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verick 22의 질문


<선생님, 철학책을 꼼꼼히 읽는다는 것이 어떻게 읽는 것인지 궁금해요;;

저는 자꾸 읽다가보면 앞에 내용까먹고, 행간도 잘 못 읽고 해서 걱정인데ㅜ.ㅜ>

 


balmas의 답변


앗, 어려운 질문이네 ... (삐질삐질)


그냥 지나가다 한 마디 던졌을 뿐인데 ... (무슨 TV 광고 문구 같다 ... -_-;;;)


ㅎㅎㅎ 철학책을 이렇게저렇게 읽어라라고 말하는 건 좀 주제넘은 일이기는 한데, 그래도 한두 마디 조언을 해주자면,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철학책을 꼼꼼히 읽는다는 건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지.



1) 철학책을 꼼꼼하게 읽기란 일차적으로 그 책에서 전개되는 논변을 꼼꼼하게 따져 본다는 걸 뜻할 수 있지. 다른 책들과 구분되는 철학책의 고유한 특성은 아무래도 논변 중심의 책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거야. 사실 철학이야 사실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학문이 아니고 무언가를 예측하는 것을 과업으로 삼는 학문도 아니고, 타당한 논리적 형식을 갖추어서 자신의 주장의 타당성, 정합성 또는 객관성을 보여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학문이니까, 이렇게 논변을 중심으로 하는 건 당연하지. 그래서 객관적인 타당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진리주장은 계급적 이해관계나 권력관계 등을 포함하기 마련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론조차도 그런 주장을 위해서는 이런 형식의 논변을 포기할 수 없지(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버마스 같은 사람들에 동조할 수밖에는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 그의 주장을 넘어서는, 또는 적어도 그의 주장과 다른 주장을 제시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거든).

  

  따라서 철학책을 꼼꼼하게 읽는다는 건 그 책에서 제시되는 주장과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거들, 예증들, 또 이를 위해 다른 이론들, 주장들에 대해 제기하는 반론들을 꼼꼼하게 따져본다는 걸 뜻하지. 그리고 좋은 철학책, 좋은 철학논문, 좋은 철학적 글일수록 이런 것들이 밀도 있고 참신하게 제시되기 마련이지.


우리 수업과 관련해서 본다면, 알튀세르가 자신의 이데올로기론에서 주장하는 테제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하는 논거들이 무엇인지, 또 다른 이론들에 대해 제기하는 반론이 무엇인지 따져보면서 책이나 글을 읽으면, 그의 주장, 그의 논의를 좀더 꼼꼼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또 지젝의 경우도 마찬가지지. 지젝은 좀 독특한 논변 방식을 구사하긴 하지만, 그의 책이나 글에도 역시 나름대로의 주장과 논변, 예증, 반론들이 담겨 있으니까, 그것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면서 책을 읽어보면, 지젝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알튀세르에 대해 지젝이 어떤 반론들을 제시하고 있고, 또 그의 반론들에 대해 알튀세르의 관점에서 제시할 수 있는 재반론은 어떤 게 있을까? ㅎㅎㅎ 그런 걸 생각해보라구. ^o^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사실 철학책이 논변 중심으로 되어 있지만, 그 방식은 철학자들마다, 또는 철학책들마다 상당히 다르지. 그리고 좋은 철학자들일수록 독창적이고 고유한 자신의 논변 방식을 갖고 있지. 예컨대 플라톤의 대화편들이나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시, 데카르트의 󰡔성찰󰡕에서 볼 수 있는 내면적인 사유 흐름의 탐구,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관통하는 ‘기하학적’ 논변 방식, 또는 푸코의 󰡔감시와 처벌󰡕 같은 책에서 볼 수 있는 담담하고 건조한 분류와 서술 등등. 철학자들의 문체, 스타일에 관해 말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이런 의미에서지. 지나친 비유들의 남발이나 멋부리는 수식어들을 나열하는 것, 또는 주관적인 감정의 토로들로 점철된 글을 훌륭한 문체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적어도 철학자의 문체, 스타일은 그런 것과는 다르지.


이렇게 좋은 철학자들일수록 논변의 내용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논변 스타일도 빼어나기 마련인데, 때로는 그 철학자의 논변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변의 스타일을 이해하는 게 본질적인 조건이 되는 경우가 있지. 데카르트의 󰡔성찰󰡕이나 스피노자의 󰡔윤리학󰡕 같은 고전은 물론 그렇거니와, 우리의 수업과 관련된 예를 들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논문이 그렇지. 이 논문, 특히 “이데올로기에 대하여”라는 절에 나오는 고유한 논변 방식을 감안하지 못할 경우 알튀세르의 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지. 그 때문에 지젝을 포함한 많은 주석가들/비판가들이 엉뚱한 오해에 빠지기도 하지.


그래서 때로는 철학자의 주장이나 논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자의 논변 내용만이 아니라 논변 방식, 논변 스타일을 잘 이해하는 게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지.  

   

2) 그 다음 꼼꼼하게 읽기의 두 번째 의미는, 맥락 속에서 읽기를 의미하지. 이건 다른 학문에 비해 철학책 읽기에 더 많이 요구되는 사항이기도 해. 왜냐하면 다른 학문들과 구분되는 철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반복, 되풀이에 있거든. 다시 말해 철학에서 이전의 철학들과 절대적으로 단절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지. 철학사에서 볼 때 항상 시대마다 새로운 이론, 새로운 문제설정, 또는 (푸코의 용어를 빌리자면) 새로운 에피스테메가 끊임없이 출현하지만, 이러한 새로움은 항상 철학사 전통의 되풀이를 전제하는 새로움이지. 또는 이렇게 말하는 게 더 좋다면, 철학에서 무언가 새로운 주장을 제시한다는 것은, 철학사의 전통과 새로운 관계맺음의 방식들을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이 때문에 철학, 철학적 사고는 다른 학문들에 비해 자신의 역사, 곧 철학의 경우는 철학사에 대한 연구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지.


