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지금 감기로 골골 하면서도 말이죠... 

제가 이 나라에 온지 만 2개월이 안되었을 때였어요.  

부엌 수전이 고장이 난 거예요.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다 이야기 해서 1차 수리를 했죠. 하얀 비닐 테이프 둘둘 감아서 도로 꽂아 주더라구요. 이거 고치는데 이틀 걸렸어요. 밥? 못해먹죠. 

사흘뒤 똑같은 고장이 또 일어났어요.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다 또 전화를 했죠. 테크니시(기술자를 여기서는 이렇게 부르더군요.)가 보더니 이건 수전이 낡아서 그렇다 교체를 해야 한다 하더라구요. 저희 아파트 중개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파트 중개인은 또 집 주인이 아닌 집 주인의 대리인인 현지 담당자 와띠 여사에게 말을 해야 한다더군요. 와띠여사와 남편이 통화를 했어요. (전 인니어를 못하니까요.) 내일 와서 보겠다더군요. 과연 다음날 왔어요. 보고는 다음날 교체해 주겠대요. 그리고 그 다음날 새로운 수전을 달았어요. 수리에 사흘 걸렸어요.  

새로 사서 달은 수전을 쓴지 이틀만에 똑같은 문제가 발생을 했어요. 다시 테크니시를 불렀죠. 와서 보더니 이건 수전이 불량이라 그렇다고 교체를 해야 한대요.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하는데, 다들 인도네시아는 원래 그렇다고 참으래요. 꾹꾹 참고 이부 와띠와 다시 연락해서 사흘지나 다시 교체를 했어요.  

교체하고 이틀지나 또 똑같은 문제가 발생을 했죠. 이번엔 완전히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요. 테크니시에게 연락하지 않고 이부 와띠에게 바로 연락을 하니 무조건 저희 아파트 테크니시에게로 연락하라는 거예요. 그날이 수요일. 알겠다고, 테크니시를 불렀어요. 목요일이나 되어서 왔더군요. 테크니시가 보더니, 이건 역시나 수전이 불량이니(인도네시아서 만든 것이 다 그렇지 뭘!) 새로 바꿔야 한대요. 이부 와띠에게 연락한답니다. 목요일 오후에 이부 와띠에게 연락이 갔어요. 이부 와띠가 알겠답니다. 금요일 오전 또 연락을 했어요. 알겠다고 해요. 

토요일 아침 또 연락을 했어요. siang(오전 11시경부터 오후 2시경까지)에 해주겠대요. 

 

참고로, 지금까지 모든 연락은 남편과 저희 식모가 한 것이었답니다.  

토요일 2시까지 기다렸어요. 아무런 연락이 없더군요. 식모를 시켜서 다시 이부 와띠에게 연락을 했어요. 

토요일 오후라 상점이 문을 다 닫았기 때문에 수전을 살 수가 없어서 토요일엔 수리가 안되고 월요일에 해 주겠답니다. 순식간에 뚜껑이 펑, 열렸죠. 

식모의 말을 전해듣는 순간, 제가 이부와띠에게 전화를 다시 했어요. 

배운지 2달된 인도네시아말로, 미친듯이 지랄을 떨었어요. 고장이 난 건 수요일이다, 나는 너에게 목요일에 고지를 했다. 너는 목요일 오후에 이 일을 알았는데 토요일 오후 상점이 문 닫은 걸 왜 나에게 이야기를 하느냐? 나는 기다렸다, 토요일 오전에도 내가 전화하지 않았느냐, 금요일에도 전화했다, 상점 닫은 이야기를 왜 하냐? 난 너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당장 와서 고쳐놔라! 

이부와띠는 5-60대 할머니입니다. 아주 화사하게 웃으며 뇨냐~ 토요일 오후라 상점이 문을 닫아서 안되니 월요일에 해주께~ 이 말만 반복하는 거죠. 미안하다는 말도 안해요. 미안한줄도 모르는 거지.  

너 미쳤냐,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오늘 당장 고쳐라, 너에게는 목요일과 금요일 토요일 오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운운운운 

미친듯이 소리소리 지르다가 너 기다려 내 남편이 너한테 전화할거야, 해놓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황설명하고 이부와띠한테 무조건 오늘 고쳐놓으라고 말하게 시키고, 

내가 이 집을 구할때 중개인이었던 한국인 부동산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또 상황설명하고 이부와띠한테 전화해서 오늘 당장 고쳐놓으라고 말하라고 미친듯이 지랄하고, 

다시 내가 직접 이부와띠에게 전화를 걸어 미친듯이 지랄지랄지랄지랄 해주고, 

이 모든 일들을 2번 반복해 주고. 

