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한 어글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콘스턴스 브리스코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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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그 숱한 용서와 화해의 감동 드라마들이 불편하다. 지독한 일들의 끝에서도 주인공들은 악한을 쉽게도 용서한다. 자신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사람에 대한 용서가 그렇게도 쉽다는 건, 뒤끝길고 질긴 나로서는 도무지. 흠. 

어릴때도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동화인 <소공녀>에서도 가장 마음에 든 건 그 장면이었다.  

"제가 왜 선생님과 같이 가지 않는지 잘 아실 거예요. 너무나 잘 아실 거예요."
<세라이야기>,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시공주니어, 2004, p.291 

정말이지, 어린아이를 독자층으로 하는 동화답지 않은 통쾌한 장면이었다. 이 동화 소공녀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랑스러운 장면들이 있고 그 장면들을 나는 좋아하지만, 그래도 이 동화를 독특하게 만들어 주는 건 바로 저 구절이아니었을까 싶다.  

이 책에도 소공녀의 바로 저 구절과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앞으로 평생 동안, 엄마하고 두 번 다시 말을 섞지 않겠다고 했어요. 엄마한테 감사할 일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
p. 428 

 
이 책의 희망메시지는, 저자 콘스턴스, 즉 클레어가 대학을 가고, 영국 최초의 여성 판사가 되었고 그런 사실들이 아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건, 그녀가 그녀를 학대했던 장본인에 대해 저런 말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자신에 대한 학대가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학대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그녀는 묻는다. 나는 원래 학대받을 만한 아이였다고 자학하는 대신, 엄마에게 억지 이유를 붙여주며 이해하고 용서하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 "내가 뭘 잘못했나요, 엄마? 말해 줄 수 있어요?" 라고. 그리고 덧붙여 말한다. "알고 있어요? 엄마 같은 사람은 아이를 낳으면 안 되었던 거예요." 라고.  

비슷한 유형의 아동학대 수기로 데이브 펠처가 쓴 <어둠의 아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심각한 아동학대의 희생자였다고 하고, 그 아동학대의 후유증으로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겪게된다. 물론 학대의 내용 또한 클레어의 그것보다도 훨씬 심각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데이브는 "왜?" 라고 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분노하지도 못했다. 그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에 대해 분노했다. 그는 자신의 학대받은 과거를 극복하지 못하고 첫번째 결혼에서 실패한다.  

두개의 이야기는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흘러간다. 행복하지 못했던 가정, 많은 아이, 그 중의 한명이 타겟이 된 상황에서 나머지 형제들의 겁먹은 외면과 의도적인 따돌림.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과 분노의 투사. 친척들의 개입과 반발, 이웃의 개입과 반발. 클레어는 판사가 되고 데이브는 군인이 된다. 군인과 판사. 규율과 규칙 속에 존재하고, 누군가를 심판하는 존재들. 그들의 성장과정이 투사된 듯한 직업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글쎄, 이 책의 역자의 말대로 "세상에는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일, 용서해서도 안 될 일이 있는지 모른다". (p.434) 아동 학대는 용서가 안되고 용서를 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용서를 바란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용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더. 

나를 낳아주고, 피와 유전자를 물려준 사람이니까 용서를 해야 하는 걸까. 고아원에 버리지 않고 길러 주었으니까. 글쎄, 학대를 하는 것보다야 버리는 게 낫지 않았으려나 싶다.  

그녀의, 저자의 그 끈질긴 증오와 미움이 좋았다. "절대로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라는 말. 자신이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할만큼 하찮은 생명은 아니었음을 아는 자존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또 한편으로는 그녀의 엄마는 용서 받아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70 노파가 무슨 상관이람? 부관참시도 시원찮을 마당에.  

끝까지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고 미워할 수 있었던 그 단단한 자존감이 현재의 콘스탄스를 만들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그렇게도 무참히 잘라버리고 말살시키고자 했던 콘스탄스의 자존감은 새파랗게 살아남아 자신이 그렇게 하찮고, 어리석고, 못생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특히 자신에게 증명해 낸 것이다. 콘스탄스가 가지고 있었던 희망은 바로 그 자존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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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2-18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이 되는 부모>에도 아시마님 말씀하신 것처럼 용서하는 것이 결코 치유에 도움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합리화하고 예전의 그 병든 관계가 다시 재생된다고 하네요.

