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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의 여왕
김윤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서울에서 집을 구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한번쯤은 하는 생각일 게다. 저렇게 많은 집이 있는데, 저 많은 집중에 내 집은 없구나 하는 생각.  

집을 구할때 내가 원하는 조건은 아주 간단했다. 학군도 필요없고 비싼집도 필요 없고, 넓은 집이나 편의 시설에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조용하고, 베란다로 산과 나무가 보이는 곳, 눈 앞에 회색빛 아파트가 떡하니 가로막고 선 집만 아니면 된다고 했다. 남편은 종종, 니가 원하는 그런 집이 서울 시내에선 얼마나 비싼지 알기나 하냐고 퉁박을 놓았지만, 어쨌든 그런 집을 찾아내 주긴 했다.  

그때가 2008년 9월, 지금 집사는 놈은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은때였다. 속된 말로 상투를 잡은 거였다. 베란다로 내다보는 공원 전망이 끝내주는 집이었지만 정서향의 집이어서 여름엔 끔찍하게 더웠다. 우리는 그 집을 남서향이라고 속아 샀다. 4차선 도로를 향해 베란다가 나있고, 기차길 옆이라 소음도 먼지도 지독했다.

집을 보러 다니면, 가끔 집이 나를 환영해준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흔히들, 내 집이 될 집은 느낌이 온다는데, 아마도 그런 느낌일 것이다. 무턱대고 밝고 환하게 집이 나에게 웃어보이는 것 같은 그런 집이 있다. 집과 나의 궁합이랄까. 남들에게는 단점으로 여겨질 부분이 나에게는 장점으로 치환되어 다가오는 그런 집. 이건 단순히 금액의 문제와는 다르다.  

정서향의 그 집은, 서향이어서 날이 길었다. 여름엔 저녁 7시까지도 환했다. 그래서 참 좋았다. 무턱대고 막 행복해지기까지 했다. 더웠지만 에어컨을 켜면 되었고, 소음에 취약한 나였지만, 그래도 그 집의 소음은 견딜만 했다. 어릴때 우리 외가가 기찻길가에 있었는데,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음이 들릴때마다 포근하고 만만했던 외가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하지만 6개월을 살았는데, 남편이 덜컥 해외 발령을 받아왔다. 1년도 살지 못한 집을 부동산에 내놨을때 서브프라임의 여파로 집값은 우리가 샀을때보다 2천만원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꽤나 오래 기다려, 우리가 산 가격 그대로 집을 팔았고, 베란다 확장비용은 고스란히 우리 손해로 남았다. 확장비용을 포함해서 세금이며 이자비용이며 웬만한 월급쟁이의 일년치 연봉을 고스란히 손해보고 1년 3개월만에 이사를 나온 집이지만 난 아직도 그 집에 대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처음 그 집을 보러갔을때, 그 화사한 아파트 외관과 나를 환영해주는 듯한 느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 집이란,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남들이야 뭐라고 이야기를 해도 나는 마냥 그 집이 좋은, 그 집과 잘 사귈 수 있을 것 같고 이 집에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집. 

이 책은 사람들에게 그런 집을 찾아주는 사람의 이야기다. 누군가가 가진 돈과 생활 조건에 맞춘 집을 찾아주는 일이 이 책의 주인공 송수빈에게 주어진 임무다. 직업이라고 하기엔 그녀가 그 일에 종사하는 기간도, 찾아준 집의 갯수도 너무 작으니까 일종의 미션정도로 생각하면 될듯. 모든 사람이 다 우와우와 할 집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단점이 될 부분이 본인에게는 장점으로 치환될수 있는 그런 집.   

집다운 집. 
춥지도 덥지도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집. 딱 좋은 양질의 햇빛과 바람이 솔솔 드나들고 나무와 꽃과 구름과 새, 하다못해 도마뱀까지 모든 자연을 앉아서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집. 넓지 않은 간소한 테라스지만 직접 만든 나무 벤치에 걸터 앉아서, 또는 해먹에 누워서 하루 종일 기분 좋게 노닥거릴 수 있는 우리집.
p. 213 

집다운 집은 집은 이런 집이다. 실제로 수빈은 남편과 함께 그런 집다운 집을 짓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발리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한국은. 

예전엔 그랬었다. 누가 집을 샀다거나 이사를 했다 그러면, 모두들 축하해주며 이런 덕담들을 해 주었다. 누가 그러는데 그 동네 애 키우기 참 좋다더라, 어머 내 친구 아무개가 살았었는데....... 옛날에 거기 배 밭이 있었지, 빵공장이 있어서 냄새가 참 구수했는데, 지나가다 보니까 산이랑 개울 경치가 참 좋더군....... 
지금은 다르다. 누가 집을 샀다고, 정확히 표현하자면, 모 아파트를 샀다 그러면,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그 집의 시세와 호가, 입지, 평면도를 알아보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는 동네 집값이 얼마나 거품이라거나 2006년 폭등으로 이제 폭락할 일만 남았다거나 임대아파트들이 많아서 거긴 막장이라거나 판교 입주하면 볼 장 다 봤다거나, 원래 주민 수준이 낮다는 둥의 그런 악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 것이다. 그 사람의 인격을 깎는 것 만큼이나 몰상식한 말이라도 사람들은 이제 별로 개의치 않는다. 무슨 집값 올림픽이라도 벌이듯, 너도 나도 더 높은 집값을 향하여 비교하고 깎아 내리고 분석한다. 교양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드러내놓고 험담을 하진 않지만, 그 정도 동네 그 아파트라면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 따져보며 회심의미소를 짓거나 배 아파하거나 둘 중 하나다.
p. 259-260 

누가 어떤집에 사는지보다 얼마짜리 집에 사는지가 더 궁금하고, 사는 동네가 수준을 말해준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청담동 도련님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하는 세태는 분명 비정상이다. 이건 분명 주객전도다. 집이 사는(living)게 아니라 단순히 사는(buy) 게 되어버린거다. 이래서야 집다운 집이란 허명만이 있을 뿐.  

