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핵 

하정훈의 삐뽀삐뽀 119 이 책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결핵 예방접종(BCG)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엔 결핵이 없으니까. 그래서 한국 아이들이 가끔 미국에 입국할때 BCG 양성반응을 보여 입국 거부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반드시 예방접종했음을 고지하라고.  

이 나라 신문에 의하면, 이 나라엔 결핵이 매우 흔하다. 하루 400명의 사람이 결핵으로 죽고, 연간 48만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매년 14만명이 죽어간다. 하루 400명이면. 15세에서 55세 여성 환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헐...  

옆집 식모 애니가 각혈을 하기 시작했다. 옆집 식모 애니는 우리집 큰식모(그렇다, 난 이제 식모가 둘인것이다. -_-V)암바르와 이종사촌간이다. 그녀들은 같은 날 휴가를 받아 사이좋게 같이 놀다가 같이 들어온다. 오, 암바르양은 최근 집안일에서는 거의 손을 떼시고 내가 외출할때마다 우리 밤토실을 안고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일을 하신다. ㅠ.ㅠ 

옆집 언니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애니를 병원에 보냈고, 나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다. 애니는 현지 병원에서 폐사진을 찍고 피검사를 했다는데, 피검사 결과는 다음주 월요일에 나오고 폐사진을 찍은 결과로는, 현지인 의사 왈, 결핵은 아니고, 밥을 제때 안먹어서 폐에 염증이 생긴 거라는데, 헐... 폐에 염증이 생긴거면 폐렴이잖어. 폐렴이 각혈을 하냐고오오오오오오! 

2. 의사를 믿을까 말까. 

뒷집 혜원이네 엄마가 해 준 이야기. 혜원엄마는 이 나라에 10년을 살았다. 이제 만 다섯살이 되어가는 그집 둘째 혜원이가 아기였을 때 들인 유모가, 혜원이 7-8개월이 되었을 무렵 갑자기 미친듯이 토하면서 방에 쓰러져서 자기 죽을 것 같다고 눈물만 흘리더란다. 혜원엄마가 볼때 이건 딱 송장칠 상황이더라나. 너무 무섭고 겁이나서 유모를 데리고 현지 병원으로 직행. 

가기 전에, 그래도 애를 둘이나 낳은 사람의 눈으로, 이건 아무래도 임신 초기 입덧이더란다. 물론 유모는 미혼이었으나. 그래서 물었단다. 너 이번달 생리 했니? 너 혹시 휴가가서 남자랑 자고 온거 아니니? 유모는 절대 그런일 없고 생리 했다고 딱 잡아 떼고... 

병원에서도 얘가 왜 이렇게 토하는지 도대체 원인을 알수가 없다고, 온갖 주사 다 맞고(그렇다, 후진국일수록 과잉진료는 빛을 발하고. 이나라 약은 정말 독하다.)약 6일간 입원해 있다가 퇴원하니 병원비가 400만 루삐, 우리돈으로 한 45만원 정도 나왔더란다. 그러나 의사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그러더라나.  

집에온 유모는 동일한 증상을 또 보이고. 알고봤더니. 진짜 임신이었던거지. 더 놀라운 건 상대 남자가 그 유모의 이혼한 형부더란다. 이미 언니와 이혼을 했으니 남남이라는거지. 헐... 

사람이 토하고 쓰러지는데, 병원에서 가장 기초적인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안했겠냐고. 병명이 명확하게 나온 것도 아닌데, 6일 입원을 했으면 당연히 의사가 임신인 걸 알았겠지. 그러나 유모의 부탁으로 이야기를 안한 것 같다고. 더 황당한 건 그 유모는 이미 과거 형부였던 남자로부터 버림받은지 오래고, 임신 초기에 온갖 약물의 투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멀쩡하게 잘 태어났다나. 

결핵 아니고, 폐에 염증 생겨서 각혈한다는 현지 의사의 말을 믿을까요, 말까요. ㅠ.ㅠ 

3. 아들이야 손자야. 

어느 한국사람 집에 있었던 실화. 

그 집에서 일을 잘 하던 식모가 어느날 갑자기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더란다. 왜 그러냐 달래봐도 말도 안하고 그냥 그만두겠다고해서 내보냈는데 몇달뒤, 그 식모가 갓난 애를 안고 나타난거지. 누가봐도 한국 아이임이 분명한 아기를 보고 그집 마나님은 처음엔 남편을 미친듯이 잡았더란다. 애가 남편을 너무 많이 닮았더라나.  

그러나. 그 아기는 이제 19살 된 아들의 아기였단다. 한두달 뒤엔 한국으로 대학 진학을 해야 할 아들의 아내와 자식으로 식모를 받아들일수는 없었던 마나님은 약간의 돈을 주어 식모와 갓난애를 시골로 보내버렸다고.  

사실 나 이 나라 온지 3개월 반, 이 이야기를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다른 사람 3명에게서 들었다. 처음 나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준 사람이 말하기를 한동안 자카르타 한인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야기라더니. 헐. 이 나라 여자들이 한국 사람 애를 낳는 경우가 흔하다고. 돈을 보고. -_-;;; 

4. 식모를 둘 수 있는 나이의 상한선. 

사춘기에 접어든 사내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절대 어린 나이의 식모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 이 나라의 불문율. 사춘기 사내아이가 덮치는 게 아니라, 식모가 사내아이를 덮친다나.  

5. 결핵과 간염 

물론 우리 아이들이나 나는 항체가 있다. 예방접종을 다 했으니까. 물론 작은놈은 아직 접종이 다 끝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간염과 결핵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나라엔 그 두가지 병이 정말 많고, 동남아 답게, 에이즈도 많다. -_- 썩을. 

6. 에혀. 내가 지금 이 나라에서 뭘 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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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7-1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렴으로 각혈해요. 그런데 밥을 제때 잘 안 먹어서 각혈한 거면 폐렴이 아니라 위염이나 식도염으로 각혈하는 가능성이 더 높은 거 아닌가요? 꺄우뚱.

아시마 2010-07-10 17:46   좋아요 0 | URL
아, 폐렴으로도 각혈을 하는 군요. 도무지 이해가 잘 안되요. 밥을 제때 안먹은거랑 폐렴이 생기는 것은 무슨 관계가 있는걸까요? 그 의사는 폐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하니까 위나 식도쪽의 출혈은 아닌 것 같구요.
어휴우우우우우... ㅠ.ㅠ

blanca 2010-07-10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니가 결핵이 아니기를,,,. 아시마님, 그런데 3번은 정말 충격적이네요...