참, <소공녀> 제가 정말 너무 너무 좋아했던 책인데 왜 저 대사들은 그렇게 새삼스럽게 들릴까요? 시공주니어걸로 다시 읽어야 할까요? 저는 파란 계몽사에서 나온 걸로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시마님과 제 독서의 궤적은 너무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정말 신기하고 기쁘네요.

아시마 2010-02-20 12:30   좋아요 0 | URL
오호. 이것도 겹치네요. 저도 파란 계몽사에서 나온 소공녀예요. 전집의 번호 9번. 10번은 소공자였죠. ^^ 1번이 이솝우화집이었고, 2번이 영국 동화집이었죠? 아... 그책 몇년전까지만 해도 친정에 있었는데. 가슴아파요. ㅠ.ㅠ
헌책방 레어아이템이라는 소문만 들었어요. 흑흑.
계몽사에서 나온 책에서는 아마, 저 부분이 빠졌던가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민틴선생이 난 널 정말 좋아했다 운운 하자, "그랬나요? 전 몰랐군요." 류의 대답을 하는 장면은 들어갔던듯.

비밀 하나 말씀드리면, 음음, 전 시공주니어판 완역본도 가지고 있고, 웅진주니어판 완역본도 가지고 있어요. 소곤소곤.

2010-02-18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0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02-18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습니다. 불끈! 당장 보관함에 집어 넣어야겠어요.

아시마 2010-02-20 12:3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전 이책 서평단 도서였다지요~ 약올리기~ ^^
 
<보통날의 파스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보통날의 파스타 - 이탈리아에서 훔쳐 온 진짜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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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늘 다락방님의 페이퍼 http://blog.aladin.co.kr/fallen77/3382969 를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난, "여기에 오면 널 볼 수 있을 줄 알았어." 라고 말하는 장소가 몇개 있다. 실제로 누군가를 바로 그 장소에서 딱만나 그 비슷한 말을 들어본 적도 있다. 차이라면, 내가 가진 몇개의 장소는 절대로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는 거. 나도 센트럴 파크, 그런 곳을 나를 볼 수 있는 장소로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의 경우는 몇몇 밥집일 뿐. 가끔은 나 거기가서 밥먹다가 니 생각 났어. 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나에게 그런 장소가 생긴 건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일을 싫어하고(모르는 밥집에 스스로 찾아가는 것 포함) 인간관계가 극히 협소하며, 맨날 가는 그 장소만 가는, 동선이 지독히도 한정된 인간이라서 그렇다. 즉, 난 맨날 가는 곳만 간다.  

그 "맨날 가는 곳(식당)" 이라도 뭔가 남들은 잘 모르는 비장의 맛집 이런 거면 좋을텐데, 내가 아는 곳은 남들도 다 아는, 그런 곳들 뿐이다. 칼국수는 명동교자, 수제비는 삼청동 수제비, 짜장면 짬뽕은 하림각, 콩국수는 손만두집, 쌀국수는 하노이의 아침 여의도점, 파스타는 뽀모도르 인사점, 샤브샤브는 샤르르 마포점 이런식이다. 체인점이 있다고 해도 맨날 가는 그곳만 간다. 남편과 외식을 해도 맨날 먹는 그 음식만, 맨날 가는 그 집에서 먹는다. 친구와 만날 때도 메뉴나 장소 선택권이 나에게 주어지면 무조건 저 몇몇 곳들(나열되지 않은 곳도 몇개 더 있다.) 중의 하나를 말하고, 서울에 간만에 놀러온 친구나 친지를 데려가는 곳도 저곳들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파스타는 늘 뽀모도르의 소스가 흥건한 파스타다. 뽀모도르 인사점은 인사동 한복판에서 약간 들어간 골목 안에 있는데 파스타 접시 두개 놓고 피클 접시 하나 놓으면 꽉차는 조그만 테이블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가게다. 난 그 가게의 10년차 단골이고, 남편이 알면 절대로 안되지만, 음음, 그곳에 데려간 남자는 남편을 포함해 둘이다. 남편은 그곳이, 나와 남편만의 비장의 장소(라고 착각하기 딱 좋을만큼 구석탱이에 박혀있는 작은 가게니까/근데 실은,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흔하고 대중적인 식당이다.)라고 알고 있으니까, 쉿쉿.  

