면서, 또는 번역 불가능한 것에 맞서 새로운 단어, 새로운 개념, 새로운 문제를 발명해가면서 철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았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번역 불가능한 어떤 것을 경험하고, 그것을 하나의 문제로, 해결해야 할 하나의 과제로 생각하는 것은 부정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유의 새로운 기회, 새로운 사유의 발명의 조건이라고 보는 게 옳지 않은가 합니다. 번역의 불가능성이 크면 클수록 그것은 출구를 모색하기 위한 사고와 시도를 자극하기 마련이고, 이런 자극은 번역 불가능한 것을 만들어내었던 이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열어놓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외국어를 잘하는 것이 유리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꼭 사유의 필수 조건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령, 좀 먼 시기의 예이긴 하지만,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이는 희랍어를 전혀 모르는 가운데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에 관한 기념비적인 주석들을 남겼죠. 스피노자 같은 이도 결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라틴어 능력으로 훌륭한 저작들을 남겼구요.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죠. 한글만 할 줄 알았음에도 뛰어난 철학 저작, 이론 저작을 남기는 사람이 ...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책들이 좀더 많이 출간되고 번역되고 교육되어야겠죠. 개인이 어느 정도의 어학 능력을 갖고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이 후자의 조건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우울해하지 마시고 열심히 읽으시길 ... (위안이 좀 되셨나요? ^^;;;)
둘째는, 한 가지 유감스러운 일에 대한 생각 때문입니다. 지난 해부터 한국철학회에서는 용어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듣기로는 좀더 광범위한 학술용어정비사업의 일환이라고 하던데, 확실한 건 잘 모르겠군요). 사업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학술진흥재단을 정점으로 해서 그 아래의 한국철학회로, 그리고 다시 그 아래의 각 분과철학회(예컨대 한국칸트학회, 한국헤겔학회, 한국현상학회, 한국니체학회, 한국근대철학회 등)로, 위에서부터 진행되고 있는 작업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철학과 관련된 거의 모든 용어들을 통일하려는 사업입니다. 서양철학의 경우 이는 서양철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에 대한 우리말 번역어를 확정하는 일이죠. 예컨대 “concept”는 “개념”으로, “intuition”은 “직관”으로, “Vernunft”는 “이성”으로, “Genealogie”는 “계보” 등으로 확정하는 거죠.
그런데 쉽게 합의가 되는 용어들 같은 경우는 별 문제가 없지만, 용어 번역과 관련하여 오랫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그래서 사람들마다 각기 자기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의 경우는 문제가 좀더 복잡하고 심각합니다. 예컨대 “transzendental”(이 용어는 주로 “선험적”이라는 번역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10여년 전부터 “초월적”이라는 번역어가, 그리고 좀더 최근에는 “초월론적”이라는 번역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 마지막 세 번째 번역어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이라든가 “Dasein”, 또는 “Gestell” 같은 번역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더 나아가 아직 용어에 대한 이해나 용법 등이 제대로 정립되지도 않은 용어들, 예컨대 “notio”라든가 “transcendentia”, “res” 같은 중세철학(및 근대초기철학)의 용어들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또 대개가 일상어에서 유래한 희랍어 철학용어들은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최근에 번역된 아리스텔레스의 {범주론/명제론}의 국역본에서 역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범주들에 관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철학용어 대신(가령 실체, 수동, 능동 같은) 우리말 표현들을 다수 제안하고 있죠. 역자에 따르면 이것이 원래의 희랍어 표현에 좀더 잘 부합한다고 하고, 또 이런 견해를 지지하는 분들이 상당수 있습니다)에 관한 의문들이 제기되기 때문이죠. 이제 수입되는 중에 있고 용어 번역에 관한 논의도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프랑스 철학의 용어들에 대한 번역 문제는 말할 것도 없구요.
따라서 무질서하게 개인의 선호에 따라 이런저런 방식으로 번역되는 용어들을 정비하자는 원칙에는 기꺼이 동의하지만, 특정한 시한을 정해서 일률적으로 용어들을 통일하고(물론 특히 논란이 많은 용어들의 경우에는 복수 용어도 허용하기로 하긴 했지만) 이를 공식 용어로 지정한 다음에는, 모든 공식 학회에서 이 용어 사용을 의무화하고 따라서 공인 학술지에서도 모두 이 용어를 쓰도록 강제하는 것은 좀 동의하기 어렵더군요. 법이 철학을 지배하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이 문제를 염두에 두고 본다면, 이 [유럽철학어휘사전]은 특히 교훈적인 것 같습니다. 이 사전은 용어를 통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이 사전에서 사용된 모든 철학용어(희랍어나 라틴어에서부터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심지어 아랍어 등에 이르는)를 하나의 불어로 번역하는 대신, 이 용어들, 예를 들면 “res”라는 라틴어나 “Geist”라는 독일어가 왜 하나의 불어 단어로 환원될 수 없는지, 곧 번역 불가능한지 설명하는 것을 사전의 존재 이유 자체로 삼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 혼란이 생겼을까요? 철학의 위신이 더 깎였을까요? 오히려 이 용어들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철학 용어들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관심이 더 증폭되고, 더 나아가 철학의 특성을 새롭게 고찰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이 열린 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얼마 되지 않은 짧은 기한 내에 그렇게 서둘러서 용어를 정비하고 통일하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서양철학 용어들에 대한 본격적인 학문적 검토와 이 용어들의 국내 수용과정에 대한 총괄적인 고찰을 해보는 게 더 유익하고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답니다. 물론 여기에는 ‘인문학도 뭔가를 한다’는 걸 정부 관료들이나 국회의원들에게 보여줘서 인문학 특별기금을 계속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절박한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좀 부럽다는 거죠. 우리나라와 인구수나 국토 면적, 또는 외형적인 경제적 능력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나라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전들을 찍어내는 데, 우리나라는 아직 변변한 철학사전 하나 만들어본 경험이 없으니, 사실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죠. 더 나아가, 바바라 카생의 서문이 웅변하듯이, 이 사람들이 이러한 철학용어의 번역 문제를 유럽의 구성의 문제와 결부시키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부러움은 더 커질 수밖에요. 우리도 동아시아 철학의 용어들과 역사를 공동으로 검토해보려는 기획쯤은 해볼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너무 꿈이 큰가??
어쨌든 제가 사전 하나를 이렇게 길게 소개한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니
ㅎㅎㅎ, 관심 있는 분들은 한 권 구해보심이 ... (초강력 지름충동질이라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