아시마 2010-07-10 17:43   좋아요 0 | URL
차마 못써서 그렇지 더 충격적인 이야기도 몇 가지 있어요. 여긴 한국으로 치면 뒷베란다쪽에 조그만(그야말로 더블베드 사이즈.) 쪽방을 넣어서 식모방을 따로 만들어 놓거든요. 그 옆엔 조그만 욕실겸 화장실도 따로 넣어두고요.
이것도 혜원엄마 아는 집에서 실제 있었던 실환데, 어느날 갑자기 그집 식모가 뒷방에서 애를 낳더래요. -_-;;;
임신기간 열달동안 전혀 몰랐던 그집 마나님이나 말 한마디 안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애를 낳아버리는 식모나... -_-;;;;;;;;;;;;;;

지금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2010년은 맞는거죠? 여긴 정말 딴세상 같아요. 특히 이런 부분은.

옆집 식모가 만약 결핵이라면, 저희집 내니도 내보낼 생각이예요. ㅠ.ㅠ
글고 인제 내니 안두고 살까봐요. 내 팔자에 무슨 내니 씩이나. 흑흑.

저절로 2010-07-1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야~!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그려.
이 참에 아이핑계,결핵핑계대며 줄행랑 놓으세요..
혹, 충무공 없음 하루도 못 사는 여인?!

아시마 2010-07-14 11:44   좋아요 0 | URL
ㅠ.ㅠ 줄행랑 놓고 싶은 마음이야 꿀떡 찰떡이오나...
살 집이 없어요. ㅠ.ㅠ 저희 분양권 사 놓고 나온거라, 음, 이제 지하층 공사하고 있다나요. 흑흑흑... 그것만 아니면 당장 갔다, 내가.

덕수맘 2010-08-07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섭네요...식모이야기...

아시마 2010-08-11 12:08   좋아요 0 | URL
ㅠ.ㅠ 무셔워요, 저도. 흑흑흑.
 
외딴집 - 상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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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립 어린이집의 원감으로 있는 친구가 어린이집 선생 초년병 시절에 해 준 이야기였다. 어린이집 선생이 되고부터는 아이들의 손톱을 유심히 보게 된다고. 아이의 손톱이 관리되어있는 정도를 보고 그 아이에 대한 그 아이의 부모나 집안의 애정을 가늠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그리고 그 가늠은 별로, 틀리는 일이 없더라고. 

친구의 손톱이 내게는 이름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그 사람에 대한 그 부모의 애정을 읽는다.

지금은 '지서'라는 단정하고 예쁜 이름을 가진 4살 여자아이의 부모는 한때 00라는 이름을 염두에 두었더라고 했다. 이름만으로는 참 예뻤다. 그러나 그 아이의 엄마가, 말하기를, 어릴때는 그 이름이 얼마나 이쁘냐고, 하지만 할머니가 되었을때 "이00 할머니~" 라고 불릴 그 아이를 생각해 보라고, 도저히 그 이름을 붙여줄 수가 없었다고. 나는 이런 사연들에서 아이에 대한 부모의 역할과 권한 사이의 편안한 균형을 읽는다. 나는 어리고 귀여운 여자아이에게 똑 떨어지게 어울리는 화려하고 요란한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언제까지나 어리고 귀여운 아이일 수는 없으니까.

고 3때 짝꿍의 이름은 윤경이었다. 정확한 한자가 생각나지는 않는데, 允 자를 썼던 것만 기억이 난다. 아주 흔해빠진 이름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드문 이름도 아니어서 우리반에는 큰윤경이와 작은 윤경이가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다른반의 윤경이도 둘이나 더 있었다. 그 흔한 이름이 내 짝꿍 윤경이에게 가서는 특별해졌다.  

공부를 잘하고 행동거지가 단정했던 그 아이는 사전의 제일 뒤 표지 안쪽에 자신의 이름 두 글자를 한자로 써 놓고 그 이름의 뜻에 대해 아래에 적어놓았었다. 지나가다 슬쩍 봤는데, 한자가 짧은 내 눈에도 그 아이의 윤경이라는 한자의 뜻과 완전히 일치하는 해석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의 뜻에 대해 설명해 주신 거라고 했다. 그 말을 하던 그 순간 윤경이는 얼마나 특별해 보였는지. 그 아이의 뒤로 아버지의 사랑이 후광처럼 드리워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 아이를 제외한 내가 아는 어떤 윤경이도 자신의 이름풀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나중에 윤경이는 그 아버지가 풀이해 주신 이름 풀이대로 정말 좋은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녀의 오빠에 대해서도 내가 아는 괜찮은 남자 다섯손가락 안에서도 첫째 둘째로 꼽아주었는데, 그녀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된 것에는 이름 속에 숨은 사랑이 큰 역할을 했을거라 생각한다. 신경써서 이름을 지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름의 뜻을 설명해 주는 그런 애정이라니.  

이 소설은 이름으로 시작하여 이름으로 끝난다. 10살된 여자아이의 이름은, 음은 같지만 한자가 달라진다.  

호. 바보의 호. 하녀의 몸에서 태어난 손녀딸에 대해 분노한 할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이다. 글 중간에도 나오지만 "정말 심한 이름" 이다.  

그 이름은 아마도 일본어로는 같은 "호"라는 음을 쓰지만 방향을 뜻하는 方 으로 바뀌었다가 나중에는 보물을 뜻하는 寶 로 바뀐다.  

바보에서, 방향을 아는, 더 이상은 바보가 아닌 사람으로, 그리고 이번에는 보물로까지. 첫번째 이름을 제외한다면 모두 애정이 담겨있는 이름이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 보면, 에도시대 일본인들은 이름을 바꾼다는 것에 대해 별로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다. 당장 주인공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름은 1부에서만도 몇번이나 바뀌는지, 결국 충무공은 그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읽기를 포기하고 말았었다. 넌 정말 그 이름이 다 기억이 나니? 라는 질문과 함께.  

그런데도 가가님은 호의 이름을 바꿀때 음은 그대로 둔다. 한자만 바꾸어준다. 그 배려에서 섬세한 사랑을 읽는다. 그리고 그런 배려를 가진 사람의 삶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슬퍼하게 된다. 고토에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고. 아. 정말 세상은 착한 사람이 살기에는 힘든 곳인지도. 

남들보다 한참이나 늦게 미미여사와 열애중이다. 정말 재미있지만, 

난 때때로 미미여사의 글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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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7-0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거 동료에게 빌려놓고 아무래도 손이 가질 않아 내팽개쳐두고 있는데 이젠 좀 읽어봐야겠어요. 게다가 리뷰가 정말 맛깔스러워요. 저도 요즘 이름에 대해 생각하고 있거든요. 물론, 아시마님이 접근한 의미와는 좀 다르지만 말예요. 그래서 이 리뷰가 제게는 조금 더 뭐랄까 특별하게 느껴진달까요.