이런 일들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사실 오늘 고쳐지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도네시아니까, 얘넨 원래 약속의 개념도 없고, 시간의 개념도 없고, 약속을 못지켜도 미안한 줄도 모르고, 약속을 왜 지켜야 하는지 이해도 못하는 족속들이라,  

얘네들 눈에는 지랄거리는 내가 이상할 뿐, 

어찌나 분하던지 미친듯이 지랄을 하고는 진이 다 빠져 기절하듯 침대에 쓰러져 두시간 자고 일어났더니,  

푸핫, 

토요일에는 가게가 문을 안열어서 살수가 없다, 테크니시도 없다... 했던 인간들 어디가고, 

이 아파트 테크니시 총책임자와, 실제 고칠 테크니시와, 연락 담당자까지 죄다 내 부엌에서 버글거리며 고치고 있더만요. -_- 그게 더 황당해. 

덕분에, 수전은 비싸고 좋은걸로 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부 와띠가 사서 달아주고자 했던건 인도네시아산 싸구려였고, 내가 하도 지랄을 하는 바람에 당장 사다 달아준 건 일제 토토 였다는 사실. 어이없는 인간들... -_-  

 

 

 

 

Ps. 1. 그 일 있고 3주뒤엔, 이번엔 가스통과 가스렌지를 연결하는 밸브에 문제가 있어서 이 아파트의 관리 사무실을 대판 때려엎고, 이틀에 걸쳐 테크니시가 네번 왔다가고, 남편이 전화를 몇번 하고, 결국 내가 안되는 인니어로 또 지랄거렸더니, 이번에도... -_-;;; 테크니시 총 책임자와 테크니시와 연락 담당자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한사람까지 넷이 와서 고쳐주고 갔다는.... 

2. 같이 나와있는 다른 주재원 부인의 말로는, 아마 이 아파트 관리 사무실에서 A동 506호가 전화걸면 다들 열일을 제쳐놓고 올 것이라는... -_-;;; 

3. 일제 토토로 달아놓은 수전은 더이상 고장이 나지 않고 잘 쓰고 있습니다. 

4. 싸움 몇판 하고났더니 인니어가 비약적으로 화~~~~~~~~~~~~~악 느는 ,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슬펐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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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7-01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책을 많이 읽고 국어를 잘하는 분이시라 외국어도 싸움 몇판에 마스터가 되는구나, 하면서 읽었다가 웃었네요. ㅎㅎㅎㅎㅎ

아시마 2010-07-01 15:27   좋아요 0 | URL
그래도요, 미친듯이 지랄거리는 그 와중에도 머리 한쪽에선 헐... 그래도 뭔가 내 말을 알아듣고 있는 상대방이 너무 신기했어요. 내 말을 알아듣고 피드백이 오는데 말을 하는 내가 더 황당했다는... -_-;;;

인니어 참 쉬워요. 진짜로. 근데 그만큼 헐렁한 언어이기는 해요. 일물일어의 프랑스어와 완벽한 대척점에 있는 언어같아요. 신생언어이기도 하구요.

책가방 2010-07-01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전 욕만 는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했는데 아니었군요.
꼭 지랄난리부루스를 춰줘야 움직이는 건 우리나라도 일부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며칠동안 고생많았겠어요..^^

아시마 2010-07-01 15:31   좋아요 0 | URL
훗... 우리나라와 비교하는 건, 이 나라를 겪어보지 않고서 하시는 말씀이예요. 여기에서 보면, 한국은 그야말로 공공 서비스 천국인거죠.

민족성인 것 같아요. 약속을 하지도 않고, 약속을 해도 지키려고 하지도 않아요. 처음엔 하루라는 시간을, 빠기, 시앙, 소레, 말람(이른 아침,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누어 놨길래 신기하다 했거든요. 하긴 그렇게 보면 우리말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는 시간들이긴 한데요, 그래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간을 표현할땐 오전 몇시 오후 몇시... 이런 식인데 얘네는 시간을 아예 말을 안해요. 그냥 오늘 시앙에 만날까? 이게 약속이예요. 그러곤 당연히! 안지키죠.
지랄난리부르스를 춰줘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지랄난리부르스를 쳐주지 않으면 안움직여요.
성질급한 한국사람 숨넘어가기 딱 좋아요. -_-;;;

마녀고양이 2010-07-0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마지막 줄 읽고 미친듯이 웃고 있답니다.