그 서향집을 팔고 또 다른 집을 사야했다. 외국 나가기전에 부동산은 하나 잡아두고 나가는 거라고, 세이브되는 주거비용까지를 포함해서 평수를 넓혀 사 놓고 나가는 거라고 한결같이들 조언을 하길래, 우리는 또다시 집을 보러 돌아다녀야 했다. 

나는 사는(living)집을 원했지 재테크를 위해 사는(buy)집을 원하지는 않았다. 서울 시내에 집은 왜 그리도 많던지, 서울이란 땅덩이는 이럴때 또 얼마나 크던지. 지방출신인 나도 남편도 다니던 학교 근처와 직장 근처외에는 아는 곳도 없어 우두망찰했다. 돈을 손에 쥐고 있으니 살(buy)집은 차고도 넘쳤는데 정작 살(living) 집은 없었다. 그럴때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누군가 부동산에 도통한 사람에게 집 사는 문제를 일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사람을 붙잡고 우리가 가진 돈과 대출 가능한 규모는 얼마인지를 말해주고 내가 원하는 집의 조건을 세세하게 말을 해 주면 그 사람이 적당한 집을 구해봐 주는, 그런 시스템이 어디 없나.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세상엔 종종,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주인공 수빈이 누군가의 사연을 듣고 그 사람에게 맞춤집을 찾아주는 부분은 심윤경의 소설 <이현의 연애>를 떠올리게 했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 그녀를 사랑하는 이현과 이진의 기록속에 등장하는 영혼의 삶. 심윤경의 소설은 이 세가지가 어울려 일종의 옴니버스 액자소설을 만들어 낸다. 게다가 이진의 아버지, 이현의 장인이자 이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세.  

이들의 존재가 수빈(이진), 그렉(이현), 정사장(이세 공)에 슬쩍 덧칠되어 읽혔다. 물론 두 소설은 전혀 다른 소설이다. 수빈은 기록하는 대신 성실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영혼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고. 단지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는 집을 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수빈 자신의 사연이 두개의 이야기로 함께 진행되는 면이 비슷하다는 연상을 이끌어 냈을 뿐.  

처음에는 그저 그런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로 끝나는가 했다. 하지만 수빈의 사연을 풀어내고 그렉의 자취를 추적해가는 부분은 꽤나 긴박감 넘치는 재미를 가지고 온다. 끝까지 정확한 정체를 숨기고 있는 정사장이라는 존재의 미스테리도 그렇고. 소설의 말미의 극적 재회는 뭉클했다.  

액자식 옴니버스(이런 말이 가능한가? -_-) 형태라 이야기는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동일한 주인공이 각각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시리즈 소설처럼 읽기가 쉬운 소설이었다. 

그리고 집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 보게 한다.  

누군가에게 맞춤집을 찾아주는 수빈, 수빈이 살고 있는 집 또한 수빈의 남편이 "소울 하우스"라고 칭할 만큼 수빈의 가족에겐 맞춤 집이었다. 남들이 다들 아파트를 선호 할 때, 수빈과 수빈의 남편은 그들에게 맞는 주택을 찾아내어 안착한다. 그 집에 남편은 밤나무를 심고, 그 밤나무 아래에서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측두엽이 손상되어 기억을 잃었던 그는 아내와 아이 대신 그 밤나무를 먼저 떠올린다. 아마 그가 더 떠올리고 싶었던 건 그 밤나무 아래에서 안아주었던 아이와 아내였겠지만. 때때로 집은 가족의 대체물이 되기도 하니까.

사람은 그런 소울하우스에서 살아야 한다. 집은 누구나에게 소울하우스가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 완벽했던 소울하우스에서 쿨하게 떠날 줄 아는 수빈의 모습과 결단이 또한 신선했다. 결국 집이 사람을 묶어두는 집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집은 살다 떠나는 곳이다. 정을 붙여도 결국은 나만의 집으로 남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더 큰집, 더 비싼집, 재테크를 위한 수단의 집은... 삭막하다. 그 집에서 과연 행복할까. 사람들이 돈 대신 나에게 맞는 집 "소울 하우스"를 찾는다면, 모든 문제는 좀 더 쉬울텐데. 헌데 과연, 내가 사 둔, 몇년뒤에 들어갈 나의 집은 내 "소울하우스"가 맞을까. 

나의 소울하우스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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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힘 2010-02-04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엔 정말 저랑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많네요. 어쩜 저랑 독후감이 똑같은지 놀랬습니다. 저는 글재주가 미천하여 이렇게 님처럼 감성적이고 콕 집어서 잘 쓰지못한다능....참 좋은 책 같아요. 말 그대로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당