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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거리는 오후 박완서 소설전집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1993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최초로 읽은 박완서의 소설이 이거다. 고등학교 1학년때 같은반 친구 소란이가 빌려준 소설. 두번째로 읽은 소설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였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정민이가 빌려준 책이었다. 내가 기억력이 좋다는 것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박완서의 소설이 그만큼 인상깊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숱한 소설을 읽었지만, 지금처럼 다량의 소설을 한꺼번에 읽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물론 책 대여점도 발달해 있지 않을 때였다. 그때는 '대본소'라는 이름의 만화방만이 간간히 존재하던 시대였다.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36권짜리의 한국문학전집을 제외하고는 친구들에게 빌려보는 것이 독서의 전부이던 때다. 그때 빌려 읽은 책은 박완서의 소설들과 양귀자의 소설들. 그때부터 책의 '소유'에 한이 맺혔던 나는, 지금, 미친듯이 책을 사들인다. 특히 그때 빌려 읽었던 책은 눈에 불을켜고 사들인다. 덕분에 박완서의 콜렉션은 거의 완성되어 간다.

그때는, 책을 빌려서 읽을 때니까 며칠까지 돌려줘야 한다는 약속이 있었다. 밤을 새우기는 예사였다. 그때 밤을 새워가며 읽었던 박완서의 소설들은 지금까지도 구절구절이 그렇게 생생할 수가 없다. 그저 장면이나 줄거리가 기억나는 정도를 넘어서서 특징적인 단어들이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나는지.

책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하고부터 밤을 새는 일이 줄어들었다. 다음날 출근을 생각해야 하기도 하지만, 어느새, 밤에 책을 잡고 있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리는 나를 당연히 받아들이기도 했다. 책을 읽다 중간에 덮고 잠을 청하는 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불면의 밤을 선사하는 책은 거의 드물어지고 있다고 생각...... 하고 있지만 그러고 보니 최근에도 며칠이나 밤을 샜다. ㅡㅡ;;; 음. 읽던 소설을 마무리하고 자야겠다는 오기와 비슷한 거였지, 재미있어서 손에서 놓지 못하겠다, 정도는 아니었다. 뭐. 흥미진진해서 뒷 이야기가 자꾸만 궁금해 지는 것도 있었지만- 여튼. 거의 밤을 새지 않는 추새였던 내가, 박완서의 이 소설을 들고 밤을 꼴딱 새 버렸다.

양장본에 540페이지 가까이 되는 무지막지한 분량의 이 소설을 나는 밤 11시가까이 되는 시간에 잡고 읽기 시작해 다음날 새벽 6시 30분까지 읽었다. 그러니까, 오늘, 말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아빠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침 등교길에 아빠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아빠, 어제 소설을 읽었는데요, 딸 셋 시집보내느라 그 집 기둥뿌리가 빠지는 이야기였어요."라며 깔깔거렸었다.

이 소설은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딱 그만한 이야기다. 77년1월부터 12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이 소설은 박완서의 다른 소설이 그러하듯 세태소설에 가깝다. 당시의 세태를 얼마나 박진감 넘치게 그러내는지, 이걸로 사회사 교과서를 삼아도 되지 싶다. 재미있는 것 하나. 우리가 흔히 중매쟁이를 일컫는 말로 쓰는 "마담 뚜"가 이 소설에서 박완서가 처음으로 만들어 쓴 단어라는 거. 박완서라는 작가가, 아니, 소설이라는 한 장르가 얼마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박완서의 소설은 힘을 가지고 있다. 한번 잡으면 사람의 눈을 결코 떼지 못하게 만드는 힘 말이다. 별 것 아닌 그저 사람살아가는 이야기를 박완서만큼 맛깔나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를 나는 아직 단 한사람도 만나보지 못하였다. 그야말로 소설의 재미 그 하나만으로 다음날 출근해야 할 인간이 새벽 여섯시까지 책을 잡고 앉아 있게 만드는 것도 오직 박완서만히 할 수 있는, 박완서 소설의 힘이다.

한편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박완서의 다른 소설들을 찾아서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도.

정말이지.
난 박완서가 너무 좋다. ^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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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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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설의 리뷰는 "박완서 표 연애소설"을 제목으로 잡아야겠다 했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연애소설로는 뭔가 미진하다 싶다. 물론 연애의 장면이 부족해서는 아니다. 박완서 식 '미시적 리얼리즘'과 묘사의 핍진성은 이 소설에서도 완벽에 가깝게 드러나고, 짤막짤막하게 드러나는 두 연인의 모습은 분량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눈물나도록 짜릿한 연애를 독자의 눈 앞에서 펼쳐보인다. 게다가 분명 박완서는 이 소설을 연애소설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연애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모자란다.