좋은 리뷰에요. 추천도 기꺼이 하고 갑니다. 그리고 곧 저도 읽어볼게요, 아시마님.

아시마 2010-07-09 12:05   좋아요 0 | URL
전 사실 이 책 1차 시도 했다가 50페이지쯤 읽고 덮어뒀다 다시 읽은 거예요. 치밀하고 잘 계산된 구조는 미미여사의 장점이겠지만, 또한 그게 그대로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더라구요. 특별히 이야기를 꼬아놓는 것도 아닌데 초반 몰입을 약간 방해하는 구석이 있죠. 그러니 결론은, 처음에 안땡겨도 꾹 참고 읽으삼!

이름... 전 이름에 맺힌게 많죠. ㅎㅎ

마녀고양이 2010-07-08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 여사의 글은 추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자꾸 뒤돌아보게 만들죠.
외딴집은 저두 가지고 있는데, 아직 못 읽었습니다.
그래도 한동안 미쳐서.... 엄청 읽었는데 말이죠. ^^

이름...... 부모님들이 조금더 소중한 이름을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신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진정한 이름은 자신과 지어준 이만 아는거...
저는 그런 생각이 좋습니다. 이름은 힘이 깃들여 있으니까요..

아시마 2010-07-09 12:11   좋아요 0 | URL
네. 미미 여사의 글은 은근히, 꽤나 슬퍼요.
전 모방범이 한창 인기를 끌때 사두긴 하고 읽진 않았거든요. 이번엔 모방범 한번 시도해 볼려구요.

이름에 힘이 있다는 생각은 저도 동감이요. 전 몇번 그런 걸 느꼈거든요. 아마 우리나라 성명학이 발달한 것도 그같은 이유 아닌가 싶어요.

마녀고양이 2010-07-11 09:23   좋아요 0 | URL
재미로만 치면, 모방범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저절로 2010-07-0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의 '화차'를 질러놓고 '예수'에게 계속 순위가 밀리는 바람에 책장에 벌만 세우고 있었네요. 님의 글 보고나니, 책상위에 눕혀 놓고 읽어볼 작정입니다.

님의 리뷰는 제게 '평온'을 주는 것 같아요. 이 책은 말이야.내가..하며 귀밑에서 자근자근 소곤거려 준다고나 할까요. 추천,땡스투 행복하게 꾹 누르고 갑니다.^^

아시마 2010-07-0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화차도 참 좋았어요. 그리고 화차 역시 은근히 슬펐어요. 차라리 주인공이 뭔가 거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거나 한 사람이었다면 덜했을텐데 평범하기가 정말 가장 어렵죠.

과분한 칭찬이지만 기쁘게 받겠습니다. 아마 알라딘을 좋아하는 것도 서재질을 하는 것도 모두 그런 이유 아닐까요. 님의 그 칭찬을 듣고 보니 알겠어요.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은 평온의 한 방법 같아요. 모든 책이 다 그런건 아니고, 오히려 평온을 깨는 책들(ex. 지식채널e, 청춘의 독서, 삼성을 생각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등등)도 분명 있지만, 그래도 그 책을 읽고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1. 나이. 

나는, 좀 애매한 시기에 태어나 나이 계산이 애매하다. 그러니까, 음력으로는 용이고 양력으로는 해를 넘겼고, 주민등록번호는 양력으로 발부받았고(음력생일로 주민등록번호를 발부받은 사람도 있다, 내 주변에는. 우리 큰언니.) 덕분에 생년월일을 말할 일이 있으면 당연하게 해를 넘긴 양력 생일을 대고, 재수하지 않았고, 덕분에 학령으로 따지던 시기에 내 나이는 내 동기들의 것과 같이 넘어갔고 블라블라블라. 난 그냥 맘 편하게 용띠 나이로 살아가는데, 요즘 내 나이에 최대 태클은 충무공이다. 며칠전 충무공과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그러니까 여보, 우리는 말이지, 같은 날 죽는거야. 내가 4년을 손해보는게 좀 억울하긴 하지만, 당신 죽은 뒤에 혼자 남아 사는 것도 슬플 것 같고, 나 죽은 뒤에 당신 혼자 살 수도 없을 것 같아 보이니까 손잡고 나란히 같이 죽는 거지.  

한참 감상적으로 이런 저런말을 하고 있는데 충무공의 대답은 뜬금없다. 

넌 무의식 중에도 우리 나이차이가 4살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참 이상하네.  
나는 용띠잖아.
너 얼마전에 니가 7살에 학교 갔다고 그랬잖아.
그야 그랬지. 나 7살에 학교 들어갔지.
그러니까. 그때는 용띠 아니다가 지금은 용띠냐? 

그르게... -_- 나 몇살인겨. 글고 이 남자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4살차인지 5살차인지를 왜그리 따지는거야. 난 당신이 나보다 5살 많다고 생각했으면 절대 결혼안했다고! 

2. 탈모 

이 나라에 와서 갑자기 미친듯한 탈모증상이 보이고 있다. 이건 마치, 아기를 낳고 100일이 지날무렵 빠지기 시작하는 그 산후 탈모수준이다. 머리를 감다가 머리카락이 수채를 막아 물이 내려가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고, 내가 움직이는 곳마다 수북하니 내 머리카락들이 쌓인다. 이마와 정수리 부분은 이미 훤~ 하다.  

큰놈과 작은 놈을 낳고 나서 나의 산후 탈모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원래 머리야 빠진다지만 나는 탈모 정도가 아니라 털갈이 수준이었고, 아이를 안고있는 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반지의 제왕 골룸 이었다. "마이 프레셔어어어어어어쓰! 골룸! 골룸!" 나의 보물이라니~ 대사 또한 절묘하여라. 

그래도 그땐 별로 걱정이 안됐다. 산후 탈모이전에도 나는 머리가 많이 빠지고 많이 나는 편이어서 늘 잔머리가 소복했으니까. 그리고 또 엄마의 말대로 6개월경부터 나기 시작해 돌즈음엔 그럭저럭 다 회복이 되었다. 밤송이처럼 삐죽삐죽한 머리는 보기가 흉했지만, 내가 탈모로 고민할거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헉. 

