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유산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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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떠 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어 이어 읽었다. 

박완서 선생님의 82년 발표작품(연재는 <한국문학>에서 80년 12월 부터 82년 3월까지, 단행본 출간이 82년) <오만과 몽상>이다. 집필시기는 무려 40년의 차이가 있는데 배경이 되는 시대는 거의 엇비슷하게 <오만과 몽상>이 약간 늦다. 이 책에서는 명확하게 1966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제시하지만 <오만과 몽상>은 명확한 시간적 배경을 제시하고 있지 않으나 (두 소년의 19살 고3 시절부터 32살 까지, 13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두 작품 모두에서 지하철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는 것으로 대략적인 시대 배경의 겹침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실 해동에게도 땅속으로 달리는 지하철의 존재는 머릿속으로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하필이면 원효로에서 청와대 앞까지 달리는 이 노선이 제일차 철거 대상이었다. ....... 대신 청량리역에서 서울역까지 땅 밑으로 다니는 지하철을 만든다고 했지만 진형이나 해동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이 머릿속으로 가늠되지 않았다. 

p. 150 

전철도 그가 없는 삼 년 동안에 생긴 거였다. 그가 군에 가기 전에 시내 교통은 지하철 공사 때문에 최악의 상태에 있었다.

『오만과 몽상』, 박완서, 세계사, 2006, p.103

오만과 몽상의 주인공 남상이가 군대를 제대한 나이가 25살이고, 서울시내에는 지하철이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66년 보다는 몇년 뒤이고, 그건 다시 말해 <오만과 몽상>의 두 주인공 남상이와 현이가 친일파의 후예요, 독립운동가의 후예라는 이유로 절교를 하게 된 19살 무렵이 아마도 1966년이었을 것이란 이야기도 되겠다. 


그러니까. 1966년, 19살이 된 독립지사의 손자 강남상이 친일파 귀족의 손자이자 절친한 친구 현이 "가장 아름다운 우정을 꿈꾸는 동안 녀석은 가장 악독한 배신을 벼르고"(『오만과 몽상』, 박완서, 세계사, 2006, p.21) 있다가 멱살을 잡고 절교를 선언할 때 28살의,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아버지를 둔 이해동은 을사5적중 일인인 윤덕영의 막내딸 윤성섭을 만난다. 


조상이라는 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나, 생각할 때가 있다. 부모를 선택해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누구의 자손이라는 것이 수치가 되어서도 영광이 되어서도 안되지 않나, 싶다가도 윤덕영이 친일행각을 하는 것으로 벌어들인 셀 수도 없는 돈으로 호의호식한 윤성섭이라면 아버지의 친일에 책임까지는 아니어도 수치를 당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싶다. 


해방 이후 역사 내내 우리 민족을 짓눌러 온 피할 수 없는 사실은, 친일파는 잘먹고 잘 살고 독립지사의 후예는 비참하게 못산다는 현실이다. 심윤경의 소설 <영원한 유산>에서는 윤덕영의 막내딸 윤성섭도 일정 수준 이상의 몰락을 경험했음을 우선 제시하고 있지만 박완서의 소설 <오만과 몽상>에서 일제시대 자작가였던 박현의 집안은, 그리고 그 집안의 사람은 몰락하지 않고 어마어마한 거부가 되어 있다. 박완서는 그야말로 박완서답게 그 모든 현실을 끝까지 야무지게 밀어부친다. 반성하지 않고 눙치지 않고 그들의 속물성과 반성없는 작태(친일파 후작인 할아버지가 친일의 결과로 받은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사진을 자랑스럽게 금테 액자에 넣어 서재에 진열하고 있었던 것)를 끝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같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주변의 반성은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고모의 입을 통해 "우리 집안이 보통 집안이 아닌데" 라는 말을 반복하게 해 친일파 일족들의 친일에 대한 반성 없음을 사정없이 드러낸다. 


박완서의 이런 야박스러울 정도의 밀어부침과 달리 심윤경은 이야기의 많은 부분들을 뭉개고 지나간다. 인물들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진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어 남상이 독립운동가의 증손임을 밝힌 박완서와는 달리 심윤경은 해동의 아버지 이성준이 실제로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갔는지 아닌지를 의도적으로 흐려놓는다. 파티장에서 윤성섭에서 시원하게 한방을 먹이는 같은 해평 윤문의 윤태식 외교관도, 그래서 그가 윤성섭과 어떤 관계인지 그 이후에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흐려버린다. 이런 의도적인 지움은 오히려 윤성섭의 야비한 성품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태동이 독립지사의 아들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윤성섭의 혈통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반성하지 못하는 그 비열함과 뻔뻔함에 있다. 독자들의 눈을 윤성섭의, 윤성섭으로 대표되는 친일파와 그 후예들의 놀라우리만큼 뻔뻔함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심윤경의 서술법은 박완서의 끝까지 밀어부치는 박력과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오히려, 중심을 강조하는 효과와 더불어 주제의식을 강조하게 된다. 심윤경은 작가후기에서 "벽수산장의 잊혀짐에는 금기나 처벌에 가까운 어떤 기운이 있었다. .... 이 소설은 그 유별난 잊혀짐에 대해 팔 년간 궁리한 결과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적이 남긴 유산, 적산,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적과 함께 말살해야 할 폐해인가, 남기고 지켜야할 공동의 자산인가."(이 부분을 쓰다 문득, 93년 김영삼 대통령이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을 차지하고 앉았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시원스레 날려버렸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도 많은 사람들이 남겨서 일제를 기억해야 한다고들 했었지. 건물을 통째로 이전을 하더라도.) 