자꾸만 박완서 선생님의 나이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이 마흔에 『나목』으로 등단하면서, 6.25에서 출발한 선생님의 소설이 여성문제와 모성문제(『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살아 있는 날의 시작』등) 거쳐 노인문제(「해산 바가지」「꽃을 찾아서」)를 다루더니 숙제를 하듯 고향 개성말을 여봐란듯 살려내고(『미망』) 따스했던 그 시절 과거의 이야기(『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쓰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몇편 쓰더니. 이제는 다시 6.25와 미군 PX로 돌아갔다. 마치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거대한 코끼리처럼.

이 소설은, 나목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나목이 그림자라면 이 소설은 밝은 양지다.(빛이 아닌 양지다.) 나목에서는 위악적이다 싶을 만큼 어두운 면만 어둡고 힘들었던 면만 끌어내었다면 이 소설에서는 나목에서 끌어내고 싶었지만 끄집어내지 않고 아껴두었던 그 밝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죄다 모아서 써 냈다 싶다. 나목에서 이 이야기들을 끄집어 냄으로 해서 그 소설은 흰 머리를 솎아낸 검은 머리 처럼 말짱하고 어둡고 절망적인, 그야말로 박수근의 그림과도 같은 거칠거칠한 나목의 모습을 완성할 수 있었고, 이 소설은 잘 마전한 소창처럼 그렇게 뽀얗다. 이 소설에 숨어들 어두운 면들은 죄다 뽑아 나목으로 옮겨 간 것처럼.

그래서 이 소설은 나목과 쌍둥이가 된다. 동전의 전면과 후면처럼. '싱아'와 '그산'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어진 이야기가 되는 것과는 또 다른 면으로 이 이야기와 나목은 연결되어 박완서 소설의 처음과 끝을 이룬다.

나목에서 전쟁이 절망을 가중시키는 것이었다면, 이 소설에서 전쟁은 낭만을 가중시키는 어떤 것이었다. 두 사람의 첫사랑이 더욱 화려하게 더욱 애잔하게, 더욱 불꽃같이 타오를 수 있게하는 최고의 촉매가 바로 전쟁이라는 그 어수선한 배경이었다. 전쟁직후의 폐허가 아니라면 스무살 동갑내기들의 첫사랑이 그렇게까지 반짝거릴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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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박완서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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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수표 같은 작가들이 있다. 이 작가의 작품이면 반드시 재미있을 거야, 라는 확신을 주는 작가. 언젠가 썼지만 한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자식들이 모두 오롱이조롱이 인 것처럼, 한 작가가 써내는 작품도 대개는 오롱이조롱이인 법이어서, '보증수표'가 되는 작가가 되기란 힘들다 못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된다.

그렇기에 보증수표 같은 작가는 더욱 귀하고 믿음이 가는 존재가 된다.

나에게는 박완서가 그렇다.

소설은 아주 괜찮았는데 산문이 영 꽝이어서 황당하게 실망을 주는 작가도 여럿이었는데, 박완서는 소설은 물론, 산문, 여행기에 신문 칼럼까지 죄다 재미있고 맛깔나게 쓴다. 그것은 아마 박완서가 쓰는 문장의 탄탄함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더 좋은 작품도 있고 덜 좋은 작품도 있지만 작품들 간의 편차가 그리 크지 않은 편이어서 언제나 박완서는 안심스럽다.(안심스럽다, 라는 표현 역시 박완서의 어법이다.)

박완서의 산문집은 사람 냄새가 난다. 아들을 잃는 참척을 경험했던 88년도를 지나며 쓴 일기를 모아서 낸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산문집은 아직 결혼도 해 보지 않은 철딱서니 없는 계집아이의 눈에 여러 번 눈물을 고이게 만들었던 전적을 가지고 있다. 박완서의 산문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그악스러울 정도의 솔직함, 일견 위악이라고 보일 정도의 솔직성에 있는 것 같다. 자신을 볼 때에도 가차없이 솔직하고 삼엄한 시선을 통과해 나오는 글의 아름다움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글들이 가지는 호소력을 감히 누가 비껴갈 수 있겠는가.

