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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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보면 한국사람만큼 사과에 인색한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어지간 해서는 사과를 하지 않고, 어쩌다 사과랍시고 하는 걸 가만히 들어보면 사과가 아니라 변명 일색이다. 또는 적반하장격의 사과도 있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됐냐? 됐어? 이런식 말이다. 

사과라는 건, 나의 행위에 대해서 하는 게 아니다. 나의 행위에 대해서 하는 말은 사과가 아닌 변명일 뿐이다. 사과란 나의 행위의 결과로 상대방이 입은 마음의 상처에 대해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사과가 있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마음의 상처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보통은 이 과정이 없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 나오는 거다. "고작 그런 일에" 라는 식의.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돌을 던진 사람은 돌팔매에 대해 변명을 하는 게 아니라 살생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 죽어버린 개구리에게 남겨진 가족들의 기막힌 슬픔에 대한 공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난 그냥 돌맹이 하나를 던졌을 뿐이예요, 고작 그런 잘못에 제가 살생의 책임을 져야 한다니요?" 라고 묻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쪽의 진실된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그 일은 종결되지 않는다. 일제의 진심의 사과가 있지 않았기에 한일 근현대사 문제는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옛날일을 왜 꺼내냐 하기 전에, 진심의 공감을 바탕에 둔 사과를 해서 이 문제를 종결지으면 간단한 문젠데 말이다.  

사과를 받지 못하니까 사람들은 원한을 품는다. 참 어려운 문제다. 사실 나도 몇개 원한을 품고 있는 사건들이 있는데, ㅎㅎ 앞 뒤 전후의 사정을 들어보면 정말 별 것 아닌 일이고 참으로 오래 전의 일인 것도 있고, 뭐 그렇다. 아마 내가 원한을 품고 있는 그 사람들은 내가 원한을 품고 있는줄도 모를거다. 하지만 나에게는, 사과 받지 못한 원한으로 그것이 생생한 현재형으로 남아있다. 언젠가 그 사람들을 보면 내가 당한만큼 그대로 갚아주리라 이 빠득빠득 갈며 벼르고 있는 사건도 두어개 있다. 나... 순하고 단순한 사람이다. 그냥 사과 한번 제대로 했으면 끝날 일이었는데. 그 사과에 인색했던 덕분에 그 사람들 밤길 조심하게 생겼다. 때로 이런 분노나 원한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크게 자라 내가 파괴되더라도 저들을 응징하고 말리라, 하는 수준에까지 이른다. 내가 죽더라도 널 죽이고야 말겠다는 거지.  

뭐, 하기는. 나에게 이런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장담은 나도 못하겠다,,,, 마는.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잘못을 저지르면 사과라도 제대로 하고 살자. 변명과 사과 정도는 구분해 주면서.  

 

PS. 쓰고 보니 책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리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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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하드. 라고 써 놓고보니, 무슨 아이스크림 이름같다.  

요즘 나는 목하 언어공부에 열중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인도네시아 말. 차-암 쉽다. -_-;;; 

문득, 이 나라의 교민 규모가 여타 동남아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독보적일 정도로 큰 것은 아마 이 언어덕분이 아니었을까 싶을만큼 쉬운 언어다. 뭐 물론 깊이 들어가고 고급스러운 언어를 사용하러면 한국어나 영어만큼 어렵고 복잡한 언어이겠지만 일단 단순하게 일상 회화만을 구사하기 위해서라면, 쉽다. 단어만 열심히 외우면 된다. 그나마 외울 단어도 몇개 안된다.  

한국어에 있는 조사가 인니말엔 없다. 영어에 있는 관계사(? Be동사)도 없다. 주격 소유격 목적격 격도 없고 동사 시제 변화도 없다. 내일도 besok이고 모레도 besok이고 미래도 besok이다. 물론 어제도 Kemarin이고 그제도 그렇고 과거도 그렇다. 먹다도 Makan이고, 먹었다도 makan이고 먹을 것이다도 makan 이다. 뭐 이런 헐렁한 언어가 다 있냐, 싶다. 도대체 이런 언어로 회화는 고사하고 문학작품이라는 게 가능한가, 했는데, 웬걸, 인도네시아에는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로 거론되는 문학의 거장이 계시단다. 헐헐헐... 그러니까 헐렁한 언어라는 건 무식하고 못배운 나의 편견이고, 사실 알고보면 복잡하고 엄격한 체계를 가진 아름다운 언어일시 분명하지만, 어쨌든 일단, 내가 배우고 말하기에는 쉽다는 거.  

이 나라에 오면 영어의 마수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환장하겠는 거지. 

쏼라 쏼라 영어로 떠들어야 하는 일들은 왜 이렇게 많니. 애들 학교부터 시작해서. 오죽하면 국제학교에선 부모의 영어 스피킹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묻기까지 하더라. 아주 한국 엄마들 악명 높대요. 애만 학교에 맡겨두고 선생 피해다니기로.  

눈물을 머금고. 영어공부 시작. 그나마 레슨비는 저렴하네.  