가령 새로운 주장을 제시하는 철학일수록[이런 새로움에 대한 주장은 어떻게 보면 근대철학, 특히 헤겔 이후의 철학에 고유한 특징이지. 헤겔이 자신의 철학에 이르러 철학이 완결되었다고 주장한 만큼, 정말 새로운(그만큼 종말론적인) 주장을 제시한 만큼, 그의 후배 철학자들은 더욱 더 새로운(따라서 더욱 더 종말론적인) 주장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겠지? 이런 새로움에 대한 주장에 담겨 있는 고유한 이데올로기는 한번 연구해 볼 만한 주제지] 과거의 철학에 대해 격렬하고 단호하게 단절의 선을 긋기 마련이지. 또는 좀더 교묘한 경우라면 과거의 철학을 자신의 철학의 일부로 포함시키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경우든지 간에 새로운 철학은 과거의 철학과 관련을 맺게 되고, 자신의 새로움을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철학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한계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게 되지. 더욱이 철학이 언어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데리다의 의미에서) 기록écriture을 전제하고 그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철학이 주장하는 새로움은 실은 항상 이미 되풀이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 


그래서 철학책을 꼼꼼히 읽기 위해서는 이 철학자의, 이 주장이 어떤 맥락 속에서 제시된 것인지, 어떤 흐름과 결부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 이건 다시 두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지.


첫째, 맥락 속에서 읽는다는 건 그 철학자의 저술의 맥락을 검토한다는 걸 뜻하지. 대개의 철학자들이 여러 편의 저작들과 논문들, 또는 글들을 남기고 있고, 또 대개의 경우 처음에 저술된 글이나 책과 나중에 저술된 것들 사이에는 연속성만큼이나 불연속성도 존재하기 마련이지. 그래서 마르크스의 경우에도 청년 마르크스와 장년 마르크스의 단절과 연속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하이데거의 경우에도 소위 사상의 전회(Kehre)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많이 논의되곤 하지. 알튀세르나 라캉 또는 지젝의 경우도 그렇고.


어떤 철학자의 주장이나 논변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이런 전후 맥락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지. 그의 주장이나 논변이 공백 상태에서 제시된 것이 아니라 항상 어떤 이론적 소여(所與)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에, 그 차이, 다름에 대한 이해는 그 주장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많은 것을 밝혀주기 때문이야. 따라서 지금 읽고 있는 이 철학자의 이 책의 논의가 어떻게 해서 제시된 것인지, 이 논의의 배경이나 전제는 어떤 것인지 알아보는 것은 단순히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논의를 이해하는 데 본질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


둘째,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읽는 어떤 철학자의 책은 좀더 큰 맥락 속에 들어 있게 마련이지. 또 철학의 논의가 철학사의 반복과 분리될 수 없다면, 이 철학자의 책은 그것이 몸담고 있는 좀더 광범한 철학사의 맥락을 어떤 식으로든 되풀이하게 마련이지. 따라서 우리가 그 맥락을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구분하든,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구분하든, 현상학과 분석철학으로 구분하든,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로 구분하든 간에, 어떤 철학자의 책을 좀더 정확하게, 꼼꼼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철학자의 책을 철학사의 맥락에 포함시켜서 이해하는 게 필요하지.


그리고 사실 대개의 철학적 논변에는 다른 철학자, 특히 철학사에 나오는 철학자들의 논의가 들어 있기 마련이야. 가령 알튀세르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론을 논의하기 위해 마르크스는 물론이거니와 프로이트나 라캉, 파스칼, 스피노자 같은 사람의 논의에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준거하고 있지. 마찬가지로 지젝 역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비판하기 위해 마르크스나 프로이트, 라캉은 물론이거니와 헤겔, 카프카, 파스칼, 키에르케고르 같은 사람들에 준거하고 있지. 그래서 알튀세르의 논의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튀세르가 준거하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논의되는 이데올로기 개념의 특징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고, 이를 쇄신하기 위해 알튀세르가 활용하고 있는, 프로이트에서 라캉에 이르는 정신분석의 흐름, 더 나아가 그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던 당대의 프랑스 철학과 정치의 맥락(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 대립 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겠지.


또 더 나아가 가능하다면 파스칼 철학의 특징 같은 것도 이해해둔다면 도움이 되겠지. 사실 이 점은 알튀세르와 지젝의 이론적 차이점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쟁점 중 하나지. 두 사람 모두 파스칼의 논의에 준거하고 있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파스칼을 이해하고, 또 활용하는 방식에는 재미있는 차이점이 있거든. ^_^  


이야기가 너무 거창해져버렸는데, 어쨌든 중요한 건, 어떤 철학자의 책이나 글에 대한 이해의 문제는 그 책이나 글에서 전개되는 논변으로 한정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항상 맥락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 대한 이해는 그 철학책이나 글을 이해하는 데 본질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지. 이 점을 이해하면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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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4-02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추천 감사. :-)
그런데 오타가 좀 있어서 수정했어요.^^;;;

루루 2005-04-02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잘 답해주시다니 감사요~ 저도 추천클릭^^
2편도 기대할께요 ㅎㅎ
이제 열심히 읽는 일을 해야하는데;; 이놈의 게으름이ㅜ.ㅜ

nemuko 2005-04-0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선배한테 끌려가서 철학 강의를 한동안 들었거든요. 근데 공부하면 점점 더 모르는 부분이 많아지길래 결국 헉겁하면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렇군요. 저의 문제점은 우선 꼼꼼히 읽지 않았다는 것과,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거군요... 추천^^ 좀 퍼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