이 나라는 상하수도 시설이 정말 안좋다. 마시는 것은 커녕 이를 닦을때도 정수된 물을 사서 써야 하고, 설거지를 마무리 할때도 정수된 물을 써야한다. 끓이는 정도로는 해결이 안된다. 기본적으로 화산지형이라(환태평양 화산 지진대에 속해있는 나라다) 물에 석회질이 많고, 정수가 제대로 안되어 있기 때문에 때로는 그야말로 흙탕물이 쏟아져 나온다. 수돗물 정수장에서 당연히 물에 약품처리를 해야하는데 그게 안된다. 왜나하면, 담당 공무원들이 약품을 살 돈을 착복해 먹고 그걸 감시 감독할 사람에게는 뇌물을 주니까. 뇌물은 이 나라의 아주 당연한 관행이다.  

언젠가 MBC W에서 자카르타의 쓰레기 강에 대한 다큐를 해 줬다고 하는데, 바로 그 쓰레기 강이 내가 쓰는 수돗물의 취수원 되시겠다. ㅠ.ㅠ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강 1위란다. 2위가 갠지스라던가.  어쩔수 없이 욕실과 부엌의 수전에 간이 정수기를 설치해 놓고 쓰기는 하는데, 이 정수기를 통과한 물도 아마, 서울의 수돗물 수질을 절대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여튼. 그 더러운 물 때문인지, 환경이 바뀐 스트레스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탈모는 정말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중이고 더 중요한 건, 산후탈모와는 달리 머리가 빠지고 곧이어 머리가 또 나기는 하는데, 그 새로 난 머리도 빠지고 있다는 거다. 헉. 

마이녹실이며 댕기머리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탈모에 좋은 샴푸나 약품 아시는 분 좀 알려주세요. 이 나라에서 구할수나 있으려나.  

3. 관세 

이 나라의 부정부패하니 또 생각나는 거 하나. 

어느나라건 이삿짐에 새 물건은 어느정도 규제를 한다. 탈세와 밀수의 혐의가 있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인도네시아로 오는 이삿짐에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음식물 반입이 절대 금지라는 것과 새 책 반입이 안된다는 거. 더 중요한 건 이삿짐을 거의 전수검사 한다는거. 100%는 아니고, 콘테이너에 실린 짐들 중에 코에 걸면 코 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걸려 드는 것이 나올 때까지 짐 검사를 한다.  

그러니까 어떤 짐을 보내든 무조건 관세를 물어야 한다는 거다. 근데 이게 사실은 관세가 아니고, 그러니까 관세를 1000불을 때릴 예정인데, 니가 짐 검사하는 나한테 한 6-700불 주면 관세 안매기고 넘어갈게. 가 되는 거다. 이것 또한 공식적이다. 정말 웃기는 나라지 않은가? 

짐 보낼때, 나는 아주 자신만만했다. 내 짐들중엔 새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며, 음식물은 죄대 핸드캐리할 생각으로 넣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나 나도 관세를 물었다. 책에 관세가 붙었단다. 내 책은 새 책이 하나도 없는데? 책들 다 펼쳐봐, 내 책엔 죄다 내가 읽었다는 사인에 줄줄이 줄 그어놓은 곳 투성이고 아기 책도 그러니까. 난 관세 못낸다 라고 버팅기려 했으나, 책이 이렇게 많은 개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하는 민족이고(음, 이 나라 책값은 졸라리 비싸다. 질도 개판인 것이.) 책이 이렇게 많다는 건 내가 중고 책을 판매하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비추어졌다는 이야기라는 거다. 내가 그렇게까지 당당하고, 정 관세를 물기 싫으면 100% 전수검사를 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아마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 되면 통관에만 1년 넘게 걸릴 거란다. 하루에 책 한권 펼쳐보고 하루치 일 할만큼 했다고 콘테이너 문 닫아두고 다음날을 기다리는 것에대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라니까.  

그래서 세금 냈다. 피같은 내돈 60만원. 정확히는 세금도 아니고 뇌물 줬다.  

니들이 그러니 후진국이라는 거지. 내 책 때문에 억울한 돈을 줘야 했다는 걸 아는 순간에 나는 인도네시아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무시당해 마땅하도다, 지. 

4. 네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나는 사실 지금. 꽤나 혹독한 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인데, 그야말로, 이것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중얼거리지 않는다면 이렇게 멀쩡한 정신으로 견디기가 힘든 일이다. 사실 내 정신의 절반 이상이 그일에 팔려있고, 나머지 절반으로 기를 쓰고 내 생활을 챙기고 있다. 그러니까, 내 아이들을 챙기고, 내 남편을 챙기는 일만으로도 이미 어떤 한계상황에 다다른 거다.  

주변에 대해서, 원래도 별로 살갑게 누구를 챙기고 한다거나 하는 걸 못하는 인간이었는데, 이제는 친구의 안부를 챙긴다는 것 자체가 지금의 나에게는. 음.  

그런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연락 없는 나를 원망하고, 네가 무슨 걱정이 있니, 라고 말하는 그녀.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랬을테지. 그리고 앞으로도 어쩌면 그녀와 똑같은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네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너는 결코 알지 못할것이고,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나는 결코 알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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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7-05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탈모..... 이 글귀를 보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쿵 했습니다!
아, 미치겠어요, 요즘. 아무래도 댕*머리를 사서 써야할거 같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새책 반입이 안되나여? 헐라. 이유가 뭐래여? 굉장히 궁금해여.

멀리 계시니,, 건강 조심하세요. 특히 물이 안 좋고 더운 나라이니 더욱.
그런데.... 아시마님 글 참 이쁘게 쓰시네요. 자주자주 들리겠습니다~

아시마 2010-07-05 23:17   좋아요 0 | URL
헉, 한국 계시는 마녀고양이님도 댕기머리를 생각하신다는 말에 내 가슴은 더욱 미어집니다. ㅠ.ㅠ 그러니 저의 탈모는, 수질의 탓이 아닐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흑흑흑... 정말 진지하게 말씀드리건데, 제가 가진 외모의 몇가지 특질 중 그나마 남들앞에 부끄럽지 않은것이 머리카락이었건만, 이것도 없다면 전, 전... 어허허허허허허허허헝.......

네, 인니는 새책 반입이 안돼요.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몇개 있죠. 어느 회사에서 신년 선물로 해외 파견 주재원들에게 새책을 서너권씩 싸악 선물로 돌린일이 있대요. 다른 나라는 다 잘 들어갔는데 인니 주재원만 못받았대요. 세관에 걸린거죠. 고작 책 세권 우리돈 3만원인데 관세를 5만원인가 때리고는 3만원에 흥정하자고 하길래 열받아 관세 못낸다 했다가 결국 그 책 못받았다는 이야기.

더 웃긴건 항상 못받는 것도 아니구요, 그냥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예요. 상식이나 원칙이라는 게 전혀 통하지 않는 나라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도저히 모르겠어요. 저도. 월급이 너무 적으니까 이렇게라도 착복하지 않으면 생활이 안되고, 이렇게 착복하는 것을 아니까 월급을 올려주지 않는 그런 이상한 시스템이죠.