안녕하세요, 아시마님 첨 뵙겠습니다.
인도에서 고생하고 계시네요. 하지만 정말 잘 하셨어요.
덕분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있으시네요. ^^

그런데 걱정입니다. 글 정말 멋지게 쓰셨는데, 만일 이벤트 당첨되면 어찌 인도로 보내나? 하는..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아시마 2010-07-01 15:33   좋아요 0 | URL
헐... 일사천리라니. 하긴 인니 수준에서 보면 저정도면 일사천리이긴 해요.

이벤트 당첨이라... ㅎㅎㅎㅎㅎㅎㅎ 당첨의 영광만 품에 안고, 선물은 고이 차점자에게 넘기겠사와요~오.

아... 김칫국은 참 짜고 시네요. ㅋ

루체오페르 2010-07-0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핫 일단 먼저 웃고요~ 마지막 반전 한마디로 쩝니다.ㅋㅋ 오 과연 실생활이 중요하구나 그랬는데 갑자기 밝혀지는!

안녕하세요,아시마님 처음 뵙겠습니다. 루체오페르 입니다. 마녀님 이벤트 타고 왔네요.^^ 처음엔 외국 살다 한국 들어오신건가 했는데 한국에서 외국가신 거군요. 인도네시아 인거죠? 저보다 덜한 경우도 속끓이는데 정말 고생하셨네요. 저도 잘 하셨다 생각합니다. 어딜 가나 들들 볶고 방방 뛰어야 못이겨서라도 일처리를 해주네요. 국가의 격이 그런데서 나오는듯 합니다.
마지막 반전이 있긴 해도, 2달만에 지금 정도 처리하신 것만해도 대단하시네요.
글들도 둘러보고, 뭣보다 따님2분께서 너무 귀여워서 즐찾추가해두고 종종 오겠습니다.^^

아시마 2010-07-02 19:37   좋아요 0 | URL
부모가 되면 자식 잘났다 소리가 제일 듣기 좋더군요. ^^ 감사합니다.

국가의 격이라는 거 실감이 나요. 이 나라에서는 문제가 생겨도 경찰을 불러서는 안된다는 말을 많이해요.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드는 돈보다 경찰에게 뜯기는 돈이 훨씬 많다구요. 공무원들의 월급은 한국이 그렇듯 최저임금에 가까운데 그들은 대부분 벤츠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도... ㅎㅎㅎ

외국 나오면 애국자 된다는데, 딱히 그런 맥락에서만이 아니라...
여기에서 보는 한국은 참 대단한 나라예요. 똑같이 1945년에 똑같이 일본에서 독립을 했는데, 한국이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동안,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정도의 사회적 수준을 이루어내는 동안 이 나라는 여전히 그 수준이거든요. 참 이상하죠?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중이예요. 요즘은.

아. 국민들이 참 정직하지 못해요. 돌려 말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전혀다 싶게 없는 특이한 성품의 사람들이예요. 웃기죠? 요즘은 이 나라가 발전을 못한게 이 탓인가 싶어요. 게으름을 피워놓고 나 아팠어, 라고 너무 쌩쌩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그걸 따지고 들면 너 참 이상하구나, 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사람들인지라... ㅎㅎㅎ

루체오페르 2010-07-02 23:23   좋아요 0 | URL
개개인의 마음이 모여 국민성이 되고 국격이 되는 것이니 아직 의식의 문제인가 봅니다. 우리도 의식을 바꿈으로써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우리보다 선진국인 나라들을 봐도 뉴스,영화를 볼때마다 이야,확실히 뭔가 다르구나 그런걸 느낄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못난 부분들을 그들이 볼때도 그런 생각 들겠죠? 부끄럽지 않도록 저부터 노력해야겠습니다.

꿈꾸는섬 2010-07-0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엄청 웃었어요.

아시마님 안녕하세요? 저도 처음뵈어요.^^ 인도네시아에 계신가봐요. 그래도 어느새 의사소통이 되는군요. 외국어로도 지랄이 가능하다니 대단하세요.^^

아시마 2010-07-02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궁즉통인거죠. 궁하면 통한다고, 화가 마친듯이 나니까 외국어로도 지랄이 가능하더라구요. ㅎㅎㅎㅎㅎㅎ

아, 꿈꾸는섬이라는 닉이 참 좋아요. 정현종 시인의 <섬>도 그렇고 그르니에의 <섬>도 그렇고...
ㅎㅎㅎ 글구 전, 꿈꾸는 섬님 처음 아니예요.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