이에 대해 40년 전 박완서 선생은 시원하게 일갈했다. "그러나 무엇을 잊지 않고 있다거나 알고 있다는 게 어떤 힘이 될 턱은 없었다."(『오만과 몽상』, 박완서, 세계사, 2006, p.182) 잊지 않고 있고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힘을 가질 수 없다. 잊지 않고 알고 있음에 이어지는 올바른 상벌이 따라올 때 기억은 힘을 가진다. 


일제 잔재에 대한 처리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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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 자폐인의 내면 세계에 관한 모든 것
템플 그랜딘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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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들에게 템플 그랜딘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전형적인 자폐인이면서 savant(이 책에서는 불어식 발음인 사방 이라고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서번트라는 영어식 발음을 쓴다.)다. 자폐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동물학 박사를 받고, 미국 가축 시설의 3분의 1이 그녀의 설계로 이루어 졌으며, 현재 콜로라도 주립대 동물학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자폐인계의 헬렌 켈러라고 이해하면 간단하려나. 


우리는 그녀의 저작물 (어느 자폐인 이야기, 이 책)과 그녀의 강연(그녀는 미국과 전 세계를 순회하며 자폐증 관련 강의를 한다. 테드에도 그녀의 강연이 올라와 있다. http://www.ted.com/talks/temple_grandin_the_world_needs_all_kinds_of_minds?language=ko)을 통해 자폐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힌다. 나에게 자폐는 직관적인 여타 장애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도무지 이해할 길 없는 무언가임에도 진심으로 이해해 보고 싶은 무언가랄까. 전혀 직관적이지 않은 장애이고 미지의 장애이면서 동시에 천재성과 닿아있는 장애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듯하다. 


자폐는 일반적으로 감각의 혼란과 함께 오기 때문에, 그들이 보고 듣는 세상은 일반인이 보고 듣는 세상과는 다르다. 템플 그랜딘에 따르면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역시 아동기와 청년기에 자폐증상을 보이는데, 정신병원에 들어간 뒤 그린 반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 이라는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소용돌이치는 하늘은 일부 자폐인이 겪는 감각 왜곡과 비슷하다(p. 231-232)고 한다. 그러니까 그 그림은 고흐에게 있어서는 하늘의 실사판이었던 셈이다. 심한 감각 처리 장애를 겪는 자폐인한테는 사물의 가장자리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고, 감각자극이 서로 뒤섞인다. 이것은 환각이 아니라 감각의 왜곡이다. 


감각이라는 것은 우리가 외부를 받아들이는 창문이다. 자폐인들은 이 입구에서부터 일반인들과 다른 것을 보고 듣는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받아들인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이다. 


소설가 박경리는 73년, 언어에 대한 매혹적인 통찰을 남겼다. 


칠팔 년 전에 나는 어느 책에다 언어가 지닌 숙명적인 마성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진실이 머문 강물 저켠을 향해 한치도 헤어나갈 수 없는 허수아비의 언어, 그럼에도 언어에 사로잡혀 빠져날 수 없는 것은 그것만이 강을 건널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박경리, '빙벽에 걸린 자일처럼', <거리의 악사>, 민음사, 1977, p.10


이 글은 나중에 토지 1부의 서문으로 쓰인다. 


언어란 결코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자세히 설명하려 하면 할수록,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언어는 진실과 점점 멀어지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언어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진실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언어를 사용해 생각을 하고 그 사고를 확장해 나간다. 우리가 흔히 '사과' 라고 했을 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사과 하나의 구체물이 아니라, 우리가 사과라는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언어화된 정보를 조합해 형상화 한 일반물이다. 인간에게 생각의 도구는 언어다. 일반적인 개념을 먼저 떠올린 다음 그 것을 바탕으로 시각적으로 구체적인 영상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자폐인인 템플 그랜딘은 자신의 생각의 도구가 그림이라고 잘라서 말한다. 


나는 무언가를 발명할 때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선명하고 구체적인 그림으로 사고하는 데 반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이미지를 조합해 사고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첨탑' 이라는 단어를 읽거나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적인 교회를 떠올리지 구체적인 교회와 첨탑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사고패턴이 일반 개념에서 구체적 실례로 이동하는 것이다. 나는 언어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내가 표현하려는 바를 이해하지 못해 낙담한 적이 많았다. 나한테는 너무나 뚜렷하고 명료한 그림을 상대방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폐인 모두가 시각적 사고를 하는 것은 아니고, 누구나 다 이런 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시각화 기술에 있어서 제로에 가까운 사람부터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그림을 보는 사람, 반쯤 구체적인 그림을 보는 사람, 나처럼 아주 구체적인 그림을 보는 사람까지 연속체를 이룬다. 


p. 28-29


템플 그랜딘 식의 분류법에 따르면 나는 시각화 기술에 있어서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언어로 기억한다. 내가 길을 찾는 방법은 보통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갔던 길의 형태를 기억하거나 풍경을 기억하거나 주변 건물의 형태를 기억하거나 하는 것이 아닌 오직, 길 바닥에 씌여진 글자(기호 아닌 글자. 오직 글자), 각종 도로안내판, 건물들의 간판을 통해서만 길을 기억한다는 것을 몇년 전에 깨달았다. 간판(정확히는 그 간판의 글자)을 보고 나서야 아, 나 이 길 어제도 왔었구나. 수준이랄까. 그렇게 언어 정보로 변환되지 못한 정보들은 내 뇌에 기록되지 못한다. 자카르타에 거의 5년을 살면서 극도로 한정된 곳들만 돌아다녔음에도 그 길들이 나에게 매번 새로운 길이었던 것은 그곳의 간판들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로 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아. 나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바보라는 설명을 넘어서는 장애 수준이다. 