더 웃긴건 우편 시스템이예요. 한국에서 물건을 보낼때 분명 배송료를 100% 다 지불하고 물건을 부치는데도, 여기서 물건을 받으려면 인니 우체국에 또 돈을 내야해요. 돈 안주면 물건 안줘요. 그거 내 거잖냐, 왜 안주냐, 따지는거 안통해요. 정말 사람들이 특이한 게, 화도 안내고 미안한줄도 모르고 창피해하지도 않아요. 빙긋이 웃으면서 돈을 달라고 해요. 보통 물건 가액을 적잖아요. 한 50만원짜리라고 적으면 30만원을 요구해요. 화를 내도 상대방이 왜 화를 내는지를 이해하지 못해요.

이 나라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고 말을 많이 해요. 일단 기본적으로 원칙적으로 모든 것을 막아놔요. 예를들면 공항내에서 음식물을 반입하는 건 주스 한병도 안된대요. 원칙은 금지예요. 그리고는, 뒷돈만 주면 청국장에 김치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시켜줘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을 하자면, 뒷돈을 받기 위한 금지라고 보시면 되요. 세관이나 공무원 경찰들의 뒷돈 수입을 원칙적으로 보장하기위한 법률적 조치라고 보는 거죠.

새책 반입이 안된다는 것도 그 맥락에서 보시면 되요. 새책 반입이 안되는 게 아니라, 금지를 시켜놓고, 법률을 어기기 위한 뒷돈을 받아 챙기는 것을 보장해 주기 위한 법률. 이 나라는 아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말 미래가 없을 거예요. 그런데, 해결이 참... 멀어 보여요.

마녀고양이 2010-07-06 08:54   좋아요 0 | URL
아 글쿤요.
외국에 잠시 나가 사시는 분들이 부러울 때도 종종 있지만,
힘들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도
인도네시아 아름답지 않나요? 한번씩 거기 풍경도 올려주세염~ 궁금궁금~

고양이는 호기심이 많아서여. ^^

아시마 2010-07-07 12:05   좋아요 0 | URL
아름답대요.
전 아직... ^^ 자카르타에서도, 한국으로 치면 강남지역만 뱅뱅 도는 형국이라서요. 맨날 malling이 유일한 외부활동이라... ㅠ.ㅠ
치안이 한국만큼 완전하지가 않아요. 보도도 잘 되어있지도 않고, 차가 없이는 한발짝도 못나가는 감옥살이라... 그나마도 차 운전도 제가 하지도 못하고 반드시! 기사를 써야만 하는... (외국인이 운전하고 있으면 일부러 와서 사고를 낸대요. 경찰은 무조건 현지인 편만 들고, 외국인 너는 돈 많으니까 무조건 나눠줘라. 뭐 이런 마인드.) 그래도 차창으로 보이는 도시의 뒷골목들은, 음, 독특한 풍광이 있죠. 전 또 그런건 좋아하거든요. 언젠가는 탐험해 보리라, 꿈만 꾸는데요, 글쎄, 말이죠. ^^

2010-07-05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5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체오페르 2010-07-06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 말씀처럼, 아시마님 글을 참 재밌고 감칠나게 잘 쓰시네요.
머릿속에 상상이 잘 되면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수많은 고생과 수고로움을 글로 접하는 이런 재미(그걸 재미라고 하니 표현이 이상하지만; 삶 이란...이런것이 느껴져서요) 덕분에 계속 보게 되네요.^^

아시마 2010-07-07 12:08   좋아요 0 | URL
ㅎㅎㅎ 뭐, 원래가, 세상에서 젤 재미있는게 불구경이고 쌈구경이고, 남들 고생담이고.. ^^ 웃자고 쓰는 글이지, 사실 뭐 그렇게 고생스럽고 그렇지도 않아요. 아마 그러니까 재미있게 보시는 걸 거예요.
재미있게 봐 주신다면야, 저야 뭐 칭찬으로 알고 감사할 따름이죠. ^^

blanca 2010-07-06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책에 관세라. 완전 절망인데요....머리는...저는 하도 애 낳으면 머리 빠진다고 해서 난 예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머리 감으면 욕조가 막힙니다.--;; 주로 앞머리가 빠지니 사람이 더 빈티가 나 보이는 것 같아요.

친구는....저는 원래 친구 많은 걸 자랑처럼 착각하고 살았는데 다 허당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일부러 안 챙기고 있습니다.==;; 사람이 서로 다른 얘기들을 허공에 뱉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참 씁쓸하더라구요...이제는 안 챙길랍니다. 불끈!

아시마 2010-07-07 12:32   좋아요 0 | URL
책에 관세라. 절망적인 나라죠. 그런데 더 끔찍한 건, 책이 아예, 없다는 거예요. 이 나라의 어린이 책은 도라와 디즈니가 독점하고 있어요.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그림형제나 샤를페로가 번역되지 않는 나라죠. 물론 당연히 자국 어린이 문학도 거의 전무하다 시피하구요. 그러다보니 언어가 점점... 문어와 구어가 완전히 분리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달까요. 어느나라나 어느정도의 문화적 성취가 이루어져야 어린이 문학쪽에도 눈을 돌리나봐요.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서야 국산 그림책이 많이 나오는 것처럼요.

친구는... 그냥 그런것 같아요. 서로 모르는 거죠. 저도 사실 이야기 하지 않았고, 제가 이야기를 했다면 같이 슬퍼해줬을 친구니까... 정말은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그 친구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나에게 80% 이상의 책임이 있는 거죠. 제가 씁쓸했던 건, 친구에게 이야기 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한 부분이 가장 커요.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공유해야 친구라고 생각하는 시기는 이미 지나갔지만, 이야기 하지 않는 심리의 절반 이상이 허영심이라는 걸 알고 있거든요. 내내 잘 살고 있는 것으로만, 내 주위는 항상 행복한 것으로만 보이고 싶은, 그 마음이 문제인 거죠.

저절로 2010-07-0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이것도 지나가리라~ 여기세요.
글구 힘내세요(전 탈모에 흰머리꺼정..미칩니다 아주)

아시마 2010-07-07 12:36   좋아요 0 | URL
네. 그 구절에 매달리게 되리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는데요. ^^ 그래도 옛말 틀린 거 없다니까 많이 위로받고 있답니다.

흰머리. -_- 저 염색해요. 전 사실 제 탈모의 원인이 염색에도 있는게 아닐까, 조심스레 의심하고 있어서 이번달 염색을 넘겼지만, 염색하지 않으면 이젠 너무 보기 흉할 정도예요. 얼굴은 멀쩡하게 생긴애가 말이죠. 머리는 반백이라니, 누가봐도 흉하죠.