음식이란 참 묘한데가 있다. 애정중추와 식욕중추(맞나? 미각중추였나?)는 맞닿아 있다는 말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좋아해주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그 친밀감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남편과 연애를 하던 중에도 한동안 뽀모도르를 피해다녔다. 인사동을 갈 때마다 그집의 파스타가 생각났지만 친구와 함께는 가도 남편과는 가지 않았다. 남편의 식성은 지극히 한국적이라 파스타를 좋아할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싫어하면 뭔가 거대한 상실감을 느낄 것 같았다. 그러다 큰 결심과 함께 데려간 그 곳에서,

남편은, 촌스럽게도 마늘빵으로 소스를 싹싹 닦아 먹을만큼 그집의 파스타를 좋아했다. 된장찌개와 순두부와 갈치조림을 좋아하던 30대 경상도 아저씨가, 파스타집에 갈거라는 말에 파스타가 뭐야? 스파게티, 뭐 그런건가? 라고 말하던 그 아저씨가 얼마나 맛있게 그집의 파스타를 먹는지, 그날 참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이로써 그 집은 남편과 나의 단골집이 되었다. 우리의 첫 아이가 처음으로 파스타라는 걸 먹어 본 것도 그 집이고, 기념일 외식 1순위의 집도 그 집이다. 

나는, 음식을 잘 한다기 보다는, 남편의 은근히 까다로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재주가 있는데 유일하게 파스타를 만들어 주면 먹긴 잘 먹어 놓고는, 꼭 한마디한다. 뽀모도르가 나아. 라고.  

첫음식에 대한 추억은 놀랍다. 그 첫음식은 그 이후의 음식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 책대로라면 소스가 흥건한 뽀모도르의 파스타는 짝퉁이다. 그러나 남편과 나의 파스타는 모름지기, 소스가 흥건해 면을 건져먹으면서 스푼(이태리에서는 포크 사용이 서툰 애들이나 쓰지 어른은 쓰지않는다는 바로 그 스푼!)으로 간간히 소스를 푹푹 떠 먹어주는, 가끔은 마늘빵에 찍어먹기까지 하는 그런 거다.  

이런걸 입맛의 보수성이라고 하는 걸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원래도 음식 에세이를 좋아하니까 정말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막상 만들어 놓은 음식 사진을 보면서는 글쎄, 이게 맛있으려나 고개를 갸웃 했다. 그러면서 한동안 가지 못한 나의 그 보통의 식당, 늘 먹던 파스타가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당분간은 못먹을 테니까.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정세영 셰프의 <스페인에서 날아온 맛있는 편지>가 있다.  

둘다 현직 세프의, 본토 음식 이야기라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파스타에 대한 상식의 지평을 넓혀주긴 했지만, 특별히 식욕을 당기게 하지는 않았던 책. 그래서 별 하나 뺐다. 음식 에세이라면, 그 음식을 마구마구 먹어보고 싶게 만드는 게 지당하지않을까. 음, 하지만 그건 이 책의 문제라기 보다는 내가 뽀모도르의 파스타를 지나치게 편애 하는 탓이 큰 것 같아 뺐던 별 다시 넣는다.  

ps. 근데 이 글은, 리뷰라고 하기엔 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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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1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리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 리뷰가 아시마님의 그 어떤 리뷰보다 좋은데요! 읽는동안 막 따뜻한 기운이 돌잖아요. 아시마님의 그 걱정과 그 안도의 섬세한 감정이 고스란히 다 묻어나서 정말 좋았어요. 이럴때 바로 '잘 읽었습니다' 라고 해야하는 건가봐요.