하여, 그녀의 사고법은 흥미를 넘어 매혹적이었다. 아. 그림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있다니. 라는 놀라움을 넘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사고를 하며 사는가. 하는 통찰까지 이끌어 낸다. 나는 비 언어화 된 정보를 황당할 정도로 기억해내지 못한다. 일례로, 나는 수천 수만번 들은 클래식 곡들과 그 제목을 전혀 연결해 내지 못한다. 나에게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라는 제목과 실제의 선율은 늘 누가 알려줘서야, 아 그거지. 수준이었다. 민망하다. 그러나 그 곡이 신화의 노래에 샘플링 되면서 노래 가사와 함께 선율이 머릿속에 입력되고, 신화와 바흐와 G 선상의 아리아와 그 선율이 함께 인지되기 시작했다. 음악도 가사가 있어야만 입력된다는 이 놀라운 바보스러움이라니. 사고를 거의 100% 언어에 의지하다보니 반사적으로 언어화 된 정보에 대한 기억력은 음, 내가 생각해도 남들보다 좀 낫다. 음. 하. 하.


템플 그랜딘은 대학의 제자에게서, 언어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거라는 말을 듣는다. 그것은 단순한 연상작용일 뿐이라고. 글쎄. 니놈은 그 단순한 연상작용만 하는 사람한테 지금 언어를 사용하여 배우고 있는 중이거든, 멍충아. 라고 중얼거리며 이 책을 읽었다. 


하나의 길이 막히면 또 다른 길이 열린다. 라는 유명한 경구가 여기에 와서는 현실로 나타난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 <눈먼자들의 도시>에는 바이러스(?)로 인하여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 사이에 섞인 진짜 맹인이 나온다. 그는 극도로 예민해진 촉감을 사용하여 신규 눈먼 자들 사이에서 눈 뜬 자 역할을 한다. 시각장애인들은 손의 감각이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예민하다고 한다. 우리가 점자를 읽지 못하는 것은 점자를 읽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손의 감각이 무뎌서 그 점자들을 읽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니까.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템플 그랜딘이 언어로 사고하는 방법이 막혀 버렸기 때문에 그림으로 사고하게 된 것인지, 그림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언어로 사고하는 방법이 막혀버렸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신기하고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나는 자폐라는 장애가 참 놀라운 장애라고 생각한다. 자폐는 반 고흐를 만들어 내고 자폐는 아인슈타인을 만들어 내고, 자폐는 빌 게이츠를 만들어 내고 자폐는 템플 그랜딘을 만들어 낸다. 물론, 자폐 장애 그 자체는 본인에게도 그 주변에게도 몹시 괴로운 장애이겠으나. 템플 그랜딘은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자신이 자폐인이 아니게 된다고 해도 그것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말을 한다. 자폐는 자신을 구성하는 중요한 무엇인가임과 동시에 지금의 템플 그랜딘을 만들어 낸 바탕이니까. 


마지막으로, 일-러 동시통역사이자 유쾌한 문화학자인 요네하라 마리의 언어와 사고에 관한 통찰과 템플 그랜딘의 통찰로 이 글을 마친다. 


갑자기 딱딱한 이야기를 꺼내서 죄송하지만, 여기서 통번역론에서 굉장한 논쟁거리가 된 '말이 먼저냐 개념이 먼저냐' 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 논쟁은 언어학, 철학, 커뮤니케이션론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러브호텔'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의식에는 '러브호텔'이라는 낱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러브호텔'이라는 낱말이 존재하지 않는 의식에는 '러브호텔'이라는 개념도 없다.

한편, 마음속에 생기는 감정이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 답답할 때가 있는 것처럼, 확실히 말에 앞서 어떤 액체 혹은 기체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경험할 때가 있다. 말에 앞선 그것이란 이미지일까.

사실 말이 아니라 이미지로 생각을 표현하는 데 뛰어난 재주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만화가나 영화감독, 텔레비젼 영상 제작자들이 그렇다. 뛰어난 영상 제작자의 손을 거치면,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보지 않은 영상까지 그려질 때가 있다. 그러나 영상이 말만큼 추상화가 가능할까. 

가령, 우메보시라는 단어는 실로 여러 가지 이미지를 집약하고 있다. 잘 익어 알이 큰 옅은 밤색 매실에서부터 잘고 설익어 딱딱한 초록색 매실, 거기에 차조기가 듬뿍 들어간 붉은색 매실까지 하면 모든 종류의 우메보시를 망라하는 데다가 쭈글쭈글한 노파마저 연상하게 한다. 하나의 영상이 한순간에 이런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


요네하라 마리, 마녀의 한 다스, 마음산책, 2007, p.56-57



나는 대학에 간 다음에야 완전히 언어적으로만 사고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것은 과학 학술지에 실린 '선사시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게 된 과정'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때였다. 인간이 도구를 발명하기 전에 언어가 먼저 발달해야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담긴 한 저명한 과학자의 글이었는데, 나한테는 정말 터무니 없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글을 읽고, 내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하고 확연히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들었다. 

