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이랬다.
최근 우리가 출국 직전 사 놓은 아파트에 약간의 이슈가 생겼고, 남편과 나는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다음 로드뷰 기능과 스카이 뷰 기능을 처음으로 제대로 이용해 본 우리 부부는 우와우와를 연발하며 여기 저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남편은 남편의 노트북을, 나는 내 노트북을 붙잡고 각자 보고 싶은 곳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울컥해 버리고 말았다.
남편은, 우리가 새로 산 아파트의 주변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다 로드뷰나 스카이뷰로 볼 수 있는 사진은 작년 겨울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최근의 사진을 찍어 올려놓은 블로그나 까페를 검색하던 중이었고, 나는, 그곳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가 8년을 살다 떠나온 그 동네를 스카이 뷰로 들여다보다 로드뷰로 들여다보다, 끝내는 울먹울먹하고 말았다.
내가, 내가,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는지 모르겠어어어.
2008년, 우리 부부의 첫 집을 계약한 때는 9월,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였다. 집 계약을 했던 그날은 유난히도 날씨가 좋았다. 집 계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단풍은 자지러지는데 어이없게도 눈물이 났다. 그때도 나는,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는지 모르겠어.
라며 울먹울먹했다. 그 자지러지는 단풍을, 그 새파란 하늘과, 구불구불한 드라이브 코스를, 모두 버리고 가야한다는 슬픔이, 집을 샀다는 기쁨보다 훨씬 컸다. 새로 계약한 집이 마음에 쏙 들었음에도 그랬다.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도 아니고, 특별한 연고가 있는 곳도 아닌데도, 그 동네를 나는 편애했다. 교통이 불편하고, 내가 살던 아파트는 낡았으며, 편의 시설은 형편없고, 근린 생활시설은 전무하다시피 없는 동네였다. 슈퍼를 한번 가려고 해도 버스를 타고 두정거장을 나가야 했고, 지하철은 당연히 없었으며, 월드컵이나 촛불집회가 있으면 오도가도 못하고 동네안에 갇혀있어야 하는 그런 동네였다. 그런데 나는... 그래서 그 동네를 사랑했다. 그런 단점도 편애의 이유가 되었다.
단점만 있는 동네는 아니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라는 노래가 어울리는 동네였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그런 곳이 있다는 건 아는 사람만 아는 은밀한 동네이기도 했다. 진달래와 개나리, 목련과 산수유로 봄이 시작되어 산벚과 아카시아가 흐드러지고 라일락이 피어나는 동네였다. 벚꽃이 질 땐 하루종일 온 동네에 하얀 꽃비가 내렸다. 비가오면 물소리가 들리고, 가을이 되면 하루종일 집안에서 단풍놀이를 즐길수 있는 그런 동네였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우리, 한국 들어가면, 새로 산 아파트는 세놓고 그 동네 다시 들어가서 살면 안될까.
했더니 남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너 혼자 가. 이런다. 그 동네 뭐가 그리 좋든? 난 하나도 안 좋드만. 이라는 타박도 덧붙여서.
내가, 내가,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을까, 내가!
거기는.
내 고향이란 말이야. 내 마음의 고향이란 말이야. 내가 나 혼자 내 고향 삼기로 마음 먹은 곳이란 말이야. 넌 수구초심이란 말도 모르니.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을까, 내가.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와서 이러고 있니.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