잘 읽었습니다, 아시마님.

아시마 2010-02-13 00:23   좋아요 0 | URL
뜬금없는 답글이지만, 음, 전 다락방님 페이퍼가 참 좋아요. ^^
뭔가를 막 건드려서 간질간질 끌어내는 페이퍼거든요. 이 리뷰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한 글은, 다락방님의 페이퍼가 없었다면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 역시도,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님. :)
 
<자학의 시>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자학의 시 2
고다 요시이에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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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관계인 친구가 하나 있다.  

이 친구는 의붓 이모가 있는데, (그러니까, 외할아버지가 첫결혼에서 친구의 어머니를 낳았고, 사별인지 이혼인지 한뒤 재혼에서 친구의 이모들을 낳았다.) 그렇다보니 친구와 이모의 관계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카와 미혼의 이모의 관계는 아니었단다.  

어린시절, 친구가 초등학교 입학 하기 전이었다는데 종종 외가에 맡겨지는 일이 있었다. 친구는 그럴 때면 7살 짜리가 용돈을 그러모아 뭔가를 사가지고 가서 이모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온 몸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줄 테니
대신 나를 사랑해 주세요. 

7살 아이의 손에 들린 것은 애정의 거래다. 구걸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애정 그 자체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의 애정이 필요한거다. 지나가는 20대 젊은 여자 아무나가 아닌 바로 나의 이모, 내가 사랑하는 이모 당신의 애정이 필요했던거다. 그렇기에 그 아이의 손에 들린 건 가슴아플만큼 순정한 애정이다.  

사람은,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견디지 못할 일이 없다. 그 어떤 일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일" 이라는 건 거짓이지만 "사랑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언제나 옳다. 도박, 무능, 무책임, 기만, 밥상을 엎어버리는 예의없음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일 이라고 말하는 건 자기 기만이지만, "내가 너를 " 사랑하니까 그런 일들도 괜찮다, 라고 말하는 건 자학이다. 이 단계를 또 다시 뛰어넘는 건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내가 아니까, 괜찮다, 이거다. 이렇게 되면 이건 자학이 아니라 시가 된다. 

유키에와 이사오의 생활을 지탱해 주는 건, 이사오의 사랑에 대한 유키에의 믿음이다. 당신이 과거의 나를 사랑해 주었기 때문에, 따위의 보상이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사오 당신은 유키에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신뢰다. 유키에의 인내와 노력엔 "대신 나를 사랑해 주세요." 라는 말이 붙지 않는다. 이미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사실, 타인의 사랑을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남편이 나를, 내가 남편을 사랑하듯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믿음은 최고의 축복이고 행운이다. 그건 행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사실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는 게 사람인데, 타인의 마음을 그렇게 신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테니까.  

상대의 애정에 신뢰가 없는 사람은 끊임없이 사랑을 구걸한다.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려주고, 숙제를 보여주면서 대신 나를 사랑해 달라고 주문을 외었던 유키에는, 이사오에게는 대신 나를 사랑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이렇게 해 달라는 시험도 하지 않는다. 유키에에게는 이미 사랑의 증명이 필요없다. 알고 있으니까. 유키에가 원하는 것을 해 주어도 해 주지 않아도, 유키에에 대한 이사오의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아니까.  

그래서 그녀는 행복하다.  

앞으로도 이사오는 별반 달라질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유키에 역시 변함없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행복이 뭐 별건가. 자기 마음이 즐거우면 그만이지.  

신뢰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보게 했던 만화책. 사실 처음 읽었을 땐 이게 뭐야 싶었는데, 읽고 나서 덮은 뒤에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아. 이 책. 참 좋다.

ps. 리뷰를 쓰다말고 메신저에 접속해 있는 남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 내 사랑을 확신하고 신뢰해? 