p.28


주기도문도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 구체적인 시각적 이미지로 쪼개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권세와 영광'이라는 말은 반원 모양의 무지개와 전신주(영어로 power는 권력, 권세도 되고 전력도 된다-옮긴이)그림으로 표상했다.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이런 시각적 이미지가 오늘날까지도 주기도문을 들을 때마다 떠오른다.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은 어릴 때도 아무런 의미를 떠올릴 수가 없었고, 지금도 그 의미가 애매하다. '뜻'이라는 개념은 시각화하기 힘들다. 그 단어를 생각하면 신이 번개를 던지는 장면이 떠오른다. 다른 자폐인 한 사람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thou art in heaven)"라는 말을 들으면 하느님이 구름 위에서 이젤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떠오른다고 한다.[art가 고어로 be 동사이면서 '미술'이라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옮긴이] '죄(trespass)'는 검정색과 노란색으로 된 '출입 금지'라는 표지판이 떠오른다. (trespass는 주기도문에서는 죄를 의미하지만 'No Trespassing'이라고 하면 출입금지라는 뜻이 된다-옮긴이) 기도를 마칠 때 하는 "아멘" 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미스터리다. 맨 끝에 남자[Amen이 a man(한 남자)이라고 들리기 때문이다.-옮긴이]가 나오다니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p. 36-37


언어를 가지고 놀고, 하나의 개념을 이쪽 언어에서 저쪽 언어로 옮기는 것이 업인 통번역사 요네하라 마리와, 언어를 사용하지 않은 이미지의 사고를 하는 템플 그랜딘의 차이는 실로 놀랍다. 그리고 내가 이 두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 내린 건, 기가막히게 멋진 우연이었다. 








딴소리 하나.


일베의 단원고 희생자 어묵 비하 사건 범인에게 징역 4월의 판결이 내렸다. 항고를 하지 않는 한 20대와 30대의 두 남자는 실형을 살아야 한다. (검사의 선고는 징역 10월이었다.) 그 중 20대 남자는 자폐증으로 인하여 심신이 미약한 상태임을 정상 참작 하였다고 한다. (관련 뉴스는 여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2&aid=0002842535) 도대체 여기에 자폐와 관련된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자폐아 또는 자폐인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자폐인한테는 거짓말하는 것도 무척 힘들다. 거짓말을 하는 데는 복잡한 감정이 연관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선의의 거짓말이어도 순간적으로 극도로 긴장한다. 아주 사소한 악의 없는 거짓말을 하려고 할 때에도 수차례 머릿속에서 예행 연습을 해 본다. ...... 가능한 모든 응답을 충분히 연습해 보지 않고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면서 즉흥적으로 거짓말을 하기란 정말로 어렵다. 

p. 168-169 7장 타인과 상호작용하기


물론 이 책의 저자 템플 그랜딘은 시각화 기술과 논리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추측했고 거짓의 개념도 잘 이해했다. 왜냐면 그녀는 서번트 자폐인이니까. 


다시 일베의 자칭 자폐인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러니까 그 20대는 자신이 그와 같은 짓을 저지르기 위해서 수차례 머릿속에서 예행연습을 해 봤다는 이야기다. 즉, 더 나쁜놈이다. 징역 4월 정도로는 도움이 안 된다. 수차례 머릿속으로 예행연습을 해 보고 또 해보고 또 해보고 나서 저지른 짓이니까. 그가 자폐라는 주장을 믿어준다면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단원고 희생자들이 진짜로 어묵이라고 믿었거나. 그럼 그놈은 격리되어야 하는 놈이고. 어느쪽의 판단을 따라가든 간에, 그 20대 놈은 자폐라고 자처하지 않은 30대 놈보다 백만 스물 두배쯤 더 나쁜 놈... 이라기 보다는 더 많이 격리되어야 마땅한 놈이다. 그같이 나쁜 짓을 머릿속으로 예행연습을 해 보고 또 해 보고 또 해보는 놈도 나쁜 놈, 단원고 희생자를 어묵이라 믿었더라면 나쁜 놈이라기 보다는 치료와 격리를 요하는 중증 환자. 자 어느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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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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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너는 좌파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좌파인가?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한총련이 마지막 불꽃을 장렬하게도 피워올리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로, 한총련은 96년 연대사태를 마지막으로 하향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한총련이 잘못해서 하향길을 걸었다기보다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내가 대학을 들어갈 때는 한국 경제 역시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고, 대학 3학년 가을에 IMF가 터지면서 대학생들의 패러다임자체가 바뀌었으니까. 


하여튼, 그 한총련이 마지막 불꽃을 피워올리던 그 시점에, 나는 그 흔해빠진 가투 한번 나가지 않았던 새침때기 여대생이었다. 새침하고 해맑은 얼굴로 그들과 나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부끄럽지만 1997년 대선때 나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이회창에게 표를 던졌고, 2002년 대선때는 어령샌님의 조언에 따라 또! 이회창에게 표를 던졌다. 슬프고도 부끄러운 과거다. 그때부터였나보다. 내가 표를 준 후보는 단 한번도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징크스 같은 게 생긴 게. 젠장. 내 표는 단 한번도 대통령을 만들지 못했다. (이 징크스 때문에 2012년 대선 투표때 얼마나 망설였는지는 어리석지만 나에게는 진지한 고민이었다.) 그런 나를 정치로 눈 돌리게 한 것이 노짱 탄핵사건이었다. 그때는 주로 교보문고 앞에서 촛불 집회를 했다. 나의 첫번째 가투(?)는 교보문고 앞 촛불집회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빠'질 역사는 유구하다. 노빠를 거쳐 유빠로 이어지고 곧 문빠에 안(철수)빠에 안(희정)빠 까지 이어졌다. 나는 정절강한 여인이므로 한번 빠질을 시작한 상대는 그 사랑을 거두지 않는바, 내 사랑의 목록은 점점 길어지고 있으되 부끄럽지 않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노짱의 탄핵사건으로 노짱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역설이다. 


이놈의 책 덕후는 빠질도 책으로 시작한다. 