이 책 두부 역시 박완서다운 솔직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산문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과거의 글들과 무언가 다른 것은, 과거의 글들이 살벌하다 할 만큼 솔직하고 냉정하게 사람들 속의 구린 곳을 팍팍 찔러대었다면 이번 글은 부드럽고 차분하게 일러주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 핍진하다못해 육감적이기까지 한 묘사력은 그대로 살았는데도 글들이 구수하게 느껴짐은 박완서가 늙었기 때문일까.

얼마 전 헬렌 니어링의 자서전을 읽었는데, 거기서 헬렌 니어링은 한결같이 늙는다는 것에대한 예찬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 박완서는 예찬하는 대신 조금씩 한탄하고 그러면서도 '늙음'에서 오는 '뻔뻔함'에 대해 슬쩍 던져놓고 말 뿐, 늙음에 관한 예찬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는다는 것이 얼마만큼 아름다운 축복인가 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박완서의 이 산문집이다.

박완서 식의 표현을 쓰자면, 고무줄 바지를 아무데서나 입고서도 전혀 눈치보이지 않는 편안함, 그것이 뻔뻔함이 아니라 편안함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늙음의 축복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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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09-12-12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취향이 너무 비슷하신 것 같아요. 저는 박완서님 책은 무조~건 삽니다. 아들을 잃고 세상을 향해 내뿜는 얘기들의 그 솔직함은 참 동감이 가더군요. 이제는 나이가 너무 많이 드셔서 책내기가 힘드실 것 같아 참 슬프네요. 참, 이 주의 마이리뷰 2주 연속 당선되신 거죠? 이제 머그컵을 향해 고고 하셔도 될 듯합니다 ㅋㅋㅋ 받아서 사진이라도 올려주세요. 저는 오늘 드디어 마음을 접었답니다.^^;

아시마 2009-12-12 14:06   좋아요 0 | URL
하하 그렇잖아도 방금 봤어요. 이주의 리뷰 두번째 당선된거. 남편에게 이걸로 자랑질 했더니 고작 만원가지고. 이러잖아요. 확 때릴까요?
리뷰 당선이랑 상관없이, 책 사기로 했어요. ^^ 사실 머그컵도 탐났지만, 읽고 싶은 책이 몇권 생겨서(전 이거 심하게 병적이라, 읽고 싶다 생각하면 당장 사지 않으면 몸살이 나요. 진짜 몸살이.) 방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졸랐거든요. ^^
박완서 선생님 글 너무 좋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하는데.
 
배효숙의 리넨 + 거즈 DIY - joy of making
배효숙 지음 / 동아일보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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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효숙, joy 라는 이름은 바느질, 그 중에서도 양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이름이다. 아마 이 바닥(?)에서는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아닐까. 사실 그녀는 나를 바느질, 아니 재봉질의 천국같은 지옥, 또는 지옥같은 천국으로 끌어들인 사람이다. 그녀의 의도는 아니었을 지언정.

그 사람의 네번째 책이 나왔다.  

이전의 책들이 실용서, 그야말로 너무너무 실용적인 실용서였다면, 이번 책은 그보다는 약간 에세이쪽으로 기울었다. 책에 실린 작품도 이전의 책에 비하면 그렇게 많지는 않고, 그 작품 하나하나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전의 책들에 실린 것들보다는 실용 보단 멋 쪽으로 기울었다. 이전의 책들이 배부른 식사였다면 이번 책은 식사 전에 먹는 에피타이저나 식사 후의 디저트 같은 느낌.

그리고 작품 하나하나에 그녀의 일기같기도 한 짤막한 에세이를 붙였다. 특별히 잘 쓴 에세이도 아니고 독특한 에세이도 아닌데 한줄 한줄 곱씹으며 읽게 되는 건, 나도 바느질을 하기 때문일까. 

가끔은, 다른 사람들은 왜, 어떤 이유로 바느질을 시작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하고 많은 취미중에 바느질의 세계로 들어온 사람들은, 어떤 연유로 이쪽에 끌려 들었을까. 또는, 처음엔 별 생각 없이 바느질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더라도, 바느질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느질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하나하나 작품을 만들어 낼때마다, 완성된 작품을 볼 때가 아니라, 바느질을 하고 있을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바느질을 할까. 왜 할까. 그런 생각.  