이 뜬금없는 질문에, 이 남자 머뭇머뭇. 나를 사랑하냐는 질문도 아니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냐는 질문이라니 당황했나보다. ㅎㅎㅎ 

그러게, 타인의 사랑에 확신을 가지고 신뢰를 하는 능력이 아무나한테 있는 능력은 아니라니까. 

그럼 나는? 그리고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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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학의 시', 2년만의 역자 후기
    from 세미콜론 공식 블로그 2010-08-24 10:42 
    모든 예술의 주요한 테마이긴 하지만,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란 주제에 대해 고다 요시이에는 천착한다. 자학의 시에서는 날백수 건달 남편 이사오와 바보같이 답답해 보일 정도로 남편에 헌신하는 아내 유키에의 삶을 그리면서, 그리고 고다 철학당(한국에는 영화 '공기인형'의 원작으로 조금 알려졌을지도...), 속 자학의 시 : 로봇 코유키 등에서는 인간이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폴로도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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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전, 완역 이런 말에 집착한다. 사실은 완역에 집착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몇몇 작품은 각각 다른 번역본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한국 작가의 경우 좋아하는 작품은 그 창작의 뒷이야기도 열심히 캐다 읽는다.  

그 중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집착은 유난하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책은 다 샀고, 토마스 불핀치의 책도 몇가지 번역본으로 가지고 있으며, 책장 몇칸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섹션으로 아예 분리를 해 놓았다.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만 좋아하는 건 아니고 북구의 신화나 인도 신화도 좋아한다. 심지어 성경도 나에게는 히브리 신화서 또는 역사서의 개념이다.   

몇년 전, 생일 선물로 이 책을 사달라고 했을때, 남편은 그리스 신화는 애들이나 읽는 거 아니냐는 말로 나의 뒷골을 땡기게 했다. 그림형제의 동화도 성인판이 나오는 세상에 내 남편이라는 작자가 왜 그러느냐고.  

대학 신입생이 되었을 때, 담당교수님은 그리스 신화와 성경을 읽어오라는 숙제를 내셨다. 그 둘은 문학의 가장 베이스에 깔리는 거니까, 말하자면 서구 문학의 원전과 같은 것이라 읽지 않으면 문학 이해의 폭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대학 1학년, 3월의 어느날, 성당 다니던 친구에게 빌린 성경을 방에 엎드려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시편의 문장들은 그 종교색과 관계없이 아름다웠고(지금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문학작품중의 하나로 꼽는다.) 묵시록의 문장들은, 그 어느 SF 소설보다 상상력 넘치고 박진감있게 무서웠다.  사실 그 숙제는 꽤나 지루한 숙제였고, 성경은 별로 읽기 쉽지도 딱히 재미있지도 않은 책이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도 그 숙제를 내 주고 억지로라도 성경을 읽게 해 주신 교수님께 두고두고 감사드린다. 뭐, 신화야 읽으라고 안해도 읽었을테니. (사실 우리과 우리 학년 50명중에 그 숙제를 한 사람은 열명남짓... 대학 신입생때라 아직 고딩때의 습관이 남아서 교수님이 하라는 건 다할 때였다, 난. ㅎㅎㅎ)

성경을 읽은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그리스 신화는 그 뒤로도 꾸준히 내 주요 관심사의 하나로 있지만, 극단적으로 말해 내 독서는 성경과 신화를 읽기 전과 읽기 후로 나눌수도 있다. 성경을 읽고나니 갑자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변신했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 전까지는 무심코 넘겼던 것들이 갑자기 의미의 옷을 입고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성경과 그리스 신화가 모든 서구 문학의 기본 베이스라는 교수님의 말은 틀림 없었다. 특별히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더 깊어졌다, 이런 말은 못하겠지만, 확실히 훨씬 재미있어진 것만은 분명했다. 예전같으면 무심코 넘겼을 구절들이 얼마나 말랑쫀득차진 재미를 가지고 다가오던지. 

그리스 신화는 신화 그 자체로도 참 재미있지만, 정작 중요한 효과는 그 후에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를 읽고, 어느정도의 지식을 베이스로 깔아놓은 뒤에 읽는 서구 문학작품들은 얼마나 재미있던지.  