그때부터 우리집 책장에는 정치 경제 관련 항목이 생겨났다. 유시민의 책들을 콜렉팅하기 시작했고, 노무현 문재인의 책들에 각종 좌파(?) 정치 경제인의 책들이 줄을 이어 들어왔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을 읽었다. 오바마에 노암 촘스키에 수전 손택과 하워드 진이 끼어들었다. 김어준과 이상호, 주진우의 책들도 어깨를 나란히하며 꽂혔다. 그 책들은 서재가 아닌 거실의 책장에 포진했고, 가장 당황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남편의 친구들이었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 날고 기는 대학을 나와 이런 저런 대기업에 다니는 그것들은, 그 책들의 목록이 나의 것이 아닌 남편의 것으로 오해했고 당황해 했다. (뭐, 굳이 따지자면 충무공이 내 책장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책을 뽑아 읽는 것이 그 섹션이긴 하다.) 남편은 평소 정치색이 매우 희박하다. 굳이 따지면 "쏘세지보단 햄이 낫다. 둘다 난 안 먹지만." 수준이랄까.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이 되어가고부터 다들 주거지 고민을 시작했다.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이사의 시기라든가, 이사할 지역이라든가, 사교육의 문제라든가 아이들이 다니는 영어 어학원 이야기, 수학은 과외가 나을까 학원이 나을까. 결국 결론은 강남으로 이어졌다. 다들 조심스럽게 강남 진입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었고, 그건 충무공과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의 친구가 강하게 태클을 걸었다. 좌파가 왜 강남을 가려 하느냐고. 


아니. 좌파는 강남을 가면 안되나? 왜 좌파는 가난해야 하는데? 라는 질문이 읽고 덮어두었던 이 책을 다시 펼쳐들게 만들었던 시작점이었다. 


좌파가 되기 위해서 가난해져야 한다... 라고 말한다면 나는 좌파질을 지속할 자신이 없다. 나는 내 스스로가 좌파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노무현을 좋아하고 유시민을 좋아하고 문재인을 지지하고 박원순과 안희정을 지지하는 것이 곧 좌파라면, 그래. 나는 좌파가 맞다 치자. 그렇다고 그들을 지지하기 위해 내가 강남을 가서는 안되고, 내 아이들의 사교육을 해서는 안되고, 아이들이 좋은 학벌을 가지게 하고 싶어하지 않아야 한다면 나의 좌파질은 지속될 수가 없다. 나는 좌파이기 이전에 뼛속까지 속물이니까. 


말을 뒤집어보자. 내가 노무현과 문재인과 유시민 등등으로 대변되는 그 집단을 지지 하지 않는다해도 적어도 나는 박근혜나 이명박이 속해있는 그 집단을 지지하지는 못하겠다. 그것은 "대학나온 배운 녀자" 로서의 나의 자존심 문제다. 남편의 친구가 자신은 박정희와 박근혜를 인정하고 지지한다는 말에 내 입에서 튀어나온 첫마디는 '아니 대학 나온 사람이 왜 그래요?' 였고, 그 말은 그대로 그 사람을 자극했다. 10년이 넘는 친분관계 안에서 처음으로 피튀기는 정치 설전이 오고갔고, 나는 어영부영 "아 몰라몰라 난 노빠 유빠 문빠아아아아아 할 테니 그대는 박근혜 인정하시구랴. 끝." 하고 논쟁을 끝내버렸다. 화장실에서 뒤 안닦고 나온 기분이긴 했으나 어쩔수가 없었다. 그와 나는 평소, "흥남부두 남매" 라며 서로를 지칭하고 놀았던 사이였으니(전생에 남매였다가 6.25때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사이라고~ 남편과 그의 아내는 우릴 흥남부두 남매 또는 국제시장 남매라고 놀렸다. 게을러 터지고 이기적인-_-;;; 면이 남매라고 하지 않을수 없을만큼 꼭 닮았다고. 욕도 혼자 먹는 거 보다는 둘이 먹는게 좀 낫더라.) 이런 논쟁으로 사이가 싸해 지느니 내가 아무 생각없는 아줌마 빠순이 되는 편을 택한거였다. 


하여튼. 울 나라에서 젤로 좋다는 대학을 나온 그 사람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업적으로 잘먹고 잘살고 있으면서 그들을 욕하는 너 그럼 북한으로 가야지" 라니. 아니. 님하. 아니. 님하. 너 그 대학 나와서 그딴 말을 하면 안되지, 님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오빠가 흥남부두 시절엔 안 그랬는데 환생해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입매.......


똥누고 뒤 안닦은 기분으로 그 논쟁에서 도망쳐 온 나는 책을 펼쳐들며 씩씩거렸다. 그래 나는 강남 좌파다 어쩔테냐. 강남 살면 좌파하면 안 되냐. 강남 가고 싶어하면서 좌파하면 안 되냐. 내가 정치를 할 것도 아닌데 좌파 코스프레라도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게 낫지 않나.


이것이 나의 변명이다. 지속 가능한 좌파질을 하기 위하여 나는 나의 속물성과 타협한다. 그게 나쁜가? 그건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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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느리게 매혹되다
최예선 지음 / 모요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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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이있다. 일본에서 주로 쓰는 말인데, 한국어로 말을 하자면 일생에 단 한번의 만남 쯤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정확히는 일본의 다도에서, 어떤 만남이든 일생의 단 한번 뿐인 기회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란다. 일본인들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이 말을 주로 쓴다. 