전 사실 둘째놈을 낳고, 산후탈모 이후에 머리가 새로 날때, 새로나는 머리의 절반은 흰머리였어요. 어흑어흑어흑... ㅠ.ㅠ

친정쪽 내림같아요. 친정할머니도 정말 눈처럼 새하얀 백발이셨고, 친정엄마도 30대 중반부터 염색을 해야만 했거든요. 소설가 고 이청준 선생 집안도 그렇게 머리가 빨리 희어지는 내림이었다고 하던데요. 에혀.

염색을 하자니 탈모가 문제고, 안하자니 백모가 문제네요.
 

발단은 이랬다.  

최근 우리가 출국 직전 사 놓은 아파트에 약간의 이슈가 생겼고, 남편과 나는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다음 로드뷰 기능과 스카이 뷰 기능을 처음으로 제대로 이용해 본 우리 부부는 우와우와를 연발하며 여기 저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남편은 남편의 노트북을, 나는 내 노트북을 붙잡고 각자 보고 싶은 곳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울컥해 버리고 말았다.  

남편은, 우리가 새로 산 아파트의 주변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다 로드뷰나 스카이뷰로 볼 수 있는 사진은 작년 겨울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최근의 사진을 찍어 올려놓은 블로그나 까페를 검색하던 중이었고, 나는, 그곳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가 8년을 살다 떠나온 그 동네를 스카이 뷰로 들여다보다 로드뷰로 들여다보다, 끝내는 울먹울먹하고 말았다. 

내가, 내가,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는지 모르겠어어어. 

2008년, 우리 부부의 첫 집을 계약한 때는 9월,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였다. 집 계약을 했던 그날은 유난히도 날씨가 좋았다. 집 계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단풍은 자지러지는데 어이없게도 눈물이 났다. 그때도 나는,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는지 모르겠어. 

라며 울먹울먹했다. 그 자지러지는 단풍을, 그 새파란 하늘과, 구불구불한 드라이브 코스를, 모두 버리고 가야한다는 슬픔이, 집을 샀다는 기쁨보다 훨씬 컸다. 새로 계약한 집이 마음에 쏙 들었음에도 그랬다.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도 아니고, 특별한 연고가 있는 곳도 아닌데도, 그 동네를 나는 편애했다. 교통이 불편하고, 내가 살던 아파트는 낡았으며, 편의 시설은 형편없고, 근린 생활시설은 전무하다시피 없는 동네였다. 슈퍼를 한번 가려고 해도 버스를 타고 두정거장을 나가야 했고, 지하철은 당연히 없었으며, 월드컵이나 촛불집회가 있으면 오도가도 못하고 동네안에 갇혀있어야 하는 그런 동네였다. 그런데 나는... 그래서 그 동네를 사랑했다. 그런 단점도 편애의 이유가 되었다.  

단점만 있는 동네는 아니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라는 노래가 어울리는 동네였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그런 곳이 있다는 건 아는 사람만 아는 은밀한 동네이기도 했다. 진달래와 개나리, 목련과 산수유로 봄이 시작되어 산벚과 아카시아가 흐드러지고 라일락이 피어나는 동네였다. 벚꽃이 질 땐 하루종일 온 동네에 하얀 꽃비가 내렸다. 비가오면 물소리가 들리고, 가을이 되면 하루종일 집안에서 단풍놀이를 즐길수 있는 그런 동네였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우리, 한국 들어가면, 새로 산 아파트는 세놓고 그 동네 다시 들어가서 살면 안될까. 

했더니 남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너 혼자 가. 이런다. 그 동네 뭐가 그리 좋든? 난 하나도 안 좋드만. 이라는 타박도 덧붙여서. 

내가, 내가,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을까, 내가! 

거기는. 

내 고향이란 말이야. 내 마음의 고향이란 말이야. 내가 나 혼자 내 고향 삼기로 마음 먹은 곳이란 말이야. 넌 수구초심이란 말도 모르니.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을까, 내가.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와서 이러고 있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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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7-05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왜 했겠어요. 사랑하니까 했겠죠.
마음의 고향이라는 말이 와닿아요.^^

아시마 2010-07-05 11:45   좋아요 0 | URL
요즘이야 좀 덜하지만, 여자들은 보통 결혼을 하면 삶의 터전이 바뀌잖아요. 이런 곳에도 경제 논리가 적용이 되어서 남편 직장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간다거나, 저처럼 아예 동네나 도시 수준이 아닌 나라를 떠나버려야 한다거나. 아, 돈 버는 놈이 장땡이라니까요. ㅠ.ㅠ 나도 돈이나 벌걸.

결혼하고 3년만에 그 동네를 떠나야 했을 땐 정말 뿌리가 뽑히는 기분이 들어서 몸이 아팠어요. 실제로 꽤 오래 앓았구요. 전 행동반경이 정말 좁은 인간이라서 그 동네에서 그렇게 떠나게 되면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다시 놀러 오거나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제가 사랑하는 것들은 놀러가서 느낄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뿌리내리고 살고 있어야 느낄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뭇잎 색깔이라든지, 바람의 갈피에 숨어있는 그런것들.

전 새로 정 붙이는 것보다 붙어있던 정을 떼는 걸 너무 어려워하는 타입이라(뒤끝 길고 질기고 구질구질한 성격이라...) 매년 새학기엔 한달쯤 눈물바람으로 학교를 다니는 애였어요. 새로운 친구와 교실이 마음에 들건 안들건 그런거랑 상관없이 말이죠. 저는 제가 좀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저처럼 새학기가 고문인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그건 좀 . 음. 안심했다고나 할까요. 에혀. 뭔 소린지.

그죠. 남편을 사랑하니 결혼했겠죠. 지금도 사랑하니 살고 있는 건데, 음. 하나를 사랑한다고 다른 하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해야 한다니, 더구나 남편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이건 불공평해요. -_-;;;

아. 다시한번.
내가 왜 결혼을 했을까아아아아아아!

루체오페르 2010-07-05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너무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짠...하고 먹먹합니다. 몇번씩 보고있네요.

아시마님, 정들면 고향...이란 말도 있잖아요. 섬님 말씀처럼 사랑하는 분과 함께 있다보면 그건 그거대로 마음에 들어갈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운 고향동네도 꼭 인연이 있으니 함께할수 있겠죠. 너무 쉽게 이야기해서 죄송합니다. 이럴때 드는 마음은 그냥 가만히 안아드리고 싶다 입니다.^^;

아시마 2010-07-05 11:52   좋아요 0 | URL
우선, 이 썩을 나라엔 정이 안붙어요. -_-

안아주신다니 뜬금없이 생각이 났는데요, 예전에 시베리안 허스키(맞나요, 루체님의 사진? 아니면 알래스카 말라뮤트 인가요? 그 둘이 어떻게 다른지 전에 들었는데 다 까먹었음.)를 안아본 적이 있는데, 어찌나 폭신하고 좋던지 말이지요. 굉장히 포근해서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루체님이 안아주신다는 게 그런 느낌이라면, 네, 위로가 될 거예요.