이윤기의 책에 비해 삽화가 많은 것도 아니고(사실 이윤기 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는 삽화가 반~) 번역은 충실하고 매끄럽지만 이야기 자체가 그다지 말랑하지가 않아서 처음엔 좀 헤멜수도 있는데,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일사천리로 읽힌다. 

무엇보다 머릿속에 엉망으로 뒤엉켜 있는 그리스 신들의 계보와 일의 순서가 앞뒤로 좌라락 정리되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 원전이 꼭 최고인 것은 아니고, 그 원전에서 파생된 2차 3차 문학작품이 훨씬 문학성도 높고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원전은 언제나 원전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신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이윤기는 읽기 전의 이윤기와는 또다른 재미를 가지고 온다. 이 책을 읽고나서 이윤기의 책이나 불핀치의 책을 다시 읽으면 그 재미는 이전의 백배가 될 거라 장담한다.

Ps. 이 책을 내 책장에서 뽑아 빌려간 00아. 니가 돌려주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나는 또 산다. 그 책은 무려, 내 남편의 선물이기까지 했단다, 버럭버럭버럭. 책 빌려달란 말 좀 하지 마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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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2019-07-0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천병희 교수님의 팬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무지 무척 매니악하게 좋아하기도 하구요. 잘 읽고 갑니다^^
 
<내집 마련의 여왕>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집 마련의 여왕
김윤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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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집을 구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한번쯤은 하는 생각일 게다. 저렇게 많은 집이 있는데, 저 많은 집중에 내 집은 없구나 하는 생각.  

집을 구할때 내가 원하는 조건은 아주 간단했다. 학군도 필요없고 비싼집도 필요 없고, 넓은 집이나 편의 시설에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조용하고, 베란다로 산과 나무가 보이는 곳, 눈 앞에 회색빛 아파트가 떡하니 가로막고 선 집만 아니면 된다고 했다. 남편은 종종, 니가 원하는 그런 집이 서울 시내에선 얼마나 비싼지 알기나 하냐고 퉁박을 놓았지만, 어쨌든 그런 집을 찾아내 주긴 했다.  

그때가 2008년 9월, 지금 집사는 놈은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은때였다. 속된 말로 상투를 잡은 거였다. 베란다로 내다보는 공원 전망이 끝내주는 집이었지만 정서향의 집이어서 여름엔 끔찍하게 더웠다. 우리는 그 집을 남서향이라고 속아 샀다. 4차선 도로를 향해 베란다가 나있고, 기차길 옆이라 소음도 먼지도 지독했다.

집을 보러 다니면, 가끔 집이 나를 환영해준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흔히들, 내 집이 될 집은 느낌이 온다는데, 아마도 그런 느낌일 것이다. 무턱대고 밝고 환하게 집이 나에게 웃어보이는 것 같은 그런 집이 있다. 집과 나의 궁합이랄까. 남들에게는 단점으로 여겨질 부분이 나에게는 장점으로 치환되어 다가오는 그런 집. 이건 단순히 금액의 문제와는 다르다.  

정서향의 그 집은, 서향이어서 날이 길었다. 여름엔 저녁 7시까지도 환했다. 그래서 참 좋았다. 무턱대고 막 행복해지기까지 했다. 더웠지만 에어컨을 켜면 되었고, 소음에 취약한 나였지만, 그래도 그 집의 소음은 견딜만 했다. 어릴때 우리 외가가 기찻길가에 있었는데,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음이 들릴때마다 포근하고 만만했던 외가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하지만 6개월을 살았는데, 남편이 덜컥 해외 발령을 받아왔다. 1년도 살지 못한 집을 부동산에 내놨을때 서브프라임의 여파로 집값은 우리가 샀을때보다 2천만원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꽤나 오래 기다려, 우리가 산 가격 그대로 집을 팔았고, 베란다 확장비용은 고스란히 우리 손해로 남았다. 확장비용을 포함해서 세금이며 이자비용이며 웬만한 월급쟁이의 일년치 연봉을 고스란히 손해보고 1년 3개월만에 이사를 나온 집이지만 난 아직도 그 집에 대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처음 그 집을 보러갔을때, 그 화사한 아파트 외관과 나를 환영해주는 듯한 느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 집이란,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남들이야 뭐라고 이야기를 해도 나는 마냥 그 집이 좋은, 그 집과 잘 사귈 수 있을 것 같고 이 집에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집. 