나에게 차와의 일기일회는 1999년 12월, 아니면 2000년 1월쯤이다. 그 겨울의 첫폭설(첫눈이 아니다)이 내린 날이었다. 내 기억에 서울에 그런식의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 건 그 겨울부터였다. 눈이 드문 고장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그때까지 눈이란 드물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야말로 백설이 난분분(亂紛紛) 하던 그날 오후, 나는 선생님댁의 거실에 있었다. 넓고 잘 가꾸어진 정원에 고즈넉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선생님과 나는 재스민차를 마셨다. 기가막힌 맛이었다. 그날의 드문드문했던 대화도 기억나지만 더 명확하게 기억나는 건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재스민의 향기와 입술에 와 닿던 찻물의 온기다. 눈 내리는 날, 창밖으로 그 풍경을 바라보며 따스하고 안락한 거실에서 마시는 차라니. 지금 생각해도 꿈결같다. 일기일회. 그 날 그 시간, 그 장소, 그리고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맛. 그 뒤 내가 마시는 모든 차는 그날의 오마쥬다.


거기서 시작한 나의 차 사랑은 처음엔 녹차였다. 5년간의 해외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니 없어져 버린 인사동 쌍계제다가 나의 단골 차가게였다. 그 겨울 이후 거기서 매년 햇차를 샀다. 곡우 이전에 따는 우전과 우전 다음에 나오는 작설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차였다. 쌍계차(화개차)는 같은 지리산에서 나는 보성차와는 맛이 달랐다. 좀 더 섬세한 맛이랄까. 


한국의 녹차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허브차로 넘어갔다. 온갖 허브를 두루 섭렵한 뒤 도착한 곳에 홍차가 있었다.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얼그레이, 다즐링.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홍차는 다즐링이다. 가향홍차중에는 유일하게 얼그레이만 좋아한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는 남들이 술을 찾을 때 차를 찾았고, 남들이 맛있는 술을 찾아 이것저것 품목을 바꿔가며 마실 때 맛있는 차를 찾아 이것저것 품목을 바꿔가며 마셨다. 한때 나의 혈관에는 피대신 녹차와 커피, 홍차가 흘렀다.


당연히(나에게는 이게 당연한 일) 차와 커피에 대한 책도 섭렵했다. 괜찮은 책도 있고 그저그런 책도 있었다. 사실은, 그저그런 시시한 책이 더 많았다. 이 책도 차에 관련된 책들을 사 들일 때 함께 쓸려들어 온 책이었다. 시시한 몇몇 책들을 읽다가 이 책도 그저그렇겠거니 젖혀놓은 책인데, 아이허브 홍차 관련 검색을 하다 걸려든 한 블로그의 글이 인연이 되어 꺼내 읽었다. 그런데 호오- 이거 꽤 괜찮다. 


작가 최예선은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잡지사 에디터로 일을 했다. 즉, 글 쓰기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내용과 정보의 정확성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전문가의 책들은 얼마나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던가. 그 지루한 책들 속에서 이 책은 반짝반짝 빛이난다. 차에 대한 정보와 역사적인 사실을 제대로 썩 잘 버무려서 재미있는 글을 썼다.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작가는 차와 예술을 잘 접목시켜 그저 그런 찻집 탐방기와는 전혀 다른 글이 나온다. 


작가의 차와의 일기일회는 어느해 여름 고창 선운사에서 였다. 무더운 한낮 선운사 문턱에 다다른 작가는 대웅전 옆의 자그마한 다실에서 차를 마신다. 그 무더운 날에 뜨거운 차를.


이 무더운 날에 뜨거운 차가 웬 말이냐 싶었지만, 뜨거운 물이 차를 만들어내는 2,3분의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짜증스런 마음도 서서히 풀어졌다.

.....

차를 마신 후에는 다음에 마실 사람을 위해 정갈하게 차 도구들을 헹구고 정돈해두었다. 뒷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조심조심 걸어 나오니 뜨거운 햇살이 어느덧 살며시 누그러져 있었다. 산을 내려가는 발길에 힘이 생겼다. 

차가 주는 치유의 힘은 이런 것이리라. 사람을 좀 더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 세상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 그리하여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것.

p.30


아름다운 책이었다. 읽는 내내 그녀가 소개하는 홍차들을 맛보고 싶어졌다. 비록, 가향홍차는 별로고, 그녀가 무척 좋아한다는 시나몬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향신료중 하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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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 아무것도 못 버리는 여자의 365일 1일 1폐 프로젝트
선현경 지음 / 예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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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무슨 이유로 코스트코에 가는 지(또는 가지 않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코스트코가 나의 선택을 대행해주기 때문에 간다. 코스트코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그다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화장실용 두루말이 티슈는 딱 두 종류, 탁상용 각티슈는 딱 한 종류, 키친 타올도 딱 두 종류 있다. 필요하면 고르는 과정은 생략한 채 있는 것들 중 하나를 그냥 집어들고 오면 된다. 고민의 과정이 생략되는 쇼핑은 심심한듯 하지만 코스트코는 그 외의 것으로 그 심심함을 채워준다. 일반마트에는 잘 없는 물건들, 게다가 갈 때마다 구성품목이 조금씩 바뀐다. 지난 크리스마스 전엔 있었던 커트러리 세트가 지금은 없는 식이다. 그러니까 매번, 코스트코가 이번엔 무슨 새로운 물건을 골라가지고 왔나, 보는 재미가 또 쏠쏠하다. 마치, 친구의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는 재미랄까.