가끔 사람은,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 오기도 하잖아요.
감사합니다. ^^

마녀고양이 2010-07-05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쯤에 사셨는지 대충 감이 오긴 하는데,, 확실치는 않네요.

그런데..... 내가 왜 결혼했을까 라고 외치시는 부분에서...
제가 그만 빙그레 웃어버렸어여. 아 죄송해요. 기분 상하지는 않으시겠죠.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시마님이 너무 이뻐여. 아마
인도네시아를 떠나오실 때, 또 슬퍼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두 들구요. 주위를
이쁘게 가꾸시는 분 같아서요. ^^

아시마 2010-07-05 23:37   좋아요 0 | URL
어딘지를 아신다면 님도 아마 그곳을 사랑하지 않으실까요. ^^
뭐, 사실 어딘지 빙빙 돌리면 뭐하겠어요. 제가 살던 동네는 종로구 평창동이었고, 제 나와바리(ㅎㅎㅎ)는 평창동 부암동 구기동을 위시한 구시가들이예요. 사직동과 청운동 효자동과 가회동 삼청동 계동 북촌 등등도 제 놀던 옛고장이고, 북악스카이웨이는 저의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였으며 인사동 을지로 명동 종로 바닥이 제 데이트 코스였더랬지요. 그 주변에 포진해 있는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등등은 제 앞마당이었구요. 명동과 인사동 등지의 유무료 주차장과 절대 단속되지 않는 특별한 비장의 주차공간도 꿰고 있었는데요.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주차를 쉽게하는 법도 알고 있었고, 가끔 남편을 만나기로 한 날 그 복잡한 을지로 한 가운데에서도 30분 정도는 너끈히 차를 정차시켜놓고 기다릴 수 있는 곳도 알고 있었어요. 그래요, 어떤 사람에겐 그따위건 당연히 별것도 아닌 거 아냐,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독하리만큼 길눈이 어둡고 거리감각이 없는 저에게는 그정도면 정말 대단한 거라구요. 전 종로구와 중구를 제외한 서울의 어느곳도 그만큼 알지 못해요. 그만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몰라요.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도 빙빙 돌고 헤매기만 하죠.

자아, 제가 버려야 했던 것은 그런 것들이예요. 효자동에서 세검정으로 들어갈때 말이죠, 자하문 터널을 넘지않고 청와대 옆길을 지나 청운동 고개를 넘을때,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단풍이 얼마나 예쁜지, 이건 정말 봐야만 알아요. 세검정 삼거리에서 홍제동 방향으로, 흥선대원군의 옛 별장이었다던 석파랑이 있고, 그 뒤로 있는 암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이건 정말 말로는 설명이 안되구요. 늦은 밤 평창동에서 바라보는 북악산의 능선을 따라 불이 밝혀진 북악 스카이웨이의 불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 정말 제가 버리고 온게 뭔지, 뭔지, 정말이지, 내가, 내가, 내가!
결혼을 왜 했냐고, 내가아아아아아아!

마녀고양이 2010-07-06 08:56   좋아요 0 | URL
거기일거라 생각했어요.
아시는 분이 아시마님과 비슷한 말씀을 한적 있어서. ^^

저두 홍대 앞에서 오래 살았는데, 아시마님과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을거 같아요. 슬쩍 주차하는데도 알고 있고, 구석진 맛난 곳도 알고 있고,, 이런거.
딸아이와 홍대를 동네 삼아 산책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 홍대는 너무 변해서... 절레절레.
 
장미 비파 레몬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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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단점을 꼽자면 그 또한 끝도 없지만, 그래도 에쿠니 가오리에게는 굉장한 장점이 있다. 에쿠니 가오리는, 일상의 미세한 균열을 감지해 내는 감도 좋은 안테나와 그것을 그려 낼 줄 아는 섬세한 필력을 가졌다. 아주 사소한 몇가지의 나열로 그것을 묘사해 낼때는 때때로 감탄이 나온다. 확실히, 지나치게 지리멸렬하고 무기력한 인물들에 잔잔한 것도 좋지만 기승전결을 매길수도 없을만큼 사건이라고 할 것이 일어나지 않는 심심한 소설이라는 혹평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서도 그런 섬세함은 빛을 발한다. 그것이 아마, 에쿠니 가오리를 여전히 일본과 한국에서 인기있는 여류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힘일 것이다.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그런 장점이 특히 잘 살아있는 책이다. 아홉명의 등장인물과 네쌍의 부부와 일곱쌍의 불륜 커플들의 이야기. 이 아홉명의 등장인물들, 그 중에서도 기혼자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무기력함이다. 특별히 성격자체가 유약하거나 해서는 아니고. 다들, 일상의 미세한 균열들을 더이상 벌어지지 않게하는데 집착하느라, 또는 그 미세한 균열들을 모른척하며 살아가느라 진이 빠져 또 다른 일을 벌일 기운이 도저히 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다.  

결혼을 해 보면 알게된다.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을 했습니다, 라는 구절이 이제 행복만이 남아있습니다, 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예전에는 신데렐라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벨도 백설공주도 왕자와의 결혼 장면을 마지막으로 동화책을 덮을때 행복으로 충만함을 느낄수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그 왕자에게는 왕자를 낳아준 시부모님도 있고, 아마 왕궁에서 시집살이를 해야 할 것이며(그렇다, 그는 아직 왕자인 것이다. 왕이 아니라. 실권을 쥔 권력자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책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왕자에겐 여동생 또는 누나가 있을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시댁의 문제가 없다고 해도, 그 왕자에겐 백설공주가 알지 못했던 주사가 있을 수도 있고, 야수의 탈을 벗고 사람이 되었지만 야수시절의 폭력성이 여전히 남아있을 수도 있고, 신데렐라를 찾아 헤매느라 가진 돈을 다 써버린 빈털털이 일수도 있고, 잠든 여자만 보면 매력을 느끼고 덤벼드는 바람끼가 있을지도 모른다. 생명을 구해주었기에, 힘든 하녀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기에, 천년간의 잠을 깨워주었기에 앞 뒤 잴 것 없이 고마움과 사랑을 분간하지 못하고 결혼을 했던 공주들은, 어느날 레드 썬 하고서 자신이 왕자에게 고마워하고 있을 뿐 전혀 사랑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결혼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를 쓰고 결혼을 유지해 나가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고, 굳이 헤어져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서일수도 있고, 상대방의 치명적인 단점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일수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 구절이 아마, 이 소설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 아닐까. 