이 책은 사람들에게 그런 집을 찾아주는 사람의 이야기다. 누군가가 가진 돈과 생활 조건에 맞춘 집을 찾아주는 일이 이 책의 주인공 송수빈에게 주어진 임무다. 직업이라고 하기엔 그녀가 그 일에 종사하는 기간도, 찾아준 집의 갯수도 너무 작으니까 일종의 미션정도로 생각하면 될듯. 모든 사람이 다 우와우와 할 집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단점이 될 부분이 본인에게는 장점으로 치환될수 있는 그런 집.   

집다운 집. 
춥지도 덥지도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집. 딱 좋은 양질의 햇빛과 바람이 솔솔 드나들고 나무와 꽃과 구름과 새, 하다못해 도마뱀까지 모든 자연을 앉아서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집. 넓지 않은 간소한 테라스지만 직접 만든 나무 벤치에 걸터 앉아서, 또는 해먹에 누워서 하루 종일 기분 좋게 노닥거릴 수 있는 우리집.
p. 213 

집다운 집은 집은 이런 집이다. 실제로 수빈은 남편과 함께 그런 집다운 집을 짓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발리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한국은. 

예전엔 그랬었다. 누가 집을 샀다거나 이사를 했다 그러면, 모두들 축하해주며 이런 덕담들을 해 주었다. 누가 그러는데 그 동네 애 키우기 참 좋다더라, 어머 내 친구 아무개가 살았었는데....... 옛날에 거기 배 밭이 있었지, 빵공장이 있어서 냄새가 참 구수했는데, 지나가다 보니까 산이랑 개울 경치가 참 좋더군....... 
지금은 다르다. 누가 집을 샀다고, 정확히 표현하자면, 모 아파트를 샀다 그러면,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그 집의 시세와 호가, 입지, 평면도를 알아보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는 동네 집값이 얼마나 거품이라거나 2006년 폭등으로 이제 폭락할 일만 남았다거나 임대아파트들이 많아서 거긴 막장이라거나 판교 입주하면 볼 장 다 봤다거나, 원래 주민 수준이 낮다는 둥의 그런 악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 것이다. 그 사람의 인격을 깎는 것 만큼이나 몰상식한 말이라도 사람들은 이제 별로 개의치 않는다. 무슨 집값 올림픽이라도 벌이듯, 너도 나도 더 높은 집값을 향하여 비교하고 깎아 내리고 분석한다. 교양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드러내놓고 험담을 하진 않지만, 그 정도 동네 그 아파트라면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 따져보며 회심의미소를 짓거나 배 아파하거나 둘 중 하나다.
p. 259-260 

누가 어떤집에 사는지보다 얼마짜리 집에 사는지가 더 궁금하고, 사는 동네가 수준을 말해준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청담동 도련님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하는 세태는 분명 비정상이다. 이건 분명 주객전도다. 집이 사는(living)게 아니라 단순히 사는(buy) 게 되어버린거다. 이래서야 집다운 집이란 허명만이 있을 뿐.  

그 서향집을 팔고 또 다른 집을 사야했다. 외국 나가기전에 부동산은 하나 잡아두고 나가는 거라고, 세이브되는 주거비용까지를 포함해서 평수를 넓혀 사 놓고 나가는 거라고 한결같이들 조언을 하길래, 우리는 또다시 집을 보러 돌아다녀야 했다. 