내가 물건 고르는 걸 싫어하느냐고? 음, 싫어한다고도 좋아한다고도 말을 할 수 있겠다. 물건에 정을 잘 붙이는 나는,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 까지가 힘들다. 올 여름 귀국을 해서, 각종 살림살이를 새로이 구비해야 할 것이 많았는데, 욕실의 비누갑이며 양치컵, 칫솔 홀더 등의 세트를 구매하는데 장장 3주가 걸렸고(안 가 본 온라인 쇼핑몰이 없다.), 집안에 놓아두고 쓸 쓰레기통을 고르는데는 닷새가 걸렸다. 이쯤되면 결정장애다. 그냥 목적에 맞는 적당한 물건을 사서 들여놓는 것을 잘하지를 못한다. 만약 그냥 샀다면 볼 때마다 고민을 한다. 내가 이거 잘 산 거 맞나? 더 좋은 물건이 있지 않았을까? 정이 붙지 않는 물건은 볼 때마다 미워지고, 미움에도 멀쩡한 물건을 버리지는 못하여 볼 때마다 괴롭다. (내가 이런 괴로움을 주변에 호소했더니 누구도 동조해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도랏멘?'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을 뿐. ㅠ.ㅠ)


그래서 웬만하면 집안에 물건을 들이지 않는다. 물건에 집착하는 성격이어서. 그럼 우리집이 콘도 수준으로 깨끗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는 않다. 물건은 굳이 내가 들여놓지 않아도 얼마든지 쌓인다. 5년간의 해외생활동안 언니는 우리에게 줄 물건을 집안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귀국과 동시에 대방출을 해 주었다. 대단히 감사하지만, 감사는 감사고 이렇게 난감할데가. 내 아이와 열살 가까이 차이나는 조카들의 물건을 내 아이를 생각해 소중히 보관해 준 그 마음은 감사하고, 모든 물건이 다 멀쩡하다. 특히 조카들이 쓰던 가방들만 열개가 넘게 왔는데, 이쯤되면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내내 가방을 사지 않아도 될 정도다. 그런데...... 내 마음에 딱 차게 드는 가방이 하나도 없다. 이런 사태를 어찌하리요. 이쯤되면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멀쩡한 가방이 열개가 넘는데 또 가방을 사야하나? 사자니 멀쩡한 가방들을 쳐다보게되어 민망하고 안사자니 마음이 찝찝하고 ... 작은 놈 입학을 핑계로 하나 사? 큰놈도 입학때 가방 사 줬는데. 그래도 그땐 정말 가방이 없었잖아? 이렇게 멀쩡한 것들을 두고 또 사?


이 고민을 미친듯이 하고 있을 때 마침 이 책에 눈에 띄었다. 


화가이자 동화작가 선현경은 만화가이자 에세이스트 이우일의 아내다. 이우일은 <콜렉터>를 쓴 사람이다. -한 웃기는 만화가의 즐거운 잉여수집생활-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책이다. 이 책을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에 읽었는데(2014. 7. 30) 읽는 내내 야~ 이 사람 와이프는 정말 괴롭겠다 중얼거렸더니 웬걸, <콜렉터>가 출간된지 2년 반 정도 지나자 그의 와이프가 책을 냈다. 제목하여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다. 


이우일의 수집품목은 다양하다. 똑딱이 카메라에서부터 홍보용 엽서, 책 띠지(아놔, 이걸 왜?), 각종 스티커(9살 내 딸의 취미다), 옷에 붙어있던 태그(헐...) 낙서된 포스트잇(이거야 화가니까 낙서도 예술이니 모을만 하겠다.), 심지어 도끼까지 모으고 있단다. LP, CD, DVD, 비디오 테이프, 책들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이쯤되면 집이 집이 아니라 고물상 처럼 보일게다. 그런 이우일의 말에 따르면, 아내 선현경도 만만치 않게 레고와 플라스틱 반지를 좋아했다. 


이 두 사람이 부부로 만나 살아가니 참 볼만 했던 모양인지 작가의 친구가 '너희 집 식구들이 꼭 봐야 한다면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추천'한다. 그 다큐멘터리가 "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들, 호더" 였단다. 작가는 그 다큐멘터리에 충격을 받아 6년동안 살아온 집안의 물건을 적어도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내다버리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 1년간의 기록이 이 책이다. 


악세사리며 옷이며 양말에 팬티를 줄기차게 버리는 내내 작가도 끊임없이 다짐한다. 책은 버리지 않는다고. 아니, 다짐할 것도 없이 책을 버릴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비록 그 책들이 두겹으로 꽂혀있어, 딸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싶어하자 집안 어딘가에 분명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새로 사 주기는 하지만. 난 원래 책 말고는 소유의 욕심이 딱히 있지 않아서 버릴 것도 별로 없다............. 라고 써 놓고 반성하는 중이다. 지금 집에는 버릴 게 없는 게 맞다. 지난 여름 근 5년간의 자카르타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는 길에 주변에 나눠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나누어 주고 버릴 것은 거의 다 버리고 왔으니. 입지도 않는 옷이며 쓰지도 않는 악세사리를 어쩌자고 그렇게 끼고 살았던 것일까. 게다가 책은...... 끝내 자카르타에서 정리를 하지 못하고 이고 지고 온 애들의 그림책이 얼마나 많은지. <달님안녕>이며 <사과가 쿵> 이며 그 몇 권의 책은 펼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남을 주지 못한다고 버티다 버티다 눈 질끈 감고 다른 책들과 함께 이웃 아이에게 넘겼다. 그야말로 눈물과 함께. 우리 아이들이 정말 너무너무 잘 본 책이야 제발 아껴줘~ 온갖 부연 설명을 다 해가며. 