   
  그냥 그대로 지낼 수도 있었는데. (p. 244)  
   

 

남편 시노하라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해(물론 시노하라는 이혼 당해 마땅한 상황이긴 했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으나.) 결국 이혼을 해 버린 에미코가 하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이 고비에서 삶이 갈라진다.  

사실 생활이라는 건 습관의 연속인 법이라서,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어도 정작 그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렇게 굳이 또 못견딜 것도 없는 그런 상황이 된다. 결혼도 그렇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에미코는 단호하게, 

   
  그냥 그대로라면 뭐 때문에 결혼했다는 말인가. 이미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애당초 사랑하지 않았다고밖에 여기지지 않는 남자와. (p. 244)   
   

 라고 생각한다. 그냥 그대로 지낼 수도 있다면, 그냥 그대로 지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에미코는 그냥 그대로 지내지 않기로 결정을 한다. 그리고, 남편 신이치에대해 이미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버린 아야는 그렇지만 그냥 그대로 지내기로 결정을 한다. 어느쪽의 결정도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 어느쪽으로 결정을 내리든 50%의 불만과 불안은 늘 공존을 한다. 이혼을 해도 하지 않아도. 결국은 누구와 산다고 해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도우코는 산책길에서 만난 남자 신이치와 불륜에 빠지지만, 그게 사랑은 아니고, 연애를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상태다. 남자들이 흔히 말하는, 가정은 깰 생각이 전혀 없지만 그냥 연애는 즐기고 싶은 그런 상태. 아, 나 그 기분 뭔지 정말 너무 잘 알겠는 거지. -_-;;;(헉 이건 위험 발언인데.) 

이 이야기에서는 하나의 커플이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두 커플이 정식으로 이혼을 하는 걸로 끝이 난다. 물론 그 안에 불륜으로 맺어지는 커플도 있고, 연애 상태였다가 깨어지는 커플도 있기는 하지만, 법률이라는 한계 안에서 보면 그렇다는 거지.  

딱히 재미있다거나 특별히 기발하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이런 소설을 읽는 건 그것 나름대로 또 의미가 있다. 다시한번 뭔가에 대해서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습관이 되어버리는 사랑에 대해서, 그것이 얼마나 쓸쓸한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주니까. 그러니까, 사랑이 습관이 되게 하지는 말으라고, 그냥 그대로 지내지 못할 것도 없어서 같이 사는 그런 관계가 되지는 말자고, 연애때처럼 그렇게 죽자사자 목을 늘이지는 못해도, 그래도 내가 당신과 사는 이유는 내가 낳은 아이들의 아버지이고, 굳이 이혼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런 이유가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곁에 있는 것이 행복해서라고 느낄수 있게 살아가자고, 그런 생각들을 하게 해준다. 

그래... 이제 알 것 같다.  

일상의 균열이라는 거,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미세하지만 분명 균열은 균열로서 생겨있을때, 사람은 참 쓸쓸해 진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왜 그리 스산했는지 알 것 같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사랑하고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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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7-0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그대로 지낼 수도 있었는데...로 시작해
더 많이, 더 열심히, 사랑하고 살아야겠다...끝나는
리뷰, 감명깊게 잘 봤습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한번 결정히면 그저 최선을 다해 만족하도록 하면 되는것이란 생각이 다시 드네요.

아시마 2010-07-02 19:31   좋아요 0 | URL
행복도 불행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말을 누가 했었는데... ㅎㅎ
타인의 행 불행을 너무도 쉽게 재단해서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스럽다는 건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구요.
열심히, 그냥 말고 행복하게, 그렇게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타인의 행 불행에 대해 내 맘대로 재단해서 말은 물론이고 생각도 하지 말자는 생각도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재단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좀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을거라는. (앗, 이건 공지영 책에서 공지영이 한 말 같기도 하군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노력하려는 태도도 필요하고... 때로는 그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할줄 아는 용기도 있어야 할테고...
인생에 필요한 것들은 참 많아요, 그쵸?

루체오페르 2010-07-02 22:26   좋아요 0 | URL
아 참 공감가는 말씀들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이를 떠나 삶에 필요한 그런 것들을 체득,체화 시켜나가는 것이 연륜인듯 합니다.

누가 하신말인진 모르겠으나, 불경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정확하진 않으나...
'행복도 내가 짓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짓는 것이네. 아,진정 행복도 불행도 나의 것, 다른 이가 아니네'

마녀고양이 2010-07-0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탐독하다시피 했었습니다. 푹 빠져지냈죠.
머랄까... 말이 많지 않음이, 그리고 표현이 과하지 않음이 마음에 들었달까요.
한참 생각하게 만들고 가끔 슬프게도 만들지만.... 그래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서,
제 회피 성향에 잘 들어받는 글들이었답니다.

결혼 이후의 이야기들. 절대 공감합니다. ^^

아시마 2010-07-05 11:55   좋아요 0 | URL
그쵸, 에쿠니 가오리의 글은 약간 회피성향이 있는 사람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그 등장인물들이 사건에 대처하는 방식이나 삶의 방식이 회피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구요. 한편으론 또 너무 그래서 답답하기도 하구요.

결혼 이후의 이야기들은... ㅎㅎㅎㅎ 결혼을 하면 너무 절감을 하는 것들 아닐까 싶어요. 뭐, 남자들도 그렇겠죠, 도대체 어디서 그런 것들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요. 사실 저도 알고 싶어요. 남자들아, 니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니...

blanca 2010-07-0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과 저가 좋아하는 지점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랍니다. 저는 에쿠니 가오리가 대단하지 않은 얘기들을 그 대단하지 않게 풀어 나가는 그 섬세한 필력이 넘 좋아요..그게 일상의 균열을 감지하는 능력이었군요! 잘 읽고 갑니다.

아시마 2010-07-07 12:41   좋아요 0 | URL
블랑카 님과 제가 그렇게 접점이 많다니 전 좋기만 한데요. ㅎㅎㅎㅎㅎㅎ

전 그래도 에쿠니 가오리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전 좀 더 열정적인 타입이 좋거든요. 소설도 서사가 강한 쪽을 선호하는 편이구요. 저한테 에쿠니 가오리는 너무 심심해요.

더 중요한 건, 이렇게 말하고 있으면서, 에쿠니 가오리 소설은 죄다 사다 모으고 죄다 읽었다는 거. -_-;;; 뭐냐구요,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