어쨌든 그래서, 나는 지금 스터디 하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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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2부의 앞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종이 종을 부리면 식칼로 형문(刑問) 친대더라."
박경리, 『토지』2부 1권, 나남출판, 2002, p. 136 

비슷한 어감의 우리 속담(속설?)로 시집살이를 호되게 한 사람이 매운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도 있고.  

내가 앞으로 몇년간 살아가야 할 이 나라는, 300여년을 네델란드의 속국으로 살아왔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가, 우리나라가 그랬듯 일본의 패망으로 45년 독립국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독립기념일은 8월 15일, 이 나라의 독립기념일은 8월 17일이다.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인구 대국이고, 한 나라안에 세가지 시간이 있을 정도로 영토도 넓은 편이고 석유, 석탄을 비롯한 부존자원이 풍부하다 못해 엄청난, 아시아 최대의 도시를 수도로 가지고 있는 이 나라는. 

이제 겨우 한달하고 며칠. 이 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나쁘다 좋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몹시 이상하다.  

그 중에서도 인구의 15%정도가 된다는 식모(pembantu/kakak), 유모(suster) 계층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도무지. 그리고 그녀들의 태도 또한.  

23살의 우리집 식모 암바르 양은,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참 음전한 사람이다. 순하고 얌전하고 겸손하고 상냥하다. 물론 내가 말을 못하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말도 없고, 우리 아이들을 참 예뻐한다. 오래 이나라에 살았던 다른 분들이 그러더라. 이 나라 사람들이 워낙에 아이를 예뻐하는 천성을 가졌다고. 아이를 잘 본다고.  

그런 그녀, 설거지를 잘 못한다. 우리가 흔히 안남미(안락미, 통일벼)라고 알고 있는 길쭉하고 풀기 없는 쌀로 밥을 지어먹던 그녀, 윤기와 찰기가 넘쳐흐르는 이천쌀로 무려 압력밥솥에서 지은 밥이 가지고 있는 접착력과 응고력에 적응이 안되는 모양, 밥그릇에 늘 으깨진 밥풀이 남은채로 설거지를 마무리 했다. 그래서 어제, 두번째로 그 문제를 지적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엎어놓은 밥그릇을 들어 보여주며, 이것 보라고. 

당황한 그녀, 내가 두번째 밥그릇까지 들어올리자, sorry와 maaf을 반복하며 두 손을 모아 비비는데 내가 더 놀랐다. 아니 내가 뭘 어쨌게, 소리를 지르기를 했니 화를 내기를 했니, 나는 그저, 너의 설거지하는 방식을 약간 교정해 줄 생각 뿐이었는데, 난 니가 이런 쌀에 적응을 못한다는 걸 이미 이해하고 있는데, 그저 물에 좀 불렸다 설거지를 하면 간단한 문제일 뿐이라고 말해줄 생각이었는데, 아니, 근데, 내가 뭘 어쨌다고 니가 파리로 돌변해서 손을 모아 비비대는 거냐고........ 밥그릇에 밥풀 좀 남기고 설거지 마친게 손을 모아 비빌만큼 큰 죄는 아니거든... 

그 씁쓸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기겁을 하고 그릇을 그냥 놔두고 나와버렸다. 미쳐. 그녀는 내가 화나서 부엌에서 뛰쳐나간 줄 알거다. 환장할 노릇.  

그리고 오늘, 큰 아이 유치원을 알아보느라 암바르 양을 데리고 근처의 영어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 현관앞에 자랑스레 영어와 현지어로 적혀있던 말. 유모는 현관 안으로 들어오지 마시오.  

이 더운 나라에서, 아이의 엄마는 에어컨 빵빵 나오는 로비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유모는 땀을 뻘뻘 흘리며 현관 밖에 붙어서서 로비의 CCTV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기가 맡은 아이가 들어간 수업이 언제쯤 끝나나를 기다리며. 도대체 왜? 유모나 식모는 왜 현관에 들어오면 안된다는 걸까? 영어 유치원이지만 그 유치원의 소유자는 분명 현지인이고, 대부분의 선생님이 다들 현지인들이건만. 

유치원 견학을 마치고 같이 간 아이 친구 엄마와 함께 유치원 근처 키즈까페로 갔다. 한국의 키즈 까페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으면서 값까지 싸서 여기 좋다~ 이러며 감탄하며 놀다 화장실 가는 길에 발견한 장소. 화장실 문 앞에, 그 까페와는 어울리지 않는 싸구려 의자가 놓인 좁은 공간. 그 위에 달린 팻말엔 유모 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유모는 키즈 까페의 테이블에 앉지도 말고, 유모 전용 좌석 거기에 앉으라는 이야기.  

도대체가 이쯤되면, 이건 정말 미친거 아니냐고. 식모 유모가 무슨 불가촉천민 계급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 나라는 당연히 힌두교의 나라도 아니고, 전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다는 나라고, 한 테이블에 앉지도 말아야 할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건 또 뭐냐구.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사람도 이 나라 사람이고(물론 나같은 외국인도 많고.) 그 키즈 까페의 주인도 현지인일텐데, 서빙하는 직원도 모두 현지인들인데.