나는 사는(living)집을 원했지 재테크를 위해 사는(buy)집을 원하지는 않았다. 서울 시내에 집은 왜 그리도 많던지, 서울이란 땅덩이는 이럴때 또 얼마나 크던지. 지방출신인 나도 남편도 다니던 학교 근처와 직장 근처외에는 아는 곳도 없어 우두망찰했다. 돈을 손에 쥐고 있으니 살(buy)집은 차고도 넘쳤는데 정작 살(living) 집은 없었다. 그럴때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누군가 부동산에 도통한 사람에게 집 사는 문제를 일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사람을 붙잡고 우리가 가진 돈과 대출 가능한 규모는 얼마인지를 말해주고 내가 원하는 집의 조건을 세세하게 말을 해 주면 그 사람이 적당한 집을 구해봐 주는, 그런 시스템이 어디 없나.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세상엔 종종,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주인공 수빈이 누군가의 사연을 듣고 그 사람에게 맞춤집을 찾아주는 부분은 심윤경의 소설 <이현의 연애>를 떠올리게 했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 그녀를 사랑하는 이현과 이진의 기록속에 등장하는 영혼의 삶. 심윤경의 소설은 이 세가지가 어울려 일종의 옴니버스 액자소설을 만들어 낸다. 게다가 이진의 아버지, 이현의 장인이자 이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세.  

이들의 존재가 수빈(이진), 그렉(이현), 정사장(이세 공)에 슬쩍 덧칠되어 읽혔다. 물론 두 소설은 전혀 다른 소설이다. 수빈은 기록하는 대신 성실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영혼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고. 단지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는 집을 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수빈 자신의 사연이 두개의 이야기로 함께 진행되는 면이 비슷하다는 연상을 이끌어 냈을 뿐.  

처음에는 그저 그런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로 끝나는가 했다. 하지만 수빈의 사연을 풀어내고 그렉의 자취를 추적해가는 부분은 꽤나 긴박감 넘치는 재미를 가지고 온다. 끝까지 정확한 정체를 숨기고 있는 정사장이라는 존재의 미스테리도 그렇고. 소설의 말미의 극적 재회는 뭉클했다.  

액자식 옴니버스(이런 말이 가능한가? -_-) 형태라 이야기는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동일한 주인공이 각각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시리즈 소설처럼 읽기가 쉬운 소설이었다. 

그리고 집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 보게 한다.  

누군가에게 맞춤집을 찾아주는 수빈, 수빈이 살고 있는 집 또한 수빈의 남편이 "소울 하우스"라고 칭할 만큼 수빈의 가족에겐 맞춤 집이었다. 남들이 다들 아파트를 선호 할 때, 수빈과 수빈의 남편은 그들에게 맞는 주택을 찾아내어 안착한다. 그 집에 남편은 밤나무를 심고, 그 밤나무 아래에서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측두엽이 손상되어 기억을 잃었던 그는 아내와 아이 대신 그 밤나무를 먼저 떠올린다. 아마 그가 더 떠올리고 싶었던 건 그 밤나무 아래에서 안아주었던 아이와 아내였겠지만. 때때로 집은 가족의 대체물이 되기도 하니까.

사람은 그런 소울하우스에서 살아야 한다. 집은 누구나에게 소울하우스가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 완벽했던 소울하우스에서 쿨하게 떠날 줄 아는 수빈의 모습과 결단이 또한 신선했다. 결국 집이 사람을 묶어두는 집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집은 살다 떠나는 곳이다. 정을 붙여도 결국은 나만의 집으로 남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더 큰집, 더 비싼집, 재테크를 위한 수단의 집은... 삭막하다. 그 집에서 과연 행복할까. 사람들이 돈 대신 나에게 맞는 집 "소울 하우스"를 찾는다면, 모든 문제는 좀 더 쉬울텐데. 헌데 과연, 내가 사 둔, 몇년뒤에 들어갈 나의 집은 내 "소울하우스"가 맞을까. 

나의 소울하우스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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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힘 2010-02-04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엔 정말 저랑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많네요. 어쩜 저랑 독후감이 똑같은지 놀랬습니다. 저는 글재주가 미천하여 이렇게 님처럼 감성적이고 콕 집어서 잘 쓰지못한다능....참 좋은 책 같아요. 말 그대로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