이번 책에서 배효숙이 들고 나온 건, 작품이 아닌 소재다. 자연주의가 대세인 요즘 가장 각광받는 소재인 리넨과 거즈. 그리고 이 책의 느낌, 정확히는 이 책에 들어가있는 글줄들은 그 리넨과 거즈의 느낌과 닮았다. 소박하지만 은근히 사치한 느낌. (사실 리넨은 소박할 것 같지만 은근히 비싼 소재다.) 사치라는 게, 돈을 많이 주는 사치가 아니라, 어떤 정신적인 사치라고 해야 하나, 삶에 대한 욕심, 보기 좋은 욕심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바느질 실용서를 찾는 사람보다는, 바느질 그 자체에 위안을 얻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의 위안이 되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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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2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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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남편과 노후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월급쟁이인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뭐해서 먹고 살까, 뭐 이런 이야기. 누구나 그렇듯 이렇게 되면 자신이 가진 능력치를 점검하게 되고, 내가 지금 가진게 뭐가 있을까를 돌아보게 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보다가 혼자 가끔 생각해본다. 북까페 같은 걸 내면 어떨까, 하고.  

어려서 우리집엔 책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니, 집안 형편이나 살림살이가 비슷했던 옆집들에 비교하면 많은 편이었지만(지금도 친정엄마는 그런 말을 한다. 내가 그 형편에 어떻게 니들한테 책을 사줄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고.) 나에게는 항상 모자란 양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렸을때 내 꿈은, 책 대여점 주인이 되는 거였다. 왜 그런거 있잖은가. 요즘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신애가 짜장면집 주인이 되겠다고 하는 것과 같이.  

이 책의 장이가 꾸는 꿈과 나의 꿈은 비슷하다. 작고 소박한 책방에서, 좋은 책이 나오면 단골들에게 권해주기도 하고, 누군가가 더이상 보지 않는 책을 받아서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기도 하고, 책들에 둘러싸여 책과 대화를 나누는 그런 꿈. 물론 장이의 꿈은 장이만의 꿈이라기 보다는 장이 아버지의 꿈을 장이가 이어받은 것이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이런 꿈을 꾸어보는 것 같다. 나도 꿈을 꾸기는 한다. 매번 접지만. 아는 사람에게 책을 빌려주는 것조차 꺼리는 내가 언감생심, 카페를 들락이는 손님에게 잘도 내 책을 내어주겠다, 아마 책에 얼룩이 갈때마다 내 얼굴에도 얼룩이 가고, 책등이 스파인이 갈때마다 심장에도 스파인이 가는 기분이 들어서 손님을 지레 다 쫓아내버리고 말거다, 아마. 흠. 그러나 이건 내 사정이고. 

마지막에 장이가 서유당, 책과 노니는 집을 내게 되는 장면에선 가슴이 뭉클했다. 그 아이가 그 집을 내기 위해 어떤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어쩌고 저쩌고, 아버지와의 약속이 어쩌고 저쩌고 그랬다기 보다는 그냥, 책장이가 책방을 내는 꿈을 이뤘구나 하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크게 와 닿았다.  

좋은 그림책의 제 1 요건으로 글과 그림이 잘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라는데, 물론 이 책은 그림책은 아니지만, 김동성의 삽화와 책의 글이 잘 어울린다. 김동성의 차분하면서도 단정한 그림과 이 책의 내용 서로 보완 효과를 일으키며 서로가 서로를 잘 살렸다.  

하지만 글 자체만 가지고 봤을때는 아주 썩 잘 쓰여진 글은 아니다. 물론, 고증도 좋았고, 소재도 신선했고, 권선징악이라는 교훈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했고, 일정부분의 성공도 거두었다고 볼수는 있지만. 화자의 시점은 분명 작가 시점인데 장이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니 의도적으로 놓치는 부분도 있고, 어쩔수 없이 놓치게 되는 부분도 생기는데,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장이를 화자로 내세우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화자였다면 좀 더 이 글에 더 잘 몰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허궁제비, 낙심이, 홍교리, 기생아씨가 대부분 따로 논다. 뭔가 좀 더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어야 할 것 같은데, 작가가 서술의 시선을 장이쪽으로 몰아줌으로 해서 이쪽이 좀 약해진 느낌이다.  

그렇지만, 이 책이 작가 이영서의 첫 책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여러가지로 기대가 많이 되는 작가다. 다음번에 또 이영서의 책이 나온다면, 잊지 않고 사서 보게 될 것 같다. 미래가 기대되고, 어떻게 변화할지가 기대되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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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30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30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30 16: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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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0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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