그래서 안다, 이 작가가 물건을 왜 버리지 못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야 한다는 마음도 이해하고 버리다보면 버리는 일에도 무언가 익숙해지면서 버리는 일의 상쾌함도 이해한다. 물건에 정을 붙이는 성격이라는 말이 반가웠다. 그래, 나같은 사람이 그렇게 드문 것만은 아니라니까.


그렇게 해외 이사를 하면서 반 강제로 버리고 비움을 당하고 났더니 버리고 비우는 일의 즐거움도 깨닫게 된다. 1일1폐를 일년간 해 본 작가도, 이제는 버리고 비우는 일들에 좀 더 익숙해졌기를, 더 나아가, 그분의 남편도 좀 ㅎㅎㅎㅎㅎㅎ


요즘은 종종, 지구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예전에는 무심코 하라니까 했던 분리수거라면, 요즘은 지구 환경에 대한 생각으로 아주 철저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식으로. 그리고 내가 가진 멀쩡하지만 쓰지 않는 물건들을 자꾸자꾸 주변에 나눠주려 애쓰는 중이다. 가장 최근에 나누어 준 건 아이폰용 이어폰. 그리고 멀쩡하게 서랍속에 잠들어 있는 아이폰 4 흰색을 깨워서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야 할 텐데, 차마 나눠주지를 못하고 있다. 사실 지구를 생각한다면 서랍속 아이폰 4를 정리할 게 아니라, 멀쩡한 아이폰 5를 6+로 갈아타는 일부터 안해야 할 텐데 말이다. 나란 인간은 어째 이모양인지. 


어쨌든. 예전엔 무언가를 아낀다는 게 나 개인적인 차원의 알뜰함 정도로 이해되었다면 요즘은 좀 더 대승적 차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원을 아끼고 지구를 아끼고. 재미있는 건, 이렇게 무거운(?) 생각을 하면할 수록 삶은 점점 가볍고 단순해져 간다는 거다. 나도 아직 이렇게까지 말할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하여간, <콜렉터>라는 책까지 써 내며 온갖 잡동사니 수집을 하고 있는 남자와 한 집에 사는 여자가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라는 책을 들고 오다니 이 또한 재미있다. 


두권을 이어서 읽어보면 더 재미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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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01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재밌게 읽었어요!!! 아시마님 작년에 돌아오셨구나!! 작년엔 저도 정신없이 살았던지라 알라딘에 통 오지 못했어요~~~~^^;; 반갑네요~~~. 친구 신청도 고맙고요~~^^ 근데 저와 많이 비슷하세요!! 읽으면서 오잉?? 자꾸 이랬다니까요!!ㅎㅎㅎㅎㅎ 저도 이우일의 콜렉터 재밌었는데 사실 전 아내되는 선 현경씨가 더 좋아요. 그림도 그렇고(비밀)ㅎㅎㅎ 이 책 읽고 싶어요. 저도 하나씩 버리고 살아야겠다는 결심. (이러면서 하나 버리고 하나 사오게 될까봐 두렵긴 하;;;)

아시마 2015-02-05 16:19   좋아요 0 | URL
전 이우일이 더 좋아요. ㅎㅎㅎ 선현경은 좋은 책을 많이 쓰고, 제가 좋아하는 시인이자 수필가 황인숙 선생님하고도 친하지만요.

한국와서 제일 좋은 건 내가 보고 싶은 책을 그날 주문해 그날 받아볼 수 있다는 거요.
정말 최고예요. ㅎㅎㅎ

cyan 2015-02-0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들어 조금씩 정리하고 버려야지...를 다짐하면서도 알라딘 장바구니를 그득 채우는 저를 생각하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루 하나 버리기를 위해 이 책을 사야할까요? ㅋㅋㅋ 이런 아이러니가 일요일 아침을 더욱 여유롭게 만들어주네요.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아시마 2015-02-05 16:19   좋아요 0 | URL
인생의 아이러니죠. 버리기 위해 버리기에 관한 책을 산다는 건.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blanca 2015-02-01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아시마님 찌찌뿡. 넘 신기해요. 나 지금 이 책 읽고 있는데. 아시마님이랑 저는 겹치는 부분이 넘 많아서. 깜짝 깜짝 놀라요. 이우일 씨는 컬렉터라는 책을 썼군요. 아, 잼있네요. 이건 마치 차승원이랑 유해진이 잘 맞는 것과 비슷한 걸까요 ㅋㅋ

아시마 2015-02-05 16:22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차승원을 무지 좋아하는지라 ㅎㅎㅎㅎ 유해진이랑 같이 있으면 그 잘생김이 더욱 돋보인다는. ㅋ 유해진도 좋아하는 배우지만 으하하하, 난 인물 좋은 남자가 좋드라~

저도 가끔 블랑카님과 저의 관심사가 비슷해서 놀라요. ㅎㅎㅎㅎㅎㅎ 직접 만나보고 싶을 때가 있죠. 언제 한번 뵈요. ㅎㅎㅎ 나 혼자 죽을 순 없다 심리로 둘째 권한다고 그랬는데, 어때요? 블랑카님도 주변 외동 엄마들에게 나 혼자 죽을 순 없다, 심리가 되시나요? ㅎㅎㅎㅎㅎㅎㅎ

조선인 2015-02-0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우일, 선현경 부부 책은 기꺼이 읽는 편인데, 이 책도 보관함에 담아야겠어요.

아시마 2015-02-05 16:23   좋아요 0 | URL
음, 부부가 작가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서로서로 인기도 경쟁도 할까요? 판매부수 경쟁도 하고?

우리 부부는 꽤 닮았는데, 또 참 많이 달라서, 관심사나 취향이 비슷한 부부는 어떤기분일까 종종 궁금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