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파스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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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날의 파스타 - 이탈리아에서 훔쳐 온 진짜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다락방님의 페이퍼 http://blog.aladin.co.kr/fallen77/3382969 를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난, "여기에 오면 널 볼 수 있을 줄 알았어." 라고 말하는 장소가 몇개 있다. 실제로 누군가를 바로 그 장소에서 딱만나 그 비슷한 말을 들어본 적도 있다. 차이라면, 내가 가진 몇개의 장소는 절대로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는 거. 나도 센트럴 파크, 그런 곳을 나를 볼 수 있는 장소로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의 경우는 몇몇 밥집일 뿐. 가끔은 나 거기가서 밥먹다가 니 생각 났어. 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나에게 그런 장소가 생긴 건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일을 싫어하고(모르는 밥집에 스스로 찾아가는 것 포함) 인간관계가 극히 협소하며, 맨날 가는 그 장소만 가는, 동선이 지독히도 한정된 인간이라서 그렇다. 즉, 난 맨날 가는 곳만 간다.
그 "맨날 가는 곳(식당)" 이라도 뭔가 남들은 잘 모르는 비장의 맛집 이런 거면 좋을텐데, 내가 아는 곳은 남들도 다 아는, 그런 곳들 뿐이다. 칼국수는 명동교자, 수제비는 삼청동 수제비, 짜장면 짬뽕은 하림각, 콩국수는 손만두집, 쌀국수는 하노이의 아침 여의도점, 파스타는 뽀모도르 인사점, 샤브샤브는 샤르르 마포점 이런식이다. 체인점이 있다고 해도 맨날 가는 그곳만 간다. 남편과 외식을 해도 맨날 먹는 그 음식만, 맨날 가는 그 집에서 먹는다. 친구와 만날 때도 메뉴나 장소 선택권이 나에게 주어지면 무조건 저 몇몇 곳들(나열되지 않은 곳도 몇개 더 있다.) 중의 하나를 말하고, 서울에 간만에 놀러온 친구나 친지를 데려가는 곳도 저곳들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파스타는 늘 뽀모도르의 소스가 흥건한 파스타다. 뽀모도르 인사점은 인사동 한복판에서 약간 들어간 골목 안에 있는데 파스타 접시 두개 놓고 피클 접시 하나 놓으면 꽉차는 조그만 테이블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가게다. 난 그 가게의 10년차 단골이고, 남편이 알면 절대로 안되지만, 음음, 그곳에 데려간 남자는 남편을 포함해 둘이다. 남편은 그곳이, 나와 남편만의 비장의 장소(라고 착각하기 딱 좋을만큼 구석탱이에 박혀있는 작은 가게니까/근데 실은,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흔하고 대중적인 식당이다.)라고 알고 있으니까, 쉿쉿.
음식이란 참 묘한데가 있다. 애정중추와 식욕중추(맞나? 미각중추였나?)는 맞닿아 있다는 말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좋아해주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그 친밀감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남편과 연애를 하던 중에도 한동안 뽀모도르를 피해다녔다. 인사동을 갈 때마다 그집의 파스타가 생각났지만 친구와 함께는 가도 남편과는 가지 않았다. 남편의 식성은 지극히 한국적이라 파스타를 좋아할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싫어하면 뭔가 거대한 상실감을 느낄 것 같았다. 그러다 큰 결심과 함께 데려간 그 곳에서,
남편은, 촌스럽게도 마늘빵으로 소스를 싹싹 닦아 먹을만큼 그집의 파스타를 좋아했다. 된장찌개와 순두부와 갈치조림을 좋아하던 30대 경상도 아저씨가, 파스타집에 갈거라는 말에 파스타가 뭐야? 스파게티, 뭐 그런건가? 라고 말하던 그 아저씨가 얼마나 맛있게 그집의 파스타를 먹는지, 그날 참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이로써 그 집은 남편과 나의 단골집이 되었다. 우리의 첫 아이가 처음으로 파스타라는 걸 먹어 본 것도 그 집이고, 기념일 외식 1순위의 집도 그 집이다.
나는, 음식을 잘 한다기 보다는, 남편의 은근히 까다로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재주가 있는데 유일하게 파스타를 만들어 주면 먹긴 잘 먹어 놓고는, 꼭 한마디한다. 뽀모도르가 나아. 라고.
첫음식에 대한 추억은 놀랍다. 그 첫음식은 그 이후의 음식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 책대로라면 소스가 흥건한 뽀모도르의 파스타는 짝퉁이다. 그러나 남편과 나의 파스타는 모름지기, 소스가 흥건해 면을 건져먹으면서 스푼(이태리에서는 포크 사용이 서툰 애들이나 쓰지 어른은 쓰지않는다는 바로 그 스푼!)으로 간간히 소스를 푹푹 떠 먹어주는, 가끔은 마늘빵에 찍어먹기까지 하는 그런 거다.
이런걸 입맛의 보수성이라고 하는 걸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원래도 음식 에세이를 좋아하니까 정말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막상 만들어 놓은 음식 사진을 보면서는 글쎄, 이게 맛있으려나 고개를 갸웃 했다. 그러면서 한동안 가지 못한 나의 그 보통의 식당, 늘 먹던 파스타가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당분간은 못먹을 테니까.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정세영 셰프의 <스페인에서 날아온 맛있는 편지>가 있다.
둘다 현직 세프의, 본토 음식 이야기라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파스타에 대한 상식의 지평을 넓혀주긴 했지만, 특별히 식욕을 당기게 하지는 않았던 책. 그래서 별 하나 뺐다. 음식 에세이라면, 그 음식을 마구마구 먹어보고 싶게 만드는 게 지당하지않을까. 음, 하지만 그건 이 책의 문제라기 보다는 내가 뽀모도르의 파스타를 지나치게 편애 하는 탓이 큰 것 같아 뺐던 별 다시 넣는다.
ps. 근데 이 글은, 리뷰라고 하기엔 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