이쯤되면 눈이 핑핑 돌아가는 거다. 이건 뭐랄까,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느끼는 회의감이랄까. 350여년의 식민기간에 인간이 인간에게 급을 매기고 천민과 귀족으로 나누는 일을 겪으면서 그들도 참 싫었을텐데, 이젠 타성에 젖어 아무렇지도 않은건지. 유모와 식모에 대한 박대(? 학대?)는 잔인할만큼 명료한데가 있다.  

그래서 그 구절이 생각났다.  

종이 종을 부리면 식칼로 형문을 친다더라, 라는 말이.  

형문(刑問)은 정강이 뼈를 막대로 내리치며 죄인을 취조하는 일을 말한다. 이게, 종이었던 사람이 종을 부리게 되면 막대가 아닌 식칼로 정강이뼈를 내리칠만큼 악독해진다는데, 

그게 사람의 본성인 걸까. 

아,  

여긴 참.  

이상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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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2010-06-25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깜깜하네요.
우리나라도 해방 못했음, 저러구 있지 않나 싶네요. 에공.
(잘해주세요.)

아시마 2010-06-28 11:05   좋아요 0 | URL
흠... 여기 3개월여 살면서 이 나라 사람들과 접하면서 생각하는 건요, 민족성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구나, 하는 거예요. 물론 300년이라는 길고 긴 식민통치가 민족성이라는 것 자체를 바꿔놓았을 수도... 라는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지만요. 그래도 민족성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어요.
 

2월 - 아마도 10권? 

1 일

 

 

 

 

 

 

 

2일 

 

 

 

 

 

 

 

 3일 

 

 

 

 

 

 

 

4일 

 

 

 

 

 

 

 

5일 

  

 

 

 

 

 

 

 

6일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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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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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는 2003년 동인문학상을 받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나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고보면 나도 참 희한하게 집요한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성석제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음, 글 잘쓴다는 건 인정. 잘 쓴다, 재미있다 라는 것과 좋아한다는 건 별개의 문제) 황만근 이후로 나온 책을 꾸준히 잘도, 열심히도 사다 날랐고 신간이 나올때마다 참 열심히도 읽었다는 거. 아니 도대체 왜? 심지어는 이전에 나온 책들까지 모두 사다 모아서 성석제 책을 거의 다 콜렉션 했다. 아놔... 왜 그랬냐고. 나 별로 안좋아했다니까, 성석제.  

이 사람, 음식이야기 참 잘한다. 그것도 맛깔나게 잘 한다.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가끔 이 사람 만나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내가, 음식 이야기라면 뭐가됐건 누가 됐건 덮어놓고 좋아하기 때문이지, 굳이 성석제라서는 아니었다. 난 사실 그간 성석제식 글쓰기와 말하기, 성석제식 농담에 익숙하지 않았던가보다. 

그렇지만 확실히 성석제의 글은 유쾌하고 잘 읽힌다. 기분이 꿀꿀할 때면 기분전환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성석제 콜렉션 중 읽지 않은 몇 권 중 하나인 이 책을 꺼내 읽었다.  

그리고,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사실 내가 성석제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도 열심히 사다 모으고 읽어댔던 건, 사촌 언니 부부 탓이 크다. 그 부부는 2003년 황만근 시절부터 성석제의 광팬이 되어 나를 만날때마다 열렬하게 성석제 찬양을 하곤했다. 그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성석제라나. 그래서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다. 아니 뭐가 그렇게 좋아서? 어디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난 도무지 싶던데? 그런 생각이 이 책 한권으로 날아갔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성석제의 농담에 98.76% 싱크로 성공한 것 같고, 성석제 찬양에 입에 침이 마르다못해 입가에 침버캐가 끼던 사촌언니 부부의 감탄에 완전 공감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쩌면 나도 그들과 함께 성석제 찬양 찬동 우상화 작업에 침버캐를 앞세워 나설지도 모르겠다. (훗, 이게 성석제식 글쓰기인거다.) 

성석제의 책이 재미있으려면 일단은 약간 성석제화 되어야 한다. 이 성석제 化 라는 건 도무지 말로는 설명이 안되고, 자신이 겪어봐야 이해가 되는 건데, 세상과 사물과 사건을 보는 눈이 성석제와 겹쳐지는 것을 느끼는 어느 순간이 오면 알게된다. 아, 내가 드디어 성석제 화 되었구나. 그리고 그 성석제의 눈과 싱크로 된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특별히 재미있는 건 모르겠지만 성석제의 글들이 미친듯이 재미있는 거다.  

그래, 이 험한 세상 그렇게 무겁게 무게잡고 살 거 뭐 있나, 농담하듯 재미있게 흘러가며 사는 거지.  

당분간은 성석제 주간이 될 것 같다. 이 작가, 이렇게 재미있는 